시(詩)
내가 태어난 날은 아니지만
이름 하나가 내 안에 다시 피어난 날
누군가의 삶을 빌려
나의 길을 비추기 시작한 날
세상이 준 이름이 아니라
내가 선택한
혹은 내가 불리길 바랐던 이름
조용히 손에 쥐고
오랫동안 뜨거워지지 않던 마음에
첫 불씨가 닿았다
영명축일은
누군가의 발자국을
따라가겠다는 다짐이 아니라
그 흔적 위에서
나만의 걸음을 새로 새기겠다는 선언이다
오늘 나는
내가 빌린 이름의 그림자 아래 서서
그 성인의 침묵과 고요를
한 줌씩 되짚어 본다
이름이 나를 부르는 순간
나는 어제의 나로 돌아갈 수 없다
빛이든 어둠이든
그 이름이 이끄는 방향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갈 뿐이다
영명은 영원한 명(名)이다
바람에 흩어지지 않는 소리
세월에 씻기지 않는 뜻
그 뜻을 붙잡는 하루가
오늘 나에게 주어졌다
내가 다시 태어나는 날
발끝에 쪼그리고 앉아
까칠한 붓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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