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할 수 있는 조용한 저항에 대하여
산업자본주의 속에서 ‘쓸모있는 인간’이라는 말은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우리 일상에 스며들어 있었다.
우리는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사회가 정한 표준의 선로 위에 놓여 있고, 그 선로가 요구하는 속도로 달리는 법을 배운다. 효율, 생산성, 경쟁력. 이 세 단어는 마치 투명한 공기처럼 우리의 마음속으로 들어와, 우리가 무엇을 꿈꿔야 하고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지를 은근히 지시하고 있었다.
산업자본주의 사회가 길러내는 인간은 언제나 “대체 가능성”이라는 그림자를 달고 있다.
오늘의 나를 대신할 사람은 언제든 나타날 수 있고, 그것은 잔인하지만 놀랍도록 평범한 사실처럼 여겨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이 쉽게 교체될 수 없다는 증거를 증명하듯 쉼 없이 움직인다. 더 많이 배우고, 더 바쁘게 살아야 하며, 더 빠르게 성장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렇지 않으면, 사회가 요구하는 ‘쓸모’의 기준에서 벗어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늘 등을 떠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만 걸음을 늦춰 보면, 이 ‘쓸모’라는 단어가 정말 인간에게 어울리는 말인지 생각하게 된다.
기계나 도구에는 쓸모를 따지는 것이 자연스러우나, 인간에게 쓸모의 기준을 들이댄다는 것 자체가 이미 산업화된 사고방식의 산물이니까. 사람은 쓸모로만 설명될 수 없고, 그런 방식으로만 존재 의미를 규정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자본주의의 큰 톱니바퀴는 우리에게 그 사실을 잊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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