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의 기준 밖에서 시작되는 자유
소수자의 이름으로 표현되어야 할 자유. 자유는 늘 가장 큰 목소리로 말해진다.
다수의 언어로 정제되고, 보편의 이름으로 포장되며, 상식이라는 단어 뒤에 숨는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자유가 이미 충분히 보장된 것처럼 느낀다. 그러나 조금만 시선을 낮추면, 그 자유가 누구의 몸을 통과해 여기까지 왔는지 묻게 된다.
자유는 평평하지 않다.
어떤 이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공기이지만, 어떤 이에게는 아직 허가를 기다리는 문장이다.
소수자는 숫자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위치의 문제이며, 말해질 수 있는 가능성의 문제다. 사회는 늘 중심을 만들고, 중심 바깥을 정의한다. 중심에 가까울수록 자유는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충분하다는 뜻이 아니라, 질문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반면 바깥에 놓인 이들에게 자유는 언제나 설명되어야 하고, 증명되어야 하며, 때로는 정중하게 거절당한다. “그건 자유의 문제가 아니다”라는 말로.
자유가 소수자의 이름으로 표현되어야 한다는 말은, 특별 대우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유의 실체를 정확히 보자는 요청이다. 자유가 정말 자유라면, 가장 불리한 조건에 놓인 사람의 삶에서도 작동해야 한다. 가장 말하기 어려운 사람이 말할 수 있을 때, 가장 쉽게 오해받는 사람이 오해받지 않아도 될 때, 가장 늦게 도착한 사람이 먼저 도착한 이들과 같은 방에 앉을 수 있을 때, 그때 비로소 자유는 추상에서 현실로 내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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