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사유가 머무는 자리
나는 더 이상 명확한 답을 갖고 싶어 글을 쓰지 않는다.
이 글 역시 무엇을 설득하기 위한 문장이 아니다. 다만 어떤 태도로 이 세계를 바라보겠다는, 아주 조용한 표명에 가깝다. 삶을 살아내는 방식에 대한 선언이 아니라, 삶 앞에 서는 자세에 대한 고백이다.
우리는 흔히 생각보다 태도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의견은 넘쳐나고, 입장은 분명하며, 판단은 빠르다. 그러나 그 모든 말의 바닥에 어떤 태도가 놓여 있는지는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다. 무엇을 말하느냐보다 어떻게 바라보느냐가 더 중요해진 시대임에도, 우리는 태도를 부차적인 것으로 취급해왔다. 태도는 결과를 바꾸지 못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점점 확신하게 된다.
결과는 태도의 부산물이라는 것을. 선택은 태도에서 나오고, 관계는 태도에서 무너지거나 이어지며, 삶의 결은 결국 태도의 반복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을.
이 세계는 점점 속도를 강요한다.
빠른 이해, 즉각적인 판단, 명확한 편 가르기. 모호함은 미숙함으로 오해받고, 망설임은 무능으로 치환된다. 그런 환경 속에서 태도를 말한다는 것은 어쩌면 비효율적인 일이다. 태도는 느리고, 즉각적인 성과를 보여주지 않으며, 숫자로 증명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태도보다 기술을 배우고, 시선보다 전략을 익힌다.
하지만 태도가 없는 기술은 쉽게 잔인해진다.
태도가 결여된 효율은 사람을 소모품으로 만들고, 태도가 빠진 성공은 공허를 남긴다.
우리는 이미 그런 장면을 너무 많이 보아왔다. 잘 해내는 사람은 많아졌지만, 잘 살아가는 사람은 드물어졌다. 능력은 넘치지만, 방향은 불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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