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넬과 소주

화려함과 진심이 한 잔에 스며들다

by 구시안
Screenshot_20210118-175752_Facebook.jpg


샤넬은 어디서든 샤넬 다운 법이다.

소주도 어디서든 소주 다운 법이다.




나는 가끔, 샤넬에서

"리테일 프로덕트 코디네이터로

(Retail Product Coordinator)"일하는

후배와 소주를 마신다.

우리가 흔히 아는

샤넬, 루이뷔통, 등의 럭셔리 브랜드 매장과

본사 사이를 연결하는 핵심 브리지 역할하고

매장에서 어떤 상품이 어떻게 팔리고,

고객 반응이 어떤지를 분석해
본사의 상품 전략과 운영 방향에 반영하는

역할을 한다고 했다.



사실 직함을 듣고 나의 질문은

" 리테일 프로덕트 뭐.... 뭐라고? "였다.



후배의 설명을 듣고서야

본사와 매장을 연결하는

다리역할을 하는 사람이라는 거 정도로

이해하기로 했다.

복잡한 말과 설명에 따르는 직함을

질색하는 나였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부장, 과장, 대리, 주임이 더 편하다.

후배가 하는 일이

어떤 일을 하는지는 자세히는 모른다.

사실 내가 잘 알 필요도 없었다.

후배가 자신이 하는 일을 잘하면 되는 일이었다.

나는 모르는 건 모르는 데로 두는 게 편한 사람이다.



그는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했다.

몽블랑과 까르띠에의 어시스턴트를 거쳐 지금은

샤넬의 프로덕트 부서에서 일하는데,

이 업계에서 남자가 그 자리에 앉는 경우는 드물다고 했다.



그의 강점은 단연 사람과의 관계를 다루는 능력,

그 너머에 있는 미묘한 감정의 결을 읽는 감각이었다.

오랜 세월 지켜본 나의 시선에는 그런 후배였다.



패션업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비슷하다.

화려함의 속내를 알고,

인간의 심리를 직조하듯 엮을 줄 안다.

그들은 마치 ‘빛의 기술자’ 같다.

옷과 향수,

패션과 액세서리를 통해 사람의 마음속

욕망의 모양을 비추어내기 때문이다.


그들의 대화는 가벼워 보이지만,

그 밑에는 인간의 본성을 꿰뚫는 통찰이 깔려 있다.

한마디로 무당끼가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다.

얼마 전, 오랜만에 만나 나누는 술자리에서

후배가 샤넬의 샤워젤을 선물해 주었다.



동대문 장사하던 시절 단골집이었던 신당동

‘재구네’라는 곳에서 이야기 꽃은 피어났다.

오래된 나무 의자에 앉아 연예인들의 빛바랜 사진이 걸린

낮과 밤이 상관없이 올 수 있는 곳이다.

이곳의 추억은 수많은 낮과 밤들로 물들어 있다.

마치 이곳의 낡은 탁자와 의자가 말해주듯

그날의 열정과 패기로 물든 낮과 밤이 고스란히

자리하고 있는 듯했다.

깊게 파인 이모의 주름이 말해주듯 세월은 많은 시간을

흘려보낸 추억의 곳이기도 하다.



상추에 마늘을 얹고,

소주 한 잔을 기울이다가

문득. 그 샤워젤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그 순간 이상하리만치 조화로웠다.
기름과 연기, 쇠젓가락의 달그락 거림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가 섞이고

사이에 투명한 유리병 하나가 고요하게 서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처음처럼.

늘 처음처럼 마시는 기분이라 좋은 소주.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한국적인 것이 꼭 ‘한국적인 포장’ 속에만 있어야 할까?
샤넬의 로고가 사라지면 그건 여전히 샤넬일까?

그 질문은 단순히 브랜드에 대한 의문이 아니라,

정체성에 대한 물음이었다.



사람들도 그렇다.

직함과 옷, 향기를 벗겨내면 무엇이 남는가.


만약 이 장면이 한국의 소주와 돼지갈비,

그리고 샤넬 샤워젤이 함께한 풍경이 샤넬 광고로 나간다면,

세상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마 “불편하다”라고 하겠지만,

그 불편함 속에 잠재된 것은

경계가 무너지는 순간의 진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샤넬은 ‘품격’의 이름으로,

소주는 ‘서민’의 이름으로 살아왔다.

하지만 이 둘은 결국 같은 욕망의 다른 얼굴이다.



인정받고 싶다,

잊히고 싶지 않다.

누군가에게 아름답게 보이고 싶다.
샤넬은 그 욕망을 향기와 디자인으로 포장하고,
소주는 그것을 눈물과 웃음으로 녹인다.

이것이 바로 내가 생각하는 명품의 심리다.

다를 게 없는 똑같은 명품이다.



샤넬을 구매하는 사람은

단지 비누나 향수를 사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나'라는 존재의 가치를

조금 더 고급스럽게 포장하고

싶은 심리적 욕구를 사는 것이다.

반대로 소주를 마시는 사람은

그 포장을 벗어던지고 싶어 한다.
화려함의 피로를 씻어내고,

진짜 자신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욕구.



나는 그날,

샤넬 샤워젤 옆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며

이상한 평화를 느꼈다.

이니 그것은 평등함이었다.



이상과 현실,

명품과 평범함,

겉모습과 내면이 잠시나마

한 테이블 위에서 화해하는 순간이었다.



샤넬의 유리병은 여전히 빛났고,

소주의 잔은 그 빛을 받아 은근하게 흔들렸다.

그리고 소주병은 푸른 숲처럼 느껴졌다.
둘 다 나에게는 소중했다.
하나는 이상이 주는 위로,

하나는 현실이 주는 위안이었다.



샤넬이든 소주든,

결국 그 안에는 인간의 심리가 있다.
욕망과 위로,

화려함과 진심,

그 사이를 오가는 마음의 파동이 있었다.



조용히 구도를 잡고

왼손을 살포시 올려 사진 남겼다.

가장 조화로운 구도로 여러 번 찍었다.

이 순간을 남기고 싶었다.



어느덧, 어른이 되어 사회 나와

잘 적응하며 일하고 있는

후배의 고마운 마음과

샤넬의 아름다움과

소주의 잔향을.



샤넬은 어디서든 샤넬답고,

소주는 언제나 소주답다.
그 둘이 함께 있을 때,

오히려 가장 조화로운 협업.

내 눈에는 평등으로 물든

가장 인간적인 형태로 보였다.

이전 09화사람의 향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