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청동 초겨울의 그림

나만의 지도를 만들어 거닐다

by 구시안



초겨울의 삼청동은 약간의 공허로 빛나고 있었다. 바람이 차갑게 얇아졌다. 아직 완전한 겨울은 아니지만 사람들의 옷깃 사이로 조용한 냉기가 스며들고 있었다. 삼청동의 길목마다 은빛 그림자가 내려앉고 있었다. 낙엽은 이미 반쯤 말라 떨어지고, 길 위의 차가운 블록 들판이 펼쳐졌다. 쉬는 날이면 내가 오랫동안 갖고 있는 나만의 지도에 표시된 곳을 방문한다.



지난 몇 주간 정신없이 돌아가는 와중에도 밤이면 글을 썼다. 오히려 마음이 정리되는 부분과 잡생각으로 물들었던 모든 것들이 씻겨져 나간 듯한 기분이었다. 10월 30일. 10월의 마지막날에 브런치 작가로 등록되었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불과 11일 만에 이 글을 포함해 81개의 글을 올렸다. 기존에 써두었던 글들과 새롭게 마음이 이야기하는 것들을 미친 듯이 써 내려갔다. 오히려 이곳에서 글을 쓰게 된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물드는 밤이 많았다. 무언가 벗어나고 싶다는 도피 같은 것이 나를 잠식하고 있었다. 일상 속에 반복적인 일이 아닌, 가장 내가 좋아하는 것에 열중하는 일은 익숙한 강박 같은 편안함이었다.



이 호흡을 끌고 육체를 이끌고 나가기에 가장 좋은 곳은 삼청동을 거니는 일이다. 오랜 된 미술관의 마룻바닥을 밟을 때 나는 소리가 기억났다. 나는 오늘 삼청동을 걷는다. 걷는다는 건 어쩌면 하나의 관람 행위다. 나의 관람 행위는 늘 삼청동에서 이루어졌다. 이곳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마치 정해놓은 맵의 표시된 곳을 정기적으로 도는 것처럼 산책길의 노선은 이미 정해져 있는 편이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나는 어느 날 어느 순간 늘 이 거리를 걷고 있었다. 생각 없는 생각으로 발걸음은 이어졌다.



낙엽과 햇살로, 삼청동의 초겨울의 전시는 공기와 그림자로 채워진다. 바람이 한 점의 수묵화처럼 흘러가고, 사람들의 뒷모습은 흑백사진처럼 멀어진다. 국립현대미술관을 좋아한다. 삼청동에 들를 때마다 미술관에 들어가 보는 작품들과 풍경을 좋아한다. 미술관 앞에 서면 언제나 묘한 정적이 있었다. 혼자만의 생각을 편안하게 할 수 있는 조건은 쉬는 날 핸드폰을 꺼버리는 것이었다. 쉬는 날도 물밀듯이 날아오는 메시지들은 하나의 보이지 않는 족쇄 같은 것이었다. 몇 년이 지나도록 쉬는 날이면 핸드폰을 꺼버리니, 이상하게도 아무도 모라는 사람이 없어졌다. 정적이 좋았다. 쉬는 날의 정적.



나는 어쩌면 그 정적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누군가는 사진을 찍고, 누군가는 작품 앞에서 잠시 멈춰 생각에 잠기는 모습을 바라본다. 그 멈춤 속엔 각자의 사연이 녹여있을지도 모른다. 어떤 이는 잊고 싶은 얼굴을, 어떤 이는 잃어버린 계절을 떠올릴 것이다. 예술은 늘 그런 식으로 우리 안의 기억을 흔든다. 내가 그림을 오래 바라보는 이유도 그것 때문이다. 선명하지 않은 감정이, 그 불분명함 속에서 오히려 명확해지는 순간이 있다. 미술관을 구경하고 내려오는 길에서 만나게 되는 이 사계절 푸른 나무는 여전히 푸르렀다. 나는 이 나무를 계절을 잃은 나무라고 불렀다.





삼청동의 사람들은 이상하리만큼 느리다고 느꼈다. 빠르게 걷지도 않는다. 모두가 어딘가로 향하면서도, 그 길의 표정은 즐기듯 걷고 있었다. 누군가는 목도리를 매만지고, 누군가는 혼자 걸으며 이어폰 속에 음악에 젖으며 지금의 시간을 즐기는 듯 보였다. 문득, 지나가는 사람의 눈에는 내가 어떤 계절로 보일까. 쓸쓸한 초겨울의 한 점, 혹은 잠시 멈춘 그림의 일부처럼. 혹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사람이 없는 카페에 왔다. 이 카페의 주인장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늘 사람이 없는 이곳이 영원히 유지되길 바랄 정도로 이곳을 좋아한다. 김이 올라오는 잔 위로 시간이 천천히 식고 있었다. 초겨울의 카페는 언제나 정서적이 된다. 유리창에 닿은 햇빛이 희미하게 반사되고, 사람들의 대화는 낮은 톤으로 가라앉는다. 커피의 쓴 향이 코끝에 머물 때마다 마음 어딘가가 말라가는 낙엽처럼 가볍게 흔들리고 있었다. 삼청동의 골목은 여전히 이어지고, 그 위로 겨울이 조금씩 깔리고 있음을 느꼈다.




미술관 화장실에 그려놓은 그림 한 점이 눈에 들어왔다. 누군가 그려놓은 저 생명체의 정체를 알 수는 없지만 느낌 있었다. 낮에는 그림으로 있다가 밤이 되고 사람들이 사라지면 나타나는 외계인일지도 모른다. 잠시,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건물에 들어서니, 우주선에 올라탄 느낌이 들었다. 미술관의 조명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눈처럼 희고 섬세한 하얀빛이 쏟아지는 공간이 묘하게도 좋았다.




삼청동은 34년 전부터 거닐던 곳이었다. 학창 시절 계동에 있는 학교를 다녔다. 삼청동은 늘 예술의 냄새가 났다. 나는 그 냄새를 좋아했다. 그것은 갤러리의 향이 아니라, 거리 전체가 품고 있는 시간의 향이다. 예전과 많이 달라진 부분도 있지만, 이런 우주선 느낌의 공간보다는 예전에 소소했던 갤러리들이 더 좋게 느껴지는 이유는 내가 옛것들을 좋아하는 이유에서 일지도 모른다. 바뀐다고 새것들이 생긴다고 좋을 것은 없었다.




오래된 벽돌과 새로 칠한 하얀 담 사이에서, 과거와 현재가 얇은 막처럼 겹쳐지는 곳이 내가 좋아하는 산책길이 놓인 삼청동이다. 그 사이를 걷는 일은 편안하고 평화로운 시간을 주었다. 걷는 동안 세상은 잠시 조용해지고, 모든 감정이 미세한 먼지처럼 공중에 떠오른다.




늘 들릴 때마다 물어봐야지 하는 것이 있었다. "여긴 도대체 어떻게 들어가는 가는 건가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도서관. 이곳이 올 때마다 조용히 책 읽기 좋은 곳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날 오게 되면 꼭 누군가에게 물어봐야겠다 다짐하고 돌아섰다. 바람이 길 위를 스쳤다. 나뭇가지가 흔들리고, 낙엽이 가늘게 부서지며 길 위에 흩어졌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그 소리가 내 마음속으로 스며들었다. 유리창 너머 책들은 고요히 서 있지만, 그 안의 온기는 바람에 흔들리는 내 몸과 마음을 살짝 덮고 있었다.




겨울 햇살은 낮고 길게 뻗어, 유리창에 부딪혀 희미한 빛으로 반사됐다. 그 빛과 바람과 내 숨결이 뒤섞일 때, 나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정적이 감도는 도서관에 꽂힌 책들 사이사이로 물들어 있는 정적을 담고 있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모든 것이 내 안의 사색과 함께 길 위에 남는 듯했다.




산책길은 아무 말 없이 모든 것을 기록한다. 흔들리는 바람 속에서 나는 나를 본다. 그리고 그 모든 흔적은 겨울의 한 페이지처럼 조용히 그러나 선명하게 마음에 남는다. 빛에 부서지는 잔상들을 바라본다. 거리마다, 사람들 마다 스며드는 빛은 여전히 아름답고 빛나고 있을 뿐이었다.





브랜드 이미지와 현실 사이는 얇은 종이 한 장으로 찢겨 나갈 수가 있다. 런던 베이글에 미쳐 있던 사람들은 얼마 전 이슈로 등을 돌리는 사람이 많아졌지만, 몇 달 전 서점에서 집어온 '료의 생각 없는 생각'이라는 책 속에는 그녀가 얼마나 많은 일들을 겪어 왔을까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녀의 브랜드는 높은 가격에 매각되었고, 그녀는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해나가고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디자이너 출신에 수많은 사람들에게 각광을 받을 수 있었던 그녀의 브랜드 메이킹에 대해 논할 자는 업계에 없다. 성공이라는 것에는 늘 단것뿐이 아닌, 쓴 맛들도 따라온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회사의 해명, 가정의 주장, 정부의 노동감독, 사회적인 문제로 떠오른 숙련되지 않은 외식 브랜드에서도 이러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가장 현실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었다.



그녀가 하는 브랜드는 여전히 줄을 잇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은 놀랍지도 않았다. 모든 것에는 안 보이는 이면이 있고, 그 사실을 서로의 주장대로 펼쳐간다면, 이야기는 끝이 없는 답답한 것이 되어 갈 것은 자명한 일이다. 쉬는 날까지 그녀의 매장에 줄을 서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니 그다지 보기 좋지는 않았다. 문득, 매장이 생각났다. 모두가 땀을 흘리며 열심히 일을 하는 모습들이 그려졌다. 가끔 누군가를 위해 일을 하는가를 생각한다. 가끔씩 보는 브랜드를 운영하는 선배를 찾아 술을 한 잔 마시는 날이면 고정 멘트처럼 날리는 화살하나가 있었다.



" 이것저것 다 꼬우면 네 거 해. 그럼 돼. 쉬울 거 같니? 사람들 입에 들어가는 것을 만들어 낸다는 게? 이곳에 살아남는다는 게? 꼬우면 네 거해. 아니면 참는 거밖에 더 있니? 함부로 누구한테 침 뱉을 거 없어. 누구에게 강요하지 못하는 이유는 정당해야 하는 거야. 어느 누구에게 강요하지 않아야 해. 꼬우면 네 거해."



정답이었다. 이것저것 다 싫으면 창업을 하면 되는 일이었다. 자신이 대표가 되면 되는 일이다. 누가 모르겠는가. 그 도전이 쉽지 않은 이유를 대는 것에는 수만 가지가 있겠지만, 어쩌면 핑계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남의 것을 보고 말이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이 그러하다.



모든 것에는 서사가 존재한다. 분명 우리가 모르는 이야기도 있었을 것이다. 이유들이 난무한 이야기들이 펼쳐지는 것이겠지만, 한 사람의 선택에 토를 달아서는 안된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것이 슬픔이든 기쁨이든 상관없다. 어차피 스스로 결정한 자의 몫은 이 세상에 자리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말들은 많으나, 침묵을 지키는 것이 어쩌면 현명한 일이다. 늘 문제의 화두는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며 더욱더 커져가는 세상에 살아가고 있는 것에는 변함이 없는 세상이다.



늘 이곳에는 사람이 많다. 가끔 무엇 때문에 이런 문화가 생기게 된 것이며, 베이글이 사람들이 흥분하는 브랜드가 되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오늘도 줄은 긴 기차처럼 줄지어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해가 느리게 기울고 있었다. 하늘은 희미한 푸른색을 잃고, 회색빛으로 번져가는 시간. 초겨울의 삼청동은 오늘도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차가운 공기 속에서 사람을 다독이는 어떤 온기를 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몸속에 퍼져있는 따뜻한 커피의 열이 아니라, 스스로를 천천히 이해하게 하는 계절의 온기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그 온기 속에서, 오늘도 조금은 외롭고, 조금은 살아있을 뿐이었다. 늘 삼청동이 마지막에 가져다주는 감각은 그랬다. 늘 거니는 삼청동의 초겨울은 평화로운 그림처럼 느껴졌다. 가장 걷기 좋은 도화지에 그려진 길을 거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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