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오지 않는 깊이

하루가 가라앉은 자리에서 다시 숨을 찾기까지

by 구시안



욕조의 물은 따뜻했지만 마음은 오래된 냉기처럼 식어 있었다




하루의 끝, 욕조에 몸을 기댄다. 물이 몸을 끌어당기고, 얼굴을 물아래로 천천히 낮췄다. 귀를 스치는 물의 울림이 작게 흔들린다. 누군가가 멀리서 천천히 문을 닫는 소리처럼, 작고 단단한 고요가 귀안에 차올랐다. 물속에서 눈을 감으면 어둠이 먼저 내려오고, 눈을 뜨면 빛이 무너졌다. 가라앉은 것들이 느린 호흡처럼 움직였다.



바닷속 깊은 심해를 생각했다. 머리카락이 물결에 젖으며 천천히 가라앉는 동안, 나는 오늘 하루를 지탱했던 힘이 어디까지였는지 가늠해 보았다. 천천히 숨을 고르고, 물속으로 나를 채웠다. 물 위로 떠오르는 작은 기포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눈을 감고, 누구도 오지 않는 깊이에 다다르길 바라고 있었다. 얼굴까지 잠기자 세상이 흐릿해졌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가까워지는 순간, 하루를 견뎌낸 지친 마음이 지그시 눈을 감고 있었다.



숨을 참고 숨을 쉬 고를 반복하며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었다. 마음은 깊은 심해의 고요 떠올리고 있었다. 심해의 압력을 견딜 수 없는 것처럼, 나는 오랫동안 숨을 참을 수가 없었다. 욕조에 담갔던 몸을 일으키고 가벼운 숨이 폐 안으로 들어왔다. 목을 젖혀 피로감을 체크한다. 이 알 수 없는 무거운 기운들이 싫다. 하루 종일 누군가가 내 온몸 감아 팽팽하게 당겼던 줄이 느슨해지는 것처럼 느껴지고 있었다. 한쪽 눈은 감기고 다른 한쪽은 억지로 떠 있으려 했다. 마치 하루 동안 참고, 버티고, 숫자처럼 움직였던 정신이 이제야 저항을 멈추고, 깊은 곳으로 가라앉고 싶다는 듯이.



조심스레 숨을 내쉬면 물결이 일었다가 금세 가라앉았다. 그 반복이 나를 안정시키고 있었다. 물을 가르는 순간마다 내 얼굴의 윤곽은 흐트러지고 숨을 한 번 들이쉴 때마다 물결은 다시 모양을 바꿔 나를 새로 그렸다. 물을 좋아하게 된 것은 사회에 나오부터였다. 물속을 가르면 아무 생각 없이 모든 것이 평화로웠다. 동네 수영장을 다니며 그렇게 십여 년간 수영을 규칙적으로 했었다. 시간 속에 하나씩 잃어가거나, 없어져 가는 것들이 내 안에도 생겨갔다. 수영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심해는 늘 나를 유혹하는 장소였다. 그곳에는 소음이 없다. 누군가의 말도, 기대도, 판단도, 불쑥 날아와 내 마음에 상처를 내는 작은 비난도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압력만 있다. 아무 말도 없지만 그 거대한 힘. 숨조차 쉽게 허락하지 않는 그 고요한 힘이 나를 무너뜨리면서도 안정시키는 모순된 공간. 나는 심해를 생각하고 있다.



욕조에 몸을 담그면 그 깊이를 흉내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욕조의 물은 너무 얕아 온몸을 물에 담갔다. 심해를 꿈꾸지만 닿지 못하는 사람처럼, 내 안의 무거움을 완전히 내려놓지 못한 채 얇은 수면 위에서만 허우적거리고 있는 것 같았다. 물속에서 잠시 눈을 감으면 두 가지 마음이 동시에 찾아왔다. 하나는 더 깊이 내려가고 싶은 마음. 온몸이 물의 속도로 침잠해 정적의 세계로 들어가고 싶은 유혹. 다른 하나는 다시 올라와야 한다는 의식 아주 미세한 본능 같은 것. 숨을 쉬고 싶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어둡고 조용한 곳이라도 영영 머물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인간의 뿌리 깊은 생존의 의지는 그러했다.



심해를 생각하는 이유는 아마 내가 그곳과 닮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더 많은 것들이 요동치고, 입 밖으로 내지 못한 말들이 진흙처럼 바닥에 쌓여 있고, 누군가 건드리면 쉽게 부서질 것처럼 연약하면서도 또 어떤 면에서는 누구도 함부로 들어올 수 없을 만큼 단단하기 때문이다.



그 감정들의 무게 오늘따라 더 진하게 느껴져 나는 물속에서 숨을 을 수 있을 때까지 한동안 올라오지 않았다. 내 피부를 스치는 물결, 귀 옆에서 울리는 묵음의 진동. 호흡이 이 잠깐 끊기며 만들어내는 깊은 고요. 이 모든 것이 마치 괜찮아 잠시 이곳에 머물러도 되라고 말하는 듯했다. 하지만 결국 물 위로 올라와야 했다. 사람은 심해의 압력 속에서 오래 머물 수 없듯이 가라앉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살아 있으려면 다시 위로 향해야 한다.



물이 턱끝에서 떨어지고, 숨이 처음 공기를 다시 맛보는 순간. 나는 오늘 하루를 끝까지 살아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버텼고, 흔들렸고, 그래도 이렇게 다시 수면 위에 올라와 있다. 내일도 아마 같은 시간, 같은 욕조에서 나는 또다시 심해를 떠올릴 것이다. 그곳은 도망이 아니라, 나를 다시 세우는 깊고 어두운 정적이기 때문이다. 누구도 오지 않는 깊이에 머물러 있었다.


이전 11화삼청동 초겨울의 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