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 속에 카마데누를 떠올리다

갖지 못한 것들의 그림자를 미술관에서 마주하다

by 구시안



그 모든 것이 한 점의 붓질 속에서 미묘하게 떨리고 있었다





우습게도 도망친 현실 속을 벗어난 나는 런던의 한 미술관에 자리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하기 싫어 다음을 생각하지 않은 도피 같은 것이었다. 핸드폰을 끄고 갖고 있던 모든 돈을 긁어모아 떠난 여행이었다. 이기적이고 나 밖에는 생각이 나질 않는 상황 속에 결정했던 모든 것을 후회하지 않기로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



세상에는 신화 같은 일들도 있었지만, 다행히 나에게는 그런 신화 속에서 벌어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말도 안 되는 신화 따위를 믿지 않았던 건 이미 어렸을 때 잃었던 동심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저 한 사람이 살아가는데 뭐가 이렇게 복잡하고 힘든지에 대한 생각과 고민들이 쌓여 나의 성을 만들어 놓은 상태였다. 그 삶의 조각들이 차곡차곡 쌓아 올린 성은 의외로 시간 속에 단단한 구조로 세워져 있었다. 쉽게 무너질 줄 알았던 예상과는 달리 오히려 나 스스로가 바라보는 지난날에 쌓아 올린 하나하나의 조각들이 그리 의미 없지 않은 것들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수많은 감정의 벽돌은 차고 넘친다는 것을 관가했다. 이미 그 무게를 못이겨 단단하다고 생각했던, 너무나 쉽게도 무너져 내린 성을 바라보며, 나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게 된 시간이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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