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할 너머, 혼자라는 구역
내 귀에 입김과 함께 불어넣는 사람들의 말들이 거리에 춤을 추고 있었다.
어떤 것은 얼어서 땅에 떨어지고,
어떤 것은 귓가에 다가와 속삭였다.
너무나도 메마른 용산역 광장 출구 쪽에 누워 있는 시인은 맨발이었다.
마치 사람들은 아무도 모르는 지옥의 불구덩이에 들어가
초연하게 걷다 나온 사람처럼.
검게 그을린 듯 까맣게 물든 발에는 온기가 없어 보였다.
거리의 시인이 누워 있는 공간 바로 옆,
용산역을 방문한 수많은 사람들이 들락거리는
잡화 매장에 들어가 3천 원짜리 색이 짙은 빨간 수면양말을 하나 샀다.
그리고 건너편 편의점에 들러 우유 하나와 담배 한 갑을 보태 양말을 건네니,
늘 그랬던 것처럼 잠시 웃고 받으신다.
아무도 이 거리에 있는 시인을 신경 쓰지 않는다.
그렇게 세상은 혹독해지고, 더 얼어붙은 겨울을 선사하고 있었다.
용산역 1번 출구를 스쳐가는 하루가 오면, 그 거리의 시인을 만난다.
이상하게도, 그 거리의 시인은 왜 그렇게 맑아 보이는 것일까.
1분조차 걸리지 않는 그런 만남이 지속되고 있었다.
이런 나를 ‘굳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착한 척’이라고 불릴지라도.
원래 그런 것에 나는 관심이 없으니까.
이유 없이 그를 만나게 되면,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서.
빠르게 필요한 걸 챙기고, 빠르게 전달해 주고 갈 뿐이다.
이 추운 겨울날, 박스 두어 장을 깔고 앉아 누워
메마른 자신의 몸에 묻은 온기에 의지하며 자리하고 있는
그 이유가 무엇인지,
왜 사람들의 불편한 눈초리와 그 혐오 섞인 눈초리를 바라보며 살아야 하는지
알고 싶지는 않다.
사람들을 바라보는 그 거리의 시인 눈동자가 왜 그리도 맑은지를 생각하며
수많은 사람의 숲을 지나쳤다.
익숙한 길이 되어가고 있는 용산.
사람들은 여전히 편안함을 만끽하고 있었다.
우아한 식사. 단란한 가족. 연인. 친구가 아닌 친구.
그 흔한 불륜 사이.
각자의 드라마를 쓰며 사는 사람들의 소음이 없고.
모두가 편안하게 흘러간다.
아주 오랜만에.
잡음이 없는 식사들을 즐기고 있었다.
아침 출근길 슬픔의 근원지를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었다.
삶을 바꾸겠다거나.
다시 꾸미겠다거나 하는 그런 짓거리는 하지 않는다.
불편한 건 딱 질색이니까.
더 이상 쓴 것들을 만지지 않기로 한 이상.
불필요한 일에서 손을 멀리 두기로 했다.
어쩌면 지난밤. 지옥의 불처럼 타오르는 그 점화점을 찾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것을 확실하게 들여다본다면 알게 될 테니. 욕심을 부렸던 것이다. 반드시 보고 싶다고.
새벽이 물드는 깊은 밤. "우아한 유령"이라는 음악을 듣고 피아노에 손을 댔지만, 치지 않았다.
오래, 아주 오래 칠 것 같아서. 주변 동네 사람들에게 새벽의 미친놈이라고 들을 거 같아서.
출근길에 마주칠 그들의 시선이 나의 짙은 검은 선글라스를 뚫을지도 모르니까.
그것을 따라 치는 것보다 듣고 상상하는 게 좋아서.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