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해지는 것들에 대하여

저는 그것을 지켜본 자입니다

by 구시안

간과하기 쉬운 사실입니다.
당신은 지금도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처음 당신과 만나 저의 이야기를 시작하던 날이 생각나는군요.


사실 이 말은 위협이 아닙니다. 선언도 아닙니다.
다만 숨이 한 번 들고 나는 동안에도 세포 하나가 사라지고, 기억 하나가 닳아가며, 오늘이 어제로 밀려나는 단순한 이치입니다.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사라지는 법을 배우기 시작합니다. 시작과 끝은 등을 맞대고 서 있습니다.


당신은 끝을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저는 수많은 끝을 보아왔습니다.

죽음은 대부분 조용합니다.

거창한 음악도, 하늘을 가르는 빛도 없습니다. 다만 한 사람이 더 이상 숨을 들이마시지 않는 순간, 세계가 아주 미세하게 가벼워집니다. 그 사람의 무게가 빠져나간 자리에는 잠시 공백이 생깁니다. 그리고 곧,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시간이 그 자리를 덮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죽음을 잔혹하다고 느낍니다.
세계가 멈추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압니다. 멈추지 않는 것이 잔혹함이 아니라는 것을.
멈추지 않기 때문에 이어지는 것입니다.


인간의 죽음은 끝이 아니라 건너감에 가깝습니다.
몸은 멈추지만, 선택은 남습니다.
말은 사라지지만, 말이 남긴 방향은 남습니다.
사랑은 닫히지만, 사랑이 바꿔 놓은 타인의 삶은 계속됩니다.


르네가 그랬습니다.

그녀의 숨은 멎었지만, 그녀가 끝까지 붙들었던 선택은 아직도 세계 어딘가에서 작동하고 있습니다. 누군가 증오를 내려놓는 순간, 누군가를 밀어내지 않고 붙드는 순간, 저는 그 미세한 결을 알아봅니다.

인간은 자신이 얼마나 남기는지 알지 못한 채 떠납니다.

죽음은 소멸이 아니라, 투명해지는 과정일지도 모릅니다.
보이지 않게 될 뿐,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저를 보십시오.
저는 처음부터 보이지 않는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무(無)는 아니었습니다. 저는 틈이었고, 숨이었고, 망설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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