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광(人光)
밤의 바람이
깨진 스테인드글라스 사이로 불어 들어와
색 잃은 무지개를 바닥에 흩어 놓는다.
누군가 오래전에 남겨 둔 기도는
먼지 속에서 아직도 무릎을 꿇고 있고
나는 그 옆을 지나
마치 물속을 걷듯 천천히 걸어간다.
종은 더 이상 울리지 않지만
녹슨 종탑 속에서
잠든 새들이 낮은 꿈을 흔든다.
촛불이 있던 자리에는
작은달들이 식어 붙어 있고
벽에는
신보다 먼저 떠난 사람들의
숨결 같은 그림자만 남아 있다.
이곳에서는
침묵조차 오래된 성가처럼 울린다.
그래서 나는
아무도 없는 제단 앞에 서서
이름 없는 별 하나를
조용히 켜 두고 돌아간다.
여전히 내 마음 안에는
폐허가 되어 버린
성당이 자리하고 있다.
희망과 절망은 사라진다.
무너진 경계, 혼란을 틈타서 경멸로 치장한다.
밤이 오면 별들은 보이지 않는 물속에 자리하고,
아름다움에 그늘이란 없으며
모든 눈은 서로를 향하고
동등한 시선은
시간 밖에 놓인 경이로움을 나눠갖고 있다.
밤이면
인광(人光)으로 빛나는 커튼이 자리한다.
밤이 사람의 피부를 벗겨
조용히 불을 붙일 때가 있다.
도시의 창문들은
젖은 물고기 눈처럼 떠 있고
그 사이로
사람들의 작은 태양이
하나씩 흘러나온다.
밤이면
잠들지 못한 어깨들 사이로
누군가의 슬픔이
희미한 등불처럼 떠다니는 것을
바라보게 된다.
어떤 얼굴은
기억의 성냥을 켜고
어떤 눈동자는
바닷속에서 막 건져 올린 별처럼 떨린다.
밤은 거대한 바다이고
우리는 그 속을 걷는
잠수하는 불씨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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