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인컬처 2018년 9월호 'World Now'
일제히 열리는 비엔날레로 분주한 한국. 올 가을 해외에서는 어떤 전시들이 화제의 중심에 설까. 글로벌 아트씬의 최신 동향을 전하는 ‘월드 나우’가 하반기 주목해야 할 전시 14개를 엄선했다. 가을 시즌에는 뉴욕 도쿄 런던 멜버른 뮌헨 밀라노 빈 암스테르담 쾰른 타이베이 팔레르모 등 11개 도시를 조명한다. 첫째, 특유의 조형원리나 작업태도를 갖춰 아트씬에서 입지를 굳건히 다진 작가들의 작업 전반을 훑는 개인전 소식이 눈에 띈다. 원로작가 브루스 나우만의 대규모 회고전부터 중견작가 에바 로스차일드, 사라 루카스, 엘름그린 & 드락셋, 젊은 작가 마르게리트 위모의 서베이 전이 기대를 모은다. 둘째, 재난, 이주, 디지털 시대의 평등과 부의 재분배 등 동시대 가장 뜨거운 담론을 미술은 어떻게 소화하는지 탐구하는 기획전을 소개한다. 유럽의 마니페스타, 아시아의 도쿄모리미술관과 타이베이현대미술관 전시가 포함됐다. 끝으로 전시 및 퍼포먼스 자료 등 아카이브를 적극 활용한 전시를 알아본다. / 한지희, 김민형 기자
뉴뮤지엄이 주목한 여성작가들 <Marguerite Humeau> 9. 4~2019. 1. 6 & <Sarah Lucas: Au Naturel> 9. 26~2019. 1. 20 뉴뮤지엄 / 영국 현대미술의 주역 사라 루카스가 첫 번째 미국 서베이 전을 갖는다. 영국을 대표하는 젊은 작가들의 모임 YBA의 일원인 작가는 지난 30년간 담배, 야채, 스타킹과 같은 일상적 사물을 이용해 젠더, 섹슈얼리티, 정체성에 대한 통념과 사회적 규범을 끊임없이 도발해왔다. 특히 여성의 신체를 주요 모티브로 삼아 대중문화와 미술사에서 여성의 몸이 어떻게 대상화되고 여성 혐오가 재생산되는지에 천착했다. 매트리스 위 과일과 오브제로 남녀의 성기를 형상화한 <Au Naturel>(1994)은 작가의 발칙함이 드러나는 대표작. 동명의 이번 개인전은 198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 발표한 사진 조각 설치작품 150여 점을 모아 작가가 젠더와 권력의 문제를 어떻게 풀어내는지를 밝히는 데 집중한다. 특별히 이번 전시를 위해 준비한 조각 신작이 4층에 공개된다. 동시에 열리는 프랑스 작가 마르게리트 위모의 첫 미국 개인전도 눈여겨봄직 하다. Art 1월호 특집에도 소개된 작가는 인류의 기원과 역사에 관심을 둔다. 특히 언어 사랑 신화 영성 전쟁 등 인간사와 관련된 소재를 즐겨 다룬다. 이때 고고인류학 동물학 언어학 등을 섭렵하는 학자적 태도로 연구와 허구, 과학과 미신의 경계를 허문다. 이번 전시는 파리(2016)와 런던(2017)에서 연 최근 개인전을 재편한 것. 재단같이 꾸민 전시실에 인간의 신체와 생물학적 기계장치를 결합한 대형 설치작에 더해 청동과 돌을 재료로 만든 새로운 연작을 최초로 선보인다. 동물의 뇌 또는 선사시대의 비너스상을 닮은 이 신작은 애니미즘과 토테미즘, 영성 등 작가의 주요 관심사를 복합적으로 호출한다. 큐레이터 나탈리 벨이 기획한 이번 개인전은 2019년 함부르크로 순회할 예정이다. / 한지희 기자(이하 H)
사라질 수 없는 나우만의 명성 <Bruce Nauman: Disappearing Acts> 10. 21~2019. 2. 25 뉴욕현대미술관 & 모마PS1 / 25년 만에 선보이는 미국 작가 브루스 나우만의 대규모 회고전. 세계 최대 나우만 컬렉션을 보유한 바젤미술관과 이마뉴엘호프만재단 등 70여 개 기관 소장품을 한 데 모아 화제를 모은 바젤 샤우라거 전시가 뉴욕으로 순회한다. 작가는 지난 50여 년간 소리 언어 움직임 그리고 시간을 지각할 때 발생하는 공간적, 정신적 긴장감이 어떻게 인간의 경험을 구조화하는지에 천착했다. 이번 전시에는 1960년대 초기작부터 최신작까지 총 170여 점의 회화 드로잉 판화 조각 설치 네온 작업 영상 등이 출품된다. 전시 제목 ‘사라지는 행위’에서 알 수 있듯 나우만의 작업에서 두드러지는, 사라짐 또는 철회, 취소의 태도를 중점적으로 탐구한다. 뉴욕현대미술관에는 대형 설치작업 6점을 포함해 주요 모티프인 ‘신체’를 다룬 50여 점, 모마PS1에는 주제별로 구성한 120여 점이 펼쳐질 예정. 최신작 <뛰는 여우>(2018)과 <콘트라포스토의 분열>(2017)을 미국 내 최초로 공개한다. 또 <카셀 복도(생략된 공간)>(1972) 등 대중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작품을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다. 뉴욕현대미술관 캐시 할브라이히, 샤우라거 하이디 네프 공동기획. / H
우리가 몰랐던 강인함 <The Black Image Corporation> 9. 20~2019. 1. 14 프라다재단 오세르바토리오 / 프라다재단은 두 아프리카계 미국인 사진가 모네타 슬릿 주니어와 아이삭 서튼의 사진전을 개최한다. 미국 최초의 흑인 여성지 《에보니》와 주간지 《제트》를 창간한 존슨출판사 소속 사진기자 겸 작가다. 흑인 여성의 화려하고 상징적인 순간들을 예리하게 담아낸 두 잡지는 20세기 중반 이후의 흑인 문화를 대변하는 대표적 플랫폼. 잡지사가 보유한 4백만여 장의 사진은 동시대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정체성과 미학을 형성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40여 년간 두 사진가는 흑인 미국인 사회가 겪는 부조리한 현실보다는 엘리트층과 연예인의 이미지를 통해 집단의 정치, 자립, 아름다움, 섹슈얼리티 등을 강조했다. 오세르바토리오는 사진 및 시각예술 전시를 위해 지난 2016년 프라다재단이 밀라노 도심에 위치한 19세기 상가건물을 리모델링한 공간으로, 탁 트인 2층에는 슬릿과 서튼이 남긴 방대한 양의 사진 원판과 대형 사진 연작을 전시한다. 사진 뒷면에 적힌 촬영날짜 및 장소 등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도록 누구든 쇼케이스에서 자유롭게 사진을 꺼낼 수 있는 방식으로 진열될 예정이다. 출판사의 시카고 사무실에서 쓰던 가구까지 공수해 내부를 그대로 재현한 1층에는 잡지 원본 아카이브를 마련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설치작가이자 인권운동가, 도시기획자 티에스터 게이츠가 기획했다. / 김민형 기자(이하 K)
정통 사진 전문기관의 야심작 <Masahisa Fukase: Private Scenes> 9. 7~12. 12 & <Loading… Works from the Foam Collection> 9. 14~11. 18 폼사진미술관 / 동시대 사진만을 고집스럽게 전시해온 폼사진미술관에서 일본 사진작가 후카세 마사히사(1934~2012)의 대규모 회고전을 개최한다. 모리야마 다이도, 노부요시 아라키와 함께 1974년 워크숍사진학교를 설립한 작가는 친밀한 대상을 담으며 자기를 둘러싼 환경에 몰두했다. 그는 상실과 우울이라는 감정을 역설적이게도 재치 있는 사진으로 표현하는 데 탁월했다. 이번 전시는 도쿄에 있는 작가 아카이브와 협력해, 대표작 <까마귀> 연작과 <요코> 연작을 포함, 1960년대부터 1992년까지 촬영한 원본사진, 컬러 폴라로이드 및 아카이브 자료를 다수 공개한다. 동시에 선보이는 소장품전은 지난 5년간 추가한 27명(팀)의 최근작과 이들의 전시전경 사진으로 구성했다. 젊은 작가의 작업을 위주로 소장한다는 원칙에 따라 다니엘 고든, 나오미 구달, 요코타 다이스케 등이 출품했다. 동시대 사진은 무엇을 기록하며 이를 어떻게 전시로 보여주는지 사진매체의 오늘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 / H
2018년, 변화하는 정의에 대해 <Trans-Justice: Para-Colonial@Technology> 8. 4~10. 21 타이베이현대미술관 / 현대 기술의 급격한 발달로 ‘정의(正義)’의 의미가 시시때때로 변하는 지금, 타이베이현대미술관은 한 번 더 정의의 의미를 묻는다. 테크놀로지와 사회정의의 복잡한 관계를 탐구하는 전시 <Trans-Justice: Para-Colonial@Technology>가 바로 그것. 함경아, 카데르 아티아, 하룬 파로키 등 6개국 출신 13명의 작가의 참여한 이번 기획전은 작가 개인의 관점을 또렷하게 살리면서도 ‘정의’라는 공통된 주제로 힘 있게 엮었다. 미술관 1층 로비의 아카이브전을 시작으로 2개 층의 전시실, 복도, 계단을 포함한 미술관 전관에 걸쳐 작품을 전시했다. 출품작 중 급박하게 흘러가는 사회, 시간의 필요성, 본질적인 삶의 패턴을 잃어가는 현대인의 삶에서 ‘자살’을 떠올린 대만작가 장 원쉬안의 <국제적인 자살 어워드>가 눈길을 끈다. 이처럼 전시는 사회적인 정의와 기술의 복잡한 관계성을 중심으로, 세계의 민주화 흐름, 그리고 과거의 역사부터 기술의 발달에 지배된 미래까지 내다본다. 큐레이터 황 치엔훙은 전시를 통해 “테크놀로지에 압도당하는 오늘날, 현대인, 특히 젊은 세대에게 사회정의란 무엇인지를 가감 없이 보여주고 그들이 정의를 경험할 수 있도록 상상력을 재고”하기를 도모했다. / K
재난을 극복하는 미술의 ‘힘’ <Catastrophe and the Power of Art> 10. 6~2019. 1. 20 모리미술관 / 동시대 미술의 역할을 치열히 고민해온 모리미술관이 개관 15주년을 기념해 ‘재난’과 ‘미술의 힘’을 주제로 기획전을 준비했다. 테러 전쟁 지진 쓰나미 등 21세기 들어 인류가 겪은 재난을 소재로 한 작품을 모아 잊혀가는 사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재점화하는 한편 사건을 기억하는 새로운 시각을 점검하는 자리다. 모나 하툼, 아이작 줄리언, 토마스 허쉬혼 등 작품을 통해 정치적 사회적 현안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높여 온 작가 40여 명(팀)이 참여한다. 최근 서울시립미술관 기획전에도 참여한 이라크 작가 히와 케이는 이 전시를 통해 처음 일본에 데뷔한다. 2011년 관동대지진의 아픔을 다룬 일본 내외의 작업도 다수 선보인다. 전시는 크게 두 섹션으로 나뉜다. 첫 번째 섹션은 작가가 재난을 재현하는 방식에 초점을 맞추고, 사실적 기록부터 추상적 표현까지 이들이 얼마나 다른 시각언어를 사용하는지를 밝힌다. 두 번째 섹션은 재난 이후 사회와 개인이 겪는 정신적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데 미술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실제로 오노 요코, 타츠오 미야지마 등의 관객 참여형 작품을 통해 그 실효성을 실험한다. / H
저녁으로 10대 청소년을! <Julien Ceccaldi> 9. 8~ 11. 11 쾰른미술협회 / 2016베를린비엔날레에 출품해 큰 주목을 받았던 캐나다 출신의 회화작가 줄리엔 세칼디가 쾰른미술협회에서 개인전을 갖는다. 캔버스뿐만 아니라 옷, 액세서리에도 그림을 그리는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도 회화 애니메이션 그래픽 소설 조각 설치작품과 함께 만화에 초점을 맞춰 다양한 작품을 선보인다. 매체를 자유롭게 누비는 작가의 캐릭터는 어렸을 적 보았던 일본 만화의 주인공을 떠올린다. 작가의 고향인 퀘벡에서 1970~80년대에 방영되었던 일본 만화 속 캐릭터의 외관과 느낌을 가져왔기 때문. 캐나다 출신이라는 작가의 이력이 낯설게 느껴질 만큼 동서양의 경계를 넘나드는 정서가 표출된다. 각 작품의 캐릭터를 통해 인간의 허영, 자신감, 정신적인 괴로움, 고립감과 같은 복합적인 감정이 선명하게 그려지는 이번 전시는 나이, 젠더 그리고 섹슈얼리티의 선입견과 경계마저도 허무는 한 권의 만화책과도 같다. 감정이 뒤엉키는 심리학적인 주제를 명쾌하게 압축시키는 그의 작품은 평소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는 작가의 모습과 닮아있다. / K
혀를 깨물며 얻는 깨달음 <Elmgreen & Dragset: This Is How We Bite Our Tongue> 9. 27~2019. 1. 13 화이트채플갤러리 / 런던 현대미술계를 선도하는 화이트채플갤러리에서 북유럽 출신 2인조 엘름그린 & 드락셋의 20년을 개괄한다. 1995년부터 협업해온 두 작가는 시나리오가 있는 공간 연출을 통해 일상 속에 만연한 사회적, 성적 역학관계와 권력구조를 고발한다. 전시장 위치, 공간 연출 방식이 작업의 주요소인 만큼 전시마다 해당 공간구조를 적극 재편해 익숙한 환경을 파괴하고, 이를 새롭게 만든다. 이번 전시에는 대표작 <임신한 백인 하녀> <어느 날>과 최신작 6점을 포함해 총 36여 점이 출품된다. 상실과 부재, 또는 소속이나 지역사회의 소멸을 겪은 뒤 전시 제목처럼 ‘혀를 깨물며’ 삭혀야만 했던 감정에 대한 전시란 점에서, 대형 커미션작 소식도 기대를 모은다. 갤러리가 위치한 런던 동부의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반영해 1층 전시실을 버려진 공공 공간처럼 탈바꿈한다고. 2층에는 구상조각과 설치작업을 교회에 모셔진 성물처럼 배치해 대상에 대한 욕망과 두려움, 맹목적 우상화를 꼬집는 연출을 선보일 예정이다. / H
음악과 미술을 겸하는 사람들 <Double Lives: Visual Artists Making Music> 6. 23~ 11. 11 무목(The mumok) / ‘음악 하는’ 시각예술가의 이중적인 삶을 다룬 기획전 <Double Lives>. 2018 부산비엔날레 큐레이터로 위촉된 미술평론가 외르그 하이저는 1960년대부터 많은 시각예술가들이 남몰래 음악활동을 지속하는 현상이 나타났음에 흥미를 느끼고 동명의 저서를 집필했다. 이 책에서 영감을 얻은 이번 기획전은 작곡하고 연주하는 시각예술가를 다루며 순수한 음악가 또는 시각예술가라는 개념에 의문을 제기한다. 나아가 20~21세기 음악의 역사에 이들이 미친 영향을 탐구한다. 전시는 시각예술가가 아닌 그들의 음악에 방점을 두고, 작가마다 어떤 공연환경을 선택했는지를 중점적으로 살폈다. 마르셀 뒤샹, 존 케이지, 백남준부터 유타 퀘서, 알바 노토, GRAF+ZYX, 볼프강 틸먼스까지 총 46명(팀)이 모습을 드러냈다. 특히 20세기 후반 오스트리아를 기반으로 이 현상이 심화됐다는 점에 주목해 1960~80년대의 활동상을 집중 소개했다. 큐레이터 에바 바두라 트리스카와 문화기획자이자 음악가인 에덱 바르츠가 기획했다. / H
예술의 역동적인 외침 <Jörg Immendorff: For All the Beloved in the World> 9. 14~2019. 1. 27 하우스데어쿤스트 / 하우스데어쿤스트는 독일을 대표했던 신표현주의 화가 외르그 임멘도르프의 대규모 회고전을 선보인다. 교사, 화가, 정치 활동가로 활약했던 작가는 언제나 대담한 색채와 표현방식으로 사회와 대중의 정신을 일깨웠다. 동독에서 ‘개인의 자유 침해’를 규탄하는 시위를 벌이며 제작한 선전물로 1976년 베니스비엔날레에 참가한 작가는 이후 보다 적극적으로 미술을 통해 정치적 메시지를 전하고, 나아가 사회변혁을 꾀하는 방향으로 태세를 전환했다. 1978년에는 독일어권 동료 작가들과 함께 미술의 규범으로 고착화된 아방가르드 미니멀리즘 개념미술에 반대하는 ‘노이에 빌데(Neue Wilde)’ 미술운동을 주도하기도. 전시에는 1960년대부터 생을 마감한 2007년까지의 회화 및 조각 200여 점이 출품됐다. 단순한 연대기를 따르기보다 작품의 발전단계에서 나타난 주요소를 꼽아 챕터별로 구성했다. 대표작 <독일식 카페> 연작 19점도 출품작 명단에 올라 기대를 모은다. 형식적 구조에 천착하던 초기와 달리 점차 구상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색과 제스처를 구사한 작가의 50년 화업을 한눈에 살필 수 있는 기회. 전시기획은 수석 큐레이터 울리히 빌메스가 맡았다. / K
추상조각 속 추상조각 <Eva Rothschild> 9. 28~11. 25 호주현대미술센터 / 2019년 베니스비엔날레 아일랜드 대표작가로 선정된 에바 로스차일드가 호주 첫 개인전을 개최한다. 1983년부터 호주 내외의 실력파 작가를 발굴하고 새 커미션을 의뢰해온 호주현대미술센터(ACCA)의 연례 기획 ACCA국제작가 시리즈의 일환이다. 1960~70년대 미니멀리즘이나 고전주의 건축양식, 대중문화 등에서 영향을 받아 작가는 화려하면서도 수수께끼 같은 기하학적 형태의 대규모 추상조각을 주로 선보인다. 재료 선택 시에도 콘크리트 제스모나이트 가죽 천 플라스틱 나무까지 크게 제약을 두지 않는다. 작품의 규모와 형태 양감뿐 아니라 재료가 만들어내는 ‘물성’이 작가의 주 관심사기 때문. 나아가 관객이 이 ‘물성’을 경험하며 자기 ‘몸’을 의식하고 공간구조나 전시구성까지도 면밀히 살펴보기를 유도한다. 유럽형 쿤스트할레를 모델로 설계해 널찍한 공간을 자랑하는 ACCA는 전관에 걸쳐 지난 10년간의 주요 작업과 함께 커미션작 3점을 최초로 공개할 예정. 금속 합판과 유리로 만들어져 그 자체로도 추상조각 같은 전시공간과 장소 특정적 커미션작이 어떻게 조응할지 이목을 집중시킨다. 멜버른국제예술축제와 협력해 관장 막스 딜레니와 큐레이터 아니카 크리스텐슨이 기획했다. / H
지구촌의 본보기, 공생의 팔레르모 <Manifesta 12: The Planetary Garden. Cultivating Coexistence> 6. 16~11. 4 팔레르모식물원 외 / 격년으로 유럽 도처에서 개최하는 문화축제 마니페스타가 12회를 맞이했다. 90년대 초 공산주의가 무너지고 유럽연합체제가 출범하면서 유럽 내 나타난 경제 사회 문화적 변화와 지역-정치주의에 대한 예술계의 응답으로서 조직된 비엔날레다. 올해는 이탈리아 남부의 팔레르모에서 ‘행성 정원-공생의 구축’을 주제로, 저널리스트 브레처 판 데어 하크, 건축가 안드레 자크와 이폴리토 페스틸리니 라파렐리, 큐레이터 미리암 파라디니스의 진두지휘 아래 순항 중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정원에 비유했던 조경 디자이너이자 식물학자 질 클레망의 아이디어에 착안해 오늘날 국가 간 인구 이동과 이주가 잦아지며 야기하는 사회적 문제를 예술을 매개로 공론화하고 그 해결책으로 ‘공생’을 제시한다. 개최지로 팔레르모가 낙점된 데는 1875년 시실리 출신 풍경화가 프란체스코 로자코노가 그린 <팔레르모 풍경>이 한몫했다. 조화롭게 공생하는 그림 속 식물 중 대부분은 흥미롭게도 이 섬의 고유 식생이 아니기 때문. 공생의 미덕을 보여주는 팔레르모 일대의 식물원이나 버려진 대저택, 예배당을 포함해 20여 개 장소에서 전시 퍼포먼스 좌담회 강연 등 다양한 행사가 열렸다. 전시는 3 챕터로 구성했다. 첫 번째 챕터 ‘흐름의 정원’은 식물의 생장과 조경문화 나아가 환경, 자원 문제를 다룬다. 팔레르모식물원 안에 식물과 작품이 어우러진 소규모 정원을 꾸미거나 농작물 관개수로를 이용한 대형 설치작업 등이 출품됐다. 두 번째 챕터 ‘관제소 바깥’은 영상 사진 설치작업을 위주로 현실과 가상세계에서 나타나는 유동성을 가시화했다. 이주 난민 정체성 시민권 등 ‘움직임’과 관련된 주제가 작품에 다양하게 언급됐다. 마지막 ‘무대 위 도시’는 팔레르모를 다각도에서 바라보고자 도시의 식생이나 커뮤니티를 소재로 삼은 작업을 소개한다. 타니아 브루게라, 에르칸 오즈겐, 로라 포이트러스, 멜라니 보나요 등 전 세계 23개국에서 모인 50여 명(팀)이 참여했다. 주로 유럽과 아프리카 출신 작가가 다수. 아시아 작가로는 청 보가 유일하다. 비엔날레와 더불어 지역 내 전시공간과 세계 각지의 기획자, 미술계 종사자, 비영리단체가 합심해 71개의 부대행사를 준비했으며, 도록을 비롯해 건축회사 OMA가 집필한 팔레르모 도시 연구서도 출간한다. / H
편집: 한지희
원고 작성: 한지희, 김민형
교정 교열: 한지희
감수: 김재석
디자인: 이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