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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ch Mar 31. 2019

Person of the Year: 이건용

아트인컬처 2018년 12월호 'Special Feature' #1

2018년 한국 미술계를 빛낸 ‘올해의 인물’ 15명을 만났다. 원로작가와 신진작가, 미술관장과 기업의 CEO, 미술사가와 번역가, 디자이너와 평론가, 갤러리스트와 기획자까지 각 분야의 전문가를 지면으로 초대하고, 그들의 2018년 이야기를 들었다. 이번 특집은 좀처럼 한 자리에서 만나기 어려운 다양한 미술인의 세대를 아우르는 ‘만남의 장’이다. ‘사람이 먼저다’라는 광고 카피가 있다.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한 미술인에게 감사와 축복의 메시지를 보내며…. / 편집부



* 인터뷰를 바탕으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이건용 최윤정 서진석 서세옥 정은영 서경배 문범강 김종길 맛깔손 이영주 최두수 전현선 조주연 리정옥 유지원 님을 모셨습니다. 이중 제가 작성한 이건용 최윤정 서경배 문범강 조주연 유지원 님 6인의 기사 내용만 게재할 예정입니다.




작가, 군산대 명예교수. 1942년 황해도 사리원 출생. 홍익대 회화과 학사, 계명대 미술교육과 석사를 졸업했다. 한국 전위예술의 틀을 다진 대표적 인물로, 1970년대 ST미술학회와 AG그룹 활동을 주도했다. 신체, 공간, 관계를 끊임없이 탐구한다.


아방가르드의 주역, 다시 세계로

노당익장(老當益壯). 원로작가 이건용의 2018년을 이보다 더 잘 설명할 수 있을까. 그는 지난 50여 년간 한국 전위예술을 이끌어왔다. 신체, 공간, 관계를 실험하는 행위미술이 그의 전매특허. 그는 올해 시드니, 베이징, 서울, 대전에서 전시를 개최했다. 시드니, 베이징에서는 처음 개인전을 열었다. 2017년 런던 주영한국문화원 기획전을 포함해 최근 해외에서 그의 ‘파격’을 재조명하기 시작한 것이다. 1월 시드니 4A아시아현대미술센터에서 열린 <동일 면적: 이건용>전에서 이벤트 현장 아카이브와 <달팽이 걸음>을 포함한 7개의 대표작을 실연했다. 2016년 광주비엔날레를 방문한 아트센터 관장이 당시 열린 갤러리현대 개인전을 보고 전시를 제안했다.  호주의 젊은 작가 3인이 설치, 영상, 퍼포먼스 등의 매체로 이건용을 재해석한 작업도 함께 전시됐다. “개막식에서 한 작가와 협동 퍼포먼스를 했다. 전시실 문을 사이에 두고 그는 발로, 나는 반대쪽에서 팔을 넘겨 색을 칠했다. 이날 300명가량 모였는데 알고 보니 전부 미술관계자들이었다.”

이건용은 시드니전 폐막 후 페이스 베이징의 개인전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7월 열린 전시는 1970년대 아카이브 사진, 작업 구상을 위해 남긴 드로잉, <신체 드로잉> 연작의 최근작까지 회고전 형식으로 꾸렸다. 개막식 날 현지 매체와 관객이 보인 성원에, 예정에 없던 <신체 드로잉 76-3> 이벤트를 즉흥적으로 실연하기도. 그의 이벤트가 국적을 불문하고 공감을 얻는 이유는 무엇일까.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특별한 기술을 가진 사람만 할 수 있는 재주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린다’라는 문제를 신체와 연계해, 그리는 행위 자체를 회화로 읽게 하기 때문이다. 같은 신체구조를 가진 관객에게 ‘누구나 할 수 있다’는 해방감도 준다.”

9월 더페이지갤러리에서 나점수 작가와 2인 전 <미언대의>를 열었고, 11월 대전시립미술관의 기획전 <대전미술 100년, 미래의 시작>(11. 16~2019. 1. 20)에 참가했다. 그는 개막식에서 퍼포먼스 <달팽이 걸음>을 시연했다. 1979년 대전에서 첫선을 보인 이후 그의 대표작이 됐다. 바닥에 선을 그으며 ‘달팽이’처럼 아주 천천히 앞으로 걸어가는 행위를 펼친다. 그의 느린 걸음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큰 환호의 박수를 받고 있다. “관객, 장소, 그 질 등 여러 요소가 달라지기 때문에 항상 우리의 관계는 새롭다. 난 천년에 한 번인 만남을 갖는다는 심정으로 매번 작업한다.”

일흔을 한참 넘긴 노장임에도, 차기작을 얘기할 때는 약간의 반항기와 설렘이 섞인 목소리였다. “지금 작업실에는 상품 포장용 종이상자가 한가득 쌓여있다. 그 위에 드로잉을 하는 중이다. 작업도, 전시도 힘들어서 주변 사람들이 모두 말린다. 나는 5공 때 안기부에서 고생을 많이 한 사람이라, 일단 ‘하지 말라’는 말 자체가 싫다. 내 소망은 이 생이 끝날 때까지 내 작품이 살아있는 것이다. 이게 내 원동력이다. 아침에 새로운 일을 하려고 계획을 세울 때 기분이 좋다. 미친 짓이지만, 그래야 숨 쉬고 살 수 있으니까.” 늘 그래 왔듯, 그는 오늘도 아방가르드다.


원고 작성: 한지희

교정 교열: 김재석

디자인: 진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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