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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ch Aug 18. 2020

‘시간예술’의 플랫폼, 새로운 길을 찾다

아트인컬처 2019년 1월호 'Report'

동시대의 다양한 ‘시간예술’을 소개하는 축제 퍼폼(Perform). 해당 장르의 창작과 유통, 소비구조에 나타나는 불균형을 해소하고, 안정적인 유통 및 소비 플랫폼을 구축하고자 2016년 김웅현이 동료 작가들과 의기투합해 행사 형태로 시작한 프로젝트다. 지난달 열린 제3회 <퍼폼2018>(2018. 12. 12~16 일민미술관)을 닷새간 밀착 취재했다. 현장에서 보고 들은 것을 종합해 퍼폼의 정체를 상세히 밝히고, 지난 행사의 특징을 알기 쉽게 정리했다. / 한지희 기자



퍼폼은 무엇을, 왜, 어떻게 하나


퍼폼의 시작은 4년 전으로 돌아간다. 2015년 신생공간인 교역소를 마무리하며 현 퍼폼 대표 김웅현 작가와 당시 공간운영자이자 이번 행사의 책임기획자 김영수 작가가 미래를 그려보다 기획했다. 김웅현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그즈음 서사구조를 갖고 체험을 유도하는 형태의 작업을 하는 작가가 늘었다. 그런데 이를 제대로 보여줄 기회가 없고, 있어도 공연 후 휘발되는 현상을 보며 이들만을 위한 행사를 만들고 싶었다.” 탈영역우정국에서 개최한 첫 회(2016. 12. 29~31)를 시작으로 퍼폼은 매 연말 퍼포먼스나 그 기록영상, 영상예술 등 시간을 기반으로 한 비물질 시각예술을 ‘판매’한다. 작가미술장터 개설지원금을 받고 태어나 순수한 창작산실 보다는 시장의 역할을 표방하지만, 단순히 거래가 일어나는 시장 마련이 아닌 유통과 소비 활로 모색에 방점을 둔다. 따라서 공연 제작비 일부를 지원하고, 작가가 입장료를 책정, 수익을 전액 가져가는 방식으로 운영하며, 쇼케이스, 회차 공연, 제한상영, 한정기록 판매 등 다양한 판매방식을 고민한다.

    “퍼포먼스 작가들끼리 한 번 놀아보자”며 시작한 1회는 행사를 거대한 게임처럼 기획했다. 관객과 퍼포머가 일종의 게임 플레이어가 됐으며 도록 역시 보드게임용 카드처럼 제작됐다. 미술계 내부의 관객이

더 많았다. 2회(2017. 10. 27~29)는 아라리오뮤지엄, 아트선재, 갤러리호아드, 보안여관 등 삼청동 일대의 전시공간 4곳에서 행사를 나눠 진행했다. 11인(팀)이 다른 장소에서 공연을 여러 번 선보였다. 또 홈페이지를 통한 온라인 예매를 가능하게 하고, 새로운 유통모델인 ‘DATAPACK’을 신설했다. 퍼포먼스 기록영상이나 영상예술과 같은 데이터기반의 작업을 모아, 현장에서 예고편을 보여주고 본편 시청을 원할 시 대여해볼 수 있도록 만든 스트리밍 서비스다. 미술계 밖으로도 입소문이 퍼져 이 회차에는 신혜진, Mup:을 포함한 퍼포머와 관객의 비중이 공연예술계에서 부쩍 늘었다.

    제3회 <퍼폼2018>은 일민미술관과 공동으로 주최해 한 공간에 닻을 내렸다. ‘포스트-인터넷시대의 아시아 퍼포먼스’를 주제삼아 시각예술의 장이 확장된 오늘날 ‘퍼포먼스’를 재정의하고, 아시아 젊은 퍼포머들의 다양한 실험을 소개하고자 했다. 인도네시아 69퍼포먼스클럽 소속작가 3명과 국내작가 11인(팀)이 참여했다. 전체행사는 총 14인(팀)의 작업을 1회씩 상연하는 본 공연과 5회의 토크, 데이터팩으로 구성됐다. 본 공연에는 크게 두 가지 특징이 두드러졌다. 먼저 순수예술계를 벗어나 대중문화의 문법을 적극적으로 흡수, 이용한다는 점이다. 타투이스트(동백화 <몸의 기억법>)가 타투 시연을 펼치거나, IT과학자(방용환 <블록체인, 그거 먹는 건가요?>)가 TED 토크식 퍼포먼스형 강연을 하는 등 공연예술계도 미술계도 아닌 일반인 ‘퍼포머’가 등장했다. 그 배경에는 ‘도대체 퍼포먼스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 물음이 놓여있다. “이번 기획은 퍼포먼스의 외연을 가늠해보자는 데서 출발했다. 유튜버, 타투이스트, 강연자 등을 섭외했다. 미술관이 어디까지를 퍼포먼스로 수용할지를 실험해본 것이다.”(김웅현)

    또 다른 특징은 ‘수행적 신체’를 중심에 놓았던 기존 퍼포먼스의 관념을 허물고, 영상플랫폼이나 스마트기기를 활용해 감각과 움직임의 영역을 확장한 작업이 다수란 점이다. 포크가수 이랑과 뇌공학자 장정준의 협업작 <클라우드 워크>는 표정/감정 인식 카메라와 뇌파측정 장치를 달고 관객을 맞는 이랑의 심리상태를 장정준이 실시간으로 분석하는 방식을 선보였다. 류한길의 <엔벨로프 데몬>은 비규칙적 주파수를 임의로 생성하는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불길하고 음침한 사운드를 만들었으며, 김보용은 <반도투어>에서 단파 라디오와 구글맵, 컴퓨터 운영체제를 이용해 보고 듣는 가상여행을 떠났다.

    오버레이프랍스와 송민정, 69퍼포먼스 클럽 소속 3인의 작업에서는 매체를 통해 ‘움직임’이 발생하는 물리적 공간을 넓히려는 시도가 두드러졌다. 김웅현과 정명우로 구성된 오버레이프랍스는 동명의 퍼포먼스에서 게임과 영상합성기술을 매개로 서사가 다른 두 개의 퍼포먼스를 겹치고, 새로운 서사로 나아갔다. 최다 관객을 동원한 송민정의 <캐롤라인, 드리프트 트레인>은 일민미술관을 기차역으로 설정하고, 웹 발신 문자를 이용해 공연을 기다리는 관객을 기차를 기다리는 승객에 빙의시켜 이동과 표류, 고립감을 느끼게 했다. 스마트폰 화면이 미술관과 기차역을 이어준 셈이다. 오티 위다사리의 <저녁식사>와 프라샤스티 푸트리의 <더 굿 코드>, 핑칸 폴라의 <세개의 두드림>는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으로 생중계를 하는 동시에 현장의 스크린에 이를 다시 스트리밍하며, 공간 속 공간, 공연 속 공연을 창조해냈다.



퍼폼의 청사진은?


데이터팩 역시 큰 변화를 맞았다. 2017년 관객의 호응이 실제 구매로 이어지지 않자, 김영수는 보다 흥미로운 작품 제시방식을 찾는 데 골몰했다. “최근 사람들이 영상을 어떻게 소비하는지 관찰해보니 짧은 클립을 연속해서 보더라. 그래서 123편의 출품작을 모두 1분 내외로 편집해 큰 스크린에서 루프하기로 했다. 동시대 영상작업이 123분간 맥락 없이 이어지면 어떤 느낌을 줄지도 궁금했다”고 덧붙였다. 인스턴트하게 영상을 소비하는 패턴을 ‘영상예술’에도 적용시켜, 이를 감상이 아니라 소비할 수 있는 대상으로 만들고 궁극적으로 영상작업을 매매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함이다.

    퍼포먼스 관련 담론을 실질적인 차원에서 논하기 위한 토크 프로그램은 매년 큰 주제를 선정하고 이에 맞게 세부 주제 및 패널을 구성한다. 2회 때는 시간 기반의 예술이 생산, 소비, 교환되는 과정에서 제기되는 질문을 중심으로 3개의 토크를 이어갔다. 가격 책정기준, 수익배분방식 및 유통경로 등 판매와 직접 연관된 의제가 등장했다. 이번에는 공연과 마찬가지로 퍼포먼스의 외연은 어디까지인지를 주제로 삼고, 일민미술관이 주도해 5개의 토크를 꾸렸다. 김웅현은 “퍼폼이 퍼포먼스에 대한 학술적인 담론을 생산하기는 무리다. 미술관이 가진 전문 학술기관의 역할을 살려, 함께 행사를 기획했을 때 시너지가 나리라 기대했다”고 협업 의도를 설명했다. “연속해 들었을 때 퍼포먼스의 다양한 얼굴을 그려볼 수 있기를” 바라며 전과 달리 행사 둘째 날 하루에 토크를 몰아서 진행했다.

    첫 순서 <PERFORM2018을 시작하며>는 일민미술관 조주현 학예실장과 김웅현, 김영수의 대담을 통해 퍼폼 운영 전반과 2018년 행사의 기획의도를 파헤치는 자리였다. 이어진 <미디어 수행성>에서는 인도네시아 작가 3명의 작업을 살피고, 이중 오티 위다사리가 대표 발제자로서 인도네시아의 예술, 미디어, 퍼포먼스 플랫폼 현장을 개괄했다. 나머지 세 토크는 퍼폼의 방향성인 시간, 데이터 기반 작업의 유통에 대한 고민을 여실히 반영했다. 영상 제작환경과 유통 전반에 관심을 갖고 활동하는 기획자 김신재는 해외 영상작업 스트리밍사이트나 프로덕션 단체의 사례를 제시하며 국내에선 어떤 모델이 적합할지를 관객과 함께 모색했다. 또 믹스셋이나 영상, 디자인 파일을 포함, 아티스트 굿즈 판매 활로로 최근 급부상한 온라인 플랫폼 카바(CAVA)의 최지연, 최서연 대표를 초대해 ‘지속 가능한 예술 생태계 구현’이라는 단체의 목표를 어떻게 실천하고 있는지를 물었다. 마지막 순서 <***의 후 토크>는 2부로 나눠 차례로 정진화, 송민정 작가가 최근 개최한 공연연작 <뉴타입>과 개인전 <COLD MOOD (1000% soft point)>의 기획 및 진행 과정에 관한 후일담을 전했다. 각각 사운드와 영상을 주 매체로 다루는 작가로서 제작방식에 방점을 두고 이야기를 진행했다. 토크마다 좌중에서 질문이 쏟아졌고, 밤이 깊도록 토크가 이어졌지만 상당수가 자리를 지켰다.

    <퍼폼2018>은 본 공연 및 데이터팩 상연, 토크 진행방식 등 운영 면에서 작년과 상이한 전략을 취했다. 특히 본 공연의 경우 행사 때마다 상연방식을 바꿔가며 무엇이 가장 효과적일지를 살피고 있는듯하다. “한 작업을 여러 번 공연할 경우 작가에게는 좋지만 팀원이 넷뿐이라 운영 면에서는 어려움이 많다. 또 공간규모에 따라 수용인원이 달라지므로 횟수 조정이 필요하다.” 김웅현은 퍼폼팀과 작가의 이해관계를 모두 만족시킬 방안을 모색하느라 행사 후에도 고민이 많을 테다. 앞으로의 운영방향 혹은 포부에 대해서는 제일 먼저 지원금으로부터 독립하는 일을 언급했다. 이어 “작은 단체가 공동출자해, 데이터 기반의 본부를 두고 오픈스튜디오 형식으로 동시다발적 행사를 열고, 이후 중계권을 퍼폼이 관리하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고 퍼폼의 청사진을 귀띔했다. 쾌적한 관람환경을 제공한 일민미술관과의 협업이 계속될지는 미지수다. 혼자 일어설지, 다른 협업기관을 찾을지, 아니면 제3의 길을 갈지 퍼폼의 선택이 궁금해진다. 플랫폼 자체가 탄탄히 성장해야 국내 ‘시간예술’ 유통구조의 확립이라는 이들의 꿈을 이룰 테니까.



원고 작성: 한지희

교정 교열: 김재석

디자인: 이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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