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동학, 주유팔로 1.1
1.
"수운 최제우 대신사 탄신 200주년 대비 학술대회 - 수운 최제우의 동학 창도와 한국학"이 진행되었습니다. 수운 최제우 선생은 1824년 10월 28일 탄신하였으므로, 내년 2024년 10월 28일이 그 200주년이 됩니다. 오늘 학술대회는 200주년을 맞이하는 앞으로의 1년 동안 펼쳐질 다양한 행사와 사업들의 첫 출발이 되는 셈입니다.
2.
생각해 보면, 수운-동학의 사상, 철학, 역사가 충분히 규명되지 않아서 오늘 동학(천도교)이 비주류의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보다는 현대의 세계사가 동학과 같은 토착적+자주적+개벽적 근대세계로 전개되어 오지 못하고, 서구사회가 그려나간 방식으로 '세계화'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수운-동학의 사상적, 역사적 의의를 현창하는 길은 단순히 이를 학술적으로 규명하는 데 진력해서는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3.
이 점을 고려한다면, 그리고 특히 이 학술대회가 수운 탄신 200주년을 염두에 두는 것이라 한다면, 학술대회가 그러한 환경적 상황 전반을 검토하고, 그 과제의 성격, 범위를 체계적으로 분석하는 데에 집중할 필요가 있지 않나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방법론에 관한 논구는 일반 대중들이 알아야 할 사항이기보다 (연구) 전문가들끼리의 논의 과제라고 이해할 수도 있으나, 오늘 수운 탄신 200주년에 즈음하여 동학(천도교)를 공부하는(신앙하는) 사람들은 우리의 공부(신앙) 방법론 자체에 대한 이해부터 다시 새롭게 접근하는 것이, 200주년의 의의에 값하는 주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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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중에도 <수운 탄신 200주년의 세계사적 의미와 한국학(최민자, 기조발표)> <수운 최제우 탄생과 조선사회의 대내외적 모순구조(성강현) <수운 최제우 창명의 종교사적 의의-개인의 내면에서 찾은 우주의 중심(성해영)><최운 최제우 사상의 발전 계승과 의미(김용휘)><수운 최제우, 연구 현황과 과제(임상욱)> 등은 수운(동학)에 대한 연구를 기초부터 다시 점검해 보자는 의미로 이해할 수는 있겠습니다. 특히 임상욱의 연구는 앞으로 수운(동학)에 관한 연구의 새 방향을 가늠할 중요한 발표이기는 할 텐데, (아마도 학술대회 발표에 맞춰서) 소략한 내용만이 자료집에 게재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본격적인 내용은 학술지나, 다음 발표에서 소개되리라 기대합니다. 그 발표시기가 빨라질수록 후속 연구 발표의 질이 높아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이 논문이 발표된 이후, (수운 탄신 200주년에 즈음하여 발표되는) 후속 연구논문 발표들이, 제발 기존 발표의 동어반복이거나 심지어 역행하는 연구들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일제강점기 천도교 기관지 {신인간}을 통해 본 수운주의 예술론 실천>는 새로운 연구 방법론과 제재를 다루고 있어서 좋은 영감을 제공합니다.
5.
기조발표는 최민자(전 동학학회 회장, 성신여대 명예교수)가 "수운 최제우 탄신 200주년의 세계사적 의미와 한국학"이라는 주제로 발표를 하고 있습니다. 그 <국문초록>은 아래와 같습니다;
"동학과 한국학 코드의 연계성에 대한 인식이 중요한 것은, 동학은 한국학 코드의 정수(精髓)를 오롯이 피워낸 한국학의 꽃이기 때문이다. 통섭적·생태적 사유의 전형인 한국학 고유의 '생명 코드'가 근대에 들어 동학이라는 이름으로 재흥(再興)한 것이다. 본 연구는 수운 최제우 탄생 200주년에 즈음하여 동학 창도의 세계사적 의미를 한국학 코드와의 연계성에 착안하여 규명하고자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연구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한국학의 뿌리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를 통하여 한국학 코드의 진수(眞髓)를 밝히고 그것의 역사문화적 연맥(脈)에 대해 고찰하였다. 둘째, 동학과 삼일사상에 나타난 한국학 코드에 대해 고찰하였다. 수운의 동학 창도와 동학 사유체계의 특성 및 그 실천적 함의에 대해 고찰하고, 한국학 코드의 전형으로서의 동학과 삼일사상에 대해 탐색하였다. 셋째, 사조(思潮)의 대전환과 동학 창도의 세계사적 의미에 대해 고찰하였다. 지구 대격변과 생명(生命世, Lifeocene)의 도래가 지닌 문명사적 함의에 대해 고찰하고, 동학 창도의 세계사적 의미와 통합적 비전을 제시하였다.
연구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동학에 나타난 한국학 코드는 오늘날 세계시민사회가 공유할 수 있는 '보편 코드’이며 '통합학문'의 시대를 여는 단초가 되는 것이고 동·서융합의 원대한 미래적 비전을 제시하는 것임을 밝혀냈다. 둘째, 동학에 나타난 한국학 코드는 현대과학 코드와의 상호피드백을 통해 생명에 대한 명료하고도 정치(精緻)한 인식체계를 구축함으로써 새로운 계몽의 시대를 여는 단초가 되는 것임을 밝혀냈다. 셋째, 동학에 나타난 한국학 코드는 전 지구적 위기에 대응하고 인공지능 윤리와 생명윤리가 준수되는 새로운 규준의 휴머니즘을 제시하고 있음을 밝혀냈다. 오늘날의 한류 현상이 진정한 한국산(産) 정신문화의 교류로까지 심화·확장될 수 있도록 동학은 집단지성의 계발을 통해 '시중時中)'의 도(道)로써 한국학 코드의 세계화의 과제를 완수해야 할 것임을 촉구하였다."
6.
이번 발표에서 저의 문제의식과 직접적으로 닿아 있는 내용은 임상욱 교수의 발표 내용 중의 결론 부분에 있는 것입니다.
"새로운 시작은 항상 자아 성찰을 전제로 해야 한다고 믿는다. 수운 탄신 200주년, 수운을 말하기 전에 수운처럼 살고 있는가의 성찰이 필요해 보였다. 이 점에서, '수운을 칭송하고 믿자'가아니라 '수운의 행동을 닮아가자'는 관점에서 관련 연구 현황을 점검하고, 앞으로의 과제를 논의해 보았다. 수운은 당시 시각으로 '과격한' 제안을 했던 인물이다. 사람은 가장 인간적일 때, 가장 진보적이라고 한다. 그에게는 당연한 일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겐 급진적으로 보일 뿐이다. 이 글을 쓰는 내내 함께 함께했던 40살 청년 최제우가 내게 또 묻는다. 아마도 자기가 누군지 아제 알아차린 것 같다. 그의 질문을 공유한다: '당신은 나를 팔면서, 왜 오늘도(!) 나처럼 살지 않습니까'
이 말을 제 식대로 풀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수운-동학은 한마디로 '인간 정체성의 재발견'이다. 인간이 신성한 존재임을 자각한 것이다.(그것을 발견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발명이라고 해도 좋다. 이때 발명은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황금률 하의 발명이다) 그리하여 수운-동학이 가르치는 것은 우리가 '새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수운이 미처 말하지 못한(암시적으로만 말한) '사람'의 범위의 확장은 해월에 이르러, '경물'(敬物)이라는 말로 구체화되어 나타난다. 관건은 수운-동학의 새로운 인간은 수운의 깨달음(발견)으로 완성/완결되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따라 지속적으로 "새로워지기"를 요구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수운과 동학에 '대하여' 공부하기"가 아니라, 수운-동학(의 가르침)으로 살기, 즉 늘 새로워지기, 새로운 사람이 되기, 사람(과 세상)을 새롭게 하기의 방식으로 살아가야 한다. '새롭게 한다'는 것은 기술적, 정치적, 경제적 새로움 추구가 아니라(이것은 대체로, 특히 근대사회에서 '새로움' 추구는 일종의 강박증이자 의도적 진부화로서, 죽임의 문화이다), '살리는 것'이다. 우리 몸이 날마다 각질을 떨구어 내고 세포 단위에서 끊임없이 새로워지고 또 새로운 세포를 생성해 냄으로써 '생명'을 유지하는 것처럼, 우리가 새로워진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것이고, 새롭게 한다는 것은 살린다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