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통문24-16]
[동학통문24-16] 1. 6월 29일-30일 이틀 일정으로 <보국안민 봉황각 취회> 행사가 진행되었습니다. "전국동학농민혁명연대"(회장 고재국)이 주최하고, 천도교중앙총부가 후원하는 이 행사는, 전국동학농민혁명연대에 소속된, 전국 각지의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임원 50명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 강북구우이동에 있는 '봉황각'에서 김명재 사무국장의 사회로 진행되었습니다.
2. 이번 취회는 확대임원회의 성격으로 주요의안인 "첫째. 장흥 무명동학농민군묘역성역화 사업추진위원회를 구성함." "둘째. 2025년 5월 11일의 동학농민혁명 국가기념일 행사를 서울에서 개최하도록 관련 기관(문화체육관광부,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에 건의(촉구)하기로 함"의 두 의안을 토의하고, 원안대로 결의하였습니다.
3. 장흥무명동학농민군 묘역은 현재 장흥의 공원묘지에 1699기의 무명 동학농민군 묘역이 조성되어 있으나, 동학농민혁명군의 위상에 걸맞은 '성역화'가 이루어지 않고 있어서, 이를 전국동학농민혁명연대에서 뜻을 모아 추진해 나가기로 하는 일입니다.
4. 동학농민혁명 국가기념일 행사는 본래 전국 각지를 순회하며 진행하던 것을 코로나19 팬데믹 전후로 정읍에 고착되어 행사가 진행되고 있고, 또 '국가기념일 기념식'에 걸맞은 위상을 찾지 못하고 있는 데 대하여 문제 제기를 한 것입니다. 이런 바탕 위에서 2025년 행사는 반드시 서울에서 국가기념일 행사답게 진행을 함과 아울러, 향후(2026년 이후)에는 전국을 순회하며 기념일 행사를 진행함으로써 동학농민혁명의 전국화, 세계화, 미래화라는 공동의 목표를 이룩해 나가도록, 전국 동학농민혁명 연대와 천도교, 유족회 등이 합심하여 이를 추진해 나가기로 한 것입니다.
특히 올해는 동학농민혁명 기록물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해이기도 하기에, 동학농민혁의 세계화를 위해서라도 국가기념일행사는 서울에서 진행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다수를 이루었습니다. 이에 즈음하여 내년에는 '서울취회'의 이름으로 전국동학농민혁명 연대에 참여하는 전국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의 회원과 시민 등이 서울에서 대대적으로 동학을 살리고, 동학으로 살며, 동학을 알고, 동학을 알리는 행사를 전개함으로써, 시민 속으로, 시민과 더불어 역사로 미래로 세계로 나아가는 동학이 되는 일을 전개하자는 일입니다.
5. 모처럼 한 자리에 모인 전국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임원들은 각 기념사업회 현황에 대한 정보 교환와 아울러, 서울 지역의 동학-천도교 및 독립운동 사적 탐방을 함께 진행하였는바, 회의에 앞서 행사장인 '대한민국 건국의 요람 - 천도교 봉황각'이 이 자리에 설립되고, 3.1운동 당시 민족 지도자 483명을 양성하게 된 경위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듣고, 의창수도원(봉황각 경내에 위치) 서종환 원장으로부터 동학천도교의 주요 의식인 '심고'와 '주문'의 뜻에 대한 특강을 청취하였습니다. 이어 봉황각 경내에 있는 의암 손병희 선생 묘소를 참례하고, 인근에(도보 15분) 있는 몽양 여운형 선생 묘역을 참례하고, 박용규 박사로부터 약력에 대한 소개를 들었습니다.
6. 둘째 날에는 오전 9시에 서울 시내로 이동하여, 박길수 서울동학농민혁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의 안내로, 먼저 동학농민혁명 당시 총기포령을 내린 동학 2세 교조 해월 최시형 선생 순도터(좌포청 터, 종로 3가 역 인근)과, 동학농민혁명 당시 북접통령으로서 전봉준과 함께 연합하여 우금티 전투를 전개한 의암 손병희 선생의 동상이 있는 탑골공원, 그리고 1895년 전봉준, 손화중, 성두한, 최경선, 김덕명 선생이 순도순국한 전옥서 터(종로2가 영풍문고 인근)에 서 있는 전봉준 장군 동상을 참례하였습니다. 이어 인사동에 있는, 3.1운동 당시 민족대표들의 회합장소이 태화관을 거쳐, 천도교중앙대교당에 도착하였습니다.
7.1. 해월 선생 순도 터에서는 해월 선생의 동학농민혁명 이후 행적과 체포, 그리고 서울로 압상되고 재판을 받은 후 1898년 6월 2일, 이곳 좌포청 감옥에서 교수형으로 순도하기까지 과정을 설명 듣고, 해월 선생의 순도 정신을 기리는 참례식을 거행하였습니다.
7.2. 탑골공원에서는 의암 손병희이 동학 북접통령으로 전봉준과 함께 우금치 전투를 치르고 임실까지 후퇴하였다가 북상하여 강원도 일대를 전전하면서 동학 재건에 힘쓴 과정과 동학 3세 교조로서 천도교 대고천하를 이루고, 국권이 피탈된 이후 10년간 노력하여 3.1운동을 성사한 과정 등을 설명하였습니다. 특히 탑골공원(손병희, 한용운-동학농민혁명참가), 장충단공원(농민혁명 당시 양호초토사, 1895년 민비를 지키다가 전사), 그리고 한양공원-일본신사 터에 자리잡은 '백범광장'과 '백범 김구 동상(김구는 동학농민혁명 당시 '애기접주'로 해주성 전투 참가) 등 1920년대 당시 3대 공원이 모두 동학과 관계 있는 이야기에 대해 간략히 소개하였습니다.
7.3. 전봉준 장군 동상 앞에서는 '서울로 가는 전봉준' 사진의 진실, 그리고 전봉준 장군 동상을 기준으로 '정동(동학괘서운동)' '혜정교(광화문사거리, 이필제 처형), 전옥서(전봉준 등 처형지), 탑골공원(손병희 선생 동상), 좌포청터(해월 선생 순도), 동대문 밖 상춘원터(손병희 서거, 6.10만세운동 기획), 광희문(해월 선생 최초 매장지) 등 동학 역사와 긴밀하게 연결된, '동학의 거리'이며 서울 시내 전역(사대문 안)에 동학 사적이 산재한 "동학의 도시 서울"에 대해 이야기하였습니다.
8. 천도교중앙대교당에서는 마침 시일식(일요일 천도교인 공동집회)에 참석한 천도교인들의 환영을 받고, 시일식을 함께 봉행하였습니다.
9. 오후에는 현암 윤석산 천도교 교령을 예방하였습니다. 현암 교령은 동학이라는 이름의 유래, 천도교로의 대고천하, 그리고 '한울님'이라는 용어 등에 대한 설명과 함께, 사회 일각에서 얘기되듯 동학과 천도교는 별개의 이름이나 조직이 아니라, 동학으로부터 천도교로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는 이위일체성에 대해 힘주어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천도교와 동학기념사업회가 협력하여 동학-천도교 정신의 '포덕천하'를 위해 함께 노력하자고 당부하였습니다.
10. 전국에서 모인 참석자들은 1박 2일 동안, 올 상반기 전국동학농민혁명연대가 일구어 온 성과들을 평가하였습니다. 전국동학농민혁명연대의 결성과 활동을 통해 각지에 분산고립되어 있던 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 단체와 활동가에게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으며, 각지의 기념사업회 신규 결성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동학과 천도교 사이의 연대 정신을 회복하며 이위일체성을 재확인함으로써, 향후 그 폭발력은 배가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봉황각 취회를 계기로, 이 시대의 동학군들은 더욱 알차고 힘있는 동학 사업을 전개함으로써, 동학의 보국안민, 포덕천하 정신으로 이 나라를 구하고, 이 세상을 구하고, 생명 세계의 무궁한 안녕을 앞당기자는 결의, 자신감을 다시금 확인하였습니다.
11. 행사를 주최한 고재국 회장은 "봉황각 취회를 통하여 소중한 역사의 현장을 직접 보고 느끼며, 함께하는 동지가 있어 무한한 용기와 옛 선열들의 의기를 느낄 수 있었다. 역사는 항상 진보하고 진화하지 않는다는걸 알 수 있었으며, 그간의 항쟁, 의거, 혁명을 통하여, 백성은 무자비한 외세와 독정에 맞서 항상 승리를 향해 전진해 왔음을 재확인하였다"고 밝히고, "세계사의 값진 사상인 인내천 사상의 승리야말로 우리 근대사의 크나큰 혁명이었으며, 그를 통한 민주주의의 실천, 평등 생명사상의 위대함을 실현했지만, 이 시대는 변화와 역사의 정리 더나은 인내천사상의 실현을 요구하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어서 "이번 봉황각 취회를 통해 전국동학농민혁명연대의 1차 과제인 장흥 석대들전투 희생자의 무명동학농민군 묘역 성역화야를 결의한 것은 뜻깊은 성과였다. 이 사업은 호국백성의 명예회복의 실질적인 출발점이며, 동학농민혁명 2차봉기 이후 혁명군의 서훈의 실천은 혁사의 정의를 세우는 일이며 만세에 길이 새겨나갈 책무이기에 끝까지 요구하며 함께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동학농민혁명은 실패가 아닌 성공이었으며, 작금의 현실에서 살아 있는 자들의 현실의 책무가 남아 있을 뿐입니다. 혁명은 계속 진행형입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끝으로 고재국 회장은 행사를 후원해 준 천도교중앙총부와 윤석산 교령님의 배려에 깊은 감사의 인사를 전하였습니다.
12. 향후 동학-기념사업이 '사업'이나 '활동'을 너머, 생활로서, 공부로서까지 자리매김하는 데로 나아가는 고갯마루도 저 멀리 보이는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