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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Aug 20. 2023

천도교의 노인운동


8월 20일, 8-3 도담다담은 오래간만에 진행되었습니다. 줌과 오프라인을 병행하여, "천도교의 노인운동"을 주제로 심도 있게 진행하였습니다. 아래에, '발제문'과 토론내용(요약)을 소개합니다.


1. 들어가는 말


(1) 천도교는 대고천하 직후에 교단 체제를 근대(서구)적 종교체제로 정비하고 지방 조직을 확대하는 한편, 교육(대외/대내)과 언론출판을 주요한 운동 과제로 설정하였다. 1905-1919년까지는 중앙총부가 천도교 운영의 주체였다. 3.1운동 이후에 천도교 활동의 중심은 청년회로 이전되었다. 청년들은 청년운동과 더불어 어린이, 학생, 여성 등의 부문, 농민, 노동, 상인 등의 계층별 운동을 전개하였다. 개벽을 중심으로 한 신문화운동도 중요한 축이었다.


(2)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토대로 오늘의 문제로 돌아오면, 오늘의 시대 상황에서 천도교가 가장 주력해야 할 일은 '노인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노인'운동'이라는 말은 좀 적절치 않다. 이것은 대사회적인 '운동' 차원의 일이 아니라, 일상적인 '천도교하기'의 일환으로 제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3) 오늘의 시대에서 노령화된 천도교(인)에게 의미 있는 '시대상황'은 우리가 "대부분 노인이 되는 시대"를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날이 갈수록 '노인의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 그에 비하여, 그 삶의 질이 악화되는 속도가 너무도 급속하다. 청년실업 문제나 'N포 세대' 담론과 같은 청년문제에 대한 관심에 비하여, 노인문제는 '의료비 부담'이나 '복지비용 부담' 같은, 주로 부정적인 담론으로만 제기된다. 노인은 오늘날 '사회적인 짐'으로 치부되기 일쑤다.


(4) 이런 점에서 오늘날 "천도교 하기"의 접근 방법을 교리교사 공부나 수도보다도 "(천도교인) 노인(공경)운동"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즉 이 일은 '천도교하기'의 '부차적인 일'이 아니라, 이 사안을 중심으로 천도교 교리 정립(현대화, 교리강좌), 경전의 재해석, 오관(특히 설교) 현대화 등이 이루어져야 한다.


(5) 1920년대의 부문운동의 이면에서 이돈화, 김기전, 박달성, 오상준, 오지영, 이종린 등이 끊임없이 “종교 자유 시대"에 맞춰 교리를 재정립하고, 사상을 제시한다. 이를 오늘에 비추어 보면 "초고령화 시대"에 걸맞는 교리 재해석이나 교단 정책의 재편이 필요하다.


(6) 1920년대에는 그 운동이 직접적으로 사회적인 차원으로 확장되어 나갔다. 이는 당시의 교세가 운동을 뒷받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천도교의 형편으로 볼 때, '노인운동'은 우선적으로 교단 내의 원로들(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2. 미래 지향적인 ‘노인’운동


(1) 1920년대 청년들의 부문운동은 "(10년 후의) 미래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오늘날, "노인이 우리의 미래다!"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방정환'이 다시 살아온다면, 그리고, 꼭 한 가지 운동만 해야 한다고 그에게 말한다면, 그는 반드시 '노인운동'을 택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2) 오늘날은 "탈종교화시대"라고 불린다. 이는 양적으로 종교인구가 줄어드는 것만이 아니라, 질적으로 종교의 사회적 영향력이 줄어드는 것을 의미한다. 개인의 삶에서 종교(의례)의 구속력도 현저히 줄어들고 있다. 종교인=천도교인의 입장에서 보면, 문제가 되는 것은 후자이다.


(3) 오늘날의 종교 신행(信行)은 단지 도덕적으로 당위론만을 되풀이하고, 대부분의 개인의 삶은 개인이 주체적, 인격적 영역(사생활)으로 치부하여 '간섭하지 않는 것'이 대세가 되었다. 예컨대, 예전에는 수도원에서 수련할 때는 물론이고, 재가기도 또는 합동(교당 등) 기도 등을 할 때 '어육주초를 금함'과 같은 금기 사항이 부여되었으나, 지금은 그것이 사라졌다.


(4) 이러고 보니, 종교는 한 사람의 삶에 있어서 극히 일부분만 감당하고 논의하며, 그 사람의 일생에 걸쳐, 그리고 삶의 전 영역에 걸쳐 벌어지는 삶의 국면에서 종교(교리나 의절, 규범)는 주요한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있다. 교육은 학교교육과 사교육에, 의료는 병원에, 복지는 국가나 보험에, 노후는 요양병원에, 장례는 상조회사에 맡기고, 종교는 형해화(形骸化)된 형식만을 끌어안고, 비본질적인 교제를 중심한, 현대 사회의 게토가 되어 가고 있다.


(5) 노인'운동'을 벌이자는 것은 우리가 종교(천도교)를 신앙하는 일을 우리 삶의 중심에 두도록 하는, 다시 말해 “처음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종교의 발생과 관련지어 볼 때, 종교가 최후로 감당해야 하는 것은 '죽음'의 문제이다.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어가는 것"이라는 말도 있지만, 최소한, 삶을 아름답게(의의 있게) 마무리하고, 죽음을 의연하게 직면하고, 죽음 이후에도 살아가는(성령출세)의 문제만은 책임질 수 있어야, '종교로서의 자존심'을 수호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천도교의 노인운동은 바로 종교로서의 최소한의 존재가치, 자기역할 수행을 하자는 운동에 다름 아니다. '운동'이라고 하니 거창한 무엇을 생각할 수도 있으나, 우선은 내 주변의 '노인(교인)'을 챙기는 일부터 하자는 말이다.


3. 실천적인 방향에서 몇 가지 제안


(1) 오늘의 천도교 교리 재정립(공부)은 경전이나 과거로부터의 관례에 의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지향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 앞에서 말한 바를 토대로 해서 말하자면, 노인공경의 철학적, 사상적 근거를 제시하는(ex. 천지부모), 그리고 강조하는 방향의 교리를 발굴하고, 앞세우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교리 정립이란 ‘근본’이나 ‘원형’ 지향이 아니라, 미래지향적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때 핵심이 되는 것이 바로 지금 여기에서의 구체적인 실천으로부터 경전으로 나아가는, 길을 취하지 것이다.(이 방향이 사실은 본래/본연/근본의 '순(순)방향'이다. 그 역방향을 '교조적'이라고 부른다.)


(2) 이와 더불어, 지금-여기에서의 실천도 당장 병행되어야 한다. 우선 가까운 데서부터(교구 혹은 한 개인 차원) 형편에 따라 시작할 일이지만, 일단은 교구별, 연원별로 ‘노인’ 현황을 파악하는 것이 이루어져야 한다. 교회에 나오고 싶어도 거동이 불편하여 못 나오는 분은 없는지, ‘독거노인’으로 살아가는 분은 없는지, 등등의 살피는 것이다. 이는 ‘자식들’에게만 맡겨둘 일이 아니라, ‘동덕들’이 함께 거들어야 할 일이다.


(3) 살아 있을 때의 '성령출세운동'을 벌이자. 성령출세는 환원하신 분의 의지(意志)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살아 있는 사람들의 의지와 의무에 속하는 사항이다. '성령출세하시기를 심고합니다!'가 아니라, "성령출세하시도록 (제가) 정성과 공경과 믿음을 다하겠습니다"라고 심고해야 한다. 그리고 돌아가신 다음에 백번 심고하는 것보다 살아 있을 때 한번 찾아뵙거나, 말씀을 청해 듣거나, 밥 한 끼 대접하는 것이 낫다.


(4) 동덕의 돌봄과 케어가 전혀 필요치 않은 ‘넉넉한 노인 시절’을 보내는 분도 있겠지만, 대부분 ‘주변사람’의 관심과 돌봄이 필요한 처지일 것이다.(cf. 우리나라 노인 빈곤율이 세계 최고 수준) 겨우 시일에 참석하는 분들은 그나마 나은 형편일 것이고, 어느 날부터 시일식에도 모습을 보이지 않는/못하는 분들의 현황을 알아보아야 한다. 많은 분들이 주변의 노인복지센터나 치매예방센터 등을 정기적으로 방문하고 있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천도교 신앙은 ‘건강하고, 제 힘으로 교당에 나올 수 있을 때까지만 하는’ 것이 되고 있지 않은지, 성찰해야 한다. 교구나 총부에서 일부라도, '천도교 노인 프로그램'을 운용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5) 오늘날 노인들은 대부분 인생 말년을 '요양원'에 의탁한다. 근년에 우리 교단은 '요양원' 문제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요양원'이라는 말도 듣기 싫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천주는 "한울님 모심을 부모님처럼 섬기는 것처럼 한다"는 것이 아닌가. '요양원'이든 '정양원'이든 무리를 해서라도 만들어나가야 한다. '빈집'화 한 지방교구를 '천도교인 실버타운'으로 재활용하는 것이, 교구도 살리고 (노인)교인도 살리는 길이다. 여기에, '노인들'이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있는 토대(일거리, 부업)를 구축한다면 금상첨화겠다. 이것은 중앙 또는 지방 정부의 사업일 테지만, 교단으로서는 교단이 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것도 필요하다.


(6) 오늘날 '병원-요양원'에 부모님의 마지막을 의탁하는 일 자체는 막을 수가 없는 일일 테다. 돌보는 자녀 입장에서나 돌봄을 받아야 하는 부모님(어른, 노인)의 입장에서나, 비전문가인 자녀들에 의지하는 것보다 전문가인 의사, 간호사나 요양보호사의 케어(돌봄)을 받으며 말년(노후 아닌, 임종준비)을 지내는 것이현재로서는 차선책이다. 그러나 그것이 천도교인으로서의 존엄한 죽음맞이를 훼손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천도교(인/단)이 할 일이다. 병원이나 요양원을 보조자로 하고, 자녀(또는 교구, 연원의 동덕)를 주체로 하는 길을 모색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고, 그것은 잃어버린, 버려 버린 한울님을 다시 우리 (천도교인의) 삶의 한가운데로 모셔오는 일이 아닐까.


(7) 우선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사항을 연구할 일이다.

(가) 성령출세의 새로운 개념 정립

(나) 성령출세의 현실적 방법 수립과 실천 (말씀 청취, 회고록(자서전) 정리, cf. 사전장례식)

(다) '천민보록' 작성 (cf. 동학천도교인명대사전)

(마) 성미, 기도미 면제 (노인 공경 수당)

(라) cf. 천도교 ‘性靈(出世)堂’(납골당 등은 가족장(家族葬) 등의 관례에 따르더라도, ‘천민보록’을 ‘천도교성령출세당’이라는 곳에 체계적으로 모시고, ‘합동기도식’(3.10) 때에 일괄하여 ‘기도식’ 봉행)

(마) 대 사회/국가적으로, (국가 책임인 노인 복지에) 천도교가 감당하는 부분에 대한 지원 요구


4. 토론


(1) 일할 수 있는 노인에게 경제활동의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 노령화시대 사회적 부담도 줄이고, 노인이 자존감을 가지고 의욕적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최선의 길이다(장애인 노동권 등 포함) - 노인을 시장에 내모는 것이 아니라, 시장을 노인 사회 안으로 끌어들여서 놀이터로 만들기

- 적당한 일, 삶의 지혜(경험, 경력)를 발휘할 수 있는 일 = 건강한 삶의 지름길


(2) (1)항의 문제를 위해서는 ‘산업’이 ‘성장중심’과 ‘효율성 위주’가 아니라, 인간을 위한 노동 등을 우선으로 하는 가치관의 전환이 필요하다 (cf. 우리나라가 ‘로봇’ 도입률 세계 최고 - ‘효율성’만 중시)

- 로봇 안내원 대신 노인에게 일자리 제공(cf. 공항 안내 로봇)

- 유아원 등과 연계하여 노인 일자리 제공 + 어린이 정서 함양 등 ‘노령화/저출생’ 시대의 새로운 사회 시스템 필요


(3) 살아 있을 때의 성령출세, 사후 세계에 미련을 두지 않는 성령출세 = 깊은 연구 과제

- 노인 케어 문제는 '가족'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국가'의 문제다

- '천도교'도 하나의 '사회'이다.

- 오늘날, 그리고 앞으로의 '도가완성'은 '혈연가족 단위'가 아니라 '사회적 가족 = 동덕공동체' 단위가 된다.

- 9988234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행복한 삶'의 조건이지만, 오늘날에는 '은퇴 이후' '유유자적'한 삶만 누리기에는 '노후가 너무 길어졌다.'

- 최소한의 경제력을 위해서나, '몸과 정신이 모두 건강하고 건전하고 쾌적한 삶'을 위하여 '최소한의 노동'은 권리이자 의무이다.

- '살 만큼 산 뒤에는 자는 듯이 죽는 삶'을 위해서도, 운동과 노동은 필수적이다.


(4) 노인에게 일자리 제공 문제는 방정환의 어린이운동 정신에 비추어 볼 때, 노인을 단지 '돌봄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것이 아니라, 자기돌봄의 주체로 최대한 살려 모시는 길,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내 삶의 주체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길 - 중요

- '일할 수 있을 때까지는 최대한 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사회적(교회적) 의무' = 노인형 일자리 제공

- '놀고 보고 먹고 보세'의 정신을 살려야 = 노인 맞춤 일자리 - 쉬엄쉬엄 일하고도 보수도 챙기기

- 노인을 대상화하지 않고 '주체'로 살려 모시기

- 노인에 대한 시선의 재구축 : 사회적 부담이 아니라, 사회적 자산 = 장기적으로 경제 구조 재편 필요

- "노인은 인간의 미래다!!"


(5) 천도교단 차원에서 노인 교인을 위한 일거리 창출 / 일자리 만들기 = 특별 사업

- 우선 교구나, 천도교형 실버타운에서 시작해서, 궁극적으로 "궁을촌"운동으로 승화시켜야

- 천도교의 ‘실버타운’ 구상 - 교인들이 자부담하여 공동 생활할 수 있는 여건 조성 (cf. 수도원, 빈 교당 활용)

- 지역사회 노인일자리(노인 빵 공장, 노인 간장/메주 사업 등)

- '자부담형' 실버타운(궁을촌)은 당장이라도 추진 가능할 수도 있다 - 단, 운영 경력자가 필요

- 교인들의 봉사 필수

- 우수 운영 기관 지속적인 모니터링, 탐방

- 천도교인 요양사 현황 파악


(6) 최소한의 노동이나 움직임도 못하는 시기를 위한 마지막 케어 - 노인 돌봄 (요양원 형 시설)

- 별도 연구 필요 = 사회적 시설 적극 활용 (천도교의 역량 고려)


(7) 노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동경대전 공부하기>나 <독서모임>

= 노인들 중에 의외로 책을 읽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다

= 청년이나 학생, 어린이만을 포덕 대상으로 여기지 않기

= ... 노령화 시대에 노인들도 중요한 포덕 대상

- 포덕(포교)를을 현실적인 목적으로 하지 않는 베풂(=실질적인 ‘덕의 베풂’)


5. 결론


이 문제는 지속적으로 실천 가능한 사안을 구상하고, 할 수 있는 일부터 해 나가야 = 앞으로 정기적으로 토의하기로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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