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동학·서학의 ‘삼중근대론’을 중심으로
[한국학포럼을 시작하며]
이 포럼은 <도서출판 모시는사람들> 박길수 대표님의 제안으로, 뜻있는 소장 한국학자들이 모여서 한국학의 현재와 미래를 얘기해 보자는 취지에서 시작되었다. 첫 모임에서는 최근에 출판된『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를 읽고 서로의 감상과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세 시간 가까이 진행된 대화의 녹취 작업은 성민교가 수고해 주었고, 그것을 다시 조성환이 가다듬었으며, 최종적으로 참석자들의 수정과 보완을 거쳤다.
이번 좌담회는 주로 한국의 근대화 과정에 초점이 맞춰졌는데, 그 골자는 한국의 근대를 유학과 동학과 서학이라는 세 가지 측면에서 나눠서 보자는 것이었다. ‘유학적 근대’는 조선 초기부터 진행된 중앙집권화와 관료제 중심의 국가체제를, ‘동학적 근대’는 19세기 말에 나타난 만민평등사상과 사회참여적 민중의 출현을, ‘서학적 근대’는 20세기에 진행된 산업화와 과학화를 각각 가리킨다. 유학적 근대는 국민국가의 토대가 되었고, 동학적근대는 민주주의의 시작을 알렸으며, 서학적 근대는 산업사회로의 이행 과정이었다. 좌담회가 끝나고 한 달 뒤에 가진 제2회 한국학포럼에서는 이것을 ‘삼중근대론’이라고 부르기로 하였다.
또한 한국은 서학적 근대화, 즉 산업화 과정에서 전통적으로 국가가 주도해 왔던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영혼 돌봄’ 역할이 소홀해졌고, 그로 인해 오늘날 많은 사회문제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래서 장차 한국 인문학의 중요한 과제는 이 ‘영혼 돌봄’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있다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김용한 (동학·신학 연구자. 신학대학원 석사과정) / 성민교 (비교철학 연구자. 철학과 석사과정)
이원진 (퇴계학·비교철학 연구자. 철학박사) / 조성환 (동학·인문디자인 연구자. 철학박사)
텐 웨니아민 (러시아사상·일본사상 연구자. 교토대 박사과정)
황상희 (퇴계학·수양학 연구자. 철학박사)
일시 : 2018년 2월 2일 10:30~13:30 / 장소 : 신촌 카페
조성환 : 먼저 시작하기에 앞서 이런 귀한 기회를 마련해 주신 <모시는사람들>의 박길수 대표님에게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그럼 제 옆에 앉아계신 이원진 선생님부터『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를 읽으신 소감을 말씀해 주시면 어떨까요?
이원진 : 저는 굉장히 신선했어요. 사실 우리 사회에서 ‘리기(理氣)’ 같은 말을 함부로 꺼내기가 쉽지 않잖아요. 이것이 굉장히 중요한 틀이고 많은 걸 설명해 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심지어는 대학 수업 시간에서조차 말을 꺼내기 어려운 개념이에요. 그런데 이렇게 드러내놓고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 더군다나 그 철학은 리(理)를 말한다!”고 과감하게 정리하고 있는 데에 충격을 받았어요. 덕분에 저도 이제 보다 자유롭게 리기의 문제를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제가 연구하고 있는 분야가 이건데, 말을 못하는 게 참 안타까웠거든요.
조성환 : 동양철학 수업에서는 당연히 말을 하는데, 서양철학이나 교양 수업에서는 언급하기가 어려웠다는 말씀인가요?
이원진 : 예, 일반 교양 강의에서는 말하지 못했어요. 예를 들어 인성에 관한 수업에서는 굉장히 말을 하고 싶어서 입이 여기까지 나왔는데도 차라리 그림으로 그리면 그렸지, 리기라는 말을 꺼내면 굉장히 복잡해질까봐 스스로 검열하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제가 “유학을 전공한다”고 하면, “유학을 다녀왔다는 말인가요?” 이렇게 알아듣는 사람도 있어요. 더군다나 “퇴계를 한다”고 하면 굉장히 낯설게 느끼더라고요. “아, 나는 더 이상 당신과 이야기를 못 하겠구나…” 이런 식으로 이질감을 느끼는데, 거기에서 차마 리와 기 이야기까지 들어갈 수가 없더라고요.
그런데 이 책을 통해서 굉장히 실천적이고 실용적이며 시사적인 부분들을 평소에 사용하는 일상 언어로도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는 확신과 자신감을 얻게 되었어요. 이게 첫 번째 소득이었어요. 두 번째는 저는 사실 이런 분석이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해 왔어요. 어떤 한 나라의 특징을 도식화한다는 것, 그것도 한일 간의 관계를. 이런 틀을 상당히 위험하다고 늘 느껴 왔고, 그래서 그렇게 하는 것을 되도록 지양하려고 애써 왔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읽고 나니까 속은 시원하더라고요.
예를 들어 쓰레기 문제를 분석하는 부분에서 “한국 사람들은 리에 너무 치중하기 때문에 나머지 것들은 잡다하고 중요하지 않다고 치부해 버린다, 이것이 사실은 기를 천시하기 때문이 아니라 리를 중시하기 때문에 이런 성향이 더 강하게 나타난다.”는 말에 대해서는 굉장히 공감이 가더라고요. 사실 한국인의 민족성을 탓하는 얘기들을 주위에서 많이 들어왔거든요. 삼풍백화점 때도 그랬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치밀하지 못하고 일에 완벽성을 기하지 못하는 민족성이 원래부터 내재해 있다거나, 아니면 시민의식이 부족하다거나 하는 식의 자아비판을 저도 많이 내면화하고 있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 전혀 다른 식으로 볼 수 있는 시각을 스스로 놓치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점에서 “‘도식’이라는 것이 꼭 나쁘지만은 않구나” 하고 느꼈죠. 도식이 도식에서 끝나버리면 위험하겠지만, 그 도식이라는 프리즘을 통해서 서로를 연구하고 이해하려는 태도 자체가 중요한 거였구나. 제가 모르고 있었던 두 가지를 얻은 것 같아요.
조성환 : “제 전공이 퇴계입니다”라고 하면 낯설게 느낀다고 하셨잖아요. “철학을 연구합니다”라고 해도 거리감이 느껴져요.
황상희 : 맞아요! 사주 봐달라고 하고(웃음), ‘철학관’이라는 단어와 겹치기도 하고. 현대 한국의 학문적 토양이 식민지 지배 이후 성립됐기 때문에 별 수 없는 것 같기도 하고요.
조성환 : 그런데 그나마 지금은 인문학 붐이 일어나서 철학관 이미지는 많이 줄어든 것 같아요. 옛날엔 더 심했죠.
성민교 : 아직 남아 있는 것 같아요. 저는 20대인데도 충격을 받았던 일이 있었는데요. 얼마 전에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 처음으로 중학교 동창을 만났는데, “나는 서강대에 들어갔다, 철학과에 다닌다”라고 하니까, 그 친구가 “그거 이름 지어주는 거 아니야?”라고 당연히 안다는 듯 말하는 거예요. 그 친구에게 철학과는 철학관 이미지와 연결된 거죠.
조성환 : 그럼『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는『 한국은 하나의 작명소다』가 되는 셈이네요 (웃음).
황상희 : 저희 아버지는 시골에 사시는데, “딸이 박사라는데 뭐 전공했어요?”라고 누가 물어보면 “인문과학을 전공했어요!” 이렇게 대답하세요(웃음). 이렇게 대답해야 사람들이 더 이상 안 물어 본대요. 철학한다고 하면 “사주 보냐?”로 시작해서… 그래서 “인문과학을 전공했어요”라고 하면 더 이상 질문이 안 나온대요(웃음).
조성환 : 그러고 보면 우리는 철학을 하면서 이런 한국적 현실은 무시하고, 우리가 유럽이나 미국에 살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학문의 논의가 실학이 안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좀 더 현실적인 데에서 학문이 시작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령 현대 한국 사회에서 여성과 유학의 문제를 고민하는 ‘여성 유학’ 같은 분야요. 저는 특히 이 박사님의 쓰레기 이야기에 공감이 갔습니다. 일본에 가서 살아보니까 친구가 아무리 친해져도 집에 초대를 안 하던데, 그 이유가 자기 집이 더러워서 그런대요 (웃음).
텐 웨니아민 : 맞아요! 맞아요! (웃음)
조성환 : 반면에 길거리는 아주 깨끗해요. 저자도 한국에서 똑같은 걸 느낀 거예요. 하지만 구조는 정반대죠. 일본은 공(公)에 대한 관념이 강해서 공공 영역에서는 리가 잘 지켜지는데 사(私)적 영역에서는 느슨해지는 느낌이에요. 반면에 한국은 사적 영역에서는 리를 지키려 하는데 오히려 공공 영역에서 소홀해지는 편이고요. 그래서 일본과 반대 현상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성민교 : 그러네요. 사리(私理)가 강하네요.
이원진 : 그래서 집 안의 쓰레기를 모아서 밖에다 버리기도 하고.
조성환 : 아까 이원진 선생님이 언급하신 ‘민족성’과 관련지어 생각해 보면, 이건 민족성이라기보다는 조선 시대 전통과 이어지는 ‘리기성’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런 식으로 말을 만들어 보면, 조선에서 한국으로 넘어왔다는 것은 리기성에서 시민성이나 근대적 이성성으로 옮겨온 거죠. 민족성도 그 안에 녹아 있고요.
이원진 : 이 책에서는 ‘민족리’라는 표현을 하더라고요. 저는 이것을 요즘 말로 표현한 게 ‘국민정서법’이라고 생각해요. 한때는 ‘떼법’이라고 비하했었는데, 촛불 이후에 국민 정서가 어긋나면 아무리 법적으로 결함이 없어도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거죠. 그런 정신이 이 책에서 말하는 ‘민족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조성환 : 제가 이해하기로는 한국에서의 ‘리’의 특징은 ‘민(民)’이 만들어간다는 데에 있는 것 같습니다. 위에서 리를 정해서 밑으로 내려 보내는 것이 아니라, 아래에서부터 리를 형성하여 위로 올라가는 것이지요. 문제는 이렇게 했을 때 리가 민에 의해 자의적으로 결정되기 쉽다는 점입니다. 보편성보다는 민족 정서에 좌우되기 쉽죠. 그래서 외국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을 것입니다.
어제 어느 선생님이 ‘일본의 근대’에 관한 책을 소개해 주시면서, 근대 일본은 추상적인 국가 개념이 침투가 안 되니까 어쩔 수 없이 천황제라는 인격화의 방법을 도입하였다고 하시더군요. 근대국가라는 개념은 일종의 추상적인 ‘리’인데, 리적인 사유가 희박하니까 그것을 인격화해서 전달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지요. 대단히 공감되는 말이었습니다. 조선과 같이 리(理)적인 사유가 발달한 나라에서는 ‘국(國)’을 그냥 ‘리(理)’로 대체하면 되죠. 서양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오면서 중세의 신이 자유, 평등, 평화 같은 근대적 이념으로 대체되었다고 하는데, 우리도 민주화 과정에서 이런 이념들을 위해 목숨을 던졌잖아요. 그런 의미에서는 ‘리’를 위해 몸을 던졌다고 할 수 있죠. 우리에게 ‘ 리’는 국가와 이념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 같아요.
성민교 : ‘리’가 ‘님’이 된 거죠.
이원진 : 최근 이란에서 일어나는 반정부시위가 우리의 1987년 상황과 비슷하다고 누가 말하더군요. 북한과 비슷할 정도로 언론·여론 통제가 심한 이란에서 지난 근 10년 만에 일어난 대규모 시위인데, 특이한 점은 전국적으로 학생들이 가담해서 체포되고 목숨을 잃었다고 합니다. 경제난이 심각해지자 직업·소득·결혼을 원하는 청년들 주도로 일어난 시위라는 점에서 2011년 ‘아랍의 봄’이라는 민주화혁명을 연상시켜요.
하지만 이집트, 튀니지 등은 민주화혁명 이후에도 다시 독재체제로 되돌아갔죠. 서구가 인위적으로 분할한 국경 속 통치에서 독립한 지 얼마 안 된데다, 종파·부족·민족이 분열돼 있어 국가정체성이 성립되지 않아서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국가정체성은 결국 ‘민족리’이고, 그것은 청년들이 몸으로 느끼는 것이고, 몸으로 증명해내는 것인가 봅니다.
조성환 : 그때 저는 고등학생이었는데 당시의 사회변혁은 대학생들이 주도하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물론 종교인이나 학자와 같은 어른들도 도왔지만요-.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근대는 청년들이 주역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4·19 때도 그랬고요. 사실 신라의 화랑이나 조선의 의병장, 일제강점기의 안중근도 모두 청년들이었잖아요. 그런데 청년들이 집단적으로 모이기 시작한 건 역시 일제강점기 이후의 학생운동 같아요. 촛불도 여중생들이 처음 시작했고.
이원진 : 지난 촛불 때 진주의 한 자퇴 여학생 발언이 진짜 멋있었어요. “사실은 내 안에도 네 안에도 다 박근혜·최순실이 있다. 그런데 누가 누구를 공격하겠느냐…” 이런 취지의 말이었어요.
“자기 아버지가 자기한테 성적지향주의로 못살게 구는 것, 가정에서 폭력을 행사하는 것, 친구들이 서로 왕따시키는 것, 아르바이트 착취, 이런 모든 것들이 바로 우리 안의 최순실이라는 거죠. 그런 점에서 내 안에도, 우리 가족에도, 우리 학교에도, 모든 사회에 최순실은 있는데, 우리는 이 기회에 이러한 사실을 자각해야 한다.”
이런 내용이었는데 너무 말을 잘 했어요. 아무 준비도 없는 현장발언이었는데.
황상희 : 자기의식이 깨어 있는 친구네요.
조성환 : 제가 2008년에 일본에서 귀국했을 때 미국산 쇠고기 문제로 대규모 촛불집회가 열렸는데, 그 광경을 보고 너무 놀랐어요. 일단 일본에서는 그렇게 많은 사람이 모인다는 것 자체를 상상할 수 없고, 무엇보다도 어린 학생들이 “헌법 1조”를 들고 나오는 것은 생각할 수 없어요. 어쩌면 이런 게 리적인 사유가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어요. 한국의 헌법 1조는 주자학으로 말하면 “무극이태극”(無極而太極)이나 “천지생물지심(天地生物之)이 인(仁)이다”는 식이거든요. 여중생들이 이런 슬로건을 들고 광장에 나온 거예요. 조선시대에 유교 경전의 한 구절을 들어서 왕에게 상소문을 올리는 것과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게 헌법으로 바뀌었을 뿐이죠. 이 점이 제일 놀라웠어요. 제가 대학 다닐 때에는 주자학 때문에 근대화가 늦어져서 나라가 망했다고 배웠는데,『 한국은 하나의철학이다』를 읽고 다시 생각해 보면, 그 주자학 때문에 민주화가 빨리 되었는지도 몰라요. 조선 후기에 동학을 일으킨 최제우도 아버지에게 10년 넘게 퇴계학을 배웠는데, 주자학이라는 학적 체계를 익혔기 때문에 ‘동학’이라는 ‘학’을 만들 수 있었죠.
반면에 비슷한 시기의 일본의 신종교는, 기타지마 기신 교수님에 의하면, 학적 체계라기보다는 창시자의 영성이 탁월했다고 해요. 이 점이 가장 다르다고 생각하거든요. 원불교도 수양 중심의 ‘학’으로 가잖아요. 교리 체계를 세운 이론가들에게 주자학이라는 틀이 있어서 가능했던 거예요. 그래서 양면이 다 있는 거죠.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이 책이 주었어요. 지금까지는 촛불을 동학의 틀로만 생각했었는데, 다른 한편으로는 주자학에 의해서도 가능했다는 거죠. 게다가 동학 안에 주자학의 틀도 들어있었고 .
이원진 : 저는 이 책에서 한국인들은 말로 싸워서 정당성을 획득하는 게 주요 목적이기 때문에 말로 싸우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하는 부분이 공감이 갔어요. 오늘날의 썰전이에요. 그런데 문제는 공교육 현장에서는 아무도 말로 싸우지 않는다는 거에요. 왜 그럴까요? “한국인들은 시끄럽다”고 하는 대목에서 가장 먼저 생각났던 게 유대인의 하부르타 교육이에요. 서로 엄청 시끄럽게 질문해대는. 요즘에 ‘거꾸로교실(플립러닝)’ 같은 것이 많이 각광받고 있고, 이 책에서도 “한국인들은 말로 논쟁하는 것을 생명으로 안다”고 했는데, 이것이 하부르타보다 더 강한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그게 왜 없어졌을까 의아했는데, 촛불에서는 그게 나타난 거잖아요.
조성환 : 학생들은 알고 있었는데 선생님들만 모르고 있었던 거죠. 제가 2008년에 한국에 돌아와서 쓴 첫 번째 논문이 동아시아사상에서의 ‘교(敎) ’에 관한 것이었어요. ‘religion’ 개념은 19세기에 서양에서 들어온 것이고, 그 이전부터 있었던 ‘교’는 “성인의 가르침”이라는 뜻인데, 일종의 ‘official doctrine’을 의미한다는 것이 핵심 주장이었습니다. ‘교’는 일종의 ‘나라의 지도이념’을 가리킨다는 것이지요.
그 ‘지도이념(guidingdiscourse)’을 공자의 사상으로 택한 것이 이른바 ‘한대(漢代)의 유교의 국교화’ 사건이고, 이어서 붓다의 가르침이 중국인의 정신적 지도이념이 된 것이 위진남북조시대의 ‘불교의 성립’이고, ‘도교’ 개념도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성립됩니다. 이렇게 보면『 논어』가 스승의 말씀을 의미하는 “자왈(子曰)”로 시작되는 것은 이런 ‘교’의 사상적 틀을 공자학단이 제공했음을 의미하고『, 순자』에 ‘교’가 ‘학’과 짝이 되어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성인의 가르침’이라는 사상 형태의 토대를 순자가 제공했음을 시사합니다.
반면에 노자나 장자에 나오는 “불언지교(不言之敎)”라는 표현은 이른바 도가 사상가들은 “성인의 가르침”이라는 사상형태에 반대했음을 뜻합니다. 어쨌든 순자의 틀이 제도화된 것이 한나라 때의 ‘유교’의 국교화이고, 이런 ‘가르침’의 틀을 이어받아서 불교 경전도 “부처님이 말씀하시기를”이라는 “불왈(佛曰)”로, 도교 경전도 “도가 말씀하시기를”이라는 “도왈(道曰)”로 시작해요. 이런 틀에서는 선생의 말씀이 성인의 말씀과 같은 권위를 지니게 됩니다. 그래서 제자백가의 유학에서는 공자와 제자가 자유롭게 말했을지 몰라도, 그게 국가체제화되면 목사님 설교하듯이 되어버리는 거지요.
그런데 그 선생이라는 존재가 없어지면 현장 발언이 나온다는 겁니다. 저는 이걸 대학 수업 시간에 느껴요. 학생들끼리 그룹 토론을 시켜 보면 너무 활발하게 잘 해요. 그러다가 “자, 이제 토론 내용을 발표해 보세요.” 라면서 제가 등장하면 조용해져요. 선생이나 어른이라는 존재가 토론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지요. 그게 지금 우리 사회의 ‘교(敎)’예요. 목사님이 대신하고 있고 일선 교사들이 대신하고 있을 뿐이에요.
이것은 유‘교’의 유산이에요. 일종의 문화 형태지요. 과거에 중국인들이 정한. 종교뿐만 아니라 철학도 이런 식으로 전파돼요. 스승의 말을 통해서. 거기에 반하면 사상범이 되죠. 천주교가 그랬고 동학이 그랬듯이.
이원진 : 맞아요. 성인의 말씀을 전하는 대리인이라는 의미의 “술이부작(述而不作)”(『논어』) 전통을 오독하면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말 못한 한이 안에서 쌓이면 홧병인데, 어기면 사상범으로 몰리죠. 하지만 최근 ‘미투운동’을 통해 약자는 그냥 한만 쌓이는 게 아니라 오랫동안 여러 형태로 폭력에 노출되기까지 한다는 걸 알게 됐어요. 사실은 리의끊임없는 쟁탈이 일어나야 하잖아요. 스승의 리가 옳지 않다고 생각하면 거기에 발벗고 일어서는.
조성환 : 학교 안에서는 리가 하나밖에 없는 거죠. 선생이 리이니까요. 대학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강의가 목사님 설교처럼 느껴져요. 그래서 저도 처음에 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할 때에는 나름 멋진 강의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2~3년 지나 보니까 과연 학생들을 위한 수업이 무엇일까라는 의문이 들었어요.
그래서 고민 끝에 무엇보다도 말할 기회를 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고등학교 때까지 수업 시간에 너무 말을 못한거예요. 일방적으로 듣기만 했을 뿐. 그런데 창의적인 생각은 본인이 말을 하거나 글을 쓸 때 떠오르잖아요. 그래서 저는 강의 평가는 어떻게 되든 일단 말을 하고 글을 쓰는 기회를 줘 보자고 방침을 바꿨어요. 학생들이 대학 4년을 다녀도 수업 시간에 말을 못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글 쓰는 훈련을 못 받는 것도 그렇고. 전혀 인문학적이지 않아요. 오히려 반(反)인문학적이죠. 그래서 저는 폐강을 각오하고라도 학생들에게 글 쓰는 과제를 내요. 대신 시험은 안 보죠.
황상희 : 저는 이 책에서 저자가 한국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생생하게 그려지고 있는 걸 느꼈어요. 그래서 이 책이 좋았어요. 현장감이 있잖아요. 오구라라는 일본 사람이 얼마나 힘겹게 자리를 버티면서 한국 사회에서 한국인이 아닌 사람으로서 살았는지 이해가 됐어요. 심지어는 연구소에서도 일본인이라면 당연히 받게 되는 분노의 시선을 이유 없이 받았다고 말하잖아요. 본인이 공부하면서 현장에서 뭘 느꼈는지에 대해서, 그렇다고 지지부진하게 얘기하지도 않고 필요한 얘기들만 딱딱 짚어서 잘 전달해 주셨어요. 그런 긴장감이 너무 좋았어요.
실은 저도 어디 가서 “유학 전공했다”고 하면, “요즘도 그런 걸 하냐?”고 해요. 그런 질문을 많이 받는데, 우리가 버린 ‘리기’라고 하는 체계를 아주 효용성 있고 탁월하게 설명하는 실력이 놀라웠어요. 무엇보다도 오구라 기조라는 사람을 알아본 조성환 선생님의 안목과, 이 번역을 10년 넘게 가지고 계시면서 낼 수 없었던 한국적인 상황도 있었을 것 같고, 그런 것도 재미있었어요. 그리고 조성환 선생님이 역자 후기에 쓰신 “자국의 역사에 대해서 직시하지 못했고, 그런 애정도 찾아볼 수 없었고, 그리고 내재적으로 자국을 이해하려는 소수의 언사는 부정되거나 경멸되고, 그런 식으로 한국을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말도 인상적이었어요.
한국에서 철학하시는 분들은 대부분 아빠의 매처럼 철학을 하세요. 너희는 맞으면 건강해질 수 있을 거야. 한국적인 걸 부정하거나 서양 시선에서 때리거나, 서양은 이런데 우리는 왜 이래? 이런 식으로 말씀하세요. 그래서 보는 사람이 내가 지금 혼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하는데, 이 책은 그렇지않아요. 나를 이해할 수 있게 해 주고, 현상을 이해할 수 있게 해 주고, 일본과 이러한 비교가 가능하다는 걸 알려 주고.
실은 유교라는 것도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어떻게 보면 “목욕물을 버리면서 아기까지 같이 버려버린 형국”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500년 동안 선조들이 이뤄낸 어마어마한 학문적인 축적과 수양의 방법들이 거의 무시되고 사장된 채 있었는데, 이 책이 그런 것들을 건져주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래서 저는 2독, 3독 했는데 볼 때마다 재미있게 읽은 것 같아요. 가독성도 좋고 번역도 참 잘하셨고.
조성환 : 이런 컨셉으로 우리도 책 한번 만들어 봐요.
황상희 : 진짜 그럴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조성환 : 요새 인문학 인문학 하는데, 제 생각에 지금 유행하는 인문학은 대중화의 다른 말이에요. 대학의 전문용어를 빼고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전달하는 것이죠. 그런데 주자학이나 유학에 대해서는 아직 그 작업이 없는 것 같아요. 이 책이 그 역할을 해 준 거죠. 일종의 유학 인문학 같은 거죠. 그리고 황상희 선생님이 말씀하신 현장감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지금 우리가 사는 ‘현장’은 조선이 아니라 한국인데, 유학은 아직 이 ‘한국’이라는 현장에 뿌리내리고 있지 못하는 것 같아요. 조선 시대에는 여성이 사회활동을 하지 못했는데 지금은 여성이 대통령까지 하는 시대잖아요. 그러면서도 아직 우리는 유교 사회이고. 그런데 사회활동뿐만 아니라 육아, 교육, 살림, 제사 등등, 모든 게 여성과 결부되어 있어요. 이런 문제들은 유교의 화해나 조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기존 유학 연구는 이런 현실적인 문제들은 등한시하는 것 같아요. 우리가 “science”라는 서양의 학적 체계를 받아들이면서 뭔가 붕 떠버린 것 같아요. 동아시아학은 철저한 철학적 수양학이었잖아요. 수양은 실천적인 문제인데 science가 들어오면서 대체가 잘 안 된 것 같아요. 그래서 몸과 마음이 따로 놀게 된 거죠. 몸은 한국에 있는데 정신은 유럽에 가 있는 일종의 정신분열증처럼… 어쩌면 조선 시대 유학자들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을지 몰라요. 몸은 한국에 있는데 정신은 중국에 있는 식으로.
이원진 : 저는 몸과 마음이 분열되는 걸 제가 직접 느껴요. 이 책에 어머니론이 나오는데, 아버지를 리에 배정하고 어머니를 기에 배정해서, 어머니에 대해서 엄격한 리에 지친 사람을 품어 주고 다시 재생산해 내는 그런 역할만을 말하고 있는데, 저는 굉장히 반발심이 들었거든요. 어머니를 기에 유지시켜왔기 때문에 지금 페미니즘 현상이 일어난 거예요. 그래서 마지막 줄에 이런 말이 있었어요. “요즘 직장 여성들은 기를 아예 버리고 리로만 자기를 무장하려는 움직임도 보인다.” 그러면서 “페미니즘에 대해서는 몇 페이지를 보세요”라고 나와 있더라고요.
저는 사실 제가 공부하고 있는 게 조선 성리학이고 이기론인데, 제 삶의 현장은 기로 가득차 있는 상황이에요. 그래서 분열증이 일어나는 거예요. 몇 년 전부터. 말과 행위가 전혀 일치되지 않고. 밖에 나가서는 거창한 담론을 얘기하면서 집에 들어와서는 애들한테 욕하고 있고… 밖에서는 “교육은 이제 바뀔거다”라고 말하면서 집에서는 애들한테 왜 숙제를 안 했냐, 학업 성취가 왜 이것밖에 안되느냐고 비난하고 있고… 당장 남편이 그러더라고요. 표리부동의 인간이라고. 맞는 말이죠. 이걸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가 제가 생각하는 ‘여성 유학’이었어요.
조성환 : 그런데 이 책에서 한국의 교육은 여성이 리와 기를 모두 담당하고 있다고 안 했던가요?
이원진 : 하지만 그 부분이 역시 약해요. 어머니로서의 리만 강조되고 있지, 여성으로서의 리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어요. 예를 들어 포스트 페미니즘이 “남녀의 구분과 도식 자체를 없애버리자”라는 해체적인 담론이라면, 한국에서는 페미니즘이 리를 장악하려는, 여성 역시 리를 장악할 수 있다는 논의로만 전개되고 있다는 게 오구라 선생님의 이야기인데. 저도 일정 부분 맞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리가 문제가 아니다. 다만 여성이 리를 장악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이런 문제의식. 자아분열증은 다른 누구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제가 느끼고 있는 감정이에요. 그래서 내가 왜 철학을 하나, 요즘 고민하고 있거든요. 한때는 너무 좋아서 빠졌었는데 이제 그 열기가 식고 나니까, ‘내가 왜 철학을 하려고 했었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제서야. 박사 학위를 딸 때는 그 학위 과정에 매몰돼서 그 고민을 할 찰나도 없었는데, 이제 다 하고 나니까, 시간도 많아지니까 회의가 드는 거죠.
저는 전통적으로 리를 너무 강조한 집안에서 자란 영향이 컸던 것 같아요. 기 따위, 특히 몸에 대해서, 체육이나 이런 것에 대해서는 굉장히 무시하고. 체육은 못해도 돼, 일단 공부는 잘해야 돼, 항상 책을 읽고 있어야 하고, 다른 잡스러운 것, 예를 들면 만화를 본다거나 그런 것을 굉장히 경계하고, 그런 매우 엄격한 집에서 자랐어요. 항상 그런 잡다한 것들은 무시당했어요. 예체능 이런 것들은 못해도 상관없다, 그런 것 때문에 공부하는 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해라. 그래서 저는 더더욱 리의 세계가 싫어서 리를 떠나서 현장으로 도망갔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그 현장의 세계가 해석이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다시 나는 역시 이걸 해결해야겠다, 내 안의 리의 정체성을 해석해 봐야겠다, 내가 리의 무엇이 싫었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리가 나를 똘똘 감싸고 있는지를 해석해 봐야겠다는 도전장으로 철학을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그게 해결이 안 되고 있다가 이 책을 읽는 순간, ‘너무 비슷하다! 우리 집의 분위기와 이 한국 사회의 분위기가.’ 특히 너무 똑같이 느껴졌던 게 상승의 열망. 그리고 상승되지 않았을 때의 한스러움. 그게 정확히 저를 표현해 주고 있었어요.
사실 저는 이게 전부예요. 상승이 아니면 전락으로 평가해 버리는. 그 정체성이 저에게 굉장히 강하고. 그래서 학창 시절부터 굉장히 고통스러웠어요. 지금도 고통스럽고. 그게 참 안쓰러운데, 나만 이런 게 아니라 한국 사람들이 다 이렇구나(웃음).
황상희 : 맞아요! 그 도식에서 자유롭지 않으니까.
조성환 : 저는 너무 시골에서 방치되어 자라서(웃음). 중학교 때까지는 만화만 보고, 고등학교 때는 술 먹고 당구 치고… 누가 좀 잡아줬으면 좋았는데. 그리고 이공대가 좋다고 해서 수학과로 갔는데 결국 철학과로 바꿨잖아요. 혜택을 본 게 없어요(웃음).
황상희 : 양쪽이 다 극단이군요(웃음).
조성환 : 저는 자유분방하게 자랐지만 한국 사회가 이렇다는 걸 일본에 가서야 느꼈어요. 외부 시선으로 보고, 일본과 극단적으로 대비되니까 알 수 있었죠. 일본은 이른바 ‘상승지향’의 분위기가 강하지 않잖아요. 중세 봉건시대처럼 자기 직분에 맞는 일만 하면 되니까.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외국에 안 가도 한국을 알 수 있는 타자경험을 하게 해주는 것 같아요. 외국에 안 가고 한국에만 살아도 외국인의 시선을 경험하게 해 주는 셈이죠.
이원진 : 맞아요. 저는 정말 저만 이렇게 고통스러운 줄 알았는데. 한국이 헬조선이 되는데는 이런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자기에게 리를 씌워두고 있는 거죠.
조성환 : 문제는 이 헬조선에 대한 진단을 이렇게 못하고 있다는 게 문제예요. 사회과학적인 진단이 대부분이거나, 연세 드신 분들은 “니들이 아직 굶어보질 못해서 그래!”라는 훈계로 끝나잖아요. 그래서 한국인은 자신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자기인식’이 제대로 안 돼 있는 거죠. 유일한 예외가 일제강점기 같아요. 포석 조명희부터 위당 정인보, 원불교 창시자 소태산 박중빈, 이런 분들의 글을 읽어 보면 철저한 자기비판으로 시작돼요. 조명희는 “우리는 그동안 사상의 나그네였다. 생각의 집이 없었다.” 정인보는 “우리 역사는 허위와 가식의 역사였다.” 소태산은 더 대단해요. “우리는 꿈속에 있었고 자립하지 못했고…” 이런 얘기들을 한 페이지나 쓰더라고요. 이게 유일한 자기인식의 시기였던 것 같아요. 그때 ‘한글’에 주목한 거예요. 나라를 잃고서야… 대표적인 실학자인 박제가는 한문공용론자였다고 해요. 사대(事大)의 대상이 명나라에서 청나라로 대체됐을 뿐이죠. 그나마 나라를 잃었을 때 자기 아이덴티티를 찾으려고 한글을 잡은 거예요. 그게 유일한 자기인식이거든요. 이후엔 또 없어요. 근대화하느라고 바빴으니까.
그런데 진짜 발전은 자기성찰에 있다고 생각해요. 반면에 이 책에서 지적하는 도덕으로 타자를 공격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발전이 없어요. 다 남의 탓으로 여기니까. 그 대상이 외국에 대해서는 북한이나 일본이 되고, 국내로 오면 세대별, 지역별로 갈기갈기 다 찢기는 거죠. 부모 탓하고 자식 탓하고…. 그래서 제가 수양학에 관심이 많은 거예요. 수양은 자기 성찰이잖아요.
이건 여담인데, 얼마 전에 다산의 수양학을 강의했는데, 다산은 천주교와 유교의 만남이잖아요. 그래서 수양적 기독교론이 가능한 사람이에요. 그분이 천주교를 받아들였다고 해도 내세를 받아들이거나 기도를 강조한 건 아니에요. 창조주로서의 신 개념하고『 천주실의』에 나오는 아리스토텔레스적 모형을 받아들인 건데, 그게 저한테는 중요하게 다가왔어요. 저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내가 지은 죄를 신에게 고백하면 사해진다” 라는 논리가 잘 이해가 안 가요. 아마 제가 유교 정서라서 그런 것 같은데, 내가 수양을 하고 성찰을 해야 죄가 사라지든 줄어들든 하지 않을까요? 다산은 ‘횡축’을 더 중시해요. 내가 위에 있는 신을 모시기는 하는데 그건『 중용』의 ‘신독(愼獨)’으로 해석해요. 신 앞에서의 자기 삼감으로 보는 거죠. 반면에 횡축으로는 인간과의 관계를 중시해요. 인(仁)을 주자처럼 심성론으로 설명하지 않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로 해석해요.
그런 점에서는 오구라 교수님의 “제3의 생명론”과도 통해요. 그래서 내가 잘못을 했으면 그 사람과 해결을 해야지 신한테 기도한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에요. 이번에 성폭력으로 문제가 된 검사도 교회에 가서 잘못을 뉘우쳤다고 하던데, 당사자랑 얘기를 했어야 하지 않을까요?
황상희 : 영화「 밀양」에서도 나는 이미 구원을 받았다고 하잖아요.
이원진 : 그 점이 핵심을 찌르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 책에도 나왔는데,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교류를 하면 리의 정당성을 확보한다, 그래서 나는 문제없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고방식이 굉장히 한국적인 사고방식이고 아주 위험한 거죠.
조성환 : 그런데 동학이나 원불교까지는 다 수양론이었다는 거죠. ‘학’의 개념이. 그리스도교가 들어옴으로써 수양은 사라지고 수직 개념만 남은 거예요. 그런데 다산은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이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수평’을 더 강조하는 거죠.
이원진 : 이번 검찰 내 성폭력 사건도 리기 틀에서 던져주는 게 굉장히 많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책에서 양반, 사대부, 선비의 구조를 말했잖아요. 양반은 도덕과 권력과 부를 다 가진 사람이고, 사대부는 도덕과 권력만 가졌고, 선비는 도덕만 가졌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에서 검찰이라는 신분은 정확하게 양반 신분이거든요. 그래서 그 안 검사가 자기 정체성을 그렇게 생각한 것 같아요. 난 검찰이니까, 이 사회에서 리를 가장 많이 확보했으니까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 그런 식의 도덕적 불감증을 가지고 있었던 거죠.
어제 싱가폴에 있는 친구랑 전화를 했어요, 이번 검찰 내 성폭력 문제로요. 그런데 이 친구도 그렇고 주변에 다 ‘미투’가 있는 거예요. 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에게는. 그런데 싱가폴에 와서 굉장히 놀란 점은, 한국 사회처럼 모든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보는 문화가 전혀 없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 광고 같은 것도 여성이 소주병에 등장한다든가 그런게 전혀 없대요. 제가 너무 놀라서 “어떻게 그러지?”라고 물었더니, 동아시아권이라도 공산주의 사상을 조금이라도 받은 나라들은, 중국도 그렇고, 그런 문화가 없다는 거예요.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이 초창기에 있었잖아요. 자유주의 페미니즘과 포스트모던 페미니즘 사이에. 공산주의와 페미니즘이 같이 전파됐기 때문에 싱가폴이나 중국에는 그런 게 많이 없는데, 제 친구가 보기에는 유독 한국과 일본은 여성을 성상품화하고, 여성들이 어떻게 해서든 외모를 아름답게 보이려고 노력하는 문화가 굉장히 강하다는 거예요. 싱가폴 여성들은 전혀 외모에 관심이 없대요.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이 책을 다시 읽어보니까 그런 내용이 있더라고요. 몸의 문화에는 기의 몸이 있고 리의 몸이 있는데, 리의 몸은 보는 몸이고 기의 몸은 보여지는 몸이다. 그런데 여성은 항상 기의 몸이었다. 항상 보여지는 몸이었기 때문에 한국에서 성형수술도 굉장히 활성화되는 것이다. 저는 이런 틀이 다 마음에 안 들어요. 기의 어머니상, 기의 몸, 이런 것들이 여성주의적 시각에서는 참 안 맞는데, 그게 분명 있긴 있는 것 같아요. 왜 한국 사회에서 안 검사 같은 사람이 나올 수밖에 없는지… 내가 권력을 가지고 있으면 성도 당연히 그 권력으로 소유할 수 있다는 생각들이 있지 않으면 그런 행동들은 나올 수 없을 것 같아요.
성민교 : 아주 조금의 힘의 우위만 가지고 있어도, 가정 안에서 내가 아버지고 네가 자식이면 내가 우위를 가진 것이고, 또래 사이에서도 내가 너보다 나이가 많은 선배이고 네가 후배이면 내가 우위를 가진 것이고. 그렇게 힘의 우열이 결정되고 나면 내가 상대의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식으로밖에 사고를 못하는 것 같아요.
이원진 : 그래서 제가 요즘 가장 관심 있게 보는 게 한국 사회의 관료화 성향이에요. 우리가 관료에 대해서 관료가 스스로 힘을 가졌다고 느낄 만큼 우리 시민 스스로가 과도하게 힘을 실어주고 있는 것 같아요. 툭하면 “이건 정부가 해결해야 한다”, “정부가 나서줘야 한다”고 하면서 정부만 바라보고 있잖아요. 왜 자기가 나설 생각은 안하고 정부에게 의존적일까? 언론도 그렇고 다 그래요.
이 책의 처음에 딱 지적하더라고요. 관료 사회는 유학자가 나라를 다스린다는 국가 통치이념의 핵심이라고. 사실 관료사회가 이렇게 세 등급으로 나뉘는데, 조선이 버틸 수 있었던 건 선비사상 때문이었던 거 같아요. 굉장히 청렴한 선비가 권장되었잖아요. 현대사회에서 선비라는 계층은 완전히 비정규직 노동자의 이미지밖에 떠오르지 않아요. 비정규직 시간강사, 개척교회 목사. 이 양반과 사대부와 선비의 3대 구조가 탄탄해야 의미가 있는 관료체제인데, 이제는 선비가 자조도 많이 하고, 내가 왜 이렇게 사회의 바깥으로 밀려났을까 하고… ‘지방시’라는 말이 있잖아요.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라고 하는. 저는 선비정신은 지금 사실상 사라졌다고 봐요.
그렇기 때문에 돌아갈 곳이 없는 거예요. 퇴계의 ‘퇴(退)’자가 물러설 ‘퇴’잖아요. 퇴계가 유학에서 진퇴를 굉장히 중시했는데, 퇴계는 자꾸 물러났잖아요. 임금이 오라고 하는데도 상소문을 올려서 못 가겠다고 계속. 그때 왜 그랬냐고 묻는 이에게 하는 말이 “퇴로가 보장되어 있지 않으면 권력은 무너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호도 ‘퇴계’로 정했다”고 했다는데, 저는 선비가 퇴로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의 관료 체계, 특히 안 검사 같은 사람에게는 퇴로가 없는 거예요. 퇴로가 보장되어 있지도 않고 퇴로를 존중해야 한다는 문제의식도 없고, 그래서 저 사람은 저렇게 갈 수밖에 없구나…
조성환 : 퇴로가 없으니까 자살하죠, 극단적으로.
성민교 : 도덕이 훼손되었을 때.
이원진 : 그래서 이 상승과 하강의 구조가 한국 사회의 굉장히 중요한 틀이라면, 하강 역시 존중해주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대개는 하강을 전락으로, 하강하면 끝나는 걸로 생각하잖아요. 이것이 우리나라의 관료체계의 모든 문제인 것 같아요. 그게 이번에 검찰 내 성폭력 사건으로 드러난 거고. 전체적으로 검찰이라는 조직이 자신들의 권력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어요.
조성환 : 리의 원래 의미는 도리, 즉 도덕적인 리라는 뜻인데, 지금 같은 자본주의에서는 재리(財理)로 되고, 또 권력리가 되어서 도덕리라는 함축이 다 빠져버렸죠. 그래도 아직은 리가 살아있는 것 같아요. 촛불까지 나오고 있고. 그런데 이것은 국가위기와 같은 거대한 사건 때만 분출되어 나오지, 일상생활에서는 기능을 제대로 못하는 거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는 우리 사회는 그나마 주자학의 흔적으로 버티고 있는 것 같아요.
이원진 : 그 점이 정말 탁월해요. 주자학의 흔적을 이렇게 직설적으로 드러냈다는 게.
황상희 : 맞아요. 그 점이 정말 탁월했어요. 지금 우리에게는 몹쓸 것, 버릴 것, 이렇게 욕을 얻어먹는 대상인데.
조성환 : 제 생각에는 우리 철학계가 냉철하지 못한 것 같아요. 이 책은 굉장히 냉철하잖아요. 우리는 숭배 아니면 부정이 대부분이에요. 그러니까 냉철한 분석이 안 나오죠. 서양철학도 숭배식으로 하고 -. 그게 전통적인 “성인의 가르침” 틀이거든요. 내가 헤겔을 전공한다, 그러면 헤겔이 성인이 되는 거예요. 서양철학을 전공한다고 하면 플라톤부터 성인이 되는 건데, 그게 저는 비철학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과연 이게 철학인가? 진짜 철학이 있는가? 라는 회의가 들고, 철학이 아닌 경학(經學)을 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어요. 지금은 단지 내가 어느 성인을 모실까가 다원화되었을 뿐이에요. 옛날에는 ‘노자·공자· 붓다’의 세 명으로만 제한되고 나머지는 다 이단이었는데, 지금은 다 선택할 수 있지만 리적인 방식으로만 철학을 하는 거죠. 그 사람의 리에 매몰되어버리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나라 철학계는 경직되어 있는 거 같아요. 칸트 전공하는 사람 앞에서 칸트를 비판하면 마치 자기를 비판하는 것과 동일시해요. 분리를 못 시켜요. 이게 전근대적인 태도거든요. 동일시하는 것. 임금님, 주군하고 나를 동일시하잖아요. 그런데 근대는 그것을 분리시키죠. 그게 “science”의 시작인데, 우리는 아직 분리가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반면에 일본은 너무 분리시키는 것 같아요. 그리고 문제의식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려 하지 않고 자기 혼자서 자연과학식으로 분석만 해요.
텐 웨니아민 : 맞아요.
이원진 : 공감은 안 하고(웃음).
조성환 : 인문학을 자연과학식으로 해요. 그것도 특이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원진 : 일본은 번역서나 개론서가 많이 나와 있잖아요. 거의 모든 고전이 다 번역되어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게 너무 부러워요.
황상희 : 번역에 대한 태도도 너무 다르잖아요. 일본은 번역서도 학위 논문으로 인정되는데 한국은 번역 작업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죠.
이원진 : 마치 번역한 사람을 추종하는 세력인 것처럼.
조성환 : 『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와 같은 글쓰기였으면 아마 우리나라 학계에서는 인정받지 못했을 거예요. 논문 같지 않으니까. 그래서 이런 분석이 안 나오는지도 몰라요.
황상희 : 저도 한국에서 너무 힘든 게 글쓰기예요. 학자들의 논법으로 말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이게 어떻게 글이냐는 말이 나오죠. 예를 들어 어떤 표현을 쓰면 이건 논문식 표현이 아니야, 라고 말을 해요. 한국식 글쓰기는 정말 문제가 있어요.
조성환 : 그래도 요즘은 인문학 붐이어서 해소할 창구가 생긴 거죠. 인문학적 글쓰기가 그런 식이니까.
텐 웨니아민 : 오구라 선생님의『 새로 읽는 논어』를 보면 귀납(induction)과 연역(deduction)이야기가 나와요. 공자는 원래 귀납적이어서 작은 것부터 얘기를 시작했다고. 아마 오늘도 이 대화를 들으시면 한국인들은 연역적이어서 리를 먼저 상정하고, 그 다음에 세부적인 것들을 이야기한다고 말씀하실 거예요. 제가 인상 깊었던 말은 “한국인들은 초월적인 것을 동경하지만 한국 사회가 초월적이지 못하다”는 지적이었어요. 항상 정치적
인 관계와 생활이 중시되고 시위도 많이 하잖아요.
제가 러시아에 살 때는 한 번도 시위를 매력적으로 느껴본 적이 없었어요. 나한테 관계없는 일을 왜 하지? 라고. 물론 이런 사고도 문제가 있어요. 푸틴의 절대 권력은 매우 심각하니까요. 한국에서는 최순실 게이트를 시작으로 변화의 계기가 되고 개선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고 생각해요. 러시아와 비교하면 스탈린 때에 도덕성을 가진 지성인들이 있었는데, 도덕성에만 호소해서 나라를 개선할 수밖에 없었어요. 한국에서는 지금도 계속 개선을 하려고 하니까요. 한국에서는 개인의 생활이 다 정치적인 의미가 있고 생활과 정치를 분리할 수 없어요.
저는 지금 한국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데, 얼마 전에 한국어능력시험을 처음 봤어요. 그런데 깜짝 놀랐어요. 일본어나 영어나 다른 언어 시험들과 달리 마치 문제들이 리처럼, 제일 어려운 문제가 나와요. 그 모든 문제들 안에서 내가 몇 퍼센트를 발휘할 수 있느냐를 평가하는 것 같아요. 학생들이 100% 다 풀 수가 없어요. 저는 전체에서 60%만 맞았다는 결과가 나왔어요.
조성환 : 나도 시험문제 본 적 있는데, 한국인이 봐도 다 못 풀어요.
텐 웨니아민 : 그래서 귀납 중심의 시험이 아니라 연역 중심의 시험이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너무 어려워요.
성민교 : 그러니까 100% 완벽하게 달성할 수 없는 문제들을 주는 거군요.
텐 웨니아민 : 네. 그래서 문제 보자마자 정말 놀랐어요. 이걸 대체 어떻게 풀어? (웃음)
조성환 : 기업식으로 말하면 사용자(수험자) 중심이 아니라 리 중심인 거죠.
텐 웨니아민 : 맞아요! 맞아요!!
조성환 : 우리가 상대방한테 요구하는 게 대부분 그런 거 같아요. 현실은 무시하고 리에 맞추어 요구를 하니까.
김용한 : 저도 신학대학원에서 한국철학 공부를 시작했는데, 그전에 취미로 『사서』나 『논어』를 보기는 했어도 본격적으로 판 적은 없었어요. 마침 신학대학원에 성균관대 출신 학생이 한 명 있어서, “한국철학을 공부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도움을 청하니까, 그 친구가 저한테 처음 준 게 ‘허사’를 정리한 프린트였어요. 20페이지 정도 되는 프린트였는데, 이걸 다 숙지를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그 의미를 모르겠는 거예요.
조성환 : 한문 허사?
김용한 : 네. 그래서 지금 말씀하신 거랑 비슷한 것 같기도 한 게, 한국어능력시험을 보려면 리 같은 문법을 완벽하게 봐야 한다, 이런 식이잖아요. 사용하면서 익히는 게 아니라. 저는 전도사인데, 만약에 교회에서 복음이 뭐냐는 질문을 받으면 되게 간명하게 제시해 주거든요. 복음을 알고 싶은 사람한테 그리스어, 히브리어 문법책부터 주지는 않아요. 지금 말씀하신 거랑 너무 관련 있는 것 같아서 놀랍네요.
성민교 : 그러네요. 한국철학 배우고 싶다고 하니까 문법책부터 주는 거네요.
김용한 : 수업에서도 주자학 얘기 되게 많이 하셨거든요(모두 웃음). 그런데 중세 아퀴나스 철학처럼 읽으면 읽을수록 이게 무슨 말인지를 모르겠는 거예요. 뭐「 태극도설」도 설명해주시고,『 성학십도』도 보고 그랬는데... 제가 정말 원했던 것은 한국철학이 작동하는 방식을 알고 싶었던 거거든요. 아까 얘기 나눈 것처럼 한국철학에서 수양이 제대로 된 분을 만났을 때 느껴지는 그런 것들이 궁금했었는데, 거기까지 가는 과정이 너무 힘
든 거예요. 그리고 그 분이 저한테 했던 얘기가 뭐냐면, 몇 살이냐고 물어보시기에 서른 여섯이라고 했더니, 한학하시는 분들 중에는 신동 같은 분들이 있대요. “사서동자(四書童子)” 이런 분들. 그 분이 보기에 저는 사서동자는 아닌 거예요. 한국철학을 하기에는 이미 늦어버린 사람인 거죠. 이렇게 나는 한국철학에 관심이 있다고 관심 표명까지 하고, 한 학기를 투자해서 수업까지 들은 사람인데도, 그런 사람한테도 설명이 안 되는 철학이라면 과연 누가 이걸 할 수 있을까? 이건 굉장히 불리한 전략이다, 이렇게 하면 저변이 안 넓어질 텐데,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까 기독교에 대한 얘기도 나왔는데, 기독교가 굉장히 안 좋은 소리도 많이 듣고 하지만, 기독교에 가서 진리가 뭐냐고 물어보면 굉장히 간명하게 제시해주면서 끌어들이잖아요.
그래서 이 책이 좋았어요. 리기라는 개념이 제가 한국철학 수업을 들을 때에는 미로 같았어요. 수업 시간에 미로가 펼쳐지는데, 그 미로 속으로 들어가면 참고문헌이 계속 나오고 끝이 없는 거예요, 제가 숙지해야 할 것들이 -. 그런데 이 책은 아까 도식 얘기하셨잖아요. 굉장히 간명하게 작동방식을 제시해주니까 내가 앞으로 한국철학을 보면서 이게 맞는지 안 맞는지 생활 속에서 계속 확인해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이게 안 맞는 것 같으면 그때 가서 다시 한국철학 수업 때 배웠던 참고문헌들을 다시 찾아보면서 검토해볼 수 있고요. 처음부터 허사를 가져다주고 이러면 좀(웃음).
그리고 제가 그때 참고문헌으로 봤던 책들이 현상윤, 윤사순 이런 분들이쓰신 책들이었는데, 초심자가 접근하기에 너무 어려운 수준이었어요. 아까 철학관 얘기가 나왔었잖아요. 생각해보면, 만약 저 같은 사람이 리에 대해 알고 싶은데 그쪽에 접근하려면 허사도 알아야 하고 장벽이 너무 커요. 그러면 그 진리를 알고 싶은 마음에 흉내라도 내려고 사주명리학 같은 것들, 철학관 같이 쉽게 찾아갈 수 있는 곳에 가서 답변을 듣고 싶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성균관으로 가려면 너무 장벽이 높으니까요. 그런데 이 책이 그 사이에 통로를 잘 뚫어주는 것 같아요. 저처럼 한국철학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 한국철학을 많이 알고 있는 어떤 고수들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사다리 같은 걸 얻은 기분이에요.
황상희 : 김용한 선생님 말을 듣고 나니까 제가 최근에 읽고 있는『 집중과 영혼』이라는 책이 생각나네요. 서양철학과 동양철학의 수양론을 아주 잘 설명해 주는 책이에요.
김용한 : 저도 김영민 선생님 정말 좋아해요. 그분 만나러 가기도 했어요.( 웃음)
황상희 : 아, 그러셨구나. 저는 ‘경(敬)’을 그렇게 생각했거든요. 이 책 읽으면서도 아이디어를 얻었고, 언젠가 조성환 선생님께 메일로 말씀드리기도 했는데, “고요한 집중의 나라”라는 제목으로 수양론을 정리해서 써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거든요. ‘집중’이라고 하는 수양론이 북한에서는 어떻게 이루어지고 한국에서는 어떻게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는데,『 집중과 영혼』이라는 책이 서양철학과 동양철학을 잘 모듬하고 있더라고요. 한자에 오타가 조금 있긴 한데 그것 말고는 정말 잘 쓰셨어요. 그 책이 도움이 많이 됐어요.
저 같은 경우에 석사 논문을 퇴계의 수양론으로 썼는데, 제가 쓰면서도 경험이 되더라고요. 그 분들이 이뤄낸 수양이 어떠한 느낌이었는지가-. 이 책 보면서도 드는 생각은, 우리는 분단이라고 하는 전시상황이 지금도 계속 이루어지고 있잖아요. 그래서 고요한 집중의 나라 사람들이 이 분단과 전시라는 상황에 부딪혔을 때 어떤 굴곡을 겪는지에 대한 느낌을 기술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어요. 수양이나 이런 것들을 쉽게 만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히 드네요.
조성환 : 김용한 선생님 말을 듣고 보니까, 한국철학의 현장을 초심자나 외국인들에게 연역적이 아니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고민이 생기네요. 광화문도 하나의 현장이 될 수 있을 것 같고, 이런 살아있는 것에서부터 얘기를 해줘야 할 것 같아요.
김용한 : 예를 들면 이런 식이죠. 내가 아이폰을 쓰고 싶은데, 그래서 어떻게 쓰는지 알고 싶은데, 코딩하는 법부터 가르치는 느낌.
조성환 : 『“ 맹자』 만 번 읽어 와라!” 이런 얘기네요. 그런 식으로 유교를 배우다가 이런 책이 나오니까 얼마나 느낌이 다르겠어요. 이런 게 실학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김용한 : 그런데 그 친구는 저에 대한 대단한 관심이었고 기대였어요.
황상희 : 호의였던 거죠.
조성환 : 때로는 내버려두거나 지켜보는 게 호의죠. 유교는 ‘오륜’이라고 해서 인간관계를 제일 중시하는데, 너무 긴밀해지면 오히려 간섭이나 구속이 되는 것 같아요.
이원진 : 그것도 역시 기의 오륜이 있고 리의 오륜이 있어서, 기의 오륜으로 보면 끈적끈적한데, 저는 리의 오륜은 되게 좋아하거든요. 예를 들어 제가 가족을 이루지 않아도 가족으로 인해서 살고 있는 거잖아요. 가족으로 인해 내가 태어났고. 그런 걸 리의 오륜으로 생각해도 되는데, 너무 기(氣)적인 것으로만 생각했기 때문에 지금 유교를 배척 대상으로 만 본다고 생각하거든요. 당장『 성학십도』만 봐도 계속해서 ‘오륜’이 나오니까 사람들이 답답해하더라고요. 이런 걸 어떻게 아직도 읽느냐면서. 사실은 철저하게 오행의 질서와 오륜의 질서가, 그러니까 자연세계의 질서와 인간세계의 질서가 완전하게 합일 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오륜을 꺼내는 건데, 그건 리적인 오륜이거든요, 제가 보기에는.
그런데 그 오륜이 현대사회에서는 계속 기(氣)로만 얘기가 돼서 효도해야 하고, 윗사람 존경해야 하고, 나이 하나라도 많으면 존댓말 써야 하고, 이렇게 바뀌어버렸잖아요. 또 하나 재미있었던 부분은, 한국인들은 리기의 스위치 조절이 굉장히 능하다, 리적 상황일 때는 엄숙하다가도 기적 상황일 때는 확 놔버린다는 지적이었어요.
황상희 : 저도요! 텐씨도 공감하나요?
텐 웨니아민 : 네. 분명히 있어요. ‘눈치!’ (모두 웃음)
황상희 : 엄숙한 분위기에서도 누구 하나가 빵 터뜨리면 분위기가 싹 바뀌고.
성민교 : 맞아요. ‘분위기.’
텐 웨니아민 : 일본도 분위기 파악 못한다는 말이 있긴 한데….
황상희 : 이 외에도 한국의 역동성이 왜 가능한가? 한류가 왜 가능했는가? 철(鐵)의 문화 속에서 조선이 문(文)의 문화였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었어요. 지금 문화끼리 싸운다면 철의 문화보다 문의 문화가 훨씬 승산이 있다, 이런 식으로 쓰셨는데, 이 부분도 참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이원진 : 더 나아가서 “디지털 시대는 한국의 ‘문’이 확산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다”라고 쓰셨는데, 실제로 디지털 시대에서는 한순간에 전파될 수 있잖아요. 디지털에 강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설명이 되더라고요.
황상희 : 맞아요. 와 닿더라고요. 여태까지는 왜일까? 한국 문화가 왜 이렇게 잘 스며들까? 라는 생각을 했는데. 그리고 사회적인 역동성도 굉장히 와 닿았어요. 일본 사회는 나이든 사회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한국 사회는 그렇지 않고, 다들 뭔가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 그런데 또 그런 걸 욕하잖아요. 한국에서는 누가 뭐 하나 좋다고 하면 다 몰려간다는 식으로. 그런데 실은 그게 욕먹을 일이 아니라는 거죠. 굉장히 역동적이고, 변화 가능하고. 우리가 문화적인 것에서 뭘 드러내줘야 할지 생각할 때, 이런 시선들을 보고 역동성을 더 드러낸다든지 해줘야 할 것 같아요.
조성환 : 김대중 정부 때 한국의 이미지를 ‘다이나믹 코리아’로 잡았잖아요. 그런데 왜 ‘다이나믹’한지는 모르고 있었죠.
황상희 : 그때 오구라 선생님의 책이 나왔어야 했는데.(웃음) 그리고 오구라 선생님이 사실 일본 사회에서도 큰 역할을 하셨어요. 일본 사회에서는 반한, 혐한 책이 너무 많잖아요. 그 상황에서 ‘오해하지 마라’라는 제대로 된 시각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한국보다는 일본에서 굉장히 큰 역할을 하셨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한국에는 이러이러한 것도 있는데 왜 그런 건 안 보고 이렇게만 적었냐”고 비판을 하는데, 제가 봤을때 그건 너무 잘못 짚은 거예요. 이 분의 역할이 있는 건데 그 역할을 안 봐주고, “왜 이것도 있는데 이것만 말해?”라고 하는 건 더 이상 말하지 말자는 거예요.
조성환 : 지금의 학문은 너무 한쪽으로 극단화되고 있어요. 문과와 이과, 동양철학과 서양철학, 철학과 종교, 이런 식으로. 그래서 한국에 대해서도 반쪽짜리 분석만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요즘은 문이과를 통합한다는 얘기도 있던데 제가 봤을 때는 두 개 ‘학’을 합쳐야 돼요. 원불교의 캐치프레이즈가 ‘도학과 과학의 병행’인데, 이 때 도학은 동양학 전통을 말해요. 수양학 같은 -. 일종의 ‘학’과 ‘학’의 회통인 셈이죠. 지금 한국의 모든 학교들은 서구 학문 틀이잖아요. 거기에 전통 학문이 조금 들어가 있는 정도이고.
황상희 : 유학도 서양학 시선에 들어가서 해석하려고 하죠.
조성환 : 그래서 양극화예요. 페미니즘도 두 개의 ‘학’이 만나야 여성의 문제가 해결될 텐데, 한쪽으로만 하려는 거죠.
텐 웨니아민 : 그래서 오구라 선생님께서 굉장히 슬프다고 하신 거 같아요. 1998년에 이 책이 처음 나왔는데, 그 이후로 한국인들에 대한 인식이 바뀐 게 없다고 -. 한국인들이 자신보다 더 깊게 한국에 대해 얘기해 줬으면 좋겠다고 수업시간에 매번 말씀하세요. 1998년 이후에도 한국인에 대한 자신의 인식은 바뀌지 않았다고.
이원진 : 책 말미에도 그런 말씀을 하셨던 것 같아요.
조성환 : 그래서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저자의 인식이 바뀌지 않을 거라고 예상했어요. 너무 확신에 차 있어 보였거든요. 그것도 리기론이라는 중국 틀로만 - . 그런데 최근에 나온『 조선사상사』에서 그 틀을 바꾼 거예요. ‘영성’이라는 새로운 코드를 도입해서.
황상희 : 저는 그것은 정말 잘 잡았다고 생각해요.『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에서는 한국인의 종교성에 대한 분석은 없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텐 웨니아야민 : 그래서 요즘 오구라 선생님은 리기론뿐만 아니라 한국의 미학에도 관심이 많으세요. 영성과 함께요. 오구라 선생님이 서울대에서 공부하실 때 내용의 80%가 중국이야기였대요. 한국 샤머니즘에 관심이 많아서 한국학을 시작하셨는데.
조성환 : 그래서 저는 기존의 한국유학 연구는 중국유학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가령 퇴계나 다산을 중국유학의 틀로만 보는 거죠. 그래서 다산이 서학자냐 유학자냐, 이런 식의 시각이 대부분이에요. 서양학이냐 중국학이냐 이런 틀로만 보는 거죠. 그런걸 융합하려는 게 한국적인 건데.
그래서 한국사상사가 안 써지는 거예요. 다산을 중국 유학자냐 서양 서학자냐, 이렇게만 보려 하지 한국사상가로는 보려고 안 하니까. 물론 다산에게는 그런 생각은 없었을 거예요. 자신이 한국사상가라는 의식은- . 문제는 자기도 모르게 한국이라는 풍토성, 지역성이 묻어 나온다는 거죠. “나는 한국사상가다”라는 인식은 희박하지만, 중국 유학을 말하는 사이사이에 한국적 특성이 드러난다는 거죠.
텐 웨니아민 : 러시아에서도 한국문화론에 관한 책들이 많은데, 역시 제일 인기는 이어령 선생이에요. 이어령 선생은 문학적인 느낌이 있어서요. 사실 한국과 중국과 일본이 어떻게 다른지 러시아 사람들은 잘 몰라요. 그런데 이어령 선생에게서는 그 매력이 잘 드러나서,『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같은 책은 정말 인기가 많아요. 한국 사회에 대한 자신만의 시각이 있기 때문에요. 다른 한국문화론 책들을 보면 에피소드를 기사 식으로 나열해요. 그래서 큰 그림이 안 보여요. 앞으로 한국인들이 어떻게 자기 문화를 접근할 것인지, 어떻게 자기 문화를 설명할 것인지가 큰 문제라고 생각해요.
조성환 : 일종의 부분과 전체의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한국이라는 전체 그림 속에서 퇴계나 다산이라는 부분을 봐야 해요. 단지 조선 유학이나 퇴계학파라는 틀로만 보려고 하면 전체 그림 안에서의 퇴계는 못 그리는 거죠. 그러면 한국철학사 안에서 퇴계가 차지하는 위치를 잡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학생들에게 전체를 보는 훈련을 시켜줘야 해요. 그래야 한국학으로서의 퇴계학이 되는 거예요. 이런 한국학 전통은 대략 80세 세대에서 끝난 것 같아요. 지금은 아무도 “한국의”나 “한국인의”라는 수식어는 못 붙이죠. “네 전공이나 잘해!” “퇴계 전공이면 퇴계나 열심히 읽어!” 이게 근대 분과 학문의 폐단이라고 봅니다.
이원진 : 지금 학계의 그런 풍토는 이기론적으로 어떻게 분석할 수 있을까요? 서구 근대의 분과 학문 체계를 우리가 왜 그렇게 잘 받아들였죠?
조성환 : 저는 일본의 영향이 크다고 봐요. 학문, 제도 모든 게 일본의 영향으로 시작했으니까. 그래서 우리는 서구 근대를 받아들인 게 아니라 일본 근대를 받아들인 거죠. 식민 지배를 당해서-. 그래서 서구 근대라는 족쇄가 더 커진 거예요. 그런데 그것은 “일본화된 서구 근대”인 거죠.
이원진 : 그런데 그 일본화된 서구 근대는, 이 책에 의하면 한국에서 굉장히 이질적인 거잖아요. 한국과 일본은 굉장히 다른데, 그 문화를 아무리 식민 지배를 당했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확고하게 받아들인 걸까요?
조성환 : 사회 시스템적으로요. 교육 제도 같은 건 일제강점기에 틀이 잡혔다고 들었어요. 학문적으로도 경성제국대학 교수들이 한국학 연구자를 양성했을 것이고, 다카시의 주리론-주기론 틀도 일제강점기 산물이잖아요. 해방 후의 교수들 중에서도 일본 유학파 출신이 많았고... 그런 자산으로 우리는 우리의 근대사를 서술한 거예요. ‘실학파’라는 범주도 일제강점기라는 극한적인 시대 상황에서 나온 조선학 담론이었듯이 -. 식민지라는 상황이 일본이라는 공간, 근대라는 틀을 벗어날 수 없게 만든 거지요. 그게 가장 컸고 아팠던 것 같아요.
황상희 : 지금도 우리는 그 공간에서 자유롭지 않죠.
조성환 : 그렇죠. 그래서 근대를 상대화해야 하는데 모든 걸 근대 중심으로 보니까 학문도 이렇게 되는 거고. 그게 싫으면 전통적인 방식으로 경학을 해야 하고. 전통식으로 하거나 서양식으로 하거나, 둘 중의 하나로 양분된 거죠. 그래서 중국 아니면 서구 틀이 지배적이 되고... 그런데 그 서구 틀도 일본이 전해준 것이었고요. 지금이야 서구와 직접 통하고 있지만요.
성민교 : 계속 학계 얘기를 해주셨는데, 말씀 들으면서 든 생각이 있어요. 분명히 이 책을 봐도 그렇고, 우리 생활을 봐도 그렇고, 리와 리가 계속해서 투쟁하는 역동적인 사회인데 왜 이렇게 학계는 고여 있을까? 그런 의문이 자꾸만 들어요. 학계는 오직 스승만이 하나의 리가 돼서, 그것과 투쟁해본 역사가 없는 것 같아요. 지금까지 한 번도 스승의 의견에 반발하는 어떤 새로운 의견이 나와서 그것을 중심으로 거대한 토론이 벌어진 적은 없잖아요. 그런 새로운 의견을 내는 사람은 오히려 아웃사이더로만 주목을 받았죠. 학계 안에서 서로 말로써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요. 그래서 스승의 의견이 계속해서 재생산될 뿐이죠.
어떻게 보면 리가 투쟁할 수 있는 공간은 민중인 것 같아요. 전통적인 유교 가치에서는 스승과 임금이 동일한 리로 이어져 있어서 스승이라는 리와 임금이라는 리를 파괴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민중을 중심으로 민주화 운동을 해가면서 임금이라는 리나 독재라는 리를 부수고 민주주의라는 리로 바꾸어 놓았잖아요. 그래서 그 민주주의라는 리 속에는 민중이 포함되어 있으니까 민중이 정치 지도자들에게 충분히 리를 가지고 투쟁할 수 있는데, 또는 민중 사이사이에서 리를 가지고 소통하고 서로 싸울 수가 있는데, 학계는 일본식 서구 근대화는 겪었지만 민주화는 아직 겪지 못한 것 같아요. 스승이라는 리가 아직 부서지지 않은 거죠. 그래서 학계가 대중들과 멀어진 걸까요? 리를 가지고 싸울 수 있는 대중들과 리를 가지고 싸울 수 없는 학계. 그냥 서로 본능적인 거부감이 드는 걸지도 몰라요.
이원진 : 얼마 전에 “서프러제트”라는 1910년대의 여성 참정권 운동을 다룬 영화가 있었잖아요. 사실 우리나라는 해방과 동시에 여성 참정권이 마치 선물과 같이 주어져서, 한국 여성계가 참정권을 위해 투쟁하면서 구축해야 할 공동체적 역량이라든지 그런 게 성숙할 여력이 없었어요. 그냥 확 들어와버린 거죠. 그래서 도저히 결집이 안 되는 거예요, 여성운동이. 그런 점에서 앞으로 가야할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선물이 꼭 선물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고 생각했는데, 근대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근대도 해방과 동시에 그냥 받았기 때문에 그걸 고민할 여력이 없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제 조성환 선생님과 연락하다 든 생각인데, 조선사회가 이미 근대 국가체제가 얘기하고자 했던 국가 개념을 공고하게 가지고 있었잖아요. 성리학적인 국가를 만든다, 유학자, 사대부들이 관료가 되는 국가를 만든다, 이런 것들이 사실은 근대화에 매우 익숙한 단어들이거든요. 그리고 왕이 절대적으로 지배한다기보다는 사대부들이 끊임없이 상소하고, 경연 제도라든지, 이런 것들이 굉장히 민주적인 느낌도 많이 나고. 그리고 왕의 언행을 일거수일투족 다 기록했다는 것도 그렇고요.
이렇게 보면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 근대를 해방 이전에 이미 단초로서 가지고 있었는데 일본화된 서구식 근대화가 덮어 씌워지면서 근대화가 이중화됐다, 분열화됐다는 생각이 들어요.
조성환 : 아니면 그 두 개의 접점이 지금 우리의 모습이 됐겠죠. 조선시대에도 적어도 관료제나 중앙집권화라는 측면에서 보면 자체적인 근대 경험을 이미 했고, 그 위에 서양식 근대가 가미되어 그나마 우리의 민주화가 빨라졌다고 생각해요. 조선시대에 왜 그런 통치시스템을 만들었을까요? 저는 왕보다는 사(士)나 민(民)을 중시하는 문화여서라고 생각해요.
이원진 : 맞아요. 저도『 성학십도』를 읽으면서 왕은 그냥 들러리라는 생각밖에 안 들었어요. (웃음)
조성환 : 조선시대도 그런 모습이었고. 그런데 기존에는 그걸 단절적으로 놓고 보니까 설명이 안 되는 부분이 있었는데, 같이 놓고 봐야 할 거 같아요. 그래서 근대에 대한 대안 담론이 필요해요. 동학도 자생적 근대를 추구하려 했던 운동으로 봐야지, 단순히 미신적인 신종교 운동이나 항일저항운동으로만 보면 그 사상사적 의미가 잘 안 드러나요. 촛불혁명도 사상적으로 설명이 잘 안 되고 있고요.
김용한 : 그러면 신라나 고려의 유교는 어땠을까요? 신라를 보면 여왕도 있잖아요. 조선이 성립되기 이전에 고려시대에는 여성의 힘이 더 셌다고 들었어요. 조선식 유학 말고 ‘여성유학’을 논할 때에 신라나 고려 시대의 유학 연구가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이원진 : 그런 방법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 것 같아요. 여성문화학사 하시는 분들, 국문학 하시는 분들이 그런 방법들을 많이 발굴하셨더라고요. 조선에도 여성유학자들이 많이 있었거든요. 강정일당님, 임윤지당님 등등. 이런 분들 이전에 소혜왕후, 즉 인수대비가 조선 초기 사람이어서, 사실 고려와 조선을 아우르고 있는 사람이거든요. 이분이 고려 말에는 불교에 빠져서, 각주를 다는 작업에 보통 여자는 참여하지 않는데 아주 깊이 개입해 있었어요. 각주와 참고문헌 대비 작업을 엄청 열심히 했고, 그걸 바탕으로 조선에 와서는 ‘내훈’이라는 여성의 규범서를 썼는데, 물론 굉장히 가부장적 질서에 기초하는 규범서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들을 위한 학문이 따로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집필했다는 이야기들이 나와 있어요.
이런 식으로 자꾸 발굴이 되고 있긴 한데, 아직까지는 인물 중심이고, 사상적으로는 없는 것 같아요. 그런 점들이 저도 아쉬워요. 조선은 그나마 많이 부각이 됐고, 고려나 신라는 여왕 중심으로만 -. 더 위로 올라가면 평강공주 같은 정도.
조성환 : 이 틀로 봐서 왜 현대에 ‘여성유학’이 필요하냐고 묻는다면, 여왕 중심이 아니라 일반 시민들 차원에서 이제 여성들도 리를 갖게 됐잖아요. 각계 각층에서. 그런 점에서 여성유학이 필요하다는 거죠. 여성이 유학의 반은 담당하는 시대인거죠. 그래서 유학의 판을 새로 짜야 해요.
이원진 : 김열규 선생님이 여성의 한에 대한 책을 쓰셨더라고요.『 한국 여성, 그들은 누구인가?』라는 책인데, 조선 민담부터 시작해서 실화까지 엮어서 여성의 한에 관한 이런 표현, 저런 표현 -. 옛날에 조선일보 칼럼니스트였던 이규태, 김열규, 이어령 이런 분들은 주로 문화사적 측면에서.
조성환 : 그게 마지막 세대였다는 거죠. 지금도 하시는 분이 없지는 않겠지만 세대 간의 공통 문제의식은 아닌 것 같아요.
이원진 : 그게 너무 민족주의적으로 느껴져서 더 그런 것 같아요.
조성환 : 그렇죠. 하지만 그나마 그게 있어서 ‘한국’ 전체를 대상으로 연구를 했던 거예요. 민족 개념이라도 있어서 -. 그런데 그 뒤로는 이른바 세계화나 보편화의 흐름으로 나아갔는데, 그러면 또 정체성 문제가 생겨요. 그리고 보편적인 틀로는 한국을 다 알 수가 없잖아요. 이게 지금 문제라는 거죠. 민족에 거리를 두면서 한반도라는 지역을 아우를 수 있는 한국학을 하는 것이 -. 그게 제일 큰 과제라고 생각해요.
황상희 : 『조선왕조실록』이라든지『 승정원일기』, 이런 것들이 번역된 지가 얼마 안 됐잖아요. 그 수많은 문헌들을 다 번역하려면 지금부터 100년은 더 있어야 한다고 하네요. 그정도로 우리가 척박한 환경에서 한국학을 하고 있는 셈이죠.
이원진 : 그게 저는 이해가 안 가요. 왜『 조선왕조실록』의 번역이 제대로 안 되고 있는지가 -. 아니 왜 번역을 등한시할까요? 우리 학계에서는.
조성환 : 영역(英譯)은 하고 있잖아요.
이원진 : 『 조선왕조실록』을요?
조성환 : 네, 영역 중이라는 기사가 몇 년 전에 크게 났어요. 그리고 한글 번역은 북한이 빨랐대요. 그리고 순 한글 번역이래요. 우리 번역은 전문 용어가 섞여 있어서 읽기가 좀 어렵고, 아직 번역어 통일도 안 돼 있는데다 용어 설명 같은 주석도 부족해요. 그래서 재번역이 나와야 하는데... 그런 상황에서 영어 번역한다는 기사를 보니까 좀 그렇더라고요.
이게 한국학의 현주소예요. 아마 영어 번역한 것을 한글로 다시 번역하면 지금 번역본보다 읽기가 더 쉬워질지 몰라요.
김용한 : 얼마 전에 “고려사의 재발견”이라는 팟캐스트를 들었는데『 삼국사기』 서문에서 김부식이 똑같은 말을 하는 거예요. 우리나라는 학문이 없고, 다 외국 것만 가지고 와서 한다고. 그 얘기를 들으면서 조성환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거랑 굉장히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조성환 : 최근에 세종을 연구하시는 박창희 교수님을 만난 뒤로 제가 얻은 통찰은, 이 책은 한국사회를 ‘이기’로 분석했는데, ‘주체’와 ‘사대’의 틀로도 분석할 수 있겠구나라는 것이었어요. 가령 조선시대에 거의 모든 지식인들이 문화적으로 사대주의자들이었죠. 비굴하다는 의미가 아니고 말 그대로 “큰 것을 섬긴다”는 의미의 사대(事大)요. 그런데 세종은 우리 문자를 만들어야한다는 입장이었는데 그게 주체거든요. 그래서 결국 주체와 사대의 싸움이 되는 거죠. 최만리로 대표되는 당시 유학자들과 세종의 싸움은 - . 동학 역시 마찬가지예요. 한국적인 색깔을 드러내니까 당시 기득권 유학자들의 탄압을 받았죠.
한국사상사는 대개 이런 싸움이었던 것 같아요. 물론 대부분 사대(事大)가 장악하고 있었지만요. 극단적으로 일제강점기나 이런 시기를 제외하고는 주체가 힘을 얻은 적이 거의 없죠. 지금도 그렇고. 그런데 박창희 교수님에게 얻은 힌트는 사대(事大)가 계급 이익과도 관련이 있다는 거죠. 한글을 반대하는 성리학자들에게 의식적으로는 사대주의도 있었지만 유학자라는 계급적인 이익도 확보하려 했다는 거예요. 그걸 비판하시더군요. 자신들의 계급적인 이기주의 때문에 반대하였다고 -. 하긴 지금 정치를 봐도 크게 다른 것 같지는 않아요.
이원진 : 그래서 저는 아까 그것을 ‘퇴로’라고 말했는데, 예를 들어 책에 마광수 교수 이야기가 나왔잖아요. 교수직을 걸고 하는 거였죠. 그런데 지금은 그런 사람이 없잖아요. 교수직을 박차고 나가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아요. 그런 걸 과감히 버릴 수 있는 사람이 점점 없어지고 있어요.
황상희 : 그런데 배우고 있는 우리 역시 제도권 안에서만 배우다 보니까 제도권 밖에서 배우는 게 굉장히 겁이 나죠.
조성환 : 그런데 이건『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의 추천사를 써 주신 박맹수 교수님에게 살짝 들은 얘긴데, 오구라 교수님이 서울대에서 유학하실 때 뭔가 허전함을 느껴서 바깥으로 나가기 시작하셨대요. 그때 김지하, 김용옥, 이어령 이런 분들을 만난 거예요. 거기서 많은 통찰을 얻으셨던 거 같아요. 최제우나 공자도 다 밖으로 나돌았잖아요.
황상희 : 한국 사회에서는 그렇게 살 수가 없어요.
조성환 : 일본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예요.
황상희 : 그래요? 일본은 학문하기에 관용적인 분위기라고 생각했는데.
조성환 : 그건 맞는데, 요새 혐한 분위기가 심하다고 해서요. 최근에 최진석 교수님이 일본어로 된 서평을 하나 보내 주셨는데, 일본의 유명한 경제신문에 실린 오구라 교수님의『 조선사상전사』 서평이었어요. 일본인 교수님이 쓰신 건데, 내용이 하나도 없었어요. 읽고 썼나 싶을 정도로.
그만큼 한국사상에 대한 인식 수준이 낮은 거죠. 아니면 적극적으로 쓸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닌지도 모르고요. 그래서 저는 한국학 포럼을 하고 싶어요. “청년한국학.” 이정도 규모로 한 달에 한 번씩 대화를 하는 거죠. 그런데 이렇게 자유롭게 얘기하니까 발언 수위만 세지는 것 같네요.(웃음)
이원진 : 그게 선비인 거예요. (웃음)
황상희 : 권력을 갖지 않았으니까.
[개벽신문 제73호, 2018년 4월호]
조성환 : 아까 마광수 교수님 얘기도 나왔지만, 생산적인 담론을 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중국은 지금 시진핑이 ‘신실학(神實學)’을 표방하고 있다고 합니다. 인문과 자연을 융복합해서 4차 산업혁명을 이끌어간다는 논의 같은데. 이렇게 국가의 리더가 나서서 ‘학’을 내거는 게 중국의 학문 전통이에요. 그런 점에서 보면 우리에게는 비전으로 내세울 만한 ‘학’이 없는 셈이죠. 서양철학이 우리의 ‘학’이 될 수는 없잖아요? 그렇다고 이제 와서 유교나 불교를 들고 나올 수도 없고…. 한국을 대표할 수 있는 학이 무엇이냐를 고민해야 해요.
이원진 : 맞아요. 지도층이 ‘학’이 없어요. 그게 문제예요.
조성환 : 우리에게 선비가 없는 이유도 그거예요.
이원진 : 관료들도 ‘학’이 없잖아요.
조성환 : 주자학은 관료철학이에요. 공무원철학. 그런데 지금은 공무원에게 맞는 철학이 없잖아요. 행정 논리나 서비스 개념이 대부분이지. 기업은 경제논리, 정치는 권력논리. 그러니까 ‘학’이 없는 거예요.
이원진 : 그래서 주자가 <백록동서원>으로 타락한 관료들을 모아다가, “다시 원점으로, 초심으로 돌아가자!” 이런 걸 얘기했다고 하던데, 지금의 공무원 교육원이나 공무원 연수원에서는 그런 호소력 있는 얘기는 나오기 힘든 것 같아요. 이렇다 할 ‘학’이 없으니까 원론적인 얘기나 규범적인 얘기가 대부분인 것 같아요.
조성환 : 교육의 콘텐츠 자체가 임팩트가 적은 거죠. 우리 학교 다닐 때 윤리 수업 듣는 기분일 거예요. 주자학은 일종의 공무원철학 콘텐츠를 제공한 셈이죠. 지금은 뭐라도 좋으니까 우리에게 의미 있는 ‘학’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걸 못하고 있는 거죠. 학자들은 외국의 이론 소개나 이해에 분주하고 있으니까...
이원진 : 사실은 ‘학’이라는 정당성을 가지고 싸워야 하는 건데.
조성환 : 그렇죠. “넌 유학이야? 난 동학이야!” 이런 식으로 싸워야죠.
이원진 : 통치체계를 유학으로 할 것이냐 동학으로 할 것이냐, 이걸 얘기해야 하는데.
김용한 : 요즘에 “정부 3.0” 이런 슬로건이 있잖아요. 그것도 아마 본뜻은 쌍방향적이고 상호작용적인 제도를 만들자는, 그것도 시민들이 주체적으로 제도를 만들어가자는 취지에서 나온 것 같은데, 문제는 방금 지적하셨듯이 그 안의 내용이 견실하게 차 있지 않아서….
조성환 : 사상의 빈곤이죠. 결국 우리의 근대화 문제로 돌아가면, “잘 살아보세!”라고 했을 때 ‘잘 산다’는 것은 플라톤 이후의 철학의 중심 주제잖아요. 그런데 플라톤에서는 ‘영혼의 돌봄’을 이야기한다고 들었어요. 우리의 근대에는 그게 없었던 거죠. 그래서 사상이 없었고…. 단지 경제적으로만 잘 살면 잘 사는 거라고 생각했죠.
김용한 : 저는 고등학생 때 제 또래 청소년들과 함께 성경을 읽는 게 너무 재미있어서요. 같이 성경을 읽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정말 열심히 읽었어요. 그런데 이제 교회에서는 그런 문화가 사라졌어요. 청소년부에서 아무리 지도를 해도 그런 문화가 나오기 힘들어요.
그런데 작년에 시작한 ‘청년포럼’에서는 그런 식으로 대화하고 있잖아요. 그곳에서 저는 우리가 이론을 가지고 싸우는 게 아니라, 서로영 ‘ 적 돌봄’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어요. 그래서 정말 신기했고, 이 모임은 오래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이 ‘영적 돌봄’이라는 게 다시 제도권으로 들어가면 분명 없어질 거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이 모임이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가 궁금해져요.
조성환 : 과거에 유교, 불교, 도교로 나라를 다스렸다고 할 때에는 국가가 영적 돌봄을 해준 거예요. 그런데 시민사회에서는 이제 너희가 알아서 하라는 거죠. 그래서 힘들어지는 거죠. 개인적으로 교회를 다니든지 명상센터를 가든지 알아서 처리해야 하니까. 그래서 이 문제가 철학의 주제가 되어야 해요. 우리의 ‘잘 살아보세’에서는 영적 돌봄이 무시되었어요.
이원진 : 그게 어쩌면 한국의 자살률이 높은 제일 큰 이유일지 몰라요.
조성환 : 그렇죠. 그러니까 딴지를 걸면 “너희가 굶어 봤어?” “전쟁해 봤어?” 이러는 거죠. 답을 못하게 만드는 거예요. 우리가 무슨 돼지도 아니고.
이원진 : 소크라테스죠. 행복한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
조성환 : 우리를 세속화시킨 거예요. 우리의 근대화와 산업화가.
성민교 : 정말 우리가 싸워야 할 건 근대화가 맞는 것 같아요.
이원진 : 거기에 비하면 조선시대의 성학(聖學)은 정말 영혼 돌봄이었어요.
조성환 : 그러니까 수양학이죠.
황상희 : 맞아요. 정확히 영혼 돌봄이에요.
이원진 : 반면에 심리학이 이렇게 각광받는 시대에, 심리학이 영혼 돌봄을 하고 있느냐, 라고 묻는다면 그렇지 못하거든요.
조성환 : ‘영성’ 대신 ‘영혼’이라고 하니까 서양철학과도 소통이 되네요.
이원진 : 영혼은 현대심리학까지 다 커버가 돼요.
조성환 : 반면에 지금의 학문은 자기만 돌보고 자기 분야만 돌보는 것 같아요. 정반대의 의미에서의 “위기지학(爲己之學)”이죠.(웃음)
이원진 : 맞아요. 자기 분야만 돌보느라 완전히 소진됐죠.
조성환 : 그래서 거시적인 틀이 안 나오는 것 같아요.
이원진 : 저는 이 책에서 정확히 봤다고 보는데, 한글이 오행의 원리에 입각해서 나온 거잖아요. 우리는 지금 오행(五行) 하면 굉장히 먼 얘기같이 느껴지고 뉴턴의 자연과학으로 머릿속이 도배질되었지만, 우리가 쓰고 있는 언어가 오행의 원리에 입각한 글자니까, 그런 거시적인 시각을 회복하는 게 불가능하지만은 않다고 생각해요.
조성환 : 오행 얘기를 들으니까 생각나는데, 영문학을 하시는 백낙청 교수님이 동양적 세계관에도 조예가 깊으신데, 한번은 여성학자와 이야기하는데 남녀 문제를 음양론적으로 해석했다가 엄청 비판받으신 적이 있대요.(웃음)
황상희 : 그런 얘기를 꺼내면 ‘억음존양(抑陰尊陽),’ 이런 것부터 생각나니까요.
조성환 : 그런데 그런 이미지에는 서구 근대적인 틀도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유교하면 무조건 여성억압적인 반봉건사상이라고 하는 무비판적인 선입관 같은. 그래서 다시 근대와의 싸움으로 돌아가요.
성민교 : 아까 말씀하셨듯이 굉장히 인위적이고 타의적으로 근대화가 되는 과정에서, 근대를 외부에서 들어온 선물처럼 당연하게 받아들이다 보니까 우리의 생각의 근육들이 단단해지지 않았던 것 같아요.
조성환 : 그렇죠. 그 근대를 식민지 지배를 통해서 비극적으로 경험했다는 것이 최악이었던 것 같아요. 그 뒤로는 ‘우리가 근대화에만 뒤지지 않았어도 이렇게 식민 지배를 안당했을 텐데….’라는 일종의 ‘근대화의 한’이 맺힌 거죠. 그래서 영혼은 내 팽개치고 근대화에만 몰두하고…. 그 과정에서 영혼은 피폐해지고. 지금의 자살률 1위를 영혼의 돌봄의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요. 다 사회과학적으로만 분석하려 들죠.
이원진 : 저출산 문제도 마찬가지죠. 영혼의 돌봄은 ‘epimeleia(돌봄) heautou(자신)’라고 하는데, 푸코 이후로는 다시 활성화되고 있어요. 그 전에는 아무도 소크라테스를 영혼의 돌봄으로 해석하지는 않았어요. 심지어 ‘너 자신을 알라’도 영혼의 돌봄이에요. 오늘날의 ‘돌봄’의 의미가 굉장히 강하거든요. 특히 여성이 돌봄의 주체라는 의미에서 ‘caregiver’라고 말을 하는데 저는 이것도 아주 싫거든요. 여성이 돌봄의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현대 사회의 주역이 될 것이다, 이런 논리가 싫어요. 여전히 여자한테만 돌보라는 거냐 하는 생각도 들고요. 저는 제가 아이를 키우면서 돌봄의 주체로서 전혀 적합하지 않다는 걸 항상 느끼니까요.(웃음)
그런데 영혼의 돌봄을 얘기하게 되면 저는 그 돌봄이 갖고 있는 여성성의 이미지를 탈피할 수 있다는 거죠. 영혼은 누구나 갖고 있는거니까.
성민교 : 맞아요.
이원진 : 저는 그래서 이 책에서 말한 도덕지향이라는 게 영혼 돌봄 같아요. 상승의 철학이라는 게. 플라톤이『 향연』에서 정확하게 상승 구도로 설명하거든요. 에로스는 상승에의 열망이다라고.
조성환 : 그래서 저는 ‘리기’보다는 ‘하늘’이 더 근원적인 개념이라고 생각해요. 하늘을 향해 상승하려는 거니까요. 하늘은 영성을 상징해요.
이원진 : 그게 재밌었어요. 도덕지향적이라는 것과 도덕적이라는 것을 분리한 것. 도덕지향적이라고 해서 반드시 도덕적인 것은 아니다. 또 일본이 도덕지향적이 아니라고 해서 도덕적이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게 어떻게 보면 사실과 선호를 구별한 건데. 저는 그동안 한중일의 도식론이 거북했던 건 한국은 이래, 중국은 이래, 일본은 이래 이런 식으로 사실적으로 말하려고 한다는 거였거든요. 그렇지 않을 때도 있는데.
그런데 이 책은 선호도를 이야기하니까. 선호는 얼마든지 다를 수 있는 거고, 바뀔 수도 있는 거고. 그런점에서 ‘지향’을 얘기한 게 참 재미있더라고요. 왜냐하면 An 검사도 도덕지향적이거든요. 그러니까 교회에 가서 회개를 한 거잖아요. 그렇지 않으면 왜 그 사람이 회개를 하고싶었겠어요.
조성환 : 저는 노장의 유교 비판은 바로 그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유교는 사회 시스템을 도덕지향적으로 설정하려 하는데 그렇게 되면 사회는 도덕적이 될 수 없다는 게 노장의 비판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성인 비판이 나오는 거거든요. “성인을 끊고 지혜를 버려라!” “성인이 생기고 나서 불효가 생겼다!” 이런 말들이 왜 나오냐 하면 성인은 도덕지향의 상징인데 그렇게 교육이나 시스템을 규범적으로 설정하면 오히려 그 도덕지향이 달성되기가 어렵다는 거죠.
김용한 : 아까 ‘epimeleia heautou’ 말씀하셨는데, ‘나(autou)’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계속 생각할 때, ‘영혼’이라고 하면 너무 실체 같잖아요. ‘autou=myself’가 뭐냐고 물으면 굉장히 답하기 어렵고 실체로 설명이 안 되거든요. 그래서 방금『 노자』 얘기 듣고 든 생각인데, 영어의 ‘self’가 영혼의 ‘실체’가 아니라 ‘되어 가는’ 무엇이라면, ‘heautou’를 노자식으로 해석하면 좋을 것 같아요.
이원진 : 푸코가 그 얘기를 하더라고요,『 주체의 해석학』에서. ‘epimeleia heautou’가 왜 그렇게 잊혀지고 ‘Gnothi seauton’이라는 소크라테스의 명령만 유행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자기 인식을 하라, 너 자신을 알라는 건 너무 어렵다는 거예요. 너 자신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리스도교 이후의 천년의 역사는 줄기차게 자기인식, 인식주체로서의 중요성만을 강조했다면, 그 이전에는 수양주체, 계속해서 매일같이 변천하는 살아 숨 쉬는 나라는 존재가 강조되었고, 그리스도교 이후의 천년은 영지주의적인 인식론의 팽배로 인해서 이 전통이 완전히 잊혀졌다는 거예요. 푸코 자신이 하려는 건 고대 그리스의 이 ‘자기 돌봄’의 공동체적이고 실천적인 전통의 복구이고, 그래서 푸코 후기철학이 다 그렇게 가는 거거든요. 저는 거기에서 동양의 수양학적 느낌을 많이 발견해서, 왜 푸코가 동양 얘기는 안 했지, 라는 의문이 들었어요.
김용한 : 그러면 다산이 하려 했다는 고대 유학으로의 회귀도 지금 말씀하셨던 푸코가 하려던 작업과 비슷하다고 함부로 봐도 괜찮을까요?
이원진 : 저는 그렇게 함부로 보고 싶은데 우리 학계는 함부로 보는 걸 못하게 막는다니까요.(웃음) 네가 어쩌자고 그렇게 함부로 보느냐면서….
조성환 : 문제는 무엇이 다산으로 하여금 고대 유학으로 돌아가게 했느냐, 라는 점이라 생각해요. 저는 한국적 영성이 그렇게 했다고 생각해요.
김용한 : 고대 하은주 시대 이상의 복권이 아니라….
조성환 : 적어도 사상적으로는요. 그런 점에서는 최제우가 했던 작업과 비슷해요. 최제우도 약해진 영혼 돌봄을 강화하려고 했거든요. 단지 아이덴티티가 유학자냐 동학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요.
김용한 : 제가 요새 정말 궁금한 게 있었는데요. 푸코하면 ‘지식의 고고학’ 이런 걸 하잖아요. 아까 얘기 나왔던『 조선왕조실록』처럼 한국에도 문헌들이 엄청 많은데, 단층들도 있을 거고 퇴적된 것들이 있을 텐데, 한국학을 할 때 지식의 고고학을 하듯이, 기존에 학계에서 만들어 놓은 차례대로 인용을 하는 게 아니라, 지구과학을 수행하듯이 문헌들의 퇴적층에 깊이 들어있던 것들이 발굴되어서 복권해 낼 수 있는 건가요?
이원진 : 저는 그러면 너무 좋겠다고 생각해요. 저희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요. 저는 요새 굉장히 관심을 갖고 있는 게 페미니즘인데, 사실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도 개인적 경험에서 촉발된 거예요. 회사에서 엄청난 불이익을 대놓고 받은 적이 있어요. “나는 너가 여자여서 싫어!” 이렇게요. 마치 서지현 검사가 “나는 여검사가 싫다. 여검사는 남자 검사의 50%밖에 일을 못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말을 임관한 지 이틀 만에 들었다고 하잖아요. 저도 직장에서 “나는 너가 여자라서 싫다. 너는 싱글도 아니고 가장도 아니기 때문에 너가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너는 실제로도 그 정도밖에 안 된다.” 이런 식의 폭력을 당하고 나서, 거기서부터 문제의식이 올라오기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뤼스 이리가라이’라는 사람을 알게 됐어요. 그분의 철학 박사논문이『 스펙큘럼(Speculum)』인데, 소크라테스부터 라깡까지를 완전히 재해석하는 거예요.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를 자궁의 역사로 해석하는 식으로요. 거울은 일직선인데, 오목거울은 다층적으로 반사되잖아요. 여태까지 서구의 철학사는 일직선을 기술한 거였다, 나는 서구철학사가 그동안 놓쳐왔던 시각을 복구해서 다층적으로 기술하겠다, 이런 식의 서술인데 저는 그걸 보고 굉장히 충격을 받았어요. 우리가 해보자는 게 한국철학사를 그런 식으로 다시 써보자는 말씀이잖아요.
조성환 : 그렇죠. 한국사상사를 다시 써 보자는 거죠. 적어도 과거 세대들은 그런 시도를 했던 거 같아요. 완성도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차원에서.
김용한 : 푸코를 읽어 보면 이 인용을 어디서 다 찾아 왔고 어떻게 다 읽어 봤나 놀랍거든요. 저 같은 경우에는 허사 사전만 봐도 질리는데, 그런 것들을 의무감으로 하는 게 아니라 재미를 찾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이원진 : 저는 이 책에서 재밌었던 게 인용이 거의 없잖아요. 다 우리의 일상 언어를 사용해서 썼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철학적이라고 생각해요.
황상희 : 맞아요.
이원진 : 우리도 이렇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 거대 담론이나 고전을 인용하지 않고. 각주 달고 이런 것들에서 벗어나야 해요.
조성환 : 맞아요. 요즘 인문학 흐름은 그렇게 가고 있어요.
이원진 : 학계에서는 무조건 선행연구가 없으면 아웃. (웃음)
성민교 : 아까 말했던 대로 리의 싸움이 없는 최후의 보루가 학계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학계에도 그런 투쟁의 틀을 넣어 보면 어떨까 싶어요.
조성환 : 일본의 이슬람 연구자인 이타가키 유조 교수님은 ‘7세기부터의 근대화론’이라는 독특한 학설을 50년째 이야기하고 있어요. 그 정도는 생각하셔야 합니다.( 웃음)
성민교 : 내 인생을 투신하겠다는. (웃음)
조성환 : 그래야 바뀔까 말까 하지, 그렇지 않으면 힘듭니다. 그래서 혼자 하면 버거우니까 연대를 해서 운동으로 가야 하고, 사회에 담론을 계속 내고 목소리를 내야 2, 30년 후에 동조자가 생길지 몰라요.
이원진 : 선비를 표방해야 해요. 권력도 없고 부도 없는. (웃음)
조성환 : 두 개를 다 하는 거죠. 그게 가장 효과적이라고 봐요.
성민교 : 진짜 좋은 것 같아요.
이원진 : 저는 사실 박사학위 받고서 제가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는 걸 깨닫고 나서 10년을 생각했거든요. 다시 돌아가서 10년을 다시 공부해야겠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지금 2, 30년을 얘기하시네요. (웃음)
조성환 : 동학의 두 번째 리더였던 해월 최시형이 38년을 도망 다니며 포교했잖아요. 그정도 각오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윗세대들이 아무리 좋은 뜻을 가지고 있어도 왜 실패를 반복했는지, 저는 자기중심성에 원인이 있다고 생각해요. 자기가 꼭 중심이 돼야해요. 내가 이 전공이면 그 전공이 중심이 돼야 하고, 자기 학교가 중심이 돼야 하고, 자기 견해가 중심이 돼야 하고 등등. 근대가 준 가장 큰 폐단이라고 생각해요. 자기중심성을 극복할 수 있는 영성이 약화된 것이…. 나는 선배 학자들한테서 그걸 봐요. 너무 근대화된 모습을. ‘자기’라는 틀을 못 벗어나고 있다고 생각해요. 민족주의요? 민족이라도 내걸면 자기를 벗어날 수 있어요. 적어도 5천만은 생각하니까. 그런데 민족주의를 비판하는 사람도 결국 자기도 못 벗어나는 것 같아요. 그 자기중심주의가 무언가를 도모하고 운동할 때 일을 그르치게 되죠.
이원진 : 그래서 저는 자꾸『 논어』에서 말하는 ‘위기지학’이 생각이 나는데, ‘위기지학’이 ‘자기를 못 벗어나는 학문’이라는 말은 아니잖아요. ‘자기 영혼의 돌봄을 하는 학문’이라는 말이지. 그게 지금은 너무 약화되었어요. 이 책에서 왜 그렇게 한국은 리가 강하고 상승지향이 강하냐고 했을 때, 지정학적으로 위기의식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분석을 했잖아요. 제가 얼마 전에 만난 한 청년 교육활동가 중에 ‘프로젝트 위기’라는 자기 회사를 차린 친구가 있어요. 그래서 저는 당연히 ‘한국교육이 위기다’라고 할 때의 그 ‘위기’인줄 알았더니 ‘나를 위한다’는 뜻의 ‘위기지학’의 ‘위기’라고 하더라고요. 우리나라 교육은 다 ‘위인지학(爲人之學)’이라는 거예요. ‘위기지학’의 교육이 하나도 없다, 그래서 그 전통을 다시 살리겠다, 라면서 퇴계 이야기를 막 하더라고요. 서강대 학생이었어요.
성민교 : 리기론으로 보면 완벽하게 리에 투신해야만 존경을 받는 것 같아요. 그래서 사람을 구할 때도 보면 다른 사람을 많이 살리고 나도 살아남은 사람은 큰 이슈가 되지 않죠. 그런데 사고가 나서 다른 생명을 구할 때 매뉴얼에서 가장 중요한 건 자기가 먼저 산소마스크를 쓰고, 자기가 먼저 몸을 구해야 다른 사람을 더 많이 구하고 나도 구할 수 있는 거거든요. 우리는 꼭 누군가가 자신의 몸을, ‘기’를 완벽하게 리에 투신해야만 한다고 가르치는데 저는 정말 ‘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일단 나부터 돌봐야 주위도 돌볼 수 있다. 물론 저는 다른 생명을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투신하는 건 리에 대한 투신이 아니라 생명에 대한 투신이자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성스럽고 신적인 행위라고 봐요. 가르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영혼의 돌봄이 있어야만 나올 수 있는 투신이죠. 또 특히나 지금 우리 젊은이들은 리가 무엇인지 기가 무엇인지 그런 철학적 용어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을 거예요. 우리가 한국학을 계속 하고 우리 철학을 찾으려면, 결국 나라는 것, 나의 존재라는 건 리와 기가 합쳐져서 생겨난 보편적이면서도 특별한 존재이잖아요. 리도 기도 아닌 ‘나’를 위해서 사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들었고 그래서 영혼의 돌봄 이야기가 정말 반갑고 좋아요. 모든 이들에게 반가운 개념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조성환 : 아까 푸코도 말했다고 하지만, 19세기까지 철학은 영혼의 돌봄이 주제였는데 근대에 서양철학이 들어오면서 인식주체만 강조되다 보니까 자기 돌봄의 철학이 약화된 거예요. 그래서 동양철학이 죽어 버렸고…. 이걸 어떻게 복권할 것인가, 그게 지금 우리의 고민인 거죠.
이원진 : 지금은 사실 동양철학에서도 “네가 인식주체인데 선행 연구에 대한 인식이 왜 이렇게 없냐!”고 타박 받아요. (웃음)
황상희 : 자기를 인식해서 얘기했다고 하면 절대 안 통해요.
이원진 : 옛 문헌을 인식해야지 왜 너를 인식해! (웃음)
조성환 : 양명학이 주자학을 ‘축물(逐物)’이라고 비판한 게 그런 맥락이라고 생각해요. 양명이 주자학의 ‘격물치지’를 외물을 쫓는 거라고 비판하잖아요. ‘학’은 원래 영혼을 돌봐야 하는데 왜 격물치지를 인식론적으로 왜곡해서 해석을 하느냐는 거죠. 바로 여기에서 새로운 ‘학’이 탄생해요, 양명학이라고 하는. 동아시아는 이랬던 것 같아요. 동학도 그랬고.
성민교 : 제가 이제 학부를 졸업하는데요. 대학원을 가려고 줄곧 생각을 해 왔는데 막상가려고 하니까 가기 싫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조성환 선생님 만나서 말씀을 드렸어요. 나는 그냥 내 철학이 하고 싶고 내가 연구하고자 하는 대상을 동양에서든 서양에서든 여기저기서 가져오고 싶은데, 왜 입학하면서부터 동양철학 전공과 서양철학 전공을 나눠야 하고, 한 철학자를 전공한 지도교수를 또 정해야 하고, 그런 것들이 참 어려운데 어떡하느냐고-, 그랬더니 “그냥 가서 네가 하고 싶은 거 해. 아무 전공이나 선택해서 하고싶은 거 다 하면 돼.” 이렇게 말씀해주시는 거예요.
조성환 : 동서 가리지 말고 다 하라고 그랬지. (모두 웃음)
이원진 : 지식의 고고학을 하듯이.
성민교 : 아, 맞아요. 다 하라고 하셨어요. (웃음)
조성환 : 제도적인 점을 감안해서 하나를 정하되, 그 배경과 콘텍스트를 혼자서 다 하라는 뜻이었어요. 가령 퇴계를 한다고 하면 한국학이라는 문맥에서의 퇴계학을 하라는 거죠. 우리 철학계의 문제가, 저를 포함해서, 가령 “칸트의 도덕론, 주자의 도덕론을 얘기해 보세요”라고 하면 말을 다 잘 해요. 그런데 정작 “도덕이 뭐예요?”라고 물어보면 말문이 막혀요. 그런 식으로밖에 훈련을 못 받아서 그래요. “누구 누구의 무슨 무슨 론” 이런 식으로만. 원래는 “나는 도덕에 대해서 알고 싶어, 그래서 칸트의 도덕론을 연구할래.” 이렇게 가야 하는데, 반대로 “나는 칸트를 연구주제로 잡을래, 그래서 칸트의 도덕론으로 박사 논문을 쓸래.” 이렇게 가니까 철학의 현실대응력이 확 떨어진다고 생각해요.
성민교 : 맞아요! 저도 그렇게 하고 싶어요.
조성환 : 『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는 ‘한국’을 연구 대상으로 삼다보니까 ‘도덕’이나 ‘이기(理氣)’가 주제로 부각된 거지 그 반대는 아니거든요.
이원진 : 언젠가 인터넷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론에 대한 강의를 봤는데, 강의가 다 끝나고 첫 번째 질문자가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행복이 뭡니까?”라고 질문을 던졌어요. 그런데 “그게, 제가요, 행복에 대해서 평생을 연구했는데 행복이 뭔지를 모르겠어요.” 그게 답변이더라고요. 정말 실망했어요. 어떻게 저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실 수 있을까라고.
성민교 : 행복론을 강의하면서 행복이 무엇인지 자기 언어로 논하지를 못한다니….
조성환 : 『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는 퇴계의 이기론, 주자학의 이기론이 아니라 한국이 무엇인가를 설명하기 위해서 이기론을 쓴 거죠. 반대로 우리나라에서 유학을 한다는 분들을 보면 ‘한국’을 철학의 대상으로 삼는 분은 거의 못 본 것 같아요. 주자의 이기론이나 퇴계의 사단칠정론이 연구 대상이지.
이원진 : 거의 한국 얘기가 나온 적이 없죠.
조성환 : 한국의 학자인데 한국에 관심이 없어 보여요. (모두 웃음) 그래서 저는 한국인으로서 철학을 한다는 것의 궁극적인 목적을 어디에 둘 것인가, 라는 물음을 던져 봤어요. 그런데 누구한테서도 “한국철학사를 새로 써야지!,” “한국을 철학적으로 분석해 봐야지!” 이런 포부를 들어본 적이 거의 없어요. 30여 년 전에 김용옥 선생님이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물음을 제기했는데, 그 뒤에 ‘한국학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물음은 이어지지 않았어요. 후학들도 그 물음을 못 던진 거예요. 한국학에 문제의식이 없었던 거죠.
이원진 : 정희진 선생님이라고 여성학, 평화학 하시는 분이 계신데, 그분이 쓰신『 여성혐오가 어쨌다고』라는 책을 보면, 한국 사회에서 남성 지식인이라 자처하는 사람 중에 “글쓰기란 무엇인가?”와 “여자란 무엇인가?”를 안 낸 사람이 없대요.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건 “여자란 누구인가?”가 아니라 “여자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라는 거죠. 여자를 대상화하는…. 예를 들어 “ 흑인은 무엇인가?” 이렇게는 말 안 하잖아요.
조성환 : 서양철학에서의 본질에 대한 질문이 ‘What’으로 시작하잖아요. 그 영향도 크다는 생각이 들어요.
성민교 : 아까 말씀하셨듯이 근대에서 물화된….
조성환 : 동아시아 전통에서는 그렇게 본질을 묻는 질문은 잘 안 하죠. 가령 유교에서 너는 누구냐?” 라고 물으면 “저는 누구의 자식이고 누구에게 배웠고…” 이렇게 관계로 설명하는 게 일반적이지 않나요?
성민교 : 자기소개서도 그렇잖아요. 저는 어떤 가정에서 태어나서 ○남 ○녀 중의 ○○로서. (웃음)
조성환 : 그게 유교의 특징이라고 생각해요. 이 책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화두는 우리를 상승시키거나 억압하는 기제가 바로 유교라는 사실을 정작 우리 자신이 모르고 있다는거예요. 그러니까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가 아니라, ‘공자를 알아야’ 공자를 죽이든 살리든 할 수 있다는 거지요. 공자나 주자에 대한 치밀한 분석이 선행되지 않는 상태에서 공자만 죽이겠다고 한들 유교는 결코 안 죽는다는 거예요.
성민교 : 공자를 죽여도 또 다른 공자가 계속 살아 있는데.
조성환 : 그렇죠. 그 공자가 우리의 무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공자거든요. 우리의 한계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해요. 유교를 모르면서 유교를 죽이거나 살리려고 한다는 거죠. 정신없이 얘기하다 보니까 벌써 2시네요. 1시 30분까지 얘기하기로 했는데.(웃음) 다들 시장하실 텐데 오늘 얘기는 여기까지 하고, 다음에 또 보기로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