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취 : 최다울 - 일본 토호쿠대학 / 정리 : 조성환 -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 책임연구원
일시 : 2017년 11월 24일(금) 저녁 7시~9시
장소 : 독존학당 (서울시 강남구 대치동)
녹취 : 최다울
정리 : 조성환
[참가자]
김용한 - 서강대학교 신학대학원 석사과정, 동학 연구.
신소향 - 서강대학교 중국문학과 2학년.
안상욱 - 영동고등학교 3학년, 일본 유학 준비 중.
엄찬호 - 경기고등학교 3학년, 일본 유학 준비 중.
유일환 - 서강대학교 철학과 3학년.
이형래 - 경기고등학교 3학년.
최다울 - 토호쿠대학 4학년, 일본사상사 전공.
텐 웨냐민 - 교토대학 박사과정, 한국계 러시아인, 서울대학교에서 어학 연수 중.
최다울: 안녕하세요? 지난 1회 포럼 때에는 ‘행복’ 문제를 다뤘는데, 오늘은 무엇에 대해서 얘기하면 좋을까요?
유일환: 지난번 포럼 때 다울 씨가 ‘교육’에 대해 얘기했었죠? 마침 어제 수능 시험도 있었고 해서 이번에는 “입시 제도나 교육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라는 주제로 ‘한국 교육의 문제점’에 대해 얘기해 보면 어떨까요? 물론 문제점이 없다는 결론도 가능하겠지만요.
최다울: “교육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 좋습니다! 그럼 먼저 제가 질문을 하나 드리면, 일환 씨는 우리나라의 교육이 바뀌어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나요?
유일환: 최근에 지진이 일어나서 수능이 미루어진 일이 있었죠? 연기된 동안 수능 시험지를 아주 철저하게 보관하였고, 출제자들은 집으로 돌아가지도 못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수능 당일에는 소음 때문에 비행기가 뜨지도 못했다고 하고요. 저는 이런 현상을 보면서 ‘대한민국은 수능공화국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의 교육은 너무 수능이나 대입만을 목적에 두고 이루어지고 있어서 이런저런 문제들이 발생하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안상욱: 비단 수능뿐만 아니라 대학 가는 데 모든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 같아요. 고졸로는 한국에서 살아가기 힘들다는 인식이 뿌리 깊잖아요?
최다울: 상욱 씨의 생각으로는 공부를 하려고 대학을 가는 것이 아니라 ‘대학을 가는 것 자체’나 ‘공부 이외의 것’이 목적이 되어 있다는 말이죠? 그렇다면 대학을 이렇게까지 해서 굳이 가야 하는 이유는 뭘까요? 또 수능이 이렇게까지 민감하고 중요하게 여겨지는 이유는 뭘까요? 제가 생각하기에 대학을 가야 하는 이유는 일단 ‘취직’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발언권’과 ‘설득력’의 문제도 있고요. 학벌이 좋아야 ‘발언권’이 세지고 자기 의견에 ‘설득력’이 생긴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학벌 좋은 사람 말이 더 설득력 있어 보이는 거죠. 그리고 콤플렉스나 자존심 문제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이것들이 정말 문제일까요? 예를 들어 대학 잘 가서 취직 잘 되어 잘 살아서 사회에 도움이 된다면, 또는 내가 대학 졸업장을 가짐으로써 많은 사람들에게 내 의견을 더욱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도구로 쓸 수 있다면, 또는 콤플렉스나 자존심을 극복할 수 있다면 대학에 가는 것이 좋은 게 아닐까요?
이형래: 저는 학벌주의 사회라든가, 취직을 위해 대학에 들어가는 것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 지식을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발언권이 높은 것은 한국뿐만 아니라 어느 나라에서도 당연하게 받아들일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한국 사회가 다른 나라보다 대학을 특별히 중시하는 이유는, 대학을 안 나오면 생활하기가 힘들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학벌주의’ 자체에는 문제가 없지만, ‘과도한 학벌주의’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이런 과도한 부분을 고치기 위해서는 사회 제도가 먼저 개선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최다울: 대학을 안 나왔을 때 사회에서 생활이 어려워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사람들이 학벌이 있는 사람은 지식이 많다고 느끼고, 지식이 많은 사람은 설득력이 있다고 보는 반면에 학벌이 없는 사람은 지식이 없다고 무시해서 그런 걸까요?
이형래: 그런 점도 있겠지만, 애초에 한국 사회가 취직할 수 있는 일자리가 많지 않잖아요. 아무래도 일자리가 한정되어 있어서 한정된 인원밖에 수용을 못하니까 점점 기업이 요구하는 커트라인이 높아지는 것 같습니다.
텐 웨냐민: 오늘의 주제가 교육인데, 과연 ‘교육=대학’일까요? 교육은 대학 아니면 학교에서만 받을 수 있는 걸까요? 조금만 생각해 보면, 그냥 일하는 것도 교육이 될 수 있고, 친구들과 만나서 뭔가를 하거나 얘기 나누는 것만으로도 교육이 된다고 생각해요. 러시아 사람들은 한국을 이렇게 생각해요. ‘한국 사람들은 길이 하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무조건 대학을 가야 한다고만 생각하고 있다’고. 러시아에서는 고등학교만 나와서 그냥 일하는 사람도 많아요. 제 동창들 중에서도 학창시절에는 별로 공부를 안 했는데, 지금 여러 경험을 토대로 자기 회사를 차린 친구도 있고, 여행을 다니는 사람도 있고, 다양한 인생들이 있어요. 한국은 유교 사회라서 그런지 “대학을 가야 한다!”라는 생각밖에 없는 것 같아요.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없지는 않지만요.
그런데 18살 때 전공을 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봐요. 어떻게 18살 때 한순간에 자신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을까? 저 같은 경우는 항상 제 미래에 대하여 고민하고, 대학을 다니면서도 계속 고민했어요. 생각은 늘 바뀔 수 있으니까요. 지금 18살 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제가 제 미래에 대해 제대로 된 결정을 내리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혹시 여기 계신 고등학생 여러분들도 대학에 입학하게 된다면, 그 시간은 한 번밖에 없으니까, 즐겁게! “교육은 즐거운 것이다”라는 것을 느꼈으면 좋겠어요.
최다울: 교육이란 단지 대학을 가는 것뿐만 아니라 살면서 하는 경험이나 느끼는 모든 것들이 다 교육이고, 그래서 충분히 즐거울 수 있다는 얘기군요.
텐 웨냐민: “교육이란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무조건 ‘인 서울'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서울 안에 있는 대학에 못 들어가면 불리한 점이 너무 많아요. 제주도 사람들이나 부산 사람들조차도 ‘인 서울’을 해야 해요. 부산 사람이 부산대학교에 가면 별로 알아주지 않아요. 왜 부산대학교가 대학 랭킹에서 이렇게 낮은지 잘 모르겠는데, 지방에는 좋은 대학이 별로 없다고 들었어요. 물론 카이스트 같은 대학도 있지만요. 부산 사람들이 계속 부산에 살고 싶은데 굳이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야 하나 싶어요. 그냥 부산대학교에 가면 될 것 같은데… 그런데 한국에서는 분위기가 “어느 대학 나왔어?”, “어느 회사 다녀?” 이런 게 중요하니까요.
한국 사회는 좀 더 다양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러시아에서의 교육은 조금 다른 게, 자신의 전공을 살려서 취직하는 경우가 거의 없어요. 이건 조금 문제가 된다고도 생각해요. 오히려 러시아는 한국처럼 취직을 위한 교육이 필요하다고도 생각해요.
최다울: 러시아는 오히려 우리와 상황이 반대군요. 아까 형래 씨가 일자리 문제를 지적하셨는데, 만약에 일자리가 늘어난다면 대학의 다양성이 확보되고 문제가 해소될까요? 일본의 경우에는 현재 ‘고령화(高齢化) 사회’와 ‘소자화(少子化) 사회’라고 해서, 65세 이상의 인구 비율이 20퍼센트가 넘는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고 출산율도
점점 줄어들어서, 인구피라미드로는 완전히 역피라미드형이라고 불립니다. 이렇게 되면서 젊은이 한 사람이 감당해야 할 세금, 연금, 의료보험 등의 부담은 늘어가는 반면에 젊은이 인구는 줄어들어서, 노동력 부족으로 일자리는 오히려 많아요. 그래서 대졸자 취직률이 97%가 되고, 경쟁률이 1대 0.8이나 0.7인 곳도 있을 정도로 이공계 같은 경우에는 대학만 졸업하면 거의 다 취직이 되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문과 계열도 취직을 수월하게 할 수 있는 상황이고요.
한국도 인구비율 추이로만 보면 일본이랑 별로 차이가 안 나요. 고령화랑 소자화는 일본과 같아지고 있어요. 앞으로 몇 년만 있으면 똑같이 될 겁니다. 그렇게 되어서 일자리가 생기게 되면, 수능, 대학, 학벌 중심 같은 문제들이 정말 해결될까요? 제 생각에는 해결이 안 될 것 같아요. 왜냐하면 아까도 말했듯이, 아직까지도 사람들의 인식 속에는 대학 잘 나온 사람, 많이 배운 사람이 더 설득력 있고, 더 높고, 권력도 갖고 있는 사람도 많고, 돈도 많이 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많이 배웠다고 해도 배운 경험이나 지식이 고정 관념이 될 수도 있고, 내 눈을 까맣게 만들고, 순수하게 무언가를 느낄 수 없게 하는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많이 배운다고 해서 더욱 설득력이 있고, 더 좋은 판단을 할 수 있는 것만은 아니라고 봅니다. 많이 배운 사람이 더 좋은 판단을 할 수 있다는 인식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학은 오히려 이런 것을 배우는 곳이 아닐까요? 학문적 지식이 많지 않거나 실패를 겪어본 사람에게도 배울 점이 많다는 것, 그리고 학문적 지식이나 경험이 많은 사람이라고 해도 그 사람이 꼭 좋은 사람이거나 판단을 잘하는 사람이 아닐 수 있다는 것, 이런 다양함을 배우는 곳이 대학이 아닐까요?
신소향: 저는 중국에서 살다 왔는데, 한국에 와 보니까 어디 가서 나이를 말하면 “대학생이니?”라고 먼저 물어 보시더라고요. 그래서 “이 나이에는 무조건 대학에 가야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좀더 제가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을 찾아보려고 했는데, 만나는 사람마다 그 나이에는 대학을 다녀야 한다는 듯이 말씀하시니까, 나이가 더 들기 전에 빨리 대학을 가야겠다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좀 자신 있는 과목을 선택해서 입시를 치렀어요. 제가 뭘 좋아하는지 생각조차 못해 보고 그럴 기회도 없었어요. 시간이 안 주어지더라고요. 그렇게 해서 중국어과에 입학했어요. 중국어를 원래부터 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전공과목은 재미가 없고, 다른 과목은 저에게 너무 어렵고, 그래서 처음에는 전공과목만 듣다가 나중에는 교양과목 같은 수업도 들으면서, ‘모르는 것을 찾아보고 배워보자’라고 생각하여 다른 과목을 많이 들어봤어요. 그런데 다들 영어도 잘 하고, 워낙 뛰어나다 보니까, 교양과목도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느낌이 아니라, 처음부터 성적만 바라보고 뛰어드는 사람이 많아서, 교양이 교양 같지 않고 전공보다 더 스트레스를 받게 되었어요. 그러다 더 다양한 수업을 들어 보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 보자, 다양한 것을 시도해 보자 하는 마음으로 철학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굉장히 어렵긴 하지만 너무 흥미롭고, 제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점들이 너무 좋아서 지금은 복수 전공으로 선택을 해 볼까 생각도 해 보고 관련 서적도 찾아 보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까 오히려 전공을 목표로 하지 않는 이런 배움이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교양과목을 통해서 더 많은 가능성을 배워서, 오히려 처음부터 너무 전공 공부나 필수 교양과목 같은 수업이 아닌, 다양한 분야에서 가볍게 들을 수 있는 수업들이 많으면 좋지 않을까 싶어요. 전공보다 다른 수업이 더 재미있고, 나의 진로를 더 잘 정리해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다울: 제가 생각하기에도, ‘해야 하는 공부’라는 것은 뭔가 재미가 없어요. 대신에 자기가 ‘찾아서 하는 공부’는 뭔가 재미있어요. 왜 그럴까요? 한·중과 일본의 과거제도 비교, 그러니까 ‘비교교육사’를 다룬 책에서 읽은 적이 있는데, 한국이나 중국은 과거제도라는 커다란 시스템 속에서 공부를 하는 곳이었어요. 그래서 유교 경전을 공부하는 목표가 과거 급제를 통해 권력을 잡는다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죠. 수신(修身)을 위한 학문이 아니라 “더 잘살고, 더 좋은 권력, 더 좋은 힘, 더 많은 돈을 위해서”라는 다른 목적을 위해 공부를 했다는 것이죠.
반면에 일본의 경우에는 한국이나 중국과 같은 과거제도가 있었던 것이 아니어서, 학자가 학문을 통해 권력을 잡는다는 것은 애초에 권력을 가진 집안 출신이 아니면 불가능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유교 대국이었던 한국이나 중국은 학문과 교육이 경직화된 반면에, 일본 유학자들은 유학에 대해 더 다양하고 비판적이며 철저한 분석이 가능했다는 내용이었어요. 에도시대의 유학자들은 다른 목적이 아닌, 정말로 본인이 궁금해서, 공부를 하고 싶어서 했던 것이고, 그래서 더 자유롭고 다양한 발상이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대신에 사회적, 정치적으로 얻어지는 것은 거의 없었을 겁니다. 일본의 권력층은 무력(武力)층이었으니까요. 칼을 차고 있었죠. 그래서 학자들이 국정에 대한 개입이나 비판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위력은 없었다고 합니다. 에도시대 유학자들의 무덤 같은 것을 보면 굉장히 소박하고 그냥 널부러져 있거든요. 이런 점들이 일본의 유학자들이 순수하게, 다른 목적이 아니라 학문 자체가 목적인 학문을 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생각해 보면 지금의 한국 교육이나 수능도 당시 과거제도와 많이 유사한 것 같아요. 전공 지식이나 취직을 위한 공부는 그 내용을 알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다른 곳에 목적이 있으니까요. 그래서 재미가 없죠. 반대로 자신이 정말로 배워 보고 싶은 공부, 하고싶은 공부는 그 자체에 목적이 있기 때문에 재미있어요. 그런데 자기가 매력을 느껴서 하고 싶은 것만 공부하면 좋을 텐데, 결국에는 취직, 장래, 주위 시선, 경제 여건 같은 것들로 인해 그러지 못하죠. 하고 싶은 것만 하다 보면 졸업도 힘들어지고요.
그래서 저도 사실 지금 학부 5년차입니다. 그러면 주위에서 뭐라 하는 것이 당연하죠. 물론 이런 주위의 시선, 취직, 나이 같은 것을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이 무언가에 즐거움을 찾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해도 좋은데, 제 머리는 어쩔 수 없이 계속 신경을 쓰게 됩니다. 취직해야 할 텐데, 이제 곧 부모님도 모셔야 될 텐데, 가정을 꾸리려면 돈 좀 벌어 놔야 할 텐데 등등… 이런 생각이 어딘가에 있어요. 이런 부분들이 순수하게 공부만을 할 수 없게 하는 요소인 것 같고, 공부를 공부 외의 목적으로 하게 만듭니다. 이런 생각들은 결국 자기 자신한테 있는 것 같아요.
김용한: 제가 고등학교 2~3학년 때「 모래시계」라는 드라마가 있었는데, 5·18과 관련된이야기였어요. 그때 ‘아, 5·18이라는 게 있었구나.’라는 사실을 처음 알고, 도서관에 가서 5·18 관련 자료들을 찾아보고 그랬어요. 그때 막 자료집이 나오고 그랬거든요. 그전에 1학년 때 모의고사를 봤는데 성적이 되게 잘 나온 적이 있었어요. 성적 한 번 잘 나오고 나니까 이거는 할 공부가 아닌 것 같다 생각했어요.
제가 중학교 3학년 때부터 공부하기 시작했는데, 고등학교 1~2학년이 되니까 급격히 성적이 상위권으로 올라갔어요. 금방 상위권으로 올라가니까 이런 것에 인생을 걸어야 되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공부를 안 했어요. 공부 안 하고 보고 싶은 책만 보고, 5·18 자료 찾아보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그러면 대학을 진짜 못 가는데, 첫 해는 대학시험을 안보고 수능시험날 망월동에 가려고 광주를 갔어요. 새벽 4시에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광주역에 내려서 나가려고 하는데 어떤 아저씨들이 저를 납치해 가려는 거에요. 되게 호리호리한 고등학생 같은 애가 있으니까. 그래서 무서워서 그냥 바로 돌아왔어요. 집에 돌아와서 엄마 아빠한테 엄청 맞았죠. 숟가락으로 맞았어요.
두 번째 수능시험 접수할 때도 대학에 가기 싫은 거에요. 아예 원서도 안내고 있다가… 그때도 답답해서 기차 구경을 하고 집에 왔어요. 제가 답답하면 역에 가서 기차 지나가는 걸 보고 오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어머니가 “원서 접수했니?”라고 물어 보셔서, “무슨 원서 접수요?”라고 대답했더니, 교육청에 전화해 보니까 원서 마감이 지나서 안 된다고…. 그날도 엄청 맞았어요. 그때도 시험을 안 보고 대학을 안 갔어요.
세 번째 해가 되니까 군대에 가게 됐어요. 그해 1월에 소년원에 수감된 애들한테 가서 무슨 교육 활동 같은 것을 했는데, 그때 공부를 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낮에는 주유소에서 일했어요. 7월까지는 주유소에서 계속 일하고, 밤에는 실업계 고등학교 애들 종합반 같은 게 있었는데, 거기 들어가서 공부하고 수능 시험을 봤는데, 그때 수능 시험이 정말 쉽게 나왔어요. 그래서 수능시험에서 몇 개 안 틀렸는데, 무슨 대학이 있는지도 모르고, 흔히 말하는 ‘SKY’ 같은 대학은 별로 가고 싶지도 않았고…. 왜냐하면 같이 공부하던 친구들이 어떻게 사는지를 봤거든요. 거기서는 배울 게 많이 없겠다 싶었죠.
그러다가 사람들이 전혀 이해하지도 이해받지도 못하는 대학에 갔어요. 대학에 다닐 때도 어떤 친구들은 제가 부자인줄 알았대요. 공부는 안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것만 하니까. 하고 싶은 곳만 다니고… 근데 저는 부자도 아니고 힘들게 자란 집안이었어요. 아버지는 평생 막노동일만 하신 사람이거든요. 대학도 다니기 싫어서 그만두고 해서 대학 졸업도 10년만에 했어요. 아까 다울 씨가 5년이라고 했는데 저는 두 배예요, 하하하.
그리고 대학 졸업할 때 지금의 아내랑 결혼했어요. 그때 통장 잔고가 0원이었어요. 집도 없어서 학교랑 이곳저곳 전전하고…. 아내도 돈이 없고 저도 통장 잔고가 0원이었고… 그런데 정말 행복한 건 있어요. 사랑이 밥 먹여주냐는 말자주 듣는데, 사랑이 밥 먹여주는 게 진짜 있어요. 그리고 어떤 철학이랑 지식 같은 거 추구하다 보면 희열 같은 것이 있는데, 대학에 굳이 안 들어가도 느낄 수 있고 다 있어요.
그런데 그렇게 살다 보면 저처럼 이렇게 늦어지는 것도 있죠. 저는지금 나이가 좀 많거든요. 그리고 사람들에게 제가 이야기하는 것을 설득시키기가 힘들어요. 없이 살아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안 믿더라고요. 그리고는 저의 행복이 계속 침범당해요. 가만이 있으면…. 서울은 엎드려 있으면 코 베어 간다고 하잖아요. 그런 식으로 나는 정말 행복하고 만족하게 아내랑 같이 살고 있는데, 계속 비교가 되는 거예요. 내 나이 때 사람들은 어떤 차를 타고 어떤 집에 살고 있는데, 나는 일단 그게 없으니까 괜히 자격지심이 들기도 하고요. 아니면 제 것을 자꾸 뺏겨요 뺏겨도 그걸 제가 막을 힘이 없어요. 제대로 학교 교육이나 직장이 잡혀있지 않으면 그렇더라고요. 그래서 그게 좀 이상한 것 같아요… 교육 이야기와는 좀 벗어났지 모르겠네요.
최다울: 흔히 말하는 엘리트 코스를 밟는 사람들이 꼭 행복하리라는 보장은 없죠. 지난번 1회 포럼 때 다룬 내용과도 통하는 점이 있네요.
김용한: 그래서 요즘 깨달은 것은, 행복한 사람은 명문대를 가든 못 가든 행복하고, 행복이 뭔지 모르는 사람은 명문대를 가도 못 깨닫고, 다른 곳을 가도 못 깨닫는다는 사실이에요. 학벌과 행복은 꼭 비례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최다울: 그렇군요. 사실 행복이라는 것은 작은 것에서도 느낄 수 있고, 각자에게 다양한 행복이 있을 수 있는데 너무 눈에 보이는 것만을 행복으로 여겨 그것만 쫓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자신이 어떻게 살아갈지, 사람들이 맹목적으로 달려가는 방향이 꼭 나에게도 좋은 삶이 될지를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생각해볼 기회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최다울: 다시 ‘대학’ 얘기로 돌아오면, 대학에 가는 이유가 학문 이외의 목적이 따로 있고, 대학은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이용되는 수단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대학이 그런 목적을 위해 이용되기 시작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대기업에서 고학력 대졸자들을 많이 채용해서일까요? 그것을 사람들이 보면서 “대학을 가면 좋은 풍요로운 삶을 산다”고 인식하는 걸까요? 많은 학생들이 “좋은 대학에 가야 돼” 라고 인식하는 이유는 뭘까요?
안상욱: 딱히 하고 싶은 게 없으니까 대학에 가는 면도 있는 것 같아요.
최다울: 그렇군요. 비유하자면 보험 같은 건가요?
안상욱: 제가 중학교 때 친구들이랑 이야기하고 부모님이랑 대화하면서 도달한 결론이에요. 저는 중학교 때 하고 싶은 게 정말 없었어요. 지금은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다는 나름대로의 목표가 생겼는데, 그것도 정말 제가 진정으로 원하고 있는지 저 자신도 잘 모를 때가 많아요.
어찌됐건 일단은 막연한 목표가 생기기는 했는데, 중학교 때는 정말 무엇인가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없었어요. 그래서 친구들이나 부모님과도 이야기해서 나온 결론이 “일단 공부하고 대학가서 네가 하고 싶은 것을 생각해 봐.” 이런 것이었어요. 그런데 이게 저 뿐만이 아니라 많은 중고등학생들이 “일단 공부해야겠다. 하고 싶은 것도 없으니까….” 이런 식으로 대학입학을 향해 달려 가는 것 같아요.
최다울: 저도 한국에서 중고등학교 다니면서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찾기 이전에, “일단 대학에 가. 그리고 그 다음에 하고 싶은 것을 찾아.” 이런 이야기를 귀가 닳도록 들었어요. 아니면 인생 망치고 큰일 날 것 같은 이야기를 친구 어머니들을 만날 때마다 많이 들었어요. 저희 집 부모님은 진학에 대해서 별 말씀이 없으셔서 저는 학원 같은 데는 잘 안 다니는 학생이었는데, 고등학교 진학할 때 “고1 입학 전에 수2 미적분은 미리 해 놓지 않으면 인생이 힘들다.” 이런 말을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마음이 불안해져서 저도 “목표는 없지만 일단 대학에 가야겠다.” 이렇게 마음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중고교 시절을 돌이켜 보면, 친구 부모님들, 선생님들, 친구들에게 정말 많이 있고 공통된 인식이었던 것 같아요. 이런 인식들이 있으면 있을수록 저처럼 행동으로 나타나게 되니까요. 이런 점들이 수능을 과도하게 거대한 것으로 만들고 있는 원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맹목적인 목적을 갖게 하는 현상을 타파하기 위해서 개인적으로나 제도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형래: 저는 의외로 답이 간단하다고 생각해요. 지금 한국의 대학들은 들어가는 것은 어려운데 나오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잖아요? 비하하려고 그러는 것은 아닙니다만, 프랑스나 독일의 경우에는 들어가기는 쉽지만 나오기는 어렵다고 합니다. 공부할 양도 많고…. 그래서 유럽에서는 학벌주의라는 것이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학교마다 수준 차라든가, 등급 차는 있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한국의 경우에는 선택폭이 상당이 좁잖아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프랑스나 독일처럼 대학에 들어가기는 쉬워도 나오는 것을 어렵게 하면 학생들도 조금 더 생각할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아요. 대학을 졸업하기가 힘들다는 것은 대학에서 공부해야 하는 것이 많다는 거잖아요. 조사해야 할 것도 많고, 교수님들과 얘기도 많이 나눠봐야 하고요. 그런 경험이 다 학벌이라 불리게 되는 것이고요. 그런 사회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은 자유로운 분위기의 초등학교나 중고등학교에서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많을 거예요. 그래서 정말로 공부가 하고싶어서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아까 다울 형이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은 오히려 강력한 고정관념이 생길 수 있다고 말씀 하셨는데, 혹시 그런 사람들이 정치가가 되거나 사회적으로 큰 힘을 갖게 되었을 때, 그런 사람들을 비판하고 끌어내릴 수 있는 사람들도 결국에는 생각과 공부를 많이 해본 사람, 즉 학벌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정리하자면 기본적으로 학벌사회라는 구조는 크게 문제가 없지만, 아까 상욱씨나 찬호씨가 말한 것처럼, 하고 싶은 게 없어서 대학을 향해 달려가는 사회는 잘못되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대학에 들어가기는 쉬워도 나오는 것을 어렵게 하면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시간은 많이 걸리겠지만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최다울: 예리한 지적이군요. 감사합니다. 학위를 진정한 의미에서의 가치 있는 학위로 만들면 된다는 거군요.
안상욱: 그럼 프랑스나 독일에서는 한국에서와 같은 교육 문제는 거의 없는 걸까요?
텐 웨냐민: 프랑스 대학에서는 수업이 별로 없어요. 일본과 한국에 비하면 거의 없어요. 그래서 무료에요. 거의 무료죠. 한국과 일본은 러시아 대학에 비해서도 수업이 너무 많아요. 학력 사회라서 그러지 않나 생각해요. 그래서 입시도 어려운 것 같아요.
안상욱: 형래씨 생각이 좋다고 생각하는데, 미국대학도 입학은 쉽고 졸업은 어렵다고 하는데 미국은 문제가 없을까요?
텐 웨냐민: 제가 생각하기에 미국교육의 문제는 대학보다는 초중고등학교에서 공립과 사립의 교육의 질적 차이가 너무 크다는데 있어요. 특히 가난한 사람들이 상당히 힘들어요. 기초교육을 못 받는 사람들도 꽤 있고, 좋은 학교도 못 가요. 그래서 공립 학교를 갈 수 밖에 없어요. 사립 교육은 수준이 높다고는 하지만 부자들만 가죠. 빈부격차로 인한 교육적 차별이 너무 커요. 미국의 대학 교육의 질은 상당히 높죠. 그래서 미국의 교육 문제는 미국 사회의 빈부격차 문제와 직결되어 있어요.
김용한: 저는 미국의 사립학교처럼 돈 많은 사람이 양질의 교육을 받는다든지, 학벌이 인정받는다든지 하는 것은 이해가 되는데, 한국의 경우에는 양질의 교육을 받은 뒤에 과도하게 사익을 추구해버리는 측면이 있지 않나 싶어요. 양질의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공익에 대해서 생각하고, 수준 높은 정치인이 되고, 사회 지도층이 되어서, 자신들이 받은 교육 혜택 만큼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면 학벌도 사교육도 다 좋게 평가할 수 있겠는데, 한국에서는 그게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교육을 많이 받으면 받을수록 그 사람들이 다 해먹는 것 같아요. 우병우처럼요.
텐 웨냐민: 그래서 한국에서는 비교를 하죠. 제 생각에는 교육받을 때 “나에게만 있는 것이 무엇일까?”를 찾으면 좋을 것 같아요. 예를 들면 “나는 사회학을 하고 싶어!”라고 생각했으면, 비교를 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분야 안에서도 자신만이 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찾는 것입니다. 나밖에 할 수 없는 무언가를 찾아내는 것,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는가, 그런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한국은 단지 누가 더 성적이 잘나오나 경쟁을 해요. 조금 초점이 다른 것 같아요. 예를 들면, 같은 것을 했을 때 “네가 더 잘해,” “네가 더 못해,” 이렇게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이건 너밖에 못해,” “너만 할 수 있는 거야,” 라는 부분을 찾아내고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내가 제일 잘 할 수 있어”가 아니라 “나밖에 못하는 거”요. 그래서 교토 대학에서는 학생들이 수업도 안 들어오고 기숙사에서 자기 시나 문학작품을 쓴다든지, 학교 안가고 하고 싶은 것만 하는 학생도 많았어요. 그런데 성적은 잘 나와요. 그래서 교수님들도 “너 왜 어제 수업 안 나왔니?” 이런 얘기도 잘 안 해요. 자유로운 곳이었어요. 지금은 상황이 조금 달라졌지만요.
최다울: 경쟁을 통해서 남들보다 자신이 잘하는 것을 찾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만이 할 수 있는 것을 찾는 것, 그리고 찾게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군요.
최다울: 일본의 대학 중에는 학생들뿐만 아니라 선생님들도 수업을 거의 하지 않는 분도 계시고, 교토대학은 특히 자유로운 학풍으로 알려져 있는데, 교수님하고 철학대화를 하면서 장기두러 가곤 한다는 이야기는 유명하죠.
텐 웨냐민: 그런데도 노벨상 수상자가 제일 많은 학교는 교토대학이에요. 저도 이게 참 신기하다고 생각해요.
김용한: 그것은 우수한 학생이 선발되어서, 학생들이 우수하니까 알아서 하겠지 하고 내버려 두는 것일까요?
최다울: 학풍자체가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것 같았어요. 교수님 중에도 굉장히 독특한분이 많다고 들었어요. 자기는 담배 피면서 수업을 할 테니까 학생들에게도 담배피워도 좋다고 하는 분도 계시고, 교실에서 수업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텐 웨냐민: 저도 다니면서 느낀 건데, 학생이 수업에 관심이 없고 출석하고 싶은 마음이 없으면, “성적은 줄 테니까 굳이 나오지 않아도 돼.” 라고 말하는 선생님도 있었어요. 하고 싶은 것을 하면 된다고 하면서요. 그런데 만약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으면, 1대 1로라도 지금 연구되고 있는 첨단 연구성과를 전해줄 테니 찾아와라, 이런식으로 하는 분이 많았어요.
김용한: 한국 같으면 교육부가 분명 간섭이 들어올 것 같아요. 일본에서는 그런 것이 없나요?
최다울: 있어요. 문부과학성이 많이 문제 삼아서 똑같이 되어가요. 출석이나 수업 최소 횟수 같은 것이 의무화되고 있어요. 그래서 교수님들이 엄청 불평하면서 강의하시는 것을 많이 봤어요.
텐 웨냐민: 맞아요. 이런거 뭐하러 하는지 모르겠다면서 수업하세요. 다만 너무 공부 안하고 놀기만 했다는 비판도 많았어요.
최다울: 그래도 아까 말했던 것처럼 한국이나 중국과 같은 과거제가 없던 시절에 오히려 다양한 학문과 독서가 나올 수 있었다는 말도 맞는 것 같아요.
김용한: 근대화가 된 이후에는 학생선발 같은 공통시험이나 선발시험 같은 게 없었나요?
텐 웨냐민: 근대가 되고 나서 그런 선발 제도나 집단을 만들었어요.
최다울: 그래서 분명 일본도 학문 외의 목적을 가지고 출세를 위해서 진학한 사람도 많았을 거에요. 다만 종전이 되고 맥아더에 의해 제정된 평화헌법 이후에 국체(國體)나 일본사상, 군벌주의 등과 관련된 대학 연구소가 폐지되는 등, 학문을 통한 권력 획득의 기회는 외부적인 힘으로 통제됐다고 봐도 될 것 같네요. 물리적으로 순수한 학문이 남게 됐다고 해야 할까요?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도 똑같이 학벌중심이고 공부 외의 목적으로 진학하는 사람이 많은 것은 분명한 것 같아요. 한국보다는 덜할지 모르지만요.
텐 웨냐민: 제 생각에는 교육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사람들은 중국이나 한국이나 일본이나 할 것없이 순위 매기기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가령 “예쁜 사람 탑10” 같은거요. 러시아에서는 이런 게 거의 없어요. 그래서 순위 매기기를 왜 이렇게 좋아하는 거지? 라고 생각했어요. 교육도 그래요. 그런데 교육 이외에도 무언가 공통점이 있
으면 항상 비교하려 하는 것 같아요.
최다울: 교육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매사에 비교를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군요. 상대적으로 더 좋은 것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서일까요? 차도 집도 학교도 사람도…그런 인식들이 교육에서는 고학력을, 취직에서는 대기업을, 채용에서는 하이스펙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 같아요. 이것들 중 하나가 수능중심의 교육문제
라고 볼 수 있겠네요. 생각할수록 우리 사회가 무서워지는 것 같아요.
유일환: 제 생각에는 지금까지 논의가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 것 같습니다. 단일한 기준만을 인정하느냐, 아니면 다양성을 긍정하느냐. 수능이든 순위 매기기든 결국 하나의 기준을 가지고 사람들한테 강요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주로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이 나온 것 같아요. 저는 아까 형래씨가 학벌주의 자체는 문제가 없다고 말한 점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느꼈습니다. 아무리 다양성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하나의 국가가 움직이려면 지식을 갖춘 사람들이 이끄는 구조가 필요하기 때문이에요. 또한 객관적으로 지식의 유용성은 그 정도를 구분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그렇기는 하지만 이것이 제대로 된 학벌이 되려면 두 가지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하나는 아까 미국 얘기 들으면서 느꼈던 건데, 교육을 하거나 지식을 전달하는 데 있어서 평등한 기회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것이 우리나라에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교육에 의존하는 부분이 너무 심하고, 수능이 문제가 되는 점은 재수를 하려면 돈이 엄청 필요하다는 것이에요. 돈의 논리가 너무 작용하다 보니까 이 기회가 평등하게 보장이 되지 않는다면, 객관적으로 그 지식이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불평등하게 기회가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 같습니다.
또 하나는 지식의 단일한 기준이 불가피하다 하더라도 다양성을 인정한다면 그 기준에서 벗어나는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많이 생기게 될텐데, 그 사람들도 위계 질서가 아닌 다양성으로 인정해줄 수 있는 시선이 필요할 것 같아요. 제가 직접 가보지는 않았지만 프랑스에서는 어떤 사람이 청소부이든 일반 회사원이든 공무원이든 지위의 차이가 거의 없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생각하는 청소부의 이미지와 다르게 청소부들 스스로의 자존감도 높고, 또한 좋은 자동차를 몰고 다니는 일도 가능하고요. 우리나라는 그런 단일한 기준이 어쩔 수 없이 있다 하더라도 그 틀 속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속된 말로 “얄짤없는” 일이 벌어지는데, 이런 점들이 고쳐지지 않는다면 단일화된 순위 정하기로 인해 나타나는 문제들이 너무 클 것 같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최다울: 다양성만 가지고는 다 해결할 수 없겠군요. 그리고 다양성이 인정받으려면 그것을 인정해줄 수 있는 ‘시선’이 필요하고요. 우리는 추석이나 설날에 친척들끼리 모이면 항상 “너는 언제 어디에 취직하니?” “어느 대학에 들어갔니?” 하는 비교를 당하지만요. 아마 이런 풍조가 바뀌려면 굉장히 오래 걸릴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눈앞의 작은 실천 하나하나라도 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텐 웨냐민: 이 문제에 대해서 여러분들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한데, 한국의 대학에서는 영어로 가르치는 수업이 많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내용을 보면 한국어로 가르치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이 들어요. 한국이라는 나라는 너무 미국교육만 따라가려고 하는 것 같아요. “우리도 영어로 수업을 해야 한다”라며 학생들에게뿐만 아니라 교수들에게도 쓸데없는 압박을 가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요.
제가 아는 선생님도 왜 중국철학을 영어로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셨죠. 러시아에서는 무조건 모든 수업을 다 러시아어로 해야 해요. 백 번 양보해서 이공계 수업은 영어로 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인문학은 한국어로 해야지 영어로 왜 수업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정말로 그런 수업이 있어요? 수강해 보신 분 계신가요?
유일환: 저는 유교 수업을 영어로 들은 적이 있어요.
김용한:『 중용』도 영어로 수강한 적이 있었죠.
유일환: 그것은 서양의 관점을 알아본다는 점에서는 그래도 의의가 있는 것 같은데, 제가 들었던 영어 강의는 의무적으로 수강해야 하는 것이었어요. 물론 가치가 전혀 없지는 않아요. 외국인 학생들과도 수업을 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요. 그렇지만 제가 다니는 학교는 의무적으로 영어 강의를 5개나 들어야 졸업이 가능해요. 그런데 굳이 그래야 되는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텐씨가 말씀하신 것처럼 영어가 대세다 보니까 의무로 하게 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신소향: E·H 카의『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수업을 들은 적이 있는데, 수업 중간에도 교수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문장이 한국어 문장인데 영어 단어가 굉장히 많이 들어가더라고요. 그게 더 혼란스러웠습니다. 원서를 한국어로 번역하면서요. 안 그래도 제가 영어실력이 많이 안 좋은데… 수업시간에도 굉장히 영어를 많이 사용
하셨고, 시험 볼 때 아예 영어단어만 8개 적어 주셨는데, 그 단어들을 하나도 몰라서 펑펑 울고…. 한국어 단어를 주셔도 될텐데 왜 굳이…. 수강생도 거의 한국 학생밖에 없었거든요. 다른 수업에서도 대부분 외국에 유학 갔다 오신 분이 많으셔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영어를 굉장히 많이 쓰시더라고요. 가끔은 수업 중에 영어
공부를 하는 느낌도 들었어요.
최다울: 외국어를 배우는 것도 중요한 공부 중의 하나이지만, 한국 것을 가르치는 데 영어로까지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일본사상을 공부하려면 일본으로 가서 카키쿠다시분(書き下し文)이나 소오로오분(候文)을 익히고, 중국철학을 공부하려면 한문을 익히는 것은 알겠는데, 한국의 대학에서는 한국에서 인문학을 가르치는데 한국어를 안 쓴다는 부분이 아이러니하기도 합니다. 정신없이 얘기하다 보니까 벌써 시간이 다 되었네요. 이것으로 제2회 청년포럼을 마치고자 합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