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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May 16. 2018

'우리가 만난 기적' - 민주공화국

『근대와 民-인간존중·신분해방 사상이 만든 민주공화국』출간에 즈음하여 


1. ‘우리가 만난 기적’

"종전선언 - 평화협정 체결의 추진"과 같은, 지금 한반도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생각해보면, 실제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이어서 믿지 않을 수 없는 거지, 불과 1년 전으로 돌아가서 생각해 보더라도, 참으로 믿을 수 없는 현실, 문자 그대로 '기적적인 상황'이다. 


촛불혁명 ― 박 대통령 탄핵과 문재인 정부 탄생 ― 남북 정상회담과 판문점 선언…. 그리고, 이러한 큰 흐름의 갈피마다 ‘기적처럼’ 성취되었던 일들까지 포함하여, 지금까지의 일들만 해도 가슴 벅차고 감격스러며 믿기지 않는데, '북미 정상회담'이나 '서울발 유럽행 기차'를 비롯하여 앞으로 예견되는 일정들을 생각해 보면, 이 한반도에서, 우리나라는 물론 이 세계의 ‘신세계’ ‘신시대’가 열리고 있다는 느낌을 감출 수 없다. 


돌이켜보면, 오늘의 이 대장정의 직접적인 출발지는 팽목항을 그대로 옮겨온, ‘광화문 광장’이다. 그리고 그 광장을 만들어 간 촛불시민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쳐 부르던 노래는 “헌법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이다. 이 노래는 세월호 참사를 접하고 울부짖던, “이게 나라냐?”라는 자성(自省)과 분노(忿怒)가 뒤섞인 물음에 대한 해답으로, ‘새삼스럽게 발견’된 말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실로 이 말을 수호하고, 실현하기 위하여 수 백 만의 사람들은 차디찬 거리에서, 수 천 만의 국민들은 가정과 일터에서, 오매불망하며 “거짓을 내치며 진실을 밝히는 길”을 내달려온 결과로 오늘 우리는 밝고 맑고 아름다운 한반도 역사의 시대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기적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2. 아래로부터 만든 우리의 민주공화국 형성사


‘그런데 말입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임시헌장 "제1조 -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


여기서 첫 번째 질문. 

우리 헌법 제1조로 당당하게 자리매김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조항은 언제 어디서부터 우리 역사 속에 자리매김하였을까? 이 물음에 답하는 일은 우리의 촛불혁명이 언제 어디에서 실제로 시작되었는지를 새롭게 묻고 답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1차 결론을 이야기하자면,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알다시피, 이 절대 명제는 1919년 4월 11일 상해에서 선포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대한민국임시헌장>에서부터 비롯된다. 말하자면, 우리나라 ‘근대국가’의 출발점에서부터 함께해 온, 태생이 우리 자신과 같은 헌법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질문은 여기서 사그라들지 않는다. 두 번째 질문. 

뜻있는 사람들은 한민족의 역사 이래로 대부분 ‘왕정국가’였던 한반도에서, 어떻게 국권 상실 10년 만에, ‘공화’와 ‘민주’ 이념/개념이 태생하여 헌법(헌장) 제1조를 차지하게 되는가를 묻는다. 이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는 민주·공화 개념이 외부로부터 이식되었다는 입장이 주된 견해였다. 이에 따르면, 민주공화정은 우리의 내적인 정치적 전통과 아무런 연관이 없는 서구 개념의 이식이라는 주장이다. 


과연 그럴까? 1919년 이전,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사이 서구의 많은 문화/문물이 수입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한반도의 원주민(한민족)의 자기 역사와 의식 가운데 민주와 공화의 관념과 이념이 일찍부터 자리 잡고 있지 못하였다면, ‘수입’된 이념으로 우리의 헌법(헌장)을 기초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미 한민족 인민(人民)들이 민주와 공화 개념에 충분히 노출되어 있었기에, 3.1운동의 성과를 계승한 임시정부의 요인들은 이를 <대한민국임시헌장>에 반영할 수 있었고, 다시 그로부터 100년이 흘러오는 우여곡절의 한국 현대사에서도, 그 조항만큼은 한 번도 흔들림 없이 굳건히 그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다시 말해 ‘민주(民主)’·‘공화(共和)라는 기표 자체는 외부로부터 수용한 것일 수 있지만, 우리 내부에 그에 관한 사상적 토대가 배태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우리 헌법의 중심에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는 말이다. 


3. 한국 근대화를 이끈 사상적 동력은 민의 사상이다  


우리가 의를 들어 이에 이름은 그 본의가 다른 데 있지 아니하고, 오직.....


세 번째 질문. 그 ‘사상적 토대’란 무엇인가? 『근대와 民-인간존중·신분해방 사상이 만든 민주공화국』(이영재 지음)에서는 그 사상적 토대가 인간존중과 신분해방사상이라고 밝힌다. 


이영재는 한국 근대화의 동력이 왕이나 지배권력 일방의 모노드라마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특히 정치권력과 민중의 역동적 상호작용을 통해 민의 지향을 공감해석학적으로 독해하는 방식을 취한다. 이러한 관점에 따라 이 책의 저자는 동학사상이 실천 지침으로 강조하고 있는 인간존중과 신분해방사상은 19세기의 정치사회적 변화와 민의 공감대를 반영한 것으로, 근대적 신분해방의 임계점에 육박해 간 사상으로 평가한다.


그리고 그 동학사상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로부터 주어진 것이 아니라, 최소한 조선 왕조 내내 아래-민(民)들의 끊임없는 저항과 모색 가운데서 형성된 경험과 실천을 계승하고 심화 발전시켜 마침내 서구적인 의미의 인간평등이라는 기준을 초월하여 ‘사람이 곧 한울’이라는 절정의 이념으로 승화되었고, 그것이 우리나라 근대화의 동력이 되었다고 말한다. 


네 번째 질문. 여기서 다시 그렇다면 한국의 근대화는 언제 시작되었고, 근대화를 이끈 주체는 누구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서양의 근대는 1789년 프랑스혁명에서 시작되었고, 그 정신은 ‘자유’, ‘평등’, ‘박애’라고 곧잘 대답하는 사람도 정작 우리 근대화에 대해서는 대답을 망설인다. 잘 모르기도 때문이거나, 의견이 분분하기 때문이다. 한편에서는 독립협회를 주축으로 한 개화파 지식인이 한국의 근대화를 추동했다고 주장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대한제국기 고종의 광무개혁으로 근대가 개시되었다고 주장한다. 반면, 일본의 강점은 잘못되었지만, 식민시기에 근대화된 것은 역사적 사실이라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이렇듯 한국 근대화에 대한 견해가 천차만별인 것은 지난 100여 년 동안 우리 근대사에 각인된, 일제강점에 따른 폐습과 식민사관의 잔재가 여전히 영향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1910년 ‘한일병탄’으로 인해 우리 근대사는 들춰보기 싫은 역사, 패배와 치욕의 역사로 낙인 찍혔다. 이런 탓에 그동안 우리 민주주의를 이야기해도 그 근거와 사례는 서양의 것을 기준으로 하는 것을 당연시하게 되었다. 


『근대와 民인간존중·신분해방 사상이 만든 민주공화국』은 기존 견해들과 달리 한국의 근대화를 추동한 주체가 민(民)이고, 우리 근대화의 특성을 지식인 중심의 근대화나 위로부터의 근대화, 식민시기의 타율적 근대화가 아닌 아래로부터의 근대화라고 제안한다. 


4. 촛불혁명과 남북 평화협정의 체결은 민(民)의 자기 실현 과정 


사랑합니다!


최근의 ‘촛불혁명’에서 광화문 광장이 그러했듯이, 우리 역사에서 ‘민’이 스스로를 ‘통치 대상’으로부터 역사의 주인으로 자기 정체성의 혁명을 진척시킨 곳도 ‘역사의 현장’이었다. 우리가 아직도 ‘민란’이라고, 때로는 ‘반란’이라고 부르는, 조선 왕조 시대 내내  진행되었던 사건들은 그때 그때 민들이 자기의 요구를 관철시켜 나가는 한편으로 동양의 전통에서 보더라도 수천 년의 내력을 가진 ‘민유방본’ 내지 ‘대동사상’의 현실화를 위해 요구하고, 투쟁하고, 때로는 살신성인(殺身成仁)하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그 자체로 그 현장은 ‘민’의 학습의 현장이었다. 


그 속에서 ‘민본’ 의식은 진화를 거듭하였다. 애초에는 통치 집단이 통치를 정당화하는 레토릭에 불과했던 ‘민본’은 조선 후기에 이르면 ‘민회(民會)’라는, 아래로부터의 의사 관철 기구로 구체화되었다. 그 무렵 임금 스스로 실제 신천/실현의 목표로서의 ‘민국(民國)’과 ‘민본(民本)’을 표방하기에까지 이른다. 이런 임금은 이제 ‘타도’나 ‘전복’의 대상이 아니라 ‘존왕(尊王)’의 대상이 되어, 민(民)들은 무능부패하고 탐욕이기하는 양반 지배층을 배제/우회하여 ‘존왕’의 주역임을 자임하고 나아가 ‘공화’를 지향하기에까지 이른 것이다. 그것이 동학농민혁명(전쟁)의 내면의 흐름이다. 


우리 역사를 이러한 시각으로 바라볼 때, 비로소 우리는 최근의 일련의 사건들의 의미와 근거(도대체 이 일이 어떻게 가능했는지)를 좀 더 뚜렷이 알 수 있고, 또한 앞으로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분명히 설명할 수 있게 된다. 즉, 촛불혁명의 광장에서 울려 퍼졌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구호는 120여 년 전 동학농민들이 내세웠던 “보국안민 척양척왜”의 현대적 계승이며, 다시 말해서 그 구호는 이미 선취(先取)된 가치를 재확인하는 과정이다. 


나아가, 한반도 차원의 공화국의 실현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으로 한정되지 않고, 남과 북의 ‘통일’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최근의 종전선언 추진, 평화협정 전망의 정세변화는 감격적인 데가 있다. 이것이야말로, 100년, 혹은 그보다 훨씬 이른 시기부터 지향해 왔던 ‘민유방본의 대동세상’을 향해 가는 ‘오래된 혁명’의 노래이다.  

5. 한반도 운전자론의 혁명적 의의 재고 


이런 상황을, 풍물꾼들은 "아싸, 가오리!"라고 하였다.


한반도의 원주민(한민족)이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이룩하는 데 가장 장애가 되는 것은 무엇일까? 오늘의 이 사변이 전개되기 전에 그것은 주변 4대 강국 중 어느 나라도 ‘진정으로 한반도에서의 통일’을 원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는 것이 그동안 우리들의 상식이었다. 


물론 통일을 가로막는 이데올로기 장벽, 특히 극심한 남남갈등의 장벽 속에서 극단적인 ‘신(新) 북진통일–체제통일’을 부르짖는 극우보수세력의 존재도 통일의 걸림돌로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존재이지만, 그것은 어쨌든 ‘우리’ 내부의 일로서, 우리가 좌우할 문제이다. 


그러나 4대강국의 입장은 단순히 남북이 분단되던 때로 돌아가서 바로잡을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또한 대부분 우리 손을 벗어난, ‘자기들의 입장’에 따른 문제로서 우리의 노력이 미치는 데 한계가 있는 문제라는 점에서 그 어려움의 크기가 전자에 비견할 수준이 아니었다. 4대 강국이 한반도 통일을 바라보는 관점, 그리고 한반도 내의 남과 북 두 정권을 ‘취급’하는 관점은 우리와는 판이하게 다르게, 동북아시아의 현재와 미래의 역학관계에 관련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한반도 운전자론’의 성취과정을 보면, 어쩌면 이것은 그동안 그 어떤 통일론에서도 ‘가능태로서는 상상되지 못했던’ 방식과 속도로 진척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놀랍고 감격스럽기까지 하다. 예컨대, 북한 정권이 일본을 다루는 방식을 보면, 박정희 정권의 한일국교정상화 과정에서, 그리고 위안부 문제에 대하 소위 ‘합의’ 과정에서 보여주었던 정의로운 한일관계의 빚까지 통쾌하게 갚아 나가는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단지 일본에게 원수를 갚는 식의 ‘감정적인 문제’가 아니라, 수백 년 동안 ‘지정학적인’ 처지를 ‘불리하고, 부정적으로만 실현시켜 온’ 한반도의 위정자와 백성(한민족)들이 비로소 자주 독립된 국가[남과 북]로서의 위상을 되찾아 가고 있으며, 실천적으로 실현해 가고 있는 증좌로 볼 수 있는 것이다. 


6. 한반도의 민주공화국 – 오래된 미래의 역사 


김홍규 작 "새 날을 여는 사람들" (동학혁명기념관 소장)


『근대와 民-인간존중·신분해방 사상이 만든 민주공화국』의 내용에 담긴 담론들, 즉 아래로부터의 자생적인 근대화론과 자생적인 ‘민주공화국’ 지향 등의 이론은 천지돌출로 하루아침에 주장되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2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적지 않은 학자들이 철옹성 같던 식민사관을 하나씩 허물어뜨리며 진전해온 결과물이다.


그리고 그 성과물이 이렇게 ‘민주공화국’이 실질적으로 제자리를 찾아나가는 이 시대에 빛을 보게 된다는 것도 예사로운 일은 아닐 듯하다. 그만큼, 현재 한반도에서 펼쳐지는 사변들은 단지 ‘최순실-박근혜’와 같은 돌연변이적 위정자의 실정(失政)에 따른 반사 이익이 아니라, 오랜 역사적 연원(淵源)을 갖고 있는 운동의 한 결실임이 분명하다. 


바로 그러므로, 한반도의 근대사는 지금부터 새롭게, 처음으로 정당하게, 미래를 향해 나아갈 것이다. 다만, 그 미래는 이 땅의 ‘민’들이 이미 오래전에 성취하였던 ‘오래된 미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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