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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Aug 15. 2018

법, 평화를 위해 열일 하기

-새책, 《평화와 법》(이효원, 모시는사람들)

도서명 : 평화와 법

지은이 : 이효원

출판사 : 도서출판 모시는사람들

시리즈 :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평화교실 시리즈 


법이 열일 해야 하는 시대에, 평화와 법을 생각하다 


법과 사법체계, 말썽의 중심에 서다 

‘법’이 말썽이다. 입법과 사법을 망라해서다. 우리가 알기로, 법은 이 세계에서 ‘말썽’이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하고, 일어난 말썽을 중재하거나 그 위반자를 벌주어, 세상 사람들이 정의롭게 살아가도록 하는 것인데, 오늘날 세상이 하 수상하니, ‘법조차’ 말썽을 일으키는 데 한몫을 하고야 만다. 법률 조항이 시대의 흐름을 미처 반영하지 못한 까닭도 있겠으나, 사람들이 분노하는 까닭은 그 법을 다루는 담당자들의 부정의(不正義)함 때문이다. 


최후의 보루가 무너지면, 무엇이 남나?

무엇보다 최근의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례로부터 불거진 법조계의 민낯은 많은 사람들에게 분노를 넘어선 허탈감을 자아낸다. 우리가 딛고 있는 땅의 굳건함을 믿고 살아가듯이, 최후의 보루처럼 생각하는 삼권분립이라는 민주주의의 기초원칙과 만인 앞에 평등하리라는 법에 대한 믿음이 여지없이 허물어지고, 도용된 현장들을 목격하였기 때문이다. 나름 법을 신뢰하며 살아가던 사람(백성-시민)의 마음이 되려 부끄러워지고, 민망함을 넘어 파괴적인 반발심마저 치밀어 오르는 걸 억누르느라 속이 썩어 문드러진다. 


법이 문제냐, 법을 다루는 사람이 문제냐?

그러고 보면, 법은 야누스의 얼굴처럼 양면성을 갖는 게 분명하다. 지난 해 2017년 3월 10일, 박근혜 당시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인용되고, 불과 두 달 후인 5월 9일 대통령 선거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기까지의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살아 있는 헌법’을 목격할 수 있었다. 2004년 5월 14일 노무현 당시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기각 결정이 내려질 때까지, ‘폭력적인 헌법’의 위력을 실감하며 가슴 졸이던 것과 대조적이지만, ‘헌법’의 존재감을 실감한다는 점에서는 매한가지다. 


법은 힘 있고 돈 있는 사람 편일 수밖에 없나?

얼핏 보기에, 한 나라의 최고 권력자가 ‘법의 심판’을 받아 감옥에 갇혀 있는 모양을 생각하면, 제법 정의로운 법치주의 인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여전히 “법대로!”를 소리 높여 외치는 사람들은 의외로 법의 보호를 받아야 할 힘없고 억울한 서민(시민), 즉 (헌)법을 제정한 ‘국민 일반’이 아니라, 법의 견제와 심판을 받아야 할 권력자/부자/지식인(중의 범법자)인 경우가 많은 것이 오늘 우리가 처해 있는 법치주의의 현실이다. 여전히 ‘법’을, 오히려 방패삼아 정의와 평화를 농단하는 사람들은 끄떡없이 살아가는 세상이다. “하늘 그물은 넓고도 넓어서, 허술한 듯 하지만 새어나가는 것이 없다(天網恢恢 疎而不漏)”는 고사하고, “법망은 허술하여,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法網疎疎 耳鈴鼻鈴)”을 실감하는 것도 주로 백성(시민)의 몫이다. 법이 ‘권력’과 ‘금력’과 ‘폭력’으로부터 백성(시민)을 보호하는 것으로 포장되어 있으나, 실제 세계에서는 권력과 재력과 폭력의 위력을 보장하는 기제로 악용되는 사례가, 그 빈도는 많지 않을지라도, 그에 따르는 상대적 박탈감은 그 무엇보다도 크다. 


법치주의여,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라!

법치주의란 법의 심판을 받는 사람들(국민)이 아니라 ‘다스리는 사람들’에게 우선 적용되어야 하는 원칙이라는 것도, 알기는 하지만, 실감되지 않는 것이 법 앞에 선 백성(시민)들의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발로차고 두들겨 패면서 패악을 저지르는 부모임에도, 그래도 부모라고 매달리는 어린아이처럼, 기댈 데 없는 사람들은 법이 규율과 권력, 강제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유와 평등, 평화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라고 믿고, 법에 의지하고, 법에 호소한다. 

틀린 생각도 아니다. 다만, 법은 법 자체로 평등과 정의, 자유의 보루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작동하도록 강제하는 백성-시민들의 힘이 살아 있을 때만 우리가 아는 그 법으로 작동한다. 국정농단 세력을 탄핵한 근거는 '헌법' 조항 자체가 아니라, 그 사문화된 조항이 작동하도록 두들기고 두들긴 촛불혁명의 그 함성이었음을 새삼스럽게 확인하는 순간이다. 결국 법은 법 조항 속에 있지 않고, 사람 속에 있다는 것을 우리는 깨닫고,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헌법 생장소멸의 정점에서 다음을 바라본다!

현재의 이 ‘혼돈’을 다른 관점에서 볼 수도 있다. 우리는 두 번의 대통령 탄핵(한 번의 기각, 한 번의 인용)을 거치면서 현행 헌법의 위력의 극치를 실감하였다. 현재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온갖 갈등들은 이제 기존의 법이 그 마지막 역할을 수행하고, 대체로 한계만을 노정할 일만 남았음을 보여주는 생생한 현장이라 할 수 있다. 얼마 전 ‘미투’ 운동의 상징적인 첫 재판에서 “무죄!” 선고가 내려진 장면이 그 절정이라 할 수 있다(다수 법률가들이 현행 법률 체계에서는 ‘무죄 선고’가 내려질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이야기한다-언론 보도 참조). 


헌법 제정 100주년

대한민국 제헌헌법 - 대한민국임시헌장

이런 때에 마침, 내년은 우리에게 헌법이 생긴 지 100년이 되는 해이다. 1948년 7월 제헌국회가 제헌헌법을 제정하였다고 말하지만, 이 말은 ‘건국절’ 논란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임시정부의 임시헌장으로 소급하여 적용해야 한다. 그렇게 우리에게 헌법이 생긴 지 100년이 되었으니, 이제야말로, “법대로” 살아가면, 다시 말해 ‘법을 믿고, 법에 의지하며, 법에 따라’ 살아가면 행복과 평화가 보장되는 세상이 우리 삶의 '기본'이 될 때가 되지 않았는가? 작년에 “87년 체제를 반영하고 있는 현행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으나, 역시 현행 선거법의 산물인 현재의 국회 내 역학구도와 저급한 정치적 고려 때문에 좌절되고 말았다. 그러나 위기는 곧 기회라고, 이제야말로, 지난 30년을 넘어 70년(48년 기준)을 넘어, 다시 100년을 넘어(19년 기준)서는 새로운 헌법을 구상할 수도 있는 기회가 우리 앞에 주어지고 있다. 


법이 열일 해야 할 때다!

그런 ‘거대담론’ 말고도, 지금부터 몇 년간이 우리나라에서는 그야말로 (헌)법이 열일을 해야 할 때다. “개헌”이라는 역사적 과제에서부터, 통일헌법의 비전을 마련하는 일, 적폐청산 이후의 신 사회질서를 제도화하는 일, ‘민주화와 산업화’ 이후를 반영하는 헌법-법률 체계의 구축, 미투 운동으로 촉발된 현재의 신 사회구조 및 그 미래를 반영하는 일도 법률로서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모든 일들은 ‘평화’와 ‘행복’이라는 “헌법적 가치” 좀더 잘 수행하고 시행하는 일이어야 한다. 


평화와 법, 서로에게 의미가 되다

이 책 “평화와 법”은 현행 우리 헌법의 가장 중심 가치가 “평화”라는 점을 기반으로 하고, 현행 헌법 속에서 규정되고 있는 ‘평화’의 내용들을 담담하게 논구해 나간다. 이를 위해서 ‘헌법(법)’이라는 것 자체가 애초에 무엇인지, 그리고 또 ‘평화’란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제1장, 제2장)을 묻고, 이어 평화와 법이 어떻게 서로에게 생명을 불어 넣어 주는지를 천착한다(3장). 그리고 헌법을 매개로 성립하고 있는 대한민국이 국제사회 속에서 평화유지에 기여하며, 특히 남북이 분단된 현실 속에서 어떻게 평화롭게 통일을 지향하며, 더 큰/더 안정된 평화체제로서의 통일 한반도로 나아가는지를 이야기한다(4장, 5장). 그리고 나아가 (지구)환경 속에서 그리고 인간과 인간의 관계 속에서 평화롭게 헌법이 보호하는 권리를 누리고 행복을 추구해 나가는지(6장, 7장)를 이야기한다. 


지금이야말로, 정의와 평화와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은 모름지기, 법을 공부하고, 그 위력을 배가시켜 나가야 할 일이다. 새 하늘 새 땅에 새로운 나라 100년이 새롭게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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