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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Jun 21. 2018

판문점 선언 이후 종교계의 역할

[개벽신문 제74호, 2018년 5월호] 길모퉁이

윤창원 | 서울디지털대 교수,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


남북 정상은 4.27 ‘판문점 선언’을 통해 새로운 평화시대의 개막을 선언하고, 남북관계의 전면적·획기적 발전, 군사적 긴장완화와 상호불가침,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및 평화체제 구축 등에 합의하였다. 특히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핵 없는 한반도를 구체적, 명시적으로 확인한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또한 교류협력 활성화에 합의함으로써, 중단되었던 민간교류를 빠른 속도로 회복하고 당국 간 신뢰 증진에도 기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앞으로의 과제는 남북 간에 합의한 내용은 반드시 지킨다는 원칙을 확립하고 이를 보장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여 구체적인 실천으로 이행해 나가는 일이다. 6.15와 10.4선언의 명시적 내용이 실현되도록 조치를 시행하고 아울러 판문점 선언에 대한 실질적 실행 동력을 지속적으로 확보하는 차원에서, 국민 여론수렴 및 공감대 확산, ‘통일국민협약’을 비롯한 사회적 대화를 통해 판문점 선언에 대한 국민들과 종교계의 의견 청취 및 공감대 확산을 해 가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종교계가 그동안 단절된 민간교류의 문을 열어주고 인도적 지원 사업을 중심으로 진행된 교류사업의 범위와 내용도 한 단계 성숙시켜, 개발 협력 사업을 중심으로 시행하고 통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생겨날 갈등과 다툼 속에서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할 것이다. 



독일통일을 ‘20세기의 기적’이라 한다면, 우리 민족의 숙원인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이루어 한반도 평화와 번영의 21세기의 기적을 창출하는 데 종교계가 적극 기여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특히 급속하게 전개되는 통일 환경에 대비하기 위하여 종교계도 통일을 준비하는 중장기 전략 수립이 필요하므로 이에 대한 인식의 틀과 실천적 영역 및 사업을 청사진으로 제시해나가야 할 것이다. 


현재 각 종단별로 구성되어 있는 교화, 선교, 포교기관이 대북 인도적 지원단체의 속성과 접근방식을 가지고 있지만, 향후 전 사회적인 통일 준비에 부응하도록 성격 전환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 과도한 선교 경쟁은 자칫 종교가 갈등을 야기하는 집단으로 비춰져 종교계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도를 추락시킬 수 있다. 

이는 독일 통일과정을 면밀히 들여다보면 시사하는 바가 크다.


독일 통일의 현재를 단어로 표현하면 정치, 경제적 통합의 성공과 사회, 문화적 통합의 실패로 이야기할 수 있다. 오늘날 통일독일이 겪고 있는 문화적 갈등과 사회적 분열은 우리에게 한반도 통일문제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경제적 격차의 해소만큼 중요한 것이 사회문화적 갈등을 완화시키는 것이므로 통일에 대한 다양한 상상력을 통해 기존의 통일에 대한 사고를 넘어설 필요가 있다. 민족주의 담론만으로 통일을 바라보는 시대는 지나갔다. 다양한 가치와 이념의 공존 속에, 대화하며 공동의 가치와 공동체의 미래를 모색하는 열린 사고로 나아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통일 과정과 이후 발생하는 실질적인 갈등은 구체적인 일상생활에서 나타난다. 이것이 문화적 상호이해를 위한 세심한 관심과 노력이 필요한 이유이다. 따라서 한반도의 통일과정에서 예상되는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세대, 가족, 성별, 계층, 지역 등의 차이에 따른 사회문화갈등의 요소에 대한 충분한 논의와 공감이 필요하다.


통일 직후 동독교회는 인민교회(Volkskirche)에서 서독의 국가교회(Staatskirche)로 귀속되었다. 이와 더불어 동독교회의 정치적 역할도 종언을 고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동독혁명을 주도하였던 많은 교회 인사들이 현실정치에 직접 뛰어들게 되었다. 국회의장인 볼프강 티어제 , 브란덴부르크 주지사 만프레드 슈톨페 등은 그 대표적인 인물들이라 할 수 있다.


통일 이후 교회가 당면한 심각한 문제는 종교가 동독주민들의 생활에 과거만큼 중요성을 지니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서독에서는 주민의 15%만이 무종교라고 답한 반면 동독지역에서는 주민의 67%가 무종교라고 답했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이러한 상황을 뚜렷이 보여준다. 이는 서독지역에서는 교회 구성원이라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인 반면, 동독지역에서는 주민들이 종교를 갖지 않는 것이 더 일반적 현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동독 주민들이 심각한 갈등과 환멸을 겪고 있는 통일 후의 상황에서 동독 주민들이 교회에서 도피적 위안을 찾지는 않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다. 동독주민들이 교회구성원이 되기를 거부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교회가 현 시대에 요청되는 주민들의 요구를 수용할 능력을 결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통일 독일의 사례는 종교(교회)가 사회적으로 중요한 위상과 기능을 지니고 있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즉 통일 이후의 ‘공백기’를 겪은 후 동독 교회가 개인의 구원 차원이 아닌 사회, 문화적인 차원으로 좀더 적극적으로 나아감으로써 새로운 사명을 찾고 있는 것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기독교와 가톨릭 산하단체인 <우리가 교회>와 <아래로부터의 교회>에서 동독 지역에서 소외당한 계층들을 위해 펴고 있는 노력은 주목할 가치가 있다. 이러한 독일의 사례를 깊이 연구하여 통일에 대비한 종교계의 역할을 재정립하는 것도 지금 이 시기에 필요할 것이다. 과도한 선교 경쟁은 결국 종교로 등을 돌리는 결과를 만들어 낸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판문점 선언 이후 종교계의 역할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남북 종교 교류의 올바른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북한 종교에 대한 현실적 이해와 합리적 접근이 요구된다. 


여기에 필요한 것이 접근과 대화 주체인 종교계의 인식 전환이다. 북한 종교가 사회주의체제 하에서 불가피하게 그 존재양식을 구속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 이런 모습이 외부로는 부자유스럽고 자율성이 배제된 것으로 비쳐지지만, 사회주의형 종교 내지는 국가지배형 종교로서의 존재 근거와 자기 역할을 지니면서 기능하고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긍정할 필요가 있다. 상대방에 대한 인정과 온전한 인식이 신뢰 형성과 대화로 나아가는 전제이어야 한다.


둘째, 현재의 남북 종교 교류는 인도적 지원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이 사실이다. 


북한의 현 실정에 비추어 볼 때 인도적 지원은 단기간에 종료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므로 구호, 재건, 발전의 단계로 진전시켜 나가는 연관성과 연속성을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각 종단의 대북 인도적 지원 사업이 좀더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계획에 의해 추진될 수 있도록 목표를 조정하고, 종단 간의 연대 협력을 통한 효과 극대화를 위한 방안 모색에도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종교의 속성에 비추어 볼 때 북한 교화, 선교, 포교의 새로운 진출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어야 추동력이 발휘될 수 있겠지만, 대북 인도적 지원을 통한 남북 화해의 도구 역할에 만족하는 자세를 견지하는 자제력이 요구된다. 사실은 이런 자제력이 장기적인 측면에서는 오히려 그 이상의 성과를 가져오게 될 것으로 충분히 미루어 짐작이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다양한 가치와 이념의 공존을 위한 노력을 종교계가 해 나가야 한다. 


남남 간의 다양한 갈등과 통일과정에서 야기되는 소모성 논쟁과 대립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을 고심할 필요가 있다. 특히 6·15공동선언 이후 2001년부터 전개된 남북 민간 교류에 있어 종교계의 역할은 두드러진다. 이는 다른 분야에 비해 그 이전부터 각 종단이 국내외적으로 교류를 지속해 오고 있었고, 민간 영역에서도 종교지도자들이 일정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북관계에서 남과 북의 종교가 명실상부하게 ‘평화의 도구’가 될 수 있다면, 뿌리 깊은 불신의 늪을 빠져 나와 평화적 공존공영을 향한 민족사의 새 지평을 열어 나가는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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