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독서-0039] [개벽파선언]
생태적 사유는 한사코 인간의 능력을 축소시키려 듭니다. 포스트 휴먼, 만물 가운데 하나로 강등시키고자 합니다. 그러나 지구 위에 등장한 그 어떠한 생명도 지구와 우주의 행방에 영향을 미칠 만큼 능력을 확보하지는 못했습니다. 실로 획기적인 사태입니다. 가히 유례없는 사건입니다. 선천개벽 창세기(홀로세)●와 후천개벽 인류세의 결정적인 차이입니다. 신의 뜻이나 자연의 법칙에 버금갈 만큼 인간의 역량이 증대된 것입니다. 45억 년 지구사에서 처음으로 인류의 의지가 깃든 행동이 지구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 의지는 자연의 힘(force)과는 달리 억제되고 절제될 수도 있는 힘(power)이라는 점에서 절묘한 구석이 있습니다. 즉 서구의 휴머니즘은 인간 중심주의여서 문제인 것이 아니라, 충분히 인간 중심적이지 않아서 문제인 것입니다.
● Holocene. 지질 시대 중 마지막 시대로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지질 시대. 대빙하(大氷河)가 녹은 다음에 온 후빙하기(後氷河期) 시대로 약 1만 3천 년 전부터 현재까지.
지구는 갈수록 인류의 이 집합적 의지에 영향을 받을 것입니다. 이엄청난 힘의 행사 여부를 선택하는 인간의 마음가짐(=정신개벽)이야말로 인류를 고유한 생명체로 우뚝 서게 합니다. 지구를 변화시키는 인간의 고유한 힘이 절정에 치달은 바로 이 순간에 인류의 고유한 특성을 외면하는 생태론이 갑갑하고 어색한 까닭입니다. 포스트휴먼을 궁리할 것이 아니라 네오휴먼을 연마해야 합니다. 그야말로 신인간(新人間)=신인간(神人間)이 도래하는 것입니다. 경쾌한 유발 하라리를● 따라 라틴어로는 호모 데우스라● 하겠습니다. 묵직한 의암 손병희에● 기대어 한자로 풀면 인내천(人乃天)이 가장 적절합니다. 사람이 곧 하늘이며, 사람이 즉 한울인 것입니다.
160년 전 노이무공(勞而無功), 아무리 노력해도 헛되었노라, 하늘의 탄식을 들은 이가 최제우입●니다. 유학의 천인합일에서 동학의 천인 합작으로 도약하는 비상한 순간이었습니다. 하늘과 인간이 합작(天人相餘)하는 인류세의 비전을 이미 내장하고 있던 것입니다. 제가 1848년 <공산당선언>이 20세기를 추동했다면, 1860년『 동경대전』은 21세기를 격동시킬 것이라고 호언하고 다니는 연유입니다. ‘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턱없이 모자란 발상입니다. 만인과 만물이 얽히고설키는 21세기, 경천(敬天)과 경물(敬物)과 경인(敬人)의 삼경사상이야말로 자유 - 평등 - 형제애를 능가하는 시대정신을 담지하고 있습니다. 고작 ‘ 자유 - 평등 - 형제애’라고 해 보았자 ‘ 경인’ 단 두 글자로 족합니다.
그러함에도 동학과 개벽은 여태 수줍습니다. 지난해 11월 토론토에 다녀왔습니다. 세계종교의회●의 말석을 지켰습니다. 겨우 한국과 한반도 평화를 논의하는 자리에서만 동학과 개벽 얘기가 나지막이 오고갔습니다. 한국 연구자와 한국의 종교인들만 단출하게 모여 있었습니다. 크게 안타까웠습니다. 깊이 아쉬웠습니다. 딱하다는 생각마저 일어났습니다. 애가 탔습니다. 속이 쓰렸습니다. 입맛이 쓰디썼습니다. 세계종교의회 행사를 맞춤하여 토론토 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회 주제가 바로 ‘ 인류세’였습니다. 전시장을 가득 메운 다인종, 다종교, 다국적 인류를 지그시 바라보며 “ 신동학이 인류세의 학문이요, 또 다시 개벽이 인류세의 시대정신이라.” 전도하고 싶었습니다.
● Yuval Noah Harari, 1976~
● Homo Deus. ‘신(神)이 된 인간’. 이스라엘 태생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가 ‘호모 사피엔스’인 현재 인류가 ‘호모 데우스’로 진화해 간다는 뜻으로 쓴 책의 제목에서 유래한다.
● 孫秉熙, 義菴, 1861~1922
● 崔濟愚, 水雲, 1824~1864
●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큰, 각 종교의 신앙인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대회. 최초 대회는 1893년 미국 시카고에서 개최되었으며, 20세기의 격동기 동안 개최되지 못하다가, 1993년 시카고에서 재개되어 현재까지 5년마다 열리고 있다. 2018년에는 캐나다 토론토에서 각국의 대표적 종교 지도자와 영성 지도자, 종교학자, NGO 및 평화활동가 등 1만여 명이 참가해 인류 평화 공동체를 주제로한 발표와 세미나를 진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