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독서-0038] [호모커넥투스이야기(6)]
세계는 지금 디지털 기술을 통해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물, 사물과 사물,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상호 연결되어 새로운 차원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렇게 상호 연결된 초연결사회(hyperconnected society)의 인간을 우리는 ‘호모커넥투스(Homo Connectus)’라고 부른다. 우리는 인간을 지칭하는 용어들을 계속해서 만들어내고 있고, 또 그 용어를 통해서 우리의 정체성을 확인한다.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지혜의 인간(현생인류)), 호모 폴리티쿠스(Homo Politicus, 정치적 인간), 호모 에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 경제적 인간), 호모 이그니스(Homo Ignis, 불의 인간), 호모 파베르(Homo Faber, 도구적 인간), 호모 루덴스(Homo Ludens, 놀이하는 인간), 호모 심비우스(Homo Symbious, 공생하는 인간), 호모 레시프로쿠스(Homo Reciprocus, 상호 의존하는 인간), 호모 노에티쿠스(Homo Noeticus, 사랑의 인간), 호모 유니버살리스(Homo Universalis, 우주적 인간), 호모 엠파티쿠스(Homo Empathicus, 공감하는 인간) 등이 그것이다. 이 용어들은 각각 인간의 다양한 특징적인 측면들을 표상하고 있다.
이 중에서도 우리는 특히 호모커넥투스, 즉 ‘초연결의 인간’에 주목한다. 왜냐하면 연결성(connectivity)은 인간의 본질적 특성의 바탕을 이루는 개념인 동시에 총합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호모커넥투스는 연결성이 핵심인 까닭에 호모와 커넥투스를 분리시키지 않고 연결하여 ‘호모커넥투스’라고 쓰기로 한다. 왜 사람을 ‘인(人)’이라고 하지 않고 ‘인간(人間)’이라고 하는가. ‘간(間)’은 ‘사이’라는 뜻이다. 이는 곧 인간이 단순히 개인적 존재이기에 앞서 관계적 존재, 즉 연결된 존재임을 나타낸 것이다. 고대 신화 속의 뱀, 우로보로스(Ouroboros)가 제 꼬리를 물고 돌아가는 원형의 형상 역시 시작과 끝, 탄생과 죽음의 경계가 없는 영원한 생명의 순환, 즉 연결성을 상징하는 것이다.
사람이 죽으면 ‘돌아가셨다’고 하는 것도 삶과 죽음의 연결성을 함축한 것이다. 만물의 상호연결성(interconnectedness)을 인지함으로써 인간이 ‘자기조화(self-consistency)’를 이룰 수 있을 때 공동체는 생명력으로 충만하게 된다. 그러나 ‘자기조화’가 깨어진 공동체는 생명력이 고갈된 고목(古木)과도 같다.
고목에 피는 꽃은 곰팡이뿐이다.
호모커넥투스의 본질은 연결성이다. 연결성은 곧 소통성이므로 ‘하나됨(oneness)’의 근간을 이루는 것이다. 오늘날 4차 산업혁명의 기반이 연결(connection)이다 보니, 우리는 인간의 새로운 정체성을 표현하기 위해 호모커넥투스라는 신조어를 사용한다. 그러나 기억하라. 우리는 단 한순간도 연결되지 않은 적이 없었다! 다만 자각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이미 완전히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본래 호모커넥투스다! 왜냐하면 우주의 본질은 생명이고, 우리 모두는 ‘불가분의 전체성(undivided wholeness)’인 생명이라는 피륙의 한 올이기 때문이다. 우주는 넘실거리는 파동의 대양[氣海]―교향곡 그 자체일 뿐, 작곡한 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호모커넥투스의 진실이다. 이러한 호모커넥투스의 진실은 양자역학(quantum mechanics)으로 대표되는 포스트 물질주의 과학에서 재발견되고 있다.
- 최민자, [호모커넥투스: 초연결세계와 신인류의 연금술적 공생]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