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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Jun 25. 2021

다시개벽 제4호(가을호) 소식

[개벽통문-185]

[다시개벽] 제4호(가을호) 특집의 주제는 ‘아시안 퓨처리즘’입니다.


‘아시안 퓨처리즘’은 ‘우리 스스로 우리의 미래를 이야기하자’는 취지에서 기획되었습니다. 시간은 객관적이지 않습니다. 발터 벤야민이 그의 [역사 철학 테제]에서 지적하였듯, 억압하는 자들에게 역사는 직선적으로 진보하는 과정이지만 억압받는 자들에게 역사는 그들의 희망이 좌절되어 묻혀 있는 퇴적층과 같습니다. 어쩌면 시간을 과거-현재-미래로 구분하는 유클리드적 시간관 자체가 유럽 중심적 시간관 또는 제국주의적 시간관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아프리카 노예들의 시간은 그들이 실려 가던 배 위에서 형성되었듯, 소수자들에게는 그들 고유의 시간이 있으며 그들 고유의 희망이 담긴 미래가 있을 것입니다. ‘누가 말하는 미래인가’라는 질문은 ‘누구를 위한 미래인가’라는 질문과 상통하기 때문입니다. (원고청탁서 중에서) 


누가 말하는 미래인가?


몇 년 전 북한의 김정은이 북한의 표준시간을 한반도를 지나는 경도를 기준으로 변경하여 사용하다가,원할한 남-북 교류를 위하여 대한민국의 표준시간과 일치시키는 것이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알다시피 우리나라는 동경 124도~132도 사이에 위치하지만, 일본 열도 위를 지나는 동경135도를 표준시간의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 표준 시간이란 근대 초기 '제국주의의 세계화' 과정과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아는 사실입니다. 그렇게 놓고 보면, 올해를 서기 2021년이라고 정한 것 또한, 서구 중심의 시간의 틀 속에 우리 스스로가 들어와 있음을 말해 줍니다. 올해는 '단기로는 4354년'이며, 천도교의 '포덕연기'로는 162년입니다. 북한에서는 1912년 김일성의 탄생연도를 '주체 1년'으로 삼는 '주체연호'를 쓰고 있지요. 이처럼, 시간[시-일-월-년]을 정하는 것은 한 집단의 정체성과 밀접하게 관련되며, 어쩌면 개인에게도 자기만의 시간 기준이 있는가 없는가가 그 사람의 삶의 중심성 유무를 판가름하는 기준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시안퓨처리즘'이라는 말은 아마도 [다시개벽] 제4호에서 처음으로 쓰는 말입니다. 이미 세계적으로는 '아프로 퓨처리즘'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고는 있습니다.


아프로퓨처리즘은 아프리카(afro)와 미래주의(futurism)의 합성어로, 아프리카 디아스포라의 문화, 역사와 선진 기술의 발전을 융합시킨 문화 양식을 말한다. SF(Science Fiction ・공상과학)와 테크노컬처(technoculture)를 통해 백인 남성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 기존의 SF를 거부하고 흑인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미래관을 제시한다. 아프로퓨처리즘은 1950년대부터 다양한 흑인 예술가들의 작품 속에 공통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경향이다. 아프로퓨처리즘을 대중적으로 각인시킨 가장 최근 사례는 2018년 개봉한 마블의 슈퍼히어로 영화 ‘블랙 팬서’다. 가상의 아프리카 국가 와칸다를 배경으로 한 ‘블랙 팬서’는 마블의 슈퍼히어로 영화로는 처음으로 미국 아카데미영화상에서 상(미술상, 음악상)을 받았다. 전 세계에서 13억달러의 흥행 수익을 거두기도 했다. 대중음악에서는 가수겸 배우로 활동하고 있는 자넬 모네가 아프로퓨처리즘을 대표하는 인물로 꼽힌다. [에듀윌 시사상식 사전 -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201XXX1909097]


이와 구별되는 '아시안퓨처리즘'을 우리 스스로 정의해 나가는 작업은 일찍이 1백년 전 [개벽]을 창간하던 그 정신, 우리 스스로 '다시개벽'의 세상을 기획하고 추구한다는 정신을 여실히 보여주는, 가슴 두근대는, 빛나는, 감격스러운 도전이라 할 것입니다. 

'아시안 퓨처리즘'은 이러한 기본 인식 위에, "아시아인의 고유한 시간 감각"으로 미래를 그려나가는 문제를 다룰 것으로 기대됩니다. [이 글을 쓰는 저는, 다시개벽 편집위원들의 기획에 참여/관여하지 않습니다 ^^]. 기대되는 [다시개벽] 4호 특집의 내용을 짐작해 볼 수 있는 글은 이미 [다시개벽] 2호에도 게재된바 있습니다. 


다음은 [다시개벽] 제2호 유상근 님의 "미래로서의 동양, 동양의 미래: 미국 사이언스픽션과 테크노-오리엔탈리즘"의 일부(29~32쪽)입니다. 


테크노-오리엔탈리즘의 관점에서 재현된 미 대중문화 속 동양인 인물들은 크게 (1) 로봇인가 인간인가, 그리고 더 나아가 (2) 인간으로 등장하는 인물들 역시 과학자 혹은 기술자인가, 아니면 (3) 작품의 비현실성(unreality)을 강조하기 위한 도구로서의 인물인가에 따라 세 부류로 구분될 수 있다. 

먼저 로봇으로 등장하는 동양인 인물들의 예를 보면 〈엑스마키나〉의 쿄코, 〈웨스트월드〉

의 하나료와 무사시, 〈클라우드 아틀라스〉의 손미-451, 〈터미네이터 제네시스〉의 T-1000 등이 이 부류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는데, 이 범주에 속하는 동양인 캐릭터들은 다른 인종의 모습을 한 캐릭터들보다도 더욱 개인성이 결여된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중략)


두 번째 부류인 과학자/기술자 캐릭터 역시 문제적이기는 마찬가지이다. 먼저 예를 들자면, 〈블레이드 러너〉에서 레플리칸트의 인공 눈을 만드는 하니발 츄, 〈매트릭스〉의 이름 없는 열쇠 제작공, 〈설국열차〉에서 문을 열어주는 기술자 남궁민수, 〈로스트 인 스페이스〉의 과학자 와타나베 가족, 〈어벤져스〉의 헬렌 조, 〈빅 히로 식스〉의 히로 하마다가 이 범주에 포함된다고 볼수 있다. 이 캐릭터들은 고도의 기술을 가지고 있는 천재적인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타인과 함께 어울리지 못하는 외골수이자 비위생적이고 전근대적이며 단순 노동집약적인 기술가로, 혹은 본인을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중략)


세 번째는 드라마/영화 속 세계가 미국 시청자들의 (백인들로 가득 찬) 실제 세계와는 다른 대체세계 혹은 사이언스 픽션의 세계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효과로 활용되는 동양인의 표상이다. 〈워킹 데드〉에 등장하는 글렌(GlennRhee), 〈블랙 썸머〉의 경선, 〈러브크래프트 컨츄리〉의 지아와 영자가 이 범주에 포함된다. 이는 이미 가상의 상황이 펼쳐지고 있는 영화 속 세계에 가상성을 추가하는 서사 장치로서 동양인 인물을 활용하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중략)


이와 같이 미 대중문화에서, 특히 사이언스 픽션 장르에서 동양인 인물을 재현하는 방식은 미국의 예술가들과 작가들이 상상하는 미래가 다분히 테크노-오리엔탈리즘적 서사의 영향 하에 놓여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이러한 서사에는 인류의 미래가 곧 동양의 기술과 과학, 동양에서 만들어 낸 로봇과 가상현실, 동양의 소비주의에 의해 지배될 것이며, 이와 더불어 동양의 오래된 정치적 비민주성, 환경적 비위생성, 경제적 전근대성 등과 같은 문제들이 함께 따라올 것이라는 미국 예술가들의 불안감이 스며들어 있다. 그리고 그러한 미래는 미국이 지켜 온 ‘인간성’과 ‘개인성’의 가치를 말살한 디스토피아일 것이라는 이데올로기가 그 서사 속에 잠재해 있다. 미국 대중문화에 의하여 재현되는 인류의/서양의 미래로서의 동양이 결국 디스토피아를 의미한다면, 미래로서의 동양이 아닌 동양의 미래는 어떻게 재현되어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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