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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Jul 16. 2021

다시, 민족개조론을 보다

[개벽통문-187] <개벽강독회>에서 춘원 이광수의 '민족개조론'을 읽다

1. 제32회 "개벽강독회"(0714)는 춘원 이광수의 <민족개조론>을 강독하였습니다.  민족개조론은 <개벽> 1922년 5월호(제23호)에 발표된, 아마도 <개벽> 잡지 사상 최장의 논문으로, 장편 논설(논문)입니다. '민족개조론'은 누구나 한번쯤 들어보았겠지만, 실제로 읽은 사람은 거의 없을, '전설적인 글'일 겁니다. 아마도 '굳이 읽을 필요가 없는 글'이라고 여기기 때문일 겁니다. 오늘날 '서정주'의 시들을 굳이 찾아서 읽으려 하지 않는 이유와도 같은 맥락이겠지요. (필자의 고교시절-1980년대-만 해도 서정주의 시들은 필독-필기-필암의 시들 중 하나였지요.) 이날은 1차로, <민족개조론>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도모하였습니다. 


2. <민족개조론>의 머리말인 변언(弁言)은 이렇습니다.


나는 많은 희망과 끓는 정성으로, 이 글을 조선민족의 장래가 어떠할까, 어찌하면 이 민족을 현재의 쇠퇴(衰頹)에서 건져 행복과 번역의 장래에 인도할까, 하는 것을 생각하는 형제와 자매에게 드립니다.

이 글의 내용인 민족개조의 사상과 계획은 재외 동포 중에서 발생한 것으로서 내 것과 일치하여 마침내 내 일생의 목적을 이루게 된 것이외다.

나는 조선 내에서 이 사상을 처음 전하게 된 것을 무상(無上)한 영광으로 알며, 이 귀한 사상을 선각(先覺)한 위대한 두뇌와 공명(共鳴)한 여러 선배 동지에게 이 기회에 또 한번 존경과 감사를 드립니다.

원컨대 이 사상이 사랑하는 청년 형제자매의 순결한 가슴 속에 깊이 뿌리를 박아 꽃이 피고 열매가 맺혀지이다.

신유(辛酉, 1921) 11월 11일, 태평양회의가 열리는 날에, 춘원(春園) 지(識)


여기서 "재외 동포"라고 하는 것은 '도산 안창호'를 가리키는 것이 분명합니다. 춘원 이광수의 <민족개조론>을 평가함에 있어서, 이 대목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이냐, 일단, 이광수의 말을 인정할 것이냐, 아니면, 이광수가 (도산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거짓말을 했다고 볼 것이냐 하는 것이 중요한 관건 중의 하나가 됩니다.(이를 다룬 논문도 몇 편은 될 듯합니다-전면적으로든 부분적으로든)


3. 알고 있는 바와 같이 민족개조론은 발표 당시부터 많은 지식인들의 극렬한 반발을 불러왔습니다. 이에 관한 논문을 참조하면,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3.1운동에 대한 비하"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춘원은 '3.1운동이 충분히 의식화되지 않은 대중이 일부의 선동에 부화뇌동하는 방식'으로 확장된 것으로 보았습니다. 춘원의 이 논리는 그가 말하고자 하는바 "한민족이 의식적으로나 일상적인 규범, 사회적 제도나 풍토 등 전반적인 면에서 실력을 길러서 명실상부하게 근대적인 독립국가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자기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한 밑밥용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4. <민족개조론>에 대한 학자들(논문)의 평가는 (1) <민족개조론>의 내용은 전혀 문제가 없다. 심지어 이 개조론은 '안창호'의 민족개조론에서 배우거나, 모방한 것이다. 훗날의 그의 '친일행적'과 이 <민족개조론>은 분리해서 보아야 한다. (2) <민족개조론>에서부터 이미 이광수의 친일화의 경향성이 엿보인다. 심지어, 이 논리는 당시 일제의 '식민지 통치의 논리'를 정당화하는 것이다. (3) 이광수의 '민족개조론'은 안창호의 민족개조론을 답습한 것이되, 그 결론은 젼혀 다르다./아니다, 이광수의 '민족개조론'과 안창호의 민족개조론은 내용상으로만 보면 거의 같은 내용이다. 등등의 세세한 내용들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5. 민족개조론에서 주장하는바 '민족 개조'가 필요한 내용은 대체로 다음과 같습니다.


(1) 거짓말과 속이는 행실이 없도록 개조해야 한다. (1) 공상(空想)과 공론(空論)을 하는 태도를 버리고 옳다고 생각되는 것은 '의무'적으로 즉각 실행해야 한다. (3) '표리부동'함이 없이 의리를 지켜 가야 한다. (4) '겁나(怯懦)를 버리고 옳은 일, 작정한 일이거든 만 난을 무릅쓰고 나가는 자'가 되어야 한다. (5) 사회적 공공 의식과 봉사정신을 함양하고 실행해야 한다. (6) 1인1기의 전문기술 습득을 가지도록 해야 한다. (7) 근검절약 정신의 함양해야 한다. (8) 생활환경을 청결하게 해야 한다.


이렇게 보면, 이광수의 주장은 안창호는 물론이고, 당시의 '근대 청년 지식인'들이 누누이 강조하는 '개조'의 덕목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a) 그러나 '같은 말'이라도 누가, 언제, 어떤 맥락에서 하느냐에 따라 문자 그대로,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할 경우도 많습니다. (b) 반대로 이광수의 민족개조론을 시비거는 사람들 중에서는 이광수의 태도가 '계몽적 지식인'으로서 '한민족 전체'를 가르치려 든다는 것을 거론하기도 합니다. '민족개조'의 대상에서 자신은 빠져 있다고 보면서. 그러나 이것은 이야기의 본질을 벗어나서, 화자의 '태도'를 문제삼는 또다른 말꼬리잡기일 수도 있습니다. 


6. 대체로 초기(1970, 80년대?)의 민족개조론 연구가, 민족개조론 발표 당시 극렬한 사회적 반발, 반론 들의 논조에 기초하여 그 흐름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였던 반면에 최근에 들어올수록, 민족개조론을 다양한 각도에서 선입견(?) 없이 재평가 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개벽강독회>에서 민족개조론을 애써서 읽어보자는 취지도 여기에 있습니다.


7. (요지만 말하자면) 필자는 이 민족개조론이 <개벽>에 발표되었다는 점의 의미, <민족개조론>과 <민족적 경륜>(이광수가 '민족개조론'의 논리를 연장, 확장하여 1924년에 동아일보에 연재한 논설)과의 차이, 1920-1922년간에 개벽지에 발표된 '개조'의 논리들, <개벽>지 기자들의 의식 속에서 '개벽'과 '개조'의 차이, 동학-천도교의 '개벽'의 전통적인 의미와 개벽 기자들이 인식하는 '개벽-개조'의 의미의 동일성과 차별성, (민족개조론을 포함한) 개벽-개조 사상의 현재적(미래적) 의의 등을 글로 써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개벽강독회>의 '민족개조론 강독'은 다음에 한 번(?) 더 진행됩니다.


(*이 글은 <지구인문학연구소> '개벽강독회' 코너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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