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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Sep 06. 2021

행성시대의 동학 이야기

[개벽통문-193] 1. 동학-천도교에서 모신다[侍]는 것을 수운 최제우 선생이 직접 "안으로 신령함이 있고, 밖으로 기화함이 있음을 모든 사람이 각각 알아서 옮기지 않는 것"[內有神靈 外有氣化 一世之人 各知不移]으로 풀이하였습니다[수운-동경대전, 논학문]. 


2. 오늘 "행성시대"에 이 말씀의 의미는 이렇게 부연할 수 있습니다. 이 지구행성은 그 자체로 '생명'인바[내유신령], 그 생명은 홀로, 제각각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온통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것[외유기화]을, (사람이라면) 제대로 알아서 그 존재조건을 어기거나 훼손하지 말라[각지불이]는 것입니다. 이걸 일반적인 서술로 하자면, "이 행성의 삶의 길의 진실은 약육강식이나 적자생존이 아니라, 상호부조와 이천식천(以天食天)의 길이다"라고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행성시대"란 말은  Jonathan Blake와 Nils Gilman의 용어입니다.) 


3. 이렇게 보면, 동학-천도교의 지혜(교리)는 전 지구적[=행성] 생명의 근원과 존재 조건, 그리고 존재가치(이유)를 통찰한 지혜이며, 오늘의 우리(인간)이 행복하고 보람찬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원천적인 지혜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실제로, 동학을 천도교라는 이름으로 부르게 되는 1905년 이후 거의 한 세대(30년)에 걸쳐, 동학의 지식인들은 천도교가 오래된 종교의 낡은 틀을 벗어내고, 새로운 시대를 감당할 새로운 종교[新宗敎]로서 탄생하였음을 강조하는 데 정력을 기울였습니다. 


4. 오늘의 '탈(脫)종교 시대'의 관점에서 보면, "새로운 종교임"을 내세우고, 그것을 철학적, 사상적, 정서적으로 논증하려고 했던 100년 전 동학-천도교 지식인들의 노력은 부질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동학-천도교의 지식인들이 스스로 동학-천도교를 "신(新)-종교"라고 했음을 주목해 보면 생각이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당시 신(新)이란 단지 이전에 없던 "새로운" 종교라는 의미로서 '최근의, 생긴 지 얼마 안 되는' 종교라는 의미만이 아니라, "이전에는 '없던' 종교가" '창발된' 것이라는 의미, 이전의 종교와는 질적으로 '다른' 종교라는 의미, 나아가 이전의 관념(종교관)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개벽된 종교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5. 이러한 의미에서 "신(新)종교"란 바로 그 자체로 "개벽종교"라는 의미를 띱니다. 이러한 '개벽종교'의 의미는 동학을 천도교라는 이름으로 부르게 되는 1905년 이후 한 세대에 국한되는 의의만을 갖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새로운 의미, 늘 새로운 의미, 계속해서 새로운 의미, 나날이 새로운 의미를 띠게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순간에도 '신(新)' 종교인 것이 바로 동학-천도교입니다.


[*한국에서 '신(新)종교'란 1860년 동학 창도 이래로 토착적으로 형성된 종교들을 말합니다. 이 신종교는 동학계열, 증산계열, 불교계열, 외래종교계열, 전통종교(무속)계열 등으로 대별됩니다. 한편 최근 들어서 신종교는 생긴지 2, 30년 된 종교를 지칭하기도 하고, 일본에서는 이러한 최신 종교를 신신종교(新新宗敎)로 호칭하기도 합니다. 동학-천도교의 신(新)종교론은 이중 극히 일부만을 공유하며, 전혀 새로운 차원으로 전개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6. 오늘 하루를 시작하는 심고(心告)로, 행성시대에 모신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생각합니다. 생각을 넘어, 어떻게 모시는 삶을 살지를, 이 한 숨과 숨 사이, 한 가고 오는 것 사이, 한 말과 말 사이를 건너갈지를 재사심정하여야겠습니다. 관건은 이것이 한 개인의 통찰이나 자각에 그치지 않고, 어떻게 행성-시민으로서 인간의 삶의 '양식'로 안착되도록 하느냐입니다. 이것은 개인의 자각과 실행, 사회나 국가 제도적 뒷받침이 조화를 이루어야 가능한 일이겠지요. 말하기는 쉬워도, 이루기는 어려운 것이 이 세계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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