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벽통문-195]
1. 일제강점기 최대의 언론운동은 무명회 -> 언론압박탄핵회로 이어진 운동이었습니다. 이 단체의 결성과 운동들은 거의 모두 천도교중앙대교당(수운탄생백주년기념관=개벽사)과 상춘원(기자단합대회) 등 천도교 시설에서 진행되었습니다. 당시 <개벽>은 잡지이면서도 언론(신문지법)으로 인정되었기에, <개벽>의 담당자들(기자들)은 이 무명회-언론압박탄핵회의 핵심 멤버였으며, 그 전개과정의 물적 토대를 제공한 것입니다. <개벽사> 기자들의 이러한 활발한 언론 자유 수호 투쟁이 이듬해(1926) <개벽> 폐간으로 귀결되는 한 단초가 되기도 합니다.
2. 이처럼, 오늘 한국 사회에서 '기자'들의 지위 - 선출되지 않았으되, 거의 무소불위의 취재권력을 행사하는 - 는 기자들 스스로가 강고한 투쟁을 통해서 쟁취한 것이라는 점에서, 소중하기 이를 데 없는 것입니다. 당시 기자대회에 등록한 인원은 전국에서 700명을 상회하는 엄청난 숫자입니다. 이는 언론사별 대표자만이 아니라, 각 언론사 전체 기자와 전국의 지사 직원(기자)들까지 최대한 참여시킨 결과였습니다. 일종의 세 과시를 한 셈이지요. 당연히 이들이 투쟁한 상대는 일제 당국이었습니다.
3. 문제는 오늘날의 기자들의 행태 가운데는 저러한 '한국언론자유수호/확대투쟁'의 역사의 연장선상에 놓을 수 없는 것들이 너무도 많다는 것입니다. '언론'이 <신문>(일부 잡지)에 국한되었던 시절에 기자들이 감당했던 언론의 역할이 오늘날은 <신문>의 숫자만도 엄청나게(?) 많아졌거니와 그 종류도 '1인미디어'를 포함하여 다각화됨으로 해서, 오늘의 신문기자(기사)들은 도무지 함량미달에 자격미달인 경우가 비일비재하고, 오히려 독자들의 눈과 귀를 가리고, 현혹하는 경우도 허다하다는 것입니다. 언론의 도(道)가 일 척(尺)이라면, 언론의 마(魔)는 일 장(丈)인 시대입니다.
4. 오늘의 언론은 '국민(독자)의 알 권리'는커녕, 자기 스스로의 생존, 그리고 점점 소멸되어가는 언론(신문)의 특권(희소성에서 나오던)을 수호하기 위한 온갖 협잡에 내몰리는, 때로 가련하고, 한편으로 가증스런 존재(집단)로 전락한 사례를 너무도 빈번히 보여줍니다.
5. 쟁점이 되는 바는, 부패하고 타락하고 전락한 오늘의 언론을 어떻게 누가 개혁할 것이냐 하는 점입니다. 현재 여당이 추진하는 조치들(징벌적 손해배상)의 실효성은 차치하고, 언론 자유를 정치(권)에서 법적으로 제재하는 방식으로 하는 게 옳으냐, 아니면, 언론인들이 자율적으로 하도록 내벼러 두어야 하느냐가 쟁점이 아닐까 합니다.
6. 제 결론은 이렇습니다. 오늘날 복잡다단해진 언론 지형에서, 자율적인 개선은 이상적이긴 하나, 실현 불가능할 것입니다. 이번 법무부차관 브리핑 관련 사건 현장에서도, 우산 든 직원에게 이런저런 요구를 하여, 결국 '무릎을 꿇게 만든' 기자와 그 장면을 포착하여 대대적으로 기사화한 기자는 다른 기자입니다.[꼭 좋은 일인지는 모를 일이나, '기자단'이란 게 작동했다면, 이번 차관의 기사는 오히려 '미담'으로 보도되어야 더 마땅한 사례였을 테지요 - 그 직원은 차관을 위해서가 아니라 기자들을 위해서 헌신한 사람이니까요.] 그 두 기자가 짜고서 이 일을 벌인 것도 아니지요. 그러니 그 둘을 엮어서 말하는 것은 기자들로서도 부당하다고 여길지 모르겠습니다. 바로 이렇게 얽히고설킨 오늘의 기자사회 현실 때문에 외적인 제재 규범을 만들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7. 기후위기만큼 심각하고 위험스런 것이, 오늘의 언론의 지형입니다. 기후위기가 생태계를 공멸의 길로 몰아간다면, 언론위기는 우리의 정신계(사상계)를 파탄의 길로 밀어넣기 때문입니다.
*그 옛날 <개벽>은 오늘의 <다시개벽>이 이어갑니다.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도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