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교육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현희 Aug 31. 2024

1. 방향성 _우리의 승부처

운영진 뒤풀이에서 두서없이 풀어놨던 고민들 (1)

전교조는 30여 년 전 '사회정의 추구'성격의 노조로 출발했습니다. 창립 당시 선생님들의 주요 요구는 교사의 임금과 처우 개선 요구가 아니었어요. ‘참교육’으로 대표되는 민주적이고 평등한 교육관, 촌지와 체벌 반대 실천으로 탄압을 받으면서도 사회적인 공감대와 지지 속에 결성됐습니다. 교사의 처우나 임금 문제에 소홀했던 건 아니지만, 태생의 에너지 자체는 그러했습니다.


현재 전교조는 두 가지 모순되는 비판을 동시에 받고 있습니다. 일부는 전교조가 '남 좋은 일 하느라 즉 연대하느라 자기 밥그릇도 못 지킨다'라고 비난하고, 또 한쪽에서는 '참교육 정신 없어진 지 오래고, 교사의 이익밖에 챙길 줄 모르는 철밥통 이익집단'이라고 하더라고요. 우리는 호구인가요 아니면 이기적인 이익집단인가요. 저는 둘 다 틀렸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 극단적으로 다른 모순적 프레임으로 동시에 공격받는다는 것 자체가, 사면초가인 우리의 현실적 조건을 돌아보게 합니다. 


조합원의 이익과 처우 개선 노력은 노동조합이 당연히 할 일입니다. 이 일을 소홀히 하는 건 조합원과 조합의 계약 위반이고, 전체 노동자 집단과 사회 발전을 위해서도 좋지 않습니다. 다만 오로지 조합원의 이익 추구라는 과제에 매몰되는 것이 우리의 길인가, 에 대한 고민은 있습니다. (물론 이 '이익'의 개념도 사람마다 다릅니다)


사실 전교조 외에 다른 대부분의 노조들은 이미 분명한 '조합주의'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조합주의'는 조합원들의 경제, 사회적 지위 향상 도모를 위한 경제주의적 조합운동의 이념) 


예를 들어 교육공무직 노조, 자동차 회사 생산직 노조들이 '어떻게 교육정책을 설계할까, 어떻게 수업방법을 개선할까', '어떻게 자동차 생산기술을 발전시킬까'를 고민하지 않잖아요. 대부분 노조들은 임금과 처우 문제를 주제로 싸웁니다. 하지만 전교조는 임금인상과 처우 개선뿐만 아니라, '참교육 실천'이란 전통 아래 여전히 교육 그 자체를 고민하고, 연구하고, 실천하는 면면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최근 조합 내에서 연구와 실천 영역이 약해지고 있는 건 패착이라고 봅니다)


사실 저는 전교조가 조합원들의 사회경제적 지위 향상을 위해 노력하면서, 한편으로 조합주의에 완전히 포섭되지는 않길 바란다는 '은밀한' 바람이 있습니다. 저와 같은 노동관은 사실 시류에서 벗어난 방향이거든요. (굳이 말하자면 저는 18-19세기 '시민적 노동관'을 갖고 있고, 20세기 이후 노동조합의 방향성은 대부분 자본주의의 태생적 불평등을 인정하는' 자발주의적 자유노동관'으로 전환되었죠) 


시류가 어떻든 저는 노동조합을 통해 우리 선생님들이 교육 노동자이자, 시민이자 주인으로 거듭나길 바란다는 바람을 버리지 못하겠습니다. 민주적이고 참여적인 공동체를 강조하는 '열광(열린 광장)'도 그런 고민 끝에 기획되었고요.     


그런데 제 고민은... 우리 조합원들이 이런 그림을 원하는지 모르겠어요. 많은 선생님들이 노동조합을 '해결사'처럼 생각합니다. 소위 '자판기 노조'라고 하죠. 특히 요즘처럼 교사의 처우나 교육환경이 황량하고, 직종 간 갈등이 폭발하는 시점엔 더욱 그렇습니다.  


솔직히 '해결사', '자판기 노조'로서의 역할, 교원단체 중에 아직은 전교조가 제일 잘합니다. 자신할 수 있습니다. 학교의 문제 상황을 직접 해결하는 과정에서, 저희를 직접 겪어본 조합원들은 물론 타조합원들까지 저희 지부의 문제해결능력과 진정성에 놀라고, 반했다고 표현할 정도였습니다.


제 덕분이 아니라 지부 선배들 덕분입니다. 30년 넘게 쌓인 노하우와 실력 아직 사라지지 않았고요. 저도 지부 선배들 능력치와 태도를 보면서 깜짝 놀라며 배웁니다. 하지만 '해결사' 노동조합을 넘어선 비전을 갖고 있느냐,라고 물어보면 저는... '지금이야말로 그걸 찾아야 하는 시점, 우리 손으로'라고 답하겠습니다. 


현재로서 제 생각은 임금과 처우 관련 노력은 노동조합으로서 기본값이지만, 완벽한 조합주의는 우리의 길이 아니다, 라는 것입니다. 그 역할은 이미 다른 단체들이 잘하고 있고요. 시류를 따른다고 따라봤자 우리가 원하는 수준으로 조합이 확대되지도 않을 겁니다. 즉 우리의 승부처는 그곳이 아니라는 겁니다. 


조합주의의 강한 내부 단결 흐름이 오히려 노동조합의 힘을 약화시킬 위험도 있습니다. 특히 교육분야는 교사뿐 아니라 전체 사회 구성원들의 관심이 워낙 높잖아요. 눈감고 귀 닫고 '아 몰라, 내 말만 할 거야' 란 기조는 고립을 자초하고, 결국 얻고자 했던 사회경제적 지위 향상마저 위태로워질 수 있습니다. 


저는 전교조가 조합주의의 길로 완전히 접어들면, 교육의 미래를 위협하는 싸움에서 전면전을 펼치지 못하게 될 거라고 봅니다. 그래서 연구역량에 대한 장기 목표, 조합원들의 자치와 참여를 강조하는 공동체성을 유지해가야 한다고 보는데 쉽지 않네요. 어쨌든 이건 저의 생각일 뿐입니다.... 선생님들 생각도 알고 싶어서, 제 생각을 먼저 털어 놓아 보았습니다. 


(2024. 08. 22. 전교조 대전지부 운영진 연수에서)




매거진의 이전글 ‘잠자는 교실’의 모피어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