솥에 얽힌 이야기
중세시대 하면 으레 생각하는 이런 무쇠솥(Cauldron)...
왜인지 고기 건더기나 큼지막하게 썬 야채 덩어리들이 둥둥 떠있는 채로 보글보글 끓고 있을 것만 같다.
지금껏 온갖 재료 다 때려넣고 몇 년동안 불 안꺼뜨리면서 무한리필하는 짬통식 운용방식을 갖고 있는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단순무식하게 건더기 다 때려넣고 푹 끓이거나 삶는 용도로 쓰이는 경우는 적었고
나름 위 짤처럼 복잡하고 체계적인 사용법을 갖고 있었음...
예를 들자면, 일단 오래 푹 삶아야하는 고기는 밀가루 반죽으로 덮은 뒤 천으로 묶고는 맨 밑에 가장 오랫동안 둠.
그리고는 그 위에 나무판자를 둬서 위아래 구획을 나눈 뒤, 그 위에는 다시 곡물 푸딩이나 수엣 푸딩(suet pudding: 소나 양 지방 푸딩)을 천에 묶어서 놓고,
여기에 물이나 기타 육수 같은 걸 부어서 뚜껑을 닫고 삶는 것임.
그러면 당연하게도 구획으로 나뉘어서 삶아지는 음식들로부터 (경우의 수 조합도 가능한) 맛있는 즙이 배어나오게 되고,
국물까지 다 먹는다는 전제 하에 고기 육수 손실도 최소화 가능.
물론 언제나 이렇게 복잡한 사용방식을 택한 건 아니었고,
성인이 통째로 들어간 콩피용으로도 쓰였음
솥(Cauldron)은 그 단순무식한 만듦새로 인해 아주 오래전부터, 그러니까 인류가 금속을 자유자재로 활용하게 된 뒤로부터는 지난 수 천년간 늘상 조리기구로 활용되었다. 인류 문명의 초창기 시절, 금속을 녹여서 만든 도구는 그 금속 자체의 희소성에 더불어 뛰어난 장인이 아주 오랫동안 노력을 들여야만 제작할 수 있었기에, 그 값이 당연하게도 매우 귀했다. 때문에 이런 거대한 금속 솥을 지닌 이들은 주로 엄청난 권위를 갖는 지배계급 출신이었다.
봉건의 시대, 주나라의 천자는 제후들을 분봉하며 신성한 문자가 새겨진 청동솥을 권위의 표상으로서 하사했다. 중국의 옛 역사를 통틀어 솥은 많은 의미를 지녔다. 역사가에 의해서 고대의 폭군은 불쌍한 희생자들을 자신의 솥에 넣고 삶아 해치우는 이미지로 그려지곤했는데, 본래 솥에 들어가서 삶아질 고기는 조상을 위한 제수용이었다는 사실을 생각해본다면, 어쩌면 폭군은 광기가 아닌 합리적 이성에 근거하여 불안에 떨며 자신의 유력한 라이벌들을 제거하는 퍼포먼스를 벌인 것일 수 있다.
여하튼 솥은 그런 방식으로 사용하는 게 오늘날의 우리에게 익숙하다. 무언가를 넣고, 통으로 삶거나 끓여버리는 용도로서 말이다. 이 지배자의 권위가 덕지덕지 들러붙어 있는 무쇠솥은 중세 유럽에서는 마녀들과 짝을 짓게도 되었다. 솥은 산 자가 들어가서 죽은 채로 나오는 공간이었고, 또한 죽은 조상과 살아있는 후손을 연결해주는 매개물이었다. 따라서 이러한 상징은 늪지나 강과 같은 삼도천, 즉 죽은 자와 산 자의 경계에 비밀스레 묻히고 은밀히 숭배되었다.
그런데 사실 고정관념과 달리, 중세쯤 되어 솥이 일상의 도구가 된 시점부터는, 무언가를 통째로 넣고 삶는 경우가 드물었다. 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단순 무식한 조리도구가 아니어서, 아주 간단한 구획화만으로도 다양한 조리법을 시험해볼 수 있는 만능 역할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가장 오래 삶아야하는 고기는 맨 아래에 둔 뒤 나무판자로 덮고, 그 위에는 차곡차곡 여러 곡물 푸딩과 수엣 푸딩(suet pudding: 소나 양 지방 푸딩), 그리고 각종 야채들을 쌓아둔 뒤, 육수나 물을 부어 천천히 끓이는 식으로 활용하면, 영양손실은 최소화하고 재료들끼리의 상호작용을 통해 맛까지 챙긴, 훌륭한 중세식 솥 요리가 완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