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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클 Sep 20. 2017

딸, 엄마도 하이힐을 신고 싶어

- 엄마로 사는 것이 힘겨운 당신을 위한 솔루션


육아는 전혀 뜻밖의 전투였다.


코피 터져 가며 수능을 치렀다. 새벽 김밥 먹어가며 취뽀도 했다. 별 거지같은 상사도 견뎠다.
나름 인생에 내공이 쌓였다고 여겼다.


열달 배불러 아기를 낳았다. 아이는 이유 없이 울어댔고 사람들은 이유 없이 참견했다. 나는 이유 없이 주눅 들어갔다.


그리고 알았다.


이건,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전투란 걸.




인생에 있어 갖은 고초를 겪는 것쯤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던 내가 아이를 낳아 키우며 완전히 무너졌던 이야기, 그런 게 누구에게 도움이 될까. 앓는 소리한다고 아서라는 이야기나 듣게 되지는 않을까.

그때 다시 초보엄마였던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누군가 이런 이야기를 해줬더라면, 어디서 이런 글을 볼 기회가 있었더라면 나는 조금은 덜 힘들고 조금은 덜 울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엄마로 사는 것이 힘겨운 당신을 위한 솔루션’이라는 거창한 부제를 달았다.


육아를 하며 부쩍 예민해지고 자주 상처받는 여성, 육아를 이유로 퇴사를 고민하고 있는 여성, 또 그런 아내의 고민을 함께 하고픈 남성에게 이번 순간이 작게나마 도움이 될 것 같다.

‘엄마’로 산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미리 경험해보고 싶은 여성이나 내 딸, 내 며느리가 왜 둘째 얘기만 하면 말이 없어지는지 알고 싶은 남녀도 읽어봄직 하다.

그래, 능력 있는 여성 직원을 놓치고 싶지 않은 동료나 팀장 혹은 사장 격 되시는 분이 있다면 붙잡고 이번 순간을 한번 읽어보라고 하고 싶다.

대단한 글은 아니지만 되도록 많은 이들이 봤으면 좋겠다.


모든 여성이 엄마가 되어야하는 것도, 모두가 아이를 양육하면서 커리어까지 이어가야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일하는 여성이 행복해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에 책임이 있지 않을까.

‘딸, 엄마도 하이힐을 신고 싶어’ 콘텐츠를 정독하는 데는 채 30분도 안 되는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하지만 이 콘텐츠를 읽은 후에는 타인의 시선과 기대, 그리고 오지랖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질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내가 원하는 삶’을 체계적으로, 진지하게 고민해보는 시간이 되길.




 

1-1. 나를 지키지 못하는 순간들이 잦아졌다.


나는 제대로 모유수유를 하지 못했다. 

아이는 세상에 6주 일찍 나왔다. 작았다. 의사는 숨을 막을 수 있다며 직접 수유를 금지했다. 하루 4시간씩 허공을 보고 유축기를 돌렸다. 살이 터져 피가 났다. 바늘로 생살을 찌르는 젖몸살은 시시때때로 찾아왔다.

하지만 제 주인이 물지 않은 젖은 좀처럼 물꼬를 트지 못했다. 아이를 낳기만 하면 우물물 길듯 풍요롭게 젖이 돌 거란 생각은 착각이었다. 사람들은 안부를 젖으로 물었다. ‘애 젖은 잘 먹냐’고. 주저하며 상황을 이야기하면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았다.


그래도 물려봐.
애한테 모유만한 게 없다더라.
노력해봐. 엄마잖아. 할 수 있어!


나는 아이와 애착형성도 안된 불량 엄마였다. 

아이를 낳고 몇 달 만에 출근을 했다. 일이 반가웠고 정오의 햇살이 참 좋았으며 동료와의 점심이 설렜다. 그 감정이 싸늘하게 식은 건 한 순간이었다. 선배는 간만의 출근 소감을 묻고 싶었던 모양이다. 어떠냐고, 아침에 아이가 안 떨어지려 하진 않더냐고. 할머니랑 잘 놀고 있다하니 선배는 안타까움을 인중에 가득 모아 말했다.

“그래? 애착형성이 전혀 안됐나 보네.”

임신과 출산, 육아. 그 어느 하나 경험하지 않은 선배였다.

나는 지밖에 몰라서 애를 하나밖에 안 낳은 여자였다.

친척 어른이 집에 오셨다. 아침에 라디오에서 출산율 뉴스라도 들으셨던 걸까. 아이 안 낳은 여자들을 싸잡아 비트신다.

“요즘 애들은 자기밖에 몰라서 애를 안 낳거나 하나만 낳잖아.
우리 때는 하늘이 주는 대로 다 낳았어. 다섯이든 열이든.”

그 ‘요즘 애’가 당신 앞에 있단 것은 중요치 않았다. 아이를 하나만 낳은 나는 그렇게 이기적인 년이 됐다.



나는 엄마가 돼서는, 멋이나 부리고 다니는 여자였다.

하이웨이스트에 힐을 좋아했다. 그 차림이 주는 긴장감이 좋았다. 복직 후 몇 주 후, 중요한 일정이 있던 그 날도 그랬다. 버스 앱을 살피며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려는데 익숙한 얼굴을 맞닥뜨렸다. 아래층 아줌마다. 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스캔을 마친 아줌마가 그랬다.

“얘 좀 봐. 애 엄마가 이런 옷 입어도 돼?”

나도 해석할 수 없는 옹알이같은 말로 얼버무리며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카톡을 열어 친구들에게 하소연하는 것 뿐이었다.

“야야, 그냥 똥밟은 셈 쳐. 자기가 니 인생 살아줄거야 뭐야.”
“그치? 내가 잘못한 거 아니지?”

하지만 위로는 힘이 없었다. 오래, 자주 그 순간들이 생각났다. 스스로 물었다.


나, 정말 똥 밟았던 걸까?



1-2. 애 셋 키우는 워킹맘 A


그 질문에 답을 준 건 오랜만에 만난 친구 A였다. A는 연년생 셋을 키우는 파티쉐 워킹맘이었다. (그녀가 만든 마카롱은 내가 먹어본 것 중 단연 최고다.) 아가씨 때 입던 골지 드레스에 라이더 자켓을 여태 교복처럼 입고 있었다.

애 엄마들답게 육아 이야기로 안부를 물었다. 그녀도 사정이 있어 모유수유를 한 달 밖에 하지 못했다고 했다. 첫째 애가 태어나자마자 큰 수술을 받았고, 아이들은 돌 전에 어린이집에 보냈다. 연년생이라 셋 모두 엄마의 사랑에 목말라한다 했다. 그녀는 아무렇지 않아 했다. 아이 셋을 키우면서도 A는 누군가의 말과 시선에 상처받아본 적이 없다고 했다.


아, 욕 먹은 적은 있었다!
셋째 가졌다고 하니까 엄마한테 등짝 맞았어.
제 정신이냐고...


나는 그녀에게 내가 마음을 다친 이야기를 꺼냈다. 그녀가 그랬다.

“그랬구나. 생각해보니 내 주위에도 그런 말 하는 사람 있긴 했어.
근데 그 말들, 신경 쓸 필요가 있을까? 너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잖아.

그때 알았다. 나는 못된 사람들이 싸지른 똥을 밟은 게 아니었다. 그 똥은, 원래 내 마음에 있었다.




1-3. 내 등짝을 후려친 건 내 자격지심이었다.


늘 주위를 신경써왔다. 늘 내겐 해야 할 역할이 있었다.
말 잘 듣고 착한 어린이, 공부 잘 하는 학생.

칭찬은 달았다. 그래서 계속 열심히 그 역할을 수행했다.
제 몫 이상을 하는 직원.
애교있는 며느리, 싹싹한 와이프.


하지만 늘 그렇진 못했다. 경쟁 PT에서 떨어진 날엔 차라리 월급을 반납하고 싶었다. 일 때문에 찾아뵙지 못한 시댁 어른 생신날엔 가시방석이었다. 월급값을 못했고, 며느리 노릇을 못했다고 여겼다. 그걸 ‘자격지심’이라고 부른단 걸 한참 후에서야 알았다.


자격지심 (自激之心) : 스스로 마음을 치다


‘격’은 ‘친다’ 는 뜻이었다. 스스로 날 친 거다. 내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고 여겨서.

우리에게 ‘엄마’는 헌신과 희생 자체다. 우리 남매를 위해 고된 시집살이와 명함 없는 인생을 참고 산 엄마에게 그걸 보고 배웠다. 드라마에서도, 올림픽 메달리스트의 인터뷰에서도 엄마의 희생은 빛났다.

하지만 난 그렇게 살지 못했다. ‘엄마’로 산 지난 4년, 참 충만한 기쁨을 누렸다. 하지만 ‘나’로 살았던 그 전의 30년 동안 난 다채로운 기쁨에 맛 들려 있었다. 일은 월급 이상의 쾌감과 공헌감을 선사했다. 여자로서 내 몸을 가꿀 때면 신이 났다. 서른 일곱 나라를 혼자 여행했다. 파티와 클럽에서 그루브를 타는 대신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인생의 리듬을 탔다. 그렇게 행복을 만끽해왔다. 엄마의 삶에만 집중하기엔 다른 떡이 너무 컸다.

일이 하고 싶어 복직 시기를 앞당겼다.

커리어가 끊길 걱정에 둘째는 염두에 두지 않았다. 아가씨 때처럼 하이웨이스트에 하이힐을 신고 출근을 하고 싶었던 거지.

‘뭐 어때. 내 삶 내가 사는 건데.’하면서 실행에 옮겼다.
하지만 내면의 목소리는 하나가 아니었다. 다른 한 마음은 전혀 다른 말을 했다.


그래도 엄만데

이 여섯 글자가 나의 자격지심이었다. 내 마음에 원래 있던 그 똥. 타인의 말과 시선이 아니라 이 똥이 나를 때렸다. A에겐 그걸 찾기 어려웠다.



1-4. 무엇보다 내 삶에 대한 확신이 필요했다.


김희선에게 ‘너 얼굴이 좀…’이라고 한들 귓등으로도 안 듣는다.
아인슈타인에게 ‘너 물리실력이 좀…’ 이라고 한들 신경이 쓰일까?

그 말, 그 시선이 부대꼈던 건 ‘내 자신의 확신’ 문제였다.

옷도 그렇다. 아침에 이 옷 저 옷 걸쳐가며 코디한다. 나가는 길, 누가 뒤에서 날 쳐다보는 것 같다. 괜히 제 발 저린다.
‘아, 망했어. 오늘 코디 구린가봐. 갈아입고 나올까?’ 내 패션에 대한 확신이 없는 거다.

엄마로서의 삶도 그랬다. 자식 사랑하지 않는 엄마 없고, 노력하지 않는 엄마 없다. 하지만 시시때때로 타인의 말과 시선을 느낀다.
’아, 내가 잘못했나봐. 엄마가 돼서…….’ 엄마로서, 나로서 내 삶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그랬다.

엄마가 되며 내 인생 궤도는 완전히 바뀌었다. 하지만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사느라 ‘내가 되고 싶은 엄마’를 고민하지 못했다. 내가 되고 싶은 사회인, 내가 되고 싶은 사람, 여자의 삶을 제대로 계획하지 못했다. 내가 하루하루 넘으려 했고 넘어져 좌절했던 허들은 이 사회가 세워준 목표였다. 12개월 완모, 외롭지 않은 형제자매, 손수 지어 먹이는 유기농 이유식 같은.

친구 B가 원하는 삶은 ‘자유와 자기성장’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결혼하지 않았다. 첼로와 발레를 배우며 행복하게 살고 있다.
선배 C는 ‘가족과 온전히 함께 하는 시간’을 원했다. 육아휴직 후 미련 없이 일을 그만뒀다. 스스로 선택한 자신의 삶에 만족한다.

내 삶에 맞는 다른 방법으로도 꽤 괜찮은 엄마가 될 수 있단 걸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어떤 엄마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 걸까.


고달프지 않은 인생이 어디 있고
외롭지 않은 인생이 어디 있더냐
자기 인생은 자기 혼자서 갈 뿐이다

남이 가르쳐주는 건 그 사람이 겪은 과거일 뿐이고
내가 해야 할 일은 혼자서 겪어 나아가야 하는 나의 미래다.

- 조정래 <정글만리>






10일에 한 번 퇴사학교가 발행하는 직장인 진로 탐색 콘텐츠, 순간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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