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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클 Sep 25. 2017

직장생활, 맥주가 간절해지는 순간

- 직장인들을 위한 맥주 큐레이션





사실 에디터는 ‘맥알못’이다. 맥알못이 무엇인고 하니 (맥)주 잘 (알) (못)하는 사람.
아무 말이나 첫 글자를 따서 뒤에 ‘알못’을 붙이면 그것을 잘 알지 못한다는 뜻이 되는 아마도 신조어다. 그러니 맥알못이라는 말을 이해 못했다면 당신은 신알못!

각설하고 맥주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무슨 맥주를 소재로 콘텐츠를 쓰겠냐마는 그래서 이번에 특별히 ‘맥잘알’ 전문가를 섭외했다. 맥잘알은 뭐냐고 또 물어보지는 말아주었으면 한다. 앞서 설명한 것에 기대어 응용력을 발휘해 보시길.



오늘 함께 할 맥주 전문가는 이미 맥주 덕후들 사이에서는 입소문이 난 천호동 유미마트의 송재준 대표다. 대기업을 다니다가 공무원 시험에 합격, 그런데 퇴사하고 공무원의 길로 간 게 아니라 냅다 정육점을 물려받았던 경력이 있는 괴짜, 그를 처음 만났을 때 느닷없이 주먹을 내밀어서 놀랐는데 인사였다. (오 비슷한 장면을 영화 <스탭업>에서 본 적이 있다.>

이토록 힙한 그가 순간퇴사와 함께 직장인들의 사연을 듣고 맥주를 큐레이션 해주기로 했다. 그에게 맥주 처방을 받을 이를 공모했는데 경쟁이 치열했다. 구구절절 흥미로운 사연들이 넘쳐났지만 그 중 딱 3명을 뽑아 오늘 소개한다.




1-1. 후미진 동네에 맥주 천국이 있다고?


외딴 그 곳, 천호동 유미마트를 소개해달라.

유미마트는 강동구 천호동에 있는 마트다. 그렇다고 그냥 마트라고만 생각하면 섭섭한 게 우리는 크래프트 비어 200여 종을 취급하고 있다. 맥주 좋아하는 친구들이 다양한 맥주를 마시기 위해 홍대나 이태원까지 다니기는 힘이 드니까 동네에서 먹자고 이 공간을 변형하기 시작했다. 그때 모여서 새로운 맥주를 하나 하나 먹어보고 맛있고 괜찮은 맥주들을 들여오기 시작했는데 운 좋게 여기까지 왔다.



유미마트, 이름이 독특하다. 원래 마트만 하던 공간이었던 건가?

처음에는 부모님이 하시던 정육점이었다. 부모님이 정육점을 하실 때 형은 지하철공사에서 근무하고 있었고 나는 대기업에 다녔는데 사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회사생활이 안정적이기도 했고 급여도 나쁘지 않았는데, 당시에 함께 근무하던 동기 중에 두 명이 위험한 작업 환경에서 사고로 죽기도 했고 내가 조직에 속해서 회사라는 공간에 갇혀있을 성격도 못된다고 생각했거든.

회사를 다니면서 시험공부를 했는데 합격했다. 지금에 비하면 공무원이 되기 위한 장벽이 그렇게 높지는 않았던 것 같다. 여하튼 합격사실을 부모님께 알리자 돌연 이제 정육점 장사를 그만둬도 되겠다고 하셨다. “어라? 그럼 이 정육점을 내가 하고 싶은데요?” 앞서 말했다시피 성격이 회사 생활보다 이런 작은 사업을 일구는 데 더 맞을 거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해보니까 진짜로 이게 맞고.


망하더라도 재미있는 공간 만들고파
장사 안되면 맥주 내가 다 마셔버리지 뭐


처음 정육점을 넘겨받았을 때는 지금의 모습처럼 사업을 확장시켜볼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저 정육점 매출만 잡으면 된다고 생각했지. 그나마 고기를 에이징(aging;숙성)하는 것에 관심이 있어서 공부를 좀 했는데 어렵더라. 그래도 그때 익힌 기술로 지금 육사시미를 숙성시켜서 안주로 내고 있는데 신의 한수다. 이걸 먹고 싶어서 멀리서 찾아오는 손님도 많으니까.



맥주가 발효를 한 술이라 기름에 튀긴 음식을 안주로 먹으면 몸 속에서 부글부글 끓는다. 흔히 페어링이 맞지 않는다고 표현을 하는데 쉽게 말하자면 궁합이 별로라는 거다. 그러니 달달한 소스나 고소한 기름장과 함께하는 유미마트의 육사시미가 맥주와 독보적인 궁합을 자랑할 수밖에!




1-2. 직장인에서 보틀샵 사장으로


마트에서 다양한 맥주를 팔게 된 계기가 있나?


크래프트 비어를 본격적으로 들여온 계기는 4년 전으로 돌아간다. 한 펍에 갔는데 그렇게 맥주 종류가 많았던 것도 아니다. 거기 유독 눈에 띄는 맥주가 하나 있었는데 병에 웬 코끼리가 앉아있는 그림이 있는 거다. 특이하다 싶어 저것도 맥주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기에 한 병 달라고 했다.

한 모금 마시고 깜짝 놀랐다. 이런 맛을 내는 맥주가 있단 말이야? 씁쓸하면서 홉이 많이 들어 있어 향이 독특한 그 맥주는 IPA, 인디안 페일 에일이었다. 그 맛에 반해 그 자리에서 거의 한 짝을 마셔 해치웠다. 당연히 가게 사장님도 혀를 내둘렀지. 맥주가 가득했던 상자가 나 때문에 텅 비었고 나는 빈 상자에서 수입사의 전화번호가 적힌 라벨을 뜯어왔다.



다음날 수입사에 전화를 해 “당신네 맥주 너무 맛있다. 여기는 동네 작은 구멍가게인데 당신네 맥주를 팔고 싶다” 하고 말했다. 그때는 정육점하면서 옆에 슈퍼를 인수해서 같이 하고 있을 때였는데 다른 맥주 종류는 없었고 딱 그 회사의 IPA만 들여와서 팔았다. 일 끝나고 나도 한 병씩 마시면서. 동네 슈퍼에서 이런 걸 파는게 신기했던지 크래프트 좋아하는 친구들이 와서 함께 마시다가 이런 맛있는 맥주가 사실 종류가 되게 많다고 알려주더라. 그러니까 지금의 유미마트는 그 친구들과 함께 만든 공간이다.



유미마트에 직장인들이 많이 온다던데.


그렇다. 아무래도 외딴 동네에 있다 보니 근처에 사는 직장인들에 퇴근하고 많이 온다. 술을 진탕 마시고 취하려고 오는 게 아니라 다양한 맥주를 맛보면서 스트레스를 푸는데 목적이 있는 것 같다. 요즘은 또 워낙 크래프트 비어가 트렌디해졌지 않나, 문재인 대통령도 찾아 마신다던데.


요즘 직장다니는 친구들은 참 멋지다
퇴근하고 자기계발도 하러 다닌다더라

직장인들이 와서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공감이 많이 된다. 일 고민, 사람 고민. 나도 그랬던 때가 있었지.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하고 잘 맞지 않는 사람들과도 어울려야 하고. 쉽지 않겠지만 그런 시간들을 잘 즐기라고 말해주고 싶다. 매일 좋은 날만 있으면 재미없잖아 안 좋은 일이 있어도 좋은 것들을 생각하면서 즐기려고 노력해보라고. 그것들도 지나보니 모두 인생에 있어 소중한 시간들이었더라고.



직장인들이 유미마트에 와서 스트레스를 많이 풀고 갔으면 좋겠다. 마음 한켠에 쌓아놓지 말고. 매장 안에 큰 쓰레기통이라도 하나 갖다 놓을까? 여기에 다 쏟아버리고 가라는 의미에서?





10일에 한 번 퇴사학교가 발행하는 직장인 진로 탐색 콘텐츠, 순간퇴사 


▶ 직장인들을 향한 그의 맥주큐레이션이 궁금하다면? ☞ 다음화 보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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