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장인들을 위한 맥주 큐레이션
사실 에디터는 ‘맥알못’이다. 맥알못이 무엇인고 하니 (맥)주 잘 (알)지 (못)하는 사람.
아무 말이나 첫 글자를 따서 뒤에 ‘알못’을 붙이면 그것을 잘 알지 못한다는 뜻이 되는 아마도 신조어다. 그러니 맥알못이라는 말을 이해 못했다면 당신은 신알못!
각설하고 맥주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무슨 맥주를 소재로 콘텐츠를 쓰겠냐마는 그래서 이번에 특별히 ‘맥잘알’ 전문가를 섭외했다. 맥잘알은 뭐냐고 또 물어보지는 말아주었으면 한다. 앞서 설명한 것에 기대어 응용력을 발휘해 보시길.
오늘 함께 할 맥주 전문가는 이미 맥주 덕후들 사이에서는 입소문이 난 천호동 유미마트의 송재준 대표다. 대기업을 다니다가 공무원 시험에 합격, 그런데 퇴사하고 공무원의 길로 간 게 아니라 냅다 정육점을 물려받았던 경력이 있는 괴짜, 그를 처음 만났을 때 느닷없이 주먹을 내밀어서 놀랐는데 인사였다. (오 비슷한 장면을 영화 <스탭업>에서 본 적이 있다.>
이토록 힙한 그가 순간퇴사와 함께 직장인들의 사연을 듣고 맥주를 큐레이션 해주기로 했다. 그에게 맥주 처방을 받을 이를 공모했는데 경쟁이 치열했다. 구구절절 흥미로운 사연들이 넘쳐났지만 그 중 딱 3명을 뽑아 오늘 소개한다.
유미마트는 강동구 천호동에 있는 마트다. 그렇다고 그냥 마트라고만 생각하면 섭섭한 게 우리는 크래프트 비어 200여 종을 취급하고 있다. 맥주 좋아하는 친구들이 다양한 맥주를 마시기 위해 홍대나 이태원까지 다니기는 힘이 드니까 동네에서 먹자고 이 공간을 변형하기 시작했다. 그때 모여서 새로운 맥주를 하나 하나 먹어보고 맛있고 괜찮은 맥주들을 들여오기 시작했는데 운 좋게 여기까지 왔다.
처음에는 부모님이 하시던 정육점이었다. 부모님이 정육점을 하실 때 형은 지하철공사에서 근무하고 있었고 나는 대기업에 다녔는데 사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회사생활이 안정적이기도 했고 급여도 나쁘지 않았는데, 당시에 함께 근무하던 동기 중에 두 명이 위험한 작업 환경에서 사고로 죽기도 했고 내가 조직에 속해서 회사라는 공간에 갇혀있을 성격도 못된다고 생각했거든.
회사를 다니면서 시험공부를 했는데 합격했다. 지금에 비하면 공무원이 되기 위한 장벽이 그렇게 높지는 않았던 것 같다. 여하튼 합격사실을 부모님께 알리자 돌연 이제 정육점 장사를 그만둬도 되겠다고 하셨다. “어라? 그럼 이 정육점을 내가 하고 싶은데요?” 앞서 말했다시피 성격이 회사 생활보다 이런 작은 사업을 일구는 데 더 맞을 거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해보니까 진짜로 이게 맞고.
망하더라도 재미있는 공간 만들고파
장사 안되면 맥주 내가 다 마셔버리지 뭐
처음 정육점을 넘겨받았을 때는 지금의 모습처럼 사업을 확장시켜볼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저 정육점 매출만 잡으면 된다고 생각했지. 그나마 고기를 에이징(aging;숙성)하는 것에 관심이 있어서 공부를 좀 했는데 어렵더라. 그래도 그때 익힌 기술로 지금 육사시미를 숙성시켜서 안주로 내고 있는데 신의 한수다. 이걸 먹고 싶어서 멀리서 찾아오는 손님도 많으니까.
맥주가 발효를 한 술이라 기름에 튀긴 음식을 안주로 먹으면 몸 속에서 부글부글 끓는다. 흔히 페어링이 맞지 않는다고 표현을 하는데 쉽게 말하자면 궁합이 별로라는 거다. 그러니 달달한 소스나 고소한 기름장과 함께하는 유미마트의 육사시미가 맥주와 독보적인 궁합을 자랑할 수밖에!
크래프트 비어를 본격적으로 들여온 계기는 4년 전으로 돌아간다. 한 펍에 갔는데 그렇게 맥주 종류가 많았던 것도 아니다. 거기 유독 눈에 띄는 맥주가 하나 있었는데 병에 웬 코끼리가 앉아있는 그림이 있는 거다. 특이하다 싶어 저것도 맥주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기에 한 병 달라고 했다.
한 모금 마시고 깜짝 놀랐다. 이런 맛을 내는 맥주가 있단 말이야? 씁쓸하면서 홉이 많이 들어 있어 향이 독특한 그 맥주는 IPA, 인디안 페일 에일이었다. 그 맛에 반해 그 자리에서 거의 한 짝을 마셔 해치웠다. 당연히 가게 사장님도 혀를 내둘렀지. 맥주가 가득했던 상자가 나 때문에 텅 비었고 나는 빈 상자에서 수입사의 전화번호가 적힌 라벨을 뜯어왔다.
다음날 수입사에 전화를 해 “당신네 맥주 너무 맛있다. 여기는 동네 작은 구멍가게인데 당신네 맥주를 팔고 싶다” 하고 말했다. 그때는 정육점하면서 옆에 슈퍼를 인수해서 같이 하고 있을 때였는데 다른 맥주 종류는 없었고 딱 그 회사의 IPA만 들여와서 팔았다. 일 끝나고 나도 한 병씩 마시면서. 동네 슈퍼에서 이런 걸 파는게 신기했던지 크래프트 좋아하는 친구들이 와서 함께 마시다가 이런 맛있는 맥주가 사실 종류가 되게 많다고 알려주더라. 그러니까 지금의 유미마트는 그 친구들과 함께 만든 공간이다.
그렇다. 아무래도 외딴 동네에 있다 보니 근처에 사는 직장인들에 퇴근하고 많이 온다. 술을 진탕 마시고 취하려고 오는 게 아니라 다양한 맥주를 맛보면서 스트레스를 푸는데 목적이 있는 것 같다. 요즘은 또 워낙 크래프트 비어가 트렌디해졌지 않나, 문재인 대통령도 찾아 마신다던데.
요즘 직장다니는 친구들은 참 멋지다
퇴근하고 자기계발도 하러 다닌다더라
직장인들이 와서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공감이 많이 된다. 일 고민, 사람 고민. 나도 그랬던 때가 있었지.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하고 잘 맞지 않는 사람들과도 어울려야 하고. 쉽지 않겠지만 그런 시간들을 잘 즐기라고 말해주고 싶다. 매일 좋은 날만 있으면 재미없잖아 안 좋은 일이 있어도 좋은 것들을 생각하면서 즐기려고 노력해보라고. 그것들도 지나보니 모두 인생에 있어 소중한 시간들이었더라고.
직장인들이 유미마트에 와서 스트레스를 많이 풀고 갔으면 좋겠다. 마음 한켠에 쌓아놓지 말고. 매장 안에 큰 쓰레기통이라도 하나 갖다 놓을까? 여기에 다 쏟아버리고 가라는 의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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