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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다비 Sep 17. 2024

스레드에 쓰려다가 길어져 브런치에 올리는 이야기

아침에 퉁퉁 부은 눈으로 생각을 털어내고 싶어 스레드에 들어갔는데, 결핍에 관한 어느 스치니 분의 포스팅을 읽게 되었습니다.
기억하고 싶어 리포스트 하고 나서,
내 이야기도 써볼까 하여 주절주절 써보기 시작했는데
글이 너무 길어져서 그냥 저의 오랜 친구들이 있는 브런치에 올립니다.






아빠는 내가 평생 동안 교회로 이끌었던 유일한 사람이었어.


엄마가 돌아가시자마자, 아니 엄마가 암으로 기력이 쇠해지셔서 아빠를 당기는 힘이 느슨해지자 벌써 이미 아빠는 헤비스모커로 되돌아가 계셨어. 장례식에서 회사 대표님이 아빠의 건강을 염려할 만큼.. 그 정도라면 연초를 태우는 시간도 매일매일 엄청났겠지. 내가 아빠를 전도했을 때 우리 아빤 <두 갑 반~세 갑/A day> 피셨었으니까.
내가 눈물로 전도하고 아빠가 교회에 나오시면서 그걸 딱 끊으셨었고 그게 아빠와 나의 삶에 일어난 놀라운 일로 생각했었는데.
손주들이 있는데도 이른 아침부터 온 집에 담배냄새를 풍기고. 나는 이게 집 안에서 촉발된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하고 집 앞에서 누가 펴서 들어오는 줄 알고 아빠 갑자기 어디서 담배냄새가 엄청 나 하니까 "응, 나 피고 싶으니까 폈어. 앞으로도 필 거야." 당당하게 말하는 게 참 화나고 한편으론 허무하더라.



속이 뒤집어져서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았고
아이들은 외할아버지가 주범인지도 모르고 우와 엄마 담배냄새 엄청나 하고 두 녀석이 교대로 나에게 와서 어서 이 공기오염 사태를 해결해 달라는 말을 하는데
느이 외할아버지가 아침 댓바람부터 집안에서 담배를 피우셔서 지금 이 지경이 났단다. 하고 대답해 줄 수도 없고.
아이들이 이 연기를 마시는 것도 싫고 내 짐들과 옷가지에 냄새 배는 것도 싫어서 빨리빨리 준비하라고 남편과 아이들을 재촉해서 아침도 안 먹고 이른 아침에 친정에서 나왔어. 사실상 쫓겨난 셈이지. 집구석을 너구리굴을 만들어 놓고 우리가 계속 아무렇지도 않게 함께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 건 아니셨겠지.

명절에 니들 오든 말든 난 밖에 나갈 거다. 엄마 차키 거실장 위에 둘 테니 가져가든지 말든지.라고 카톡 하셨으니 뭐.


엄마가 타시던 차, 원래 나한테 주실 생각 전혀 없었는데 주변에서 식구들이 다 그렇게 하실 줄로 생각하고 있다는 걸 느끼시곤 울며 겨자 먹기로 주시겠다 하셨어. 그래서 이번에 기차 타고 친정에 올라갔는데, 멀리서부터 온 손주들과 외동딸을 동네 지하철역 앞에 마중 나와주시는 것도 하기 싫어 택시 타고 오라고 하시더라. 비교하고 싶지 않았지만 우리 시어머니 같았음 어떻게 하셨을까? 생각이 절로 들더라. 동네 지하철역이 아니라 서울역에 나와 주셨을 거야. 엄청나게 적극성으로 무장하신 통화 빈도와 함께.


나는 아빠한테 무슨 일이 생긴다면 그걸 알고 싶어. 내가 가까이 살지도 않고 질문을 잘하는 사람도 아니기 때문이야. 나는 '말할 때가 되면 어련히 해줄까?'하며 기다리는 사람이거든.

그래서 엄마가 가지고 계셨던 집 명의에서 나한테 상속될 몫에 내 이름을 넣어달라는 입장이야. 그래야 집을 담보로 대출을 하려 해도 내가 알 수 있고 명의를 옮기려고 해도 알 수가 있잖아. 사실 우리 아빠 귀도 엄청 얇거든. 당장 점심때 일어날 일도 모르는 게 우리 인생인데, 앞으로 아빠가 어떤 분을 만나게 될지 어떻게 알겠어? 육십 넘은 남잘 누가 순수한 마음으로 만나 주느냐고. 어떤 분 앞으로 아빠 재산 호로록 줘버리고 돌아가시면, 나는 그런 걱정을 하는 거야.


이것 때문에 극대노 하신 울 아빠. 명절 때 니들 오든 말든 시전 하시며 손주들한테 천원도 안 주셨어. 다 자기가 번 건데 주기 아까우셨던 거겠지. 엄마차 주는 것도 사실은 무르고 싶어 하셨고 야 너 그럼 차도 그냥 놔둬.라고 하셨지만 그새 이미 차 소유주는 나로 변경되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으셨을 거야. 난 아빠가 기분 따라 이러실 줄 알았기 때문에 준다고 잠깐 하셨을 때 진즉 명의만 내 앞으로 변경해 두었지. 훗.

이럴 줄 알았다는 게, 울어야 해 웃어야 해?




올해는 특별히 친정을 먼저 갔는데, 이 아침부터 시댁에 가면 부모님들 놀라실 것 같아서 못 가겠더라. 그러니 명절 아침부터 갈 데가 없더라.
명절날 아침에 남편과 아이들을 데리고 맥도날드엘 갔어. 정말 겸연쩍고 창피했어. 맥도날드에 우리밖에 없을 줄 알았는데, 사람들이 많아서 살짝 놀랐지만 한편으로 왠지 모를 위로가 되더라.

그래 이거, 별일 아니야.


아빠가 여름에 계속 이 차를 쓰셨어서, 엄마차에서 담배냄새가 엄청나. 엄마가 이걸 보고 계실까. 정말 속상해.
난 집에 내려가면 이 차 두 번 다시 타지 않을 거야.
엄마 생각나는 것도 싫고 담배냄새도 싫어.
난 이 차 없이도 이제껏 잘 살았어.



난 그 누구에게도 감히 뭐를 믿어라, 말하지 않아.
아무리 교회에서 전도축제를 해도 난 거기에 응하지 않았어. 한국은 세계적으로 선교사 파송 최고를 달리는 나라이고, 그러니 예수님 몰라서 안 믿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야. 근자에 엄마의 장례와 아빠의 막말을 듣는 추석을 보내면서, 나의 단 하나의 소중한 열매가 결국 그 안에서 변화의 동력을 이끌어내지 못했을 때 어떻게 되는지 똑똑히 보고 있어. 남편에게 울며 말했어. 난 앞으로도 절대 전도는 하지 않을 거라고. 아무 쓸데없는 짓이라고.
누군가 전도해서 달라진 사람이 있다면, 그건 그 사람이 될만한 씨앗이었기 때문에 된 거지 누군가 땡겨서 된 게 아니라고. 남편은 그건 사실이 아니라고, 전도로 인해 놀라운 역사가 많이 일어났다고 말해줬지만, 나는 지금 너무 아파서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아.



소띠며느리 이야기도 제 날짜에 발행하기가 너무 힘이 든 날들을 보내고 있어요.
저는 시간약속을 지키지 않는 걸 참 싫어하는 사람인데, 인생을 살다 보면 지킬 수 없는 순간도 오나 봐요... 죄송합니다.

저랑 시어머니가 얼마나 달랐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사랑하게 되고 가족으로 버무려져 갈 수 있었는지 우당탕탕 성장기를 유쾌하게 담아내고 싶었는데,
이런 글을 쓰느냐 너희 어머니랑 남편도 이런 글 쓰는 거 아시냐 (제가 들은 말은 아니고요. 고부간 이야기를 다룬 다른 분들의 글에 달린 댓글)
저도 그런 말을 듣게 될까 그럴 땐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겁이 나기도 해요.

어쩌면 지금은 제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시기 같기도 합니다. 제가 즐겨 듣는 김창옥 아저씨가, 자빠졌을 때 너무 창피하면 잠시 죽은 체를 하거나 누구한테 도움을 요청하라고 했는데.
이 글을 읽고 읽어도 어딘가 매끄럽지 않다는 건 알겠는데 어디를 고쳐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저 좀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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