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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다비 Jun 19. 2024

눈치 백 단 둘째 덕분에 남편이 육아의 세계로 들어왔다

뭘 해도 예쁜 작은 녀석

둘째를 임신하던 무렵, 우리 부부 관계는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았다. 그래서 임신 확인도 나 혼자 도깨비처럼 다녀왔고 태명도 내가 지어줬다.

이 아이를 통해서 우리 부부가 서로 바라보길 원하는 소망을 담아 봄 이라고 지었다. 봄에 가진 아기이기도 했고.


1호는 2호의 생성소식에 그게 뭔지도 잘 모르면서 굉장히 기뻐했다.

봄이 아기야~라고 다정하게 부르며 내 배에다 대고 태담을 자주 나눴다.

우리 2호의 태교는 다정한 형아가 9할 이상 담당했다.


밥 먹으려고 상체를 앞으로 기울이면 자기 좁아지니까 비키라고 밀어대고 시도 때도 없이 태동이 무척이나 활발했던 첫째와 달리 둘째는 엄마가 맛있는 걸 먹을 때만 즐거운 발길질로 짧게 화답했고, 그 외에는 대부분 얌전히 있었다. 혹시 아기가 뱃속에서 잘못된 건 아닌가 걱정이 될 정도였다.





둘째가 태어나고 집에 돌아왔을 때 일이다.


낮에 사람들이 다 나가고 집이 조용하면 눈을 살포시 뜨고 나를 찾는 눈길로 끼잉 대며 사랑을 갈구하다가, 오후가 되어 형이 우당탕 집에 와서 떠들기 시작하면 자지 않는데도 눈을 꼭 감고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있는 것이다. 눈 뜨고 있으면 형아가 아이 예쁘다 내 동생 하면서 눈구멍에 손을 넣고 그런 일이 잦아서 애가 본능적으로 눈치가 백 단이 된 듯했다.


엄마아빠 사이도 기가 막히게 읽어버렸는지,

이 아이는 내가 재우면 안 자고 아빠가 재우면 세상모르고 잠이 들었다. 자연스럽게 밤마다 남편이 아이를 재우게 되었다.


키워갈수록 둘째의 눈치와 센스가 말로 다 못한다. 엄마가 혼낼 포인트는 절대 넘지 않는다. 본능적인 어떤 수위조절 센서가 장착된 버전 같았다.

센스 만점인 둘째 덕분에 우리 부부는 다시 함께 웃을 일이 많아졌다.


이런 일련의 서사를 쭉 돌아볼 때면, 이 아이는 정말 하나님이 주신 아이인가 보다 생각이 든다. 임신이 어려운 상태에, 남편과 관계도 소원하던 때에, 대체 어떻게 이 아이를 가지게 된 건지. 이 아이를 통해 우리 부부가 다시 사랑을 되찾게 된 것도 말이다.

2호는 아빠가 집을 비운 날에는 엄마랑 형아가 다 같이 있는데도 자다가 우두커니 혼자 어둠 속에 앉아 있곤 한다. "OO아 왜 그러고 있어?" 하면 눈물을 글썽이며 "어빠 보구 시퍼." 하는 것이다. 하하.


사랑스러운 이 아이 덕분에 남편이 본의 아니게 육아에 많이 참여하게 되었다. 남편도 첫째는 자기가 안아주면 울고 불편해했는데 둘째는 자기를 좋아하고 따르니까 신기한 녀석이라며 즐거워했다.

자기 마음에 아빠가 좋아서 아빠를 사랑하고 졸졸 쫓아다닌 것뿐이겠지만, 그 덕분에 남편이 부러 시간을 내어 육아에 함께하게 되었고 나도 행복해졌다.

고마워, 둘째야❤





#센스가 저세상급

#귀염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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