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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다비 Apr 12. 2024

언제나 비가 새는 우리 집

쓰다 보니 더 신기하네. 물과의 인연.

사택에서 살다 보니 재미있는 일이 참 많았다.

교회에서 제공해 주는 집에 그냥 들어가야 하는 처지이다 보니, 그 동네를 번째쯤 가보는 날이 곧 이삿날이 되곤 한다. 그래서 동네에 대한 지리감이 전혀 없이 바로 생활과 적응을 동시에 시작하게 된다.


교회 건물 안에도 살아 보고, 교회 밖에도 살아 봤고, 컨테이너 박스에서도 살아 봤고, 부목사들끼리 오종종 모여 있는 빌라에 살기도 했다.


너무너무 좁아서, 한 사람 살기에도 부족한 집이 있었는데, 아 여기는 저희 살림이 들어가지 않아서 어려울 것 같다고 했더니 집 밖에다 살림을 두면 된다는 말도 들어봤다. (그 말 딱 들으니 목사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 것 같아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손절했다)

한 번은, 아파트 엘리베이터부터 교회에서 기증한 거울이 떡하니 붙어 있더니, 복도를 쭉 따라 집까지 걸어가는데 복도의 모든 집에 OO교회 문패가 붙어 있는 엄청난 아파트의 사택에 살게 될 뻔도 했다.

그 교회에 부임하지 않게 되어서 참 다행이었다.

아직도 생각하면 앞이 아찔하다.

위아래 앞뒤 좌우집이 모두 성도집이라니, 집인지 일터인지...






참 다양한 지역과 동네에서, 다양한 형태와 크기의 집에 살아봤지만, 특이하게도 우리 집은 늘 물과 연관이 깊은 것 같다.


첫 사택은 1월의 한겨울날 이사를 했는데, 이삿날 밤에 주방에서 물이 터져서 119가 출동했었다. 이삿짐 사람들이 돌아가고 난 뒤 남은 잔짐을 정리하고 있는데 벽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엄청난 물살에 눈도 못 뜨고 생 차가운 물임에도 너무 당황하여 추운 줄도 모르고 벽을 막으려고 애쓰며 119! 119! 를 남편에게 외쳤더랬다.


신혼이라 살림도 다 새 거였는데, 주방 집기와 선반장 등 모든 살림이 순식간에 다 젖어버렸다. 이미 하루종일 짐을 닦고 청소를 했는데, 물폭탄에 쫄딱 젖은 바람에 처음부터 다시 냉장고부터 시작하여 모든 살림을 다 들어내고 다시 닦고 정리했다.

싱크대 문짝은 옳게 된 게 한 개도 없었다. 덧니도 그렇게 심한 덧니가 없었다. 도저히 거기서 무언가를 만들어 내고 시간을 보내고 싶지가 않았다. 그런데 남편은 이사하자마자 곧바로 미친 듯이 바빠, 나 혼자 싱크대 문짝을 모두 떼어내 닦고, 시트지를 붙이고 손잡이를 바꾸어 달아 리폼을 했다. 시장에 가서 싱크집에 가 싱크볼을 사비로 바꾸어 달았다. 앞전에 살았던 사모님의 충격적인 살림실력에 청소를 할수록 욕지거리가 치밀어 올랐다. 이삿날 바퀴벌레를 많이도 보았다. 정말 그 집에 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선택권이 없었다. 교회 밖에 집을 얻을 돈도 없었지만, 이제 와서 교회 밖에 산다고 하면 그냥 사임하라고 할 목사님이셨다.


그 집은 정말 엄청나서, 화장실에 맨날 알 수 없는 물이 어디선가 뚝뚝 떨어졌다. 그리고 4층에 사는데 비만 오면 집 떠내려 갈까 봐 잠을 못 자게 만드는 집이었다. 집으로 지어진 공간이 아니고 그냥 교회 옥상 위에 덜렁 앉혀진 컨테이너 박스였는데, 옥상의 배수구 지름이 내 주먹보다 작았다. 비가 조금만 많이 쏟아지면 배수관이 막혀서 옥상에 물이 범람했고, 컨테이너 박스(=우리 집) 안으로 곧장 밀고 들어왔다. 이상하게도 꼭 남편이 수련회를 가거나 집을 비운 때에 폭우가 쏟아졌고, 나는 만삭의 몸으로 장화 신고 혼자 집과 현관의 물을 바가지로 퍼냈다. 거기 살 때는 늘 현관에 물 퍼낼 바가지와 빗자루와 고무장갑과 장화가 준비되어 있었다. 물 퍼내다가 벼락이라도 맞으면 안 되니까! (상상력이 풍부한 겁쟁이다)

정말 내 평생 통틀어 최악의 집이었는데 우린 에누리 없이 무려 4년을 그 집에서 살아냈다. 거기서 건강하게 자라 준 우리 첫째 아가 정말 대견하고 기특하다.


두 번째 집은 사방에 창이 많아 햇살이 하루종일 드는 사랑스러운 집이었다. 지금이 몇 시 인지 계절이 오는지 가는지, 알 수 없게 해가 들지 않던 박스집에서 꼬박 4년을 살다 온 나는 그 집에 이사 가서 커튼값이 많이 들었지만 너무너무 행복했다.

힘듦 총량의 법칙이 있다던가. 그곳은 선임사모님이 하셔서, "어제 밤늦게까지 불 켜져 있던데, 뭐 했어?"하고 물어보시곤 했다. 그래서 햇살 좋은 거실에 암막커튼을 달았다. 내가 어디 나갔다 오면 어디서 어떻게 지켜보시고 "어디 갔다 왔어?"하고 꼭 물으셨다. 그게 대체 왜 궁금하신 걸까.. 그 사모님은 참으로 빛나는 사우론의 눈 같은 분이셨다. 지금은 횃불과 같은 그 레이저 눈을 성도들을 일일이 헤아리고 살피시는 데에 잘 쓰고 계시길.


거기는 알 수 없는 누수가 있는데, 누수전문가가 수차례 다녀가도 원인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일 년 내내 베란다 천장의 페인트가 서서히 떨어져 가루가 되어 내렸다. 연중 내내 크리스마스 같은 집이었다. 예수님을 기다리는 집이라고나 할까.

베란다엔 포기할 만한 살림만 두거나, 다 박스처리 후 축축한 바닥으로부터 공간을 띄워 수납했다.

그래도 베란다라는 게 있는 게 어딘가! 박스집에 살다 온 내가 아닌가!


그다음 집은 집 벽에 대형 어항이 있었다. 그 사택에 산다는 이유로, 어항까지 우리가 관리를 해야 했다. 가끔 청소를 하다 물이 넘치면 녹조 잔뜩 낀 어항 물이 우리 집 거실로 곧장 쏟아지곤 했다. 어항이 큰 만큼 여과기 모터소리가 살벌해서, 너무 시끄러웠다. 알 수 없는 전염병이 어항 속에 돌아서, 물고기들 사 넣는 족족 다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다음 집은 보일러 연통이 이상해서 보일러가 자꾸 요실금 증상이 있다. 몇 번이나 손을 봤는데도 도무지 보일러 요실금이 개선되질 않고, 베란다 바닥이 물이 철벙철벙 하게 차곤 하는데, 그게 언제 그렇게 될지 좀처럼 가늠하기가 힘들다. 그냥 보일러 맘이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 바닥으로부터 살림을 띄워 플로팅 기법으로 살림을 사는 데 나는 이미 통달한 여자가 되고 만 것이다.

보일러 아래엔 여태 살면서 생겨난 헌 수건들을 쌓아 기저귀를 만들어주면 그만이다. 이런 일로 스트레스받지 않는 게 더 중요하다.



그래도 자상하고 사랑스러운 남편과 함께라서, 나는 어떤 조건의 집에 살아도 투닥투닥 즐겁게 살고 있다.





#당신이랑 살면서 내가 참 별일을 다 겪는다

#내가 더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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