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조교로 일하기 #3
새 학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학생 명부를 들고 배정받은 교실을 향하겠죠. 그런데 막상 가서 무슨 말로 첫 수업을 시작해야 할지 머릿속이 하얘집니다. 자기소개를 해야 하나? 뭐라고 해야 하지? 오늘부터 수업 시작하면 되는 건가? 학생들이 내 발음을 비웃으면 어떡하지? 어떻게 해야 좋은 첫인상을 남길 수 있지? 여러 오만가지 걱정이 다 들곤 합니다. 그런 분들을 위해, 오늘은 수업 첫날에 쓸 수 있는 표현들을 소개해볼까 합니다.
학기 첫날, 저는 먼저 교실에 들어가 수업에 대한 정보를 칠판 한 구석에 적어둡니다. Course 번호와, 교수님 성함, 제 이름과 제 이메일 등을 말이지요. 혹여나 학생들이 반을 잘못 찾아와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도록 말입니다. 시간이 조금 많이 남았다면, 앉아있는 학생들에게 말을 건네 긴장을 풀곤 합니다.
What's your major? / What are you majoring at?
전공이 어떻게 되니?
Which year are you in?
몇 학년이니?
미국에서는 대학생의 학년을 1st year, 2nd year처럼 표현하지 않습니다. 대신 이렇게 말하죠.
Freshman - 1학년
Sophomore - 2학년
Junior - 3학년
Senior - 4학년
간간히 5년 차인 대학생들은 super senior라고 부르기도 하곤 한답니다.
이 용어들은 대학교뿐만 아니라 고등학교에서도 사용합니다. 주마다 차이가 있긴 하지만, 미국의 공교육은 대개 초등학교 5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4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고등학교 4년을 역시 freshman, sophomore, junior, senior라고 부른답니다.
학생들이 슬슬 모여들었으니 수업을 시작해 볼까요? 어떤 말로 수업의 시작을 알릴까요? Let's begin이나 Let's start라는 표현도 좋지만, 다음의 문장을 사용해 보는 건 어떨까요?
Let's get started!
자 이제 시작해 봅시다!
비록 가르치는 과목들은 매번 달라졌지만, 제 첫 수업은 항상 비슷한 과정을 따릅니다. 먼저 수업에 대해 간단하게 소개하고, 어떻게 해야 좋은 학점을 받는지를 설명하고, 자기소개를 하고, 학생들의 이름을 한 명씩 불러본 뒤, ice breaking의 시간을 갖게 합니다. 저는 자기소개를 할 때 항상 제가 한국에서 왔음을 말합니다. 물론 이제는 영어로 수업을 하는데 불편한 점은 없지만, 어쩌다 한번 어떤 단어나 표현이 생각나지 않는다거나, 발음하는 방법이 틀렸다거나 하는 일이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Sometimes I might struggle with coming up with an appropriate word or a right pronunciation. I'd appreciate if you could help me.
가끔씩 내가 적절한 단어를 떠올리거나, 맞는 발음을 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을 수 있어요. 그때 나를 도와준다면 정말 고마울 거예요.
제가 여러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어본 결과, 외국인 TA를 향한 가장 주된 불만점이 바로 '이해하기 어려운 발음'이었습니다. 물론 그들이 못된 마음을 품고 차별하려는 목적에서 그런 불만을 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아무래도 생소한 악센트에 잘못된 발음을 구사하는 조교를 만나면 가뜩이나 어려운 공부가 더욱 힘겹게 느껴질 수는 있지요. 그래서 저는 학생들에게 혹시나 제가 잘못 발음하는 단어가 있다면 교정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저도 잘못된 발음을 교정할 수 있어서 좋고, 학생들도 더 나은 발음으로 듣기 편해져서 좋지요. 게다가 일방적이고 딱딱한 수업의 분위기가, 쌍방적인 관계가 되며 부드러워진다는 이점도 있습니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학생들에게 '내가 틀렸다면 나를 고쳐줘'라고 말해보는 건 어떨까요?
자기소개의 시간을 가진 후, 출석부에 적힌 이름을 하나씩 불러봅니다. 학생들의 이름에 익숙해지기 위함입니다. 제가 1년 차 TA때 정말 놀랐던 것이 미국에는 정말 '다양한' 이름이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다인종 국가다 보니 흑인식 이름, 인도식 이름, 남미식 이름, 유럽식 이름, 중국식 이름 등 평생 처음 보는 이름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음과 같이 말하곤 합니다.
Please correct me if I pronounced your name wrong. I will write down it in Korean on the roster, so that I can pronounce it correctly next time.
내가 이름을 잘 못 부르면 정정해 줘. 그러면 출석부에 네 이름을 한국어로 적어둘게, 다음부턴 제대로 발음할 수 있도록.
또한 이름이 하나가 아니라거나, 이름이 엄청 길다는 등의 이유로 등록된 이름과 다른 이름으로 불리고 싶은 학생들도 있습니다.
If you have a name preferred to be called, let me know.
(등록된 이름 말고) 대신 불리고 싶은 이름이 있다면 알려줘.
이렇게 학생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제대로 알고 정확히 불러주면, 학생들은 TA가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준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 또한 TA에게 관심을 가지려고 노력하지요. 저는 편의상 John이라는 영어이름을 사용하지만, 간간히 제 한국어 이름을 알려달라 하고, 그것으로 부르고 싶어 하는 학생들도 있었답니다.
이렇게 서로의 이름에 익숙해지면, 학생들끼리 삼삼오오 모이게 해 간단한 ice breaking을 갖게 합니다. 학생들이 서로 친근해져야 화기애애한 discussion section이 되기 때문이죠. 이때 학생들에게 '옆 사람이랑 서로 인사하고 얘기해 봐'같은 두루뭉술한 제안보다는, '이러한 이야기들에 대해 나눴으면 좋겠어'하고 주제를 지정해 주는 것이 좋답니다.
처음 자신을 소개하는 자리에선 어떤 대화 주제를 나누는 것이 좋을까요? 물론 이름과 학년, 그리고 전공이 있겠지요. 만약 다른 주, 혹은 외국에서 온 학생들이 많다면 각자 자신의 hometown 혹은 home country에 대한 이야기도 좋은 주제입니다. 취미 생활도 좋은 이야깃거리입니다. 학생들이 자신의 개성을 뽐낼 수 있는 주제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이런 피상적인 자기소개보단, 조금 더 우스꽝스러운 주제에 대해서도 나눠보면 어떨까 싶어요. 몇 가지 예를 들어볼까요?
What's your favorite ice cream flavor?
Who's your favorite youtuber/tik-toker?
What's your guilty pleasure? (죄책감 들지만 좋아하는 일, 예컨대 시험 전날 넷플릭스 정주행 하기)
What's the stupidest question you've ever heard?
Who's your favorite Disney/Pixar/anime character?
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ice breaking 자리에서 나누기엔 좋은 질문이 아닐 수 있습니다. 가족에 대한 상처가 있는 학생들이 있을 수도 있으니, 자기를 소개하는 자리에서는 다소 지양해야 할 주제가 아닐까 싶어요. 또한 한국과 달리 미국은 나이를 처음부터 공개하는 문화도 아니니, 자신의 생년월일에 대한 이야기는 피하도록 합시다. 별자리, MBTI, 해리포터 기숙사, 혈액형 같은 이야기는 일부 학생들은 엄청 좋아하고 파고들지만, 관심 없는 사람들은 시큰둥합니다. 학생들이 대화를 나누며 서로를 알아가기엔 적합한 주제는 아니니 피하도록 합시다.
학생들 앞에서, 그것도 영어로 말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익숙하지 않다면 어렵고 두려운 일이지요. 하지만 이것에 대한 두려움이 크면 클수록, 학생들도 여러분들을 더욱 멀고 어렵게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악순환을 끊는 저의 주문은 이것입니다.
이 아이들은 나를 평가하기 위해 앉아있는 것이 아니다. 이 아이들은 배우기 위해 앉아있는 것이다.
이 마음가짐으로 학생들 앞에 서는 두려움을 이겨내 보세요. 학생들과 더욱 편해지면, 그래서 그들의 흥미와 관심에 집중하고, 그들의 고민과 어려움에 공감해 준다면, 학생들도 여러분들의 진심을 알아주고 더욱 잘 따라줄 거예요. 오늘은 여러분들에게 수업을 더욱 화기애애하게 만들어주는 handy한 표현들, ice-breaking topics들도 소개해드렸으니, 두려움은 접어두시고 조금 더 자신감 있게, 학생들 앞에 서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