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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밀라 Sep 16. 2021

두 마리 고래가 필요했던 이유

눈을 뜨니 7:30 AM

새로운 아침이다.


눈을 뜨자마자 폰을 켜고 그 자리에 누운 채로 만화를 읽는다.

제발 아이가 깨지 않기만을 바라며.


간절한 나의 마음과 달리 아이는 스스로 일어났고 자는척하는 나를 바라보며 울기 시작했다.

"엄마, 우유 주세요. 우유 먹고 싶어요."


우유가 먹고 싶다는 아이를 모른 척할 수 없어 천근만근 무거운 몸을 일으켜 우유를 가지고 왔다.

근데 웬걸. 이 컵이 아니란다.

자기가 먹는 뽀로로 컵에 우유를 안 줬다고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


시간을 보니 7:35 AM.

출근을 위해 집을 나서기까지 시간이 남아있다.

아이가 울고불고 떼써도 기다릴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상황.


아이에게 설명했다.

"엄마가 어제 설거지를 안 하고 자서 뽀로로 컵이 없어. 그냥 마셔야 해."

하지만 아이가 받아들일 턱이 있나. 아주 매트 위를 구르고 난리가 났다.


난 가만히 앉아서 가져온 우유를 마시길 기다리고 있고 아이는 울고 불며 뒹굴고.

그렇게 몇 분이 지났을까.

훌쩍이며 내 옆에 앉은 아이는 뜬금없이 물을 달란다.


그래서 똑같은 컵에 물을 가져왔다.

아니나 다를까, 이 컵이 아니란다.

또 매트 위를 뒹구는 아이.


그냥 안 울게 다른 컵에 줄까 싶었는데 나도 오기가 생김.

이렇게 하나부터 열까지 다 맞춰주면 끝도 없겠다는 생각에 그냥 기다렸다.

"엄마가 어제 설거지를 못해서 그래. 오늘은 이 컵에 그냥 먹자."라고 말하며.


그렇게 또 5분을 대치.

결국 아이는 우유가 든 컵을 달라고 했다.

그리고는 꿀떡꿀떡 잘 마셨다.


난 아이가 원하는 우유를 주었고, 아이는 원하는 우유를 먹는 대신 컵에 대한 주장을 굽힘.

중간에 짜증이 치밀었는지라 어조가 곱게 나가진 않았지만 큰소리치지 않은 나를 칭찬해.




등원 준비를 모두 마치고 집을 나서려는데 갑자기 아이가 고래 두 마리를 가지고 왔다.


순간 2차전 시작인가 하는 마음이 들었다.


난 '어린이집에 두 마리나 가져갈 필요가 있나. 그냥 한 마리면 되지.'라는 생각에 아이에게 말했다.

"대박아, 어린이집에 한 마리만 가지고 가자. 한 마리만 가지고 가는 거야. 둘 중에 하나만 선택해."


우리 대박이, 내 말은 그냥 씹어먹고 고사리 같은 손으로 자기 어린이집 가방에 귀상어와 범고래 모형을 챙겨 넣는다.

그러고는 "엄마, 이렇게 두 마리 가지고 가는 거야." 하는데 그 모습이 귀여워 그대로 집을 나섰다.

두 마리 가지고 간다고 해서 큰 문제 되는 것도 아닌데 울려 뭐하겠냐는 생각에 그대로 뒀더니 원하는 바를 이룬 대박이는 순순히 집을 나섰다. 그렇게 2차전은 시작하지 않은 채 종료.


8:41 AM 이제 좀 압박감이 느껴진다.

지각하지 않기 위해 타야 하는 지하철 시간이 임박해 오는데 대박이는 느긋하다.

그래도 오늘은 엄마 발걸음에 맞춰 잘 걸어줘서 고마워하던 찰나 들려오던 아이의 말.


"귀상어는 찬이에게 주고 범고래는 대박이가 가지고 놀 거야."




오 마이 갓.

순간 머리가 댕~ 하는 느낌.


나는 대박이 혼자 가지고 자기 장난감을 가지고 놀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아이가 두 마리 고래를 챙겨 간다고 할 때 말렸었다.

하지만 "누군가와 함께 가지고 놀기 위해" 상대방의 몫까지 챙겨간다는 거였다니.

엄마가 네 마음을 몰랐네 대박아.


"대박이 친구랑 같이 가지고 놀려고 고래 두 마리를 가지고 온 거야?"

"응, 찬이랑 가지고 놀 거야."

"그랬구나, 엄마가 대박이 마음을 몰랐네. 미안해. 친구 것도 챙기고 너무 잘했어."


그러다 보니 오늘 아침 나 자고 싶다고 코코멜론 틀어주고 난 방에서 5분이라도 더 자겠다며 누워있었는데 아이를 귀찮아했던 마음이 너무 미안했다.


"대박아, 엄마랑 아침에 코코멜론 보는 게 좋아?"

"응, 좋아."

"그럼 엄마가 이제 조금만 일찍 일어나서 같이 할까? 그랬으면 좋겠어?"

"응!"

"그래, 엄마가 오늘 아침에 대박이랑 같이 안 있어줘서 미안해. 앞으로 엄마가 조금만 일찍 일어나도록 해볼게."

"으응!"


그렇게 아이와 이야기하며 가는 등원 길.

나름 아이의 마음을 잘 물어보고 헤아린다고 생각했는데 많이 부족하구나 느꼈다.

아이는 내 생각보다 더 성숙하고 빠르게 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침에 그렇게 짜증 났는데 아이와 이야기하다 보니 풀리는 마음.

오늘도 너와 함께해서 고마워.

너를 보며 나도 함께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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