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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작꼬작 Jun 14. 2023

자동차가 없어서 세상이 좁아졌다

발이 없다는 것과 마찬가지인

샌디에이고에 오고 두 달 동안 차 없이 살아보았다. 그리고 도저히 안 되겠어서 차를 샀다. 


두 달 동안 어떻게 지냈냐면, 꽤 힘들었다. 


거리를 걸으면 편의점도 있고 식당도 있는 서울과 달리, 샌디에이고와 내가 지금 사는 곳은 -그리고 아마도 일부 대도시를 제외한 미국 대부분의 교외 지역은- 주택가와 상점이 완전히 분리된 형태로 되어있고 대중교통도 발달되어 있지 않다. 상점이 몰려있는 쇼핑몰들은 이름이 있긴 하지만 보통 대표적인 무언가로 지칭한다. '홀푸즈 있는 그 쇼핑센터' 이런 식이다. 


먹을 것과 필요한 것을 사려면 이런 쇼핑센터에 가야 하는데, 대중교통을 타고 다녔던 서울과 달리 -그리고 트롤리로 조금 나아진 지금과 달리- 이런 최소한의 이동조차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했다. 


집 근처에 있는 버스 정류장은 이십 분 떨어진 곳에 딱 하나 있었다. 그 버스를 타면 갈 수 있는 곳이 많은가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학교 주변과 마트가 있는 쇼핑몰 정도에 가는 버스 노선이었다. 그런데, 마트까지 걸어가면 삼십 분 정도 걸린다. 그러니까 버스를 타는 의미가 없는 셈이다. 


열심히 걸어서 마트에 가서 쇼핑을 한 후에는 짐을 가지고 와야 하는데, 큰맘 먹고 간 쇼핑인 만큼 짐이 많아서 버스를 탈 수가 없었다. 짐을 많이 가지고 버스를 타는 건 위험하기도 하다. 


택시를 타고 온다. 우버나 리프트를 타고 오면 인건비 비싼 미국 답게 아무리 거리가 짧아도 $15 이상 지불할 준비를 해야 한다. 


먹거리를 사서 오는 데에 시간도, 체력도, 돈도 너무 많이 들었다. 


마트에 걸어가는 길은 안전하지 않았다. 난데없이 인도가 없어지기도 하고 고속도로 위를 건너가야 했다. 걷고 있는 바로 옆으로 차들이 시속 45마일 (약 시속 72km)로 지나갔다. 거리에 걸어 다니는 사람을 본 기억이 드물었다. 한 시간에 한 명을 볼까 말까였다. 


때로는 을씨년스럽기까지 한 거리를 혼자 다닐 때는 무섭기도 했다. 어디가 안전한지 아닌지 모르는 낯선 곳과 공사장을 곁을 지나다니는 게 안전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한 번 나갈 때는 목적지까지 가는 길을 꼼꼼히 따졌고 항상 지도를 켜고 다녔다. 안전한 샌디에이고였지만 그래도, 그래도 무서운 건 무서운 거였다. 


캘리포니아의 한 낮 땡볕 아래, 삼사십 분을 걸어 마트에 가고 한두 시간을 쇼핑하고 집에 오면 녹초가 되었다. 슬리퍼를 신고 갔다가 발이 아파 운동화를 사서 신고 돌아왔다. 햇빛이 닿은 얼굴과 팔, 다리는 빨갛게 달아올라서 선크림과 피부 진정 크림을 샀다. 


이런저런 루트를 도전한 끝에 마트에 갈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을 찾았다. 옆 아파트 단지를 가로질러 가파른 언덕을 내려가면 나오는 샛길이었다. 남의 아파트 단지를 가로질러 가도 되나? 조금은 불안했다.


두 달 사이 튜터링을 시작했다. 튜터님과 만나자 세상이 달라졌다. 샌디에이고의 모든 곳을 소개해 주셨다. 여기에는 이렇게 예쁜 곳이 많은데, 지상 낙원에 가까운 곳인데, 집 근처만 다니는 게 정말, 너무나 아까웠다. 파랗게 빛나는 바다와 초록빛 잔디, 부서지는 햇살 아래 한가로이 늘어져있는 물개들로 가득한 라호야 코브에 처음 갔을 때 결심했다. 여기를 꼭 남편과 와야겠어! 


샌디에이고에 오고 한 달이 지나 친구를 만들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함께 에어쇼를 보러 가자고 해 주었던 고마운 언니와 9월 말, 부부 동반으로 구경을 갔다. 집에 오는 길에 처음으로 한인 마트에 갔는데, 새로운 세상이었다. 한국 노래가 나오고 한글로 쓰여 있는 설명이 보였다. 한국 과자도 있고 라면도 있고, 없는 게 없었다. 


그때 또 느꼈다. 차가 있어야 한인 마트에 올 수 있구나. 삼십 분으로 좁혀진 내 세상을 차가 넓혀주겠구나. 내 삶의 질을 위해 운전면허를 따고, 차를 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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