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에 가입하기 위해 알아보는데, 처음 보는 개념으로 가득한지라 열심히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운전을 좋아해 한국에서도 아빠가 물려준 중고차를 타고 여행을 다니기도 했지만, 그때는 부모님 보험에 하루씩 얹혀가는 쉬운 방법을 썼었다. 부모님은 보험사의 우리 가족 담당 에이전트와 대표 번호를 알려주시고, 혹시 사고가 나면 이 번호로 연락하면 될 것이라고 했다. 대인 사고의 한도니, 자기 부담금이니 하는 것은 전혀 나의 관할도 책임도 아니었던 것이다.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상황이 바뀌었고, 하필이면(?) 외국에서 홀로서기를 시작한 우리 부부이기에 공부해야 할 것이 산더미였다.생소했던 용어들을 정리해 보았다.
1. 책임 보험 Liability Insurance
주마다 자동차를 운전할 때 필수로 들어야 하는 책임 보험 (Liability)의 최소 요구 조건이 있다.
캘리포니아의 경우 본인 과실로 인한 사고에 대해 사람이 다쳤을 경우 $15,000, 한 사고에서 여러 명이 부상당했을 때 $30,000, 재산 상 피해에 대해 $5,000를 책임지는 보험을 들어야 차를 합법적으로 운전할 수 있다.
이것이 최소 요구 조건이고, 보통은 여기에 자기 차량 손해, 무보험자와 사고 났을 때의 보상, 의료비 보상 등의 조항을 더 넣어서 보험에 가입한다.
2. 자기 차량 손해에 대한 Comprehensive, Collision
이 두 가지는 자기 차량을 수리해야 할 때를 대비한 보험 커버리지다.
똑같이 자기 차를 수리할 때 필요한 것이지만, 차량이 손해를 입은 이유에 따라 Comprehensive에 해당할 수도, Collision이 필요할 수도 있다.
Comprehensive는 '예상하지 못했으며 교통사고로 인한 손해가 아닌 것'을 보상하는 조항이다. 예를 들면 갑자기 나무가 차 위로 넘어졌다거나, 야생동물과 부딪혔다거나, 기물 파손 (Vandalism)을 당했다거나 하는 일들에 대해 차량 손해를 보상해 준다.
Collision은 사고로 인해 생긴 수리를 담당해 주는 조항이다. 내가 내 차를 부숴서 수리를 해야 할 때, 혹은 사고에 휘말려서 차를 고쳐야 할 때 이 조항을 사용한다. 내가 겪었던 네 번의 사고에서 모두 이 커버리지를 썼다.
3. 자기 부담금 Deductible
자동차보험이든, 의료보험이든 사용하다 보면 디덕터블이라는 말을 정말 많이 보게 된다. 자기 부담금은 말 그대로 자기가 부담해야 하는 금액으로, 이 숫자가 낮을수록 보험료가 비싸지고 높을수록 보험료는 낮아진다.
처음 차 사고가 났을 때 보험의 디덕터블은 $500이었다. 차량 수리비 견적을 받아보니 몇 천 달러 수준으로, 도저히 보험 없이 낼 수 있는 금액이 아니었다. 그래서 매달 성실히 납부한 보험료의 효력을 보려고 보험을 통해 수리를 했다. 몇 천 달러에서 내가 낸 돈은 $500이고, 나머지를 보험사에서 내주었다. (그리고 보험료가 천정부지로 솟아올랐다.)
이렇게 내가 내야 하는 최소한의 금액이 자기 부담금이다. 이 개념을 이해하는 데에도 약간 시간이 걸렸었다.
4. 무보험자 대비 Uninsured Motorist coverage
또 다른 조항으로 무보험자와의 사고를 대비한 UM이 있다.
법에서는 최소한의 책임 보험이 정해져 있지만, 워낙 다양한 사람들이 사는 미국이니만큼 무보험으로 운전하는 사람도 존재한다. Insurance Research Council의 조사에 따르면, 2019년 무보험 운전자는 8명 중 1명 수준 (12.6%)였다고 한다. 생각보다 높은 수치다.
이렇게 보험이 없는 사람과 사고가 났을 때, 특히 상대방 과실로 사고가 났는데 보험이 없을 때는 정말 당황스러울 것이다. 내 잘못도 없이 사고가 난 것도 억울한데, 자동차 수리비와 의료비 전부 보상받을 길이 실질적으로 없기 때문이다. 보상받을 유일한 길은 민사 소송을 제기하는 것인데, 무보험자의 절대다수가 보험이 없는 이유에 대해 '보험료를 지불할 수 없어서'라고 답한 만큼 소송을 하더라도 피해를 보상해 줄 재산이 없을 가능성이 높다.
그랬을 때 나를 도와줄 유일한 것은 내 보험뿐이다. UM 커버리지가 있다면 무보험자와 사고가 났을 때 치료비와 수리비를 받을 수 있다.
나의 경우, 두 번째 사고가 났을 때 과실이 있던 상대방의 보험 유무가 확실하지 않았다. 보험 증명서를 내밀긴 했는데, 이미 유효 기간이 지난 것이었기 때문이다. 내 보험사에 이를 알리니 우선 상대방 보험사에 확인을 해 보겠다고 하면서도, 만약 보험이 없는 경우 UM 조항을 쓸 것까지 예상하라고 했다.
결과적으로 상대방 보험은 유효한 것이었고 우리는 UM 조항을 쓰지는 않았지만, 이 커버리지가 있다는 것으로 만약의 경우에도 몇 천 달러에 달하는 수리비를 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큰 위안이 되었었다.
이 용어와 개념들을 이해하는 데 어느 정도 시간이 걸렸다. 지금은 위에 정리한 모든 조항을 포함한 Full coverage 보험을 한 달에 약 $110 정도의 보험료로 쓰고 있는데, 캘리포니아주 평균 보험료가 $190에 달하는 것을 생각해 보면 꽤 저렴하게 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지금 쓰고 있는 AAA 보험의 카드. 보험 카드를 잘라서 자동차 안에 잘 보관해 두면 된다.
보험료는 어떤 보험사에 가입하느냐에 따라 차이가 많이 난다.
미국의 유명한 자동차 보험사로는 State Farm, Progressive, Geico, Allstate 등이 있다.
처음 우리가 썼던 보험사는 Geico였다. Geico는 무엇보다 저렴한 보험료가 가장 매력 포인트인 곳이다. Progressive 보험사와 함께 합리적인 보험료로 유명하다. 우리가 Geico를 골랐던 이유도, 같은 커버리지일 때 보험료가 가장 낮았기 때문이었다. 한편, 반대급부로는 사고 후 진행이 조금 어려울 수 있다는 게 있다. 나의 경우는 괜찮았지만, 친구는 동일한 사고 건 (클레임 claim)에 대해 통화할 때마다 다른 상담원에게 연결되어 매번 다시 설명하는 불편을 겪기도 했다.
반면, Geico와 달리 보험료가 비교적 높은 보험사로는 미국에서 가장 큰 보험사인 State Farm을 들 수 있다. 이곳은 보험료가 높은 대신 서비스가 좋기로 유명하다. 지역마다 로컬 에이전트가 있어서 한국인이 많은 곳이라면 한국어를 하는 담당자를 찾을 수도 있다. 영어로 클레임을 진행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던 한 친구는 한인 에이전트가 있다는 장점을 보고 이곳으로 옮겨가기도 했다.
모든 일이 그런 것처럼, 보험사를 고를 때도 우선순위가 적용된다. 같은 커버리지를 제공하면서 낮은 보험료를 내는 것이 중요한지, 보험료는 좀 높더라도 좋은 서비스를 받는 것이 중요한지 등에 따라 맞는 보험사를 고를 수 있다.
자동차를 사고, 보험도 가입한 후로 샌디에이고에서의 생활은 아주 행복해졌다. 먹고 싶은 것을 아무 때나 사러 갈 수 있고, 튜터님과 마음껏 샌디에이고를 탐험할 수 있고, 친구들과도 놀러 다닐 수 있었다.
하지만 운전하는 재미와 어느 정도 적응한 미국 생활에 행복하게 지내며 첫 로드 트립을 떠난 2018년, 첫 사고가 발생했다. 자세한 사고 이야기는 다음 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