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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작꼬작 Oct 14. 2023

장보기의 알뜰함, 뿌듯함, 그리고 피곤함

미국의 일반적인 마트와 창고형 매장에 대하여

배달도, 외식도 어려운 이곳에서 집에서 요리할 재료를 구해다 놓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삼시세끼 (말 그대로 삼시 세 끼다. 점심을 식당에서 사 먹는 한국과 달리 여기에서는 도시락을 싸 가기 때문이다.) 해 먹으려면, 고심해서 겨우 고른 메뉴의 재료가 없어 대체품을 찾아 머리를 쥐어짜지 않으려면, 항상 웬만큼의 식재료가 집에 있어야 한다. 


게다가 집 앞에 마트가 없으니 '두부 한 모 사러 집 앞 마트 다녀와라'라는 아이 심부름 같은 일도 여기에서는 불가능하다. 그러니 '오늘은 여기, 주말에는 저기, 다음 주에는 거기에서 장을 봐야지' 하는 계획을 잘 세워야 풍성한 식사를 할 수 있다.  



그래서 내 머릿속에는 나름대로의 마트 분류가 있다. 필요한 재료를 빼먹지 않으면서도 저렴하게 사기 위한 주부의 노하우라고나 할까. 마치 엄마가 '시장 입구 가까운 곳의 과일 가게가 제일 맛있다'라고 하시는 것처럼, 나는 '계란은 코스트코에서 사는 게 가장 저렴하다' 같은 생각을 한다.


대략적인 분류는 이렇다. 


1. 일반 마트: 랄프스 (Ralph's), 본스 (Von's), 세이프웨이 (Safeway) 등

2. 대형 마트: 코스트코 (Costco), 샘스클럽 (Sam's Club) 등

3. 한인 마트: 에이치마트 (HMart), 메가마트 (MegaMart), 시온마켓 (Zion Market) 등

4. 기타 가끔 가는 곳: 홀푸드마켓 (Whole Foods Market), 트레이더조스 (Trader Joe's) 등등


이런 식으로 머릿속에 분류가 되어있다. 이 글에서는 가장 많이 가는 1번과 2번에 대한 것들을 다루고, 다음 글에서는 3번과 4번에 대한 생각을 적어볼 예정이다. 


1. 일반 마트


- 방문빈도: 일주일에 2-3번. 높음. 

- 가격대: 보통

- 주로 사는 것: 채소, 과일, 간식


동네에 꼭 하나씩 있는, 가장 일반적인 미국의 마트다. 일주일에 두세 번 장을 보는 곳으로 주로 신선한 채소를 사는 곳이다. 채소 및 과일, 고기, 유제품, 냉동식품, 간식, 주류 등등 먹을 것이라면 다 팔지만 공산품은 거의 없다. 


일반 마트의 장점은 접근성이 좋다는 것과, 대부분 재료가 신선하다는 것. 그리고 할인 쿠폰이 다양해서 야무지게 쓰고 나면 기분이 좋다는 것! 

이런 식의 전단지가 오기도 한다. 사야 하는 것이 마침 할인하는 것을 발견할 때의 기쁨을, 주부라면 공감할 것 같다. 

반면, 단점은 해산물 종류가 정말 없다는 것이다. 항해사였던 아빠의 입맛을 닮아 해산물을 좋아하는, 수산시장 방문이 놀이공원 같은 내게 압도적인 단점이다. 새우, 연어, 광어, 대구 정도가 냉장, 냉동을 통틀어 흔히 볼 수 있는 해산물의 거의 전부다. 


미국은 워낙 넓어 지역마다 마트 회사가 다르다. 내가 겪은 서부 지역의 대표적인 슈퍼마켓 체인점으로는 알버슨 (Albertson's)에서 운영 중인 Vons와 Safeway, 크로거 (Kroger)의 계열사인 Ralph's, 미서부에만 있다는 Smart and Final 등이 있다. 크로거에서 알버슨 인수를 진행 중이라고 하니, 치열한 마켓 전쟁에서 큰 공룡이 탄생할 것 같다. 


2. 창고형 대형 할인 마트


- 방문빈도: 3-4주에 한 번. 보통. 

- 가격대: 보통-높음

- 주로 사는 것: 고기, 달걀, 양파, 생필품 (휴지, 세제 등)


차를 사고 제일 먼저 한 일이 코스트코 장 보러 가기였다고 하면 친구들이 웃는다. 그만큼 공감을 해서일 것이다. 코스트코는 신기하게도, 다녀오면 돈을 쓰고 왔는데 부자가 된 느낌이 든다. 넣을 곳이 없을 만큼 꽉 찬 팬트리만큼 마음도 꽉 찬다. 다만 잠깐 방심하면 그 커다란 카트가 가득 차는 대신, 거금을 쓰고 통장은 텅 빌 수 있으므로 항상 자제해야 한다! 


이곳에 살다 보니 코스트코가 미국에서 시작한 이유를 십분 이해할 수 있다. 시시때때로 장을 볼 수 없고 집에 공간은 상대적으로 많으니 한 번에 많이 사다 놓는 것이 편한 것이다.  


코스트코의 장점으로는 첫째, 품질에 대한 심리적 안정감이 있다. 회원권이 이익의 핵심인 곳이라, 회원 유지를 위해 어느 정도 제품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공을 들여서 믿고 살 수 있다는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 이를 증명하는 것처럼 반품 인심이 후한데, 코스트코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반품을 받아주는 곳으로 유명하다. 


둘째, 대용량이라 언뜻 비싸보여도 단가를 따지면 싸다는 것. 덩어리 고기의 파운드당 가격은 이미 썰어놓은 고기의 절반 정도로 저렴할 때도 있다. 올해 가정용 고기 슬라이서를 사 버렸다. 소고기는 물론 돼지고기, 닭고기도 코스트코에서 사서 썰어먹으니 품은 좀 들지만 돈은 확실히 절약된다. 양파, 달걀도 꼭 코스트코에서만 사는 품목이다. 


셋째, 새로운 상품이 계속 입고되기 때문에 갈 때마다 재미가 있다. 특히 최근에는 새로운 한국 제품이 자주 들어온다. 지난번에는 냉면을 발견하고 냉큼 사 오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기름값! 2인 가정인데도 코스트코에 가입한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했다. 동네에서 항상 가장 저렴한 주유소인 데다, 여행을 가서도 코스트코 주유소를 찾으면 되니 편해서다.  


한편 선뜻 시도해 볼 엄두가 안 나는 대용량 패키지들, 한정적인 채소 종류, 지점마다 상품이 다르고 안내판이 없어서 복도를 헤맬 수 있다는 점, 주말에는 사람이 너무나 많아서 주차 자리 찾기 어렵다는 것 등은 단점이다. 


코스트코와 함께 창고형 마트로 꼽히는 곳에는 샘스클럽이 있다. 이곳은 월마트에서 운영한다. 코스트코 회원권이 있지만 회원권을 할인하길래 올해 처음으로 가입해 보았다. 한 번 밖에 안 가봐서 주로 사는 것을 꼽기에도 민망하지만, 엘에이갈비의 질이 압도적으로 좋다는 게 눈에 띈다. 엘에이갈비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이것만으로도 회원권 가치를 하는 것 같다. 


엘에이갈비 외의 장점에는 간식을 대용량과 일반용량의 중간 정도 양으로 저렴하게 판다는 것이 있었다. 예를 들면 요구르트를 코스트코에서 사면 70개 사야 하지만 여기서는 일반 마트보다 저렴한 단가로 40개를 살 수 있다. 한국 라면을 박스로 판다는 것도 좋다. 아직 사용해보지 않았지만 '스캔 앤 고' 서비스를 아주 편리하다고 평하는 회원들도 많다. 


단점은 (우리 집 기준) 코스트코보다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것과, 매장의 진열 상태가 때론 아주 엉망이라는 것이 있다. 




일반 마트에서 시작되었던 나의 첫 장보기가 생각난다. 샌디에이고의 랄프스 (Ralph's) 마켓에 처음 갔을 때 한국과 사뭇 다른 모습에 즐거웠다. 피라미드 형태로 가지런히 쌓여있는 과일에서 미국 자원의 풍부함을 느꼈고, 저렴한 야채 가격에 놀라기도 했다. 한편 시리얼이 진열된 복도에서는 너무 많은 선택지에 압도되었고, 한국과 전혀 다른 고기 부위에 당황하기도 했었다.


지금이야 익숙하게 장을 보는 곳이지만 농산물을 Produce라고 부르는 것도, 양념류를 Condiments로 표기하는 것도, 주류를 살 때는 운전면허증을 스캔한다는 것도 마트를 다니며 배웠다. 때로는 이렇게 가장 생활밀착형인, 훌륭한 영어 선생님이자 문화 선생님이 되어주기도 하는 곳이 마트다. 


이 두 곳만을 간다고 해서 필요한 모든 것을 구할 수는 없다. 그래서 다음 글에서는 미국에 살아가는 한국인에게 참으로 중요한 '한인 마트'와 그 외 가끔이라도 장을 보는 곳들에 대해 적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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