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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제이 Dec 27. 2022

올드카란 무엇인가?

올드카와 클래식카, 그 미묘한 차이에 대하여

몇 년 전 "추석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의 칼럼이 장안의 화제가 된 적 있다. 근황이나 행위에 집중한 나머지 정체성에 관한 고찰을 등한시하는 우리네 삶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의 글이었다. 정체성에 관한 본질적인 질문은 퍽이나 당돌하고 위험하지만, 우리가 개복치처럼 흐르는 대로 떠가는 삶이 아닌 주체적인 삶의 형태를 만들어가고자 하자면 피할 수 없는 질문이기도 하다.


올드카 라이프에서도 마찬가지다-앞서 '썩차'라는 애증 섞인 단어를 썼지만, 앞으로는 좀 더 고상한 '올드카'라는 용어를 주로 사용할 생각이다-. 올드카를 타는 이들이 흔히 쓰는 "올드카 감성에 빠졌다"는 표현은 지극히 관념적이다. 그런 이들에게 올드카 감성이 무엇인지, 아니 그 이전에 올드카란 무엇인지 물어봐도 답하지 못하기 일쑤다.


내 차고에 올드카를 세우기로 마음 먹었다면 적어도 올드카가 무엇인지, 어떤 차를 사서 어떻게 만들어 나가며 어떤 감성을 추구하는지는 스스로 정의를 내려야 한다. 어느 학문을 배우든 첫 학기에는 개론 수업을 듣지 않는가? 이를테면 '올드카 개론' 정도라고 해 두자.


모든 올드카가 클래식카는 아니다
ⓒTEAM KLUTCH (https://cafe.naver.com/teamklutch2015)

사실 필자는 분류를 위해 편의 상 만들어진 자질구레한 용어의 정의를 내리는 일을 좋아하지 않는다. 자동차의 역사는 연속적으로 이어져 왔고, 이를 모든 사람이 동의할 수 있는 표준화된 기준을 통해 분류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특정 시기에 만들어진 차를 무조건 한 분류로 나눈다든지, 이 차는 수퍼카지만 저 차는 아니라든지 하는 이야기들은 용어 정의를 통해 자신의 지적 허영을 과시하고자 하는 호사가들에게나 어울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 일상적으로 혼용되는 '올드카'와 '클래식카'를 구분하고자 하는 건 당장 여러 대의 올드카를 운용해 왔고 운용 중인 필자가 '클래식카 애호가'로 불리는 것이 낯부끄러운 까닭이다. 올드카의 세계에 첫 걸음을 내딛는 이들을 위해 최소한의 용어 정의를 해 보자.


우선 올드카(old car)란 말 그대로 오래된 차다-개인적으로는 '썩차'만한 초월번역이 없다고 생각한다-. 영미권에서는 old car보다는 vintage car라는 용어가 더 널리 쓰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올드카가 일반명사로 자리잡았다. 사람마다 'old'의 개념이 다르겠지만, 차령 15년 이상은 돼야 올드카라 부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신차의 내구성과 품질은 날이 갈수록 발전 중이기 때문에 앞으로는 바뀔 수도 있겠다(당장 2022년을 기준으로 15년 전에 나온 차를 찾아보라. 무려 현대 제네시스, 기아 모하비가 나온다!).

나라마다 다르지만, 통상 차령 15~30년 이상의 차를 올드카로 본다.

나라마다 올드카를 나누는 기준도 다르다. 우리나라에서는 올드카에 대한 별도의 법제가 없지만, 독일에서는 차령 15년 이상 30년 미만인 차를 영타이머(youngtimer), 차령 30년 이상인 차를 올드타이머(oldtimer)라 부른다. 미국에서도 주마다 차령 15~30년 이상인 차에 대한 별도의 특례 제도를 마련하고 있다. 어쨌거나 올드카라는 단어는, 가치판단을 배제하고 객관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오래된 차'의 통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클래식카(classic car)란 무엇인가? 올드카 중에서도 역사적, 기술적, 문화적 상징성을 띠고 소장 가치를 지닌 희소성 있는 차가 바로 자동차의 고전(classic), 클래식카라 할 수 있겠다. 세계 최대 클래식카 시장인 미국에서는 ①차령 20~25년 이상의 ②역사적 가치를 지닌 ③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차를 포괄적 의미의 클래식카로 정의한다.

엄밀히 말하면 '클래식카'는 아무 데나 붙이는 단어가 아니다. 적어도 원형을 보존하면서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야 한다.

즉 쉽게 정리하자면, 올드카는 모든 오래된 차를 포괄하는 개념이고, 클래식카는 개중에 소장 가치가 있는 차를 부르는 말이다. 만약 해외에서 적당히 낡고 후줄근한 차를 타면서 "나는 클래식카 애호가"라고 하면 비웃음을 살지도 모르니 잘 기억해두자.


물론 무조건 오래되고 희소한 차만이 클래식카인 건 아니다. 비교적 현대에 만들어졌더라도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 차(흔히 "모던 클래식"이라 일컫는다)가 있는 반면, 오래되고 개체수도 적지만 실제 소장가치는 높지 않은 차도 있기 마련이다. 기억하자, 희소성이 언제나 가치를 담보하는 건 아니다. 뭐, 앞으로 한 20년 더 버틴다면 또 모르지만...



그러면 클래식카가 아닌 내 차는 가치가 없나요?
우리나라의 올드카는 대부분 클래식카라 불리기 어렵다. 그렇다고 속상해 하진 마시라. 의미가 없다는 뜻은 아니니까.

클래식이라 생각하며 애지중지하던 소중한 차가 클래식카가 아니었다니, 충격을 받는 이들에게는 우선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우리나라의 지리적 특성과 까탈스럽기 그지없는 인증 법제 상 올드카의 수입에 제약이 많기에 클래식이 아닌 차도 클래식카 대접을 받는 것일 뿐, 현실적으로 한국에서 클래식카라 불리는 차 중 대다수는 굳이 분류를 하자면 클래식카에 들어가기 어렵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적잖은 이들은 발끈할 것이다. 내 애마가 소장 가치 있는 클래식카가 아니라니, 이런 건방진 놈이 뭘 안다고! 워 워, 일단 진정하시라. 여기서 말하는 소장 가치란 말 그대로 "돈이 되는가"의 문제다. 가령 다른 콜렉터블들-이를테면 시계, 와인, 귀금속, 미술품 등-도 리셀 밸류와 직결된 소장 가치를 중요시하기는 하나, 이는 콜렉터의 영역일 뿐 취미로서 즐기는 올드카 애호가의 입장에서는 크게 개의치 않아도 되는 요소이다.


더욱이 상술한 대로 우리나라의 올드카 시장은 특수성이 강하다. 세계 5위의 자동차 생산국임에도 올드카 시장과 문화는 걸음마 단계다. 다른 나라와 육로로 연결돼 있지 않고, 단기간 초고속 경제 성장을 겪으며 문화로서의 자동차를 향유할 여유가 없었으며, 강력한 인증 법제로 올드카의 국내 반입에 제약이 많은 까닭이다. 때문에 올드카의 가치를 매기는 데에 있어 글로벌 기준이 아닌, 우리나라 내에서의 개체 수나 역사성을 고려해야 한다.


쓸데없이 복잡한 말을 했는데, 요컨대 내 올드카가 클래식카든 아니든 큰 의미는 없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자동차의 가치는 차주가 만들어 가는 것이다. 차를 다듬어 나가며 들이는 정성, 차와 함께 써 내려가는 스토리가 곧 그 차의 가치를 만든다. 코인처럼 사고 팔며 시세차익이나 누릴 요량이 아니라면, '내 올드카'의 가치는 내가 투입하는 노력과 애정에 비례해 상승한다.



나만의 '올드카 감성'을 찾아서
ⓒTEAM KLUTCH (https://cafe.naver.com/teamklutch2015)

대충 올드카와 클래식카에 대한 구분을 할 수 있게 됐다면, 이제는 쉽게 입에 올리는 '올드카 감성'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한국 사람들은 유독 '감성'이라는 단어를 쉽게 쓴다. 최신 감성 히트송, 감성 캠핑, 감성 주점 등등 용례가 수도 없이 많다. 그렇지만 정확히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사전적 의미의 감성이란 "자극이나 자극의 변화를 느끼게 하는 성질"이다. 원래는 철학 내지 심리학에서 쓰는 용어인데, 일반적인 용례에서는 이런 자극을 주는 심미적인 매력 요소들을 '감성적인 OO'라고 부른다. 즉, 올드카 감성이라는 것은 올드카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매력적인 것들이라고 정의내릴 수 있겠다.


올드카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매력적인 것들이라! 말은 그럴싸하지만 현실에서는 썩 그리 낭만적이지 않다. 올드카를 타면서 주로 느끼는 감정들은 "아니 이게 왜 고장나?", "아니 고친 지 얼마나 됐다고 또 고장나?", "아니 도대체 돈을 얼마를 퍼먹는 거야?" 같은 것들이다. 시간적·경제적·정신적 여유가 없이는 웃으며 넘기기 어렵다.

좋든 나쁘든, 올드카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감성은 분명 존재한다. 심지어는 경고등 하나까지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드카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매력적인 감성은 분명 존재한다. 지금보다 배출가스와 보행자 안전 규제가 느슨하던 시대에 빚어낸 개성 넘치는 메커니즘과 디자인, "도대체 이 시절에 어떻게 이런 걸?"이라는 경이로움마저 느껴지는 놀라운 아날로그 시스템, 원가절감 따위 신경 쓰지 않는 고집 센 자동차 회사들의 오버 엔지니어링과 수준 높은 마감 품질 같은 것들 말이다. 이런 올드카 특유의 감성에 한 번 빠져든다면 여기에 쏟아붓는 시간과 돈은 썩 아깝지 않게 느껴질 것이다.


물론 모든 사람이 이에 공감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사람마다 차에서 느끼는 감정이 다르고, 어떤 차에 반하는 이유도 다르다. 설령 그 매력을 이해하더라도 여기에 열정을 태우는 일이 아깝게 느껴지거나, 태울 열정이 남아 있지 않을 수도 있다. 때문에 나에게 의미가 있는, 나에게 맞는 올드카 감성을 찾는 것이 지속 가능한 올드카 라이프의 시작이다.


올드카를 보거나 타면서 감성의 울림을 느껴 봤다면, 한 번쯤 올드카에 도전할 가치는 있다. 그렇다면 나만의 감성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찾아가야 할까? 다음 글에서는 올드카의 선택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서 풀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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