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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emprendo May 15. 2024

장막 이야기

여호수아 7장 11절

여리고 전쟁에서 승리한 이스라엘 백성은 돌아오는 내내 성이 무너진 이야기를 하느라 흥분해있었다. 그러던 그들 사이에 한 남자가 말 한마디 없이 몸을 움츠리며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사람들이 각자 장막으로 흩어지자, 재빨리 자기 장막 안으로 몸을 숨겼다. 안으로 들어온 그는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쉬는가 싶었는데 곧바로 땅을 파더니 뭔가를 잔뜩 묻고는 다시 밖으로 나갔다.     



“우리가 전쟁에서 이겼다면서? 너무 다행이야. 참, 그런데 너희들은 누구니?” 

장막은 땅속에 묻힌 물건들을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쳐다보며 물었다.

“우린 여리고 성에서 왔어. 전쟁이 끝나서 한숨 돌리고 있는데 너희 주인이 날 챙기더라고. 좋은 곳에 오는 줄 알았는데, 고작 여기 장막 안, 그것도 답답한 땅속이라니….” 

땅속에서도 반짝반짝 빛나는 시날산의 아름다운 외투가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

“정말 다급한 상황이었는데, 그 눈빛은 저 외투보다 빛났어. 눈이 마주치는 순간 바로 알겠더라고. 날 탐낸다는 걸.” 

오십 세겔이나 되는 금덩이도 번쩍이며 말했다.

“근데 왜 날 가장 바닥에 감춘 거야. 갑갑해 죽겠어.” 

이백 세겔의 은이 몸을 들썩이며 투덜거렸다.

“내가 봐도 너희들은 정말 멋진 것 같아. 우리 주인이 탐낼 만해. 아무튼 이곳에 온 걸 환영해.”  

   

승리의 기쁨이 가시기도 전에 여호수아는 아이성으로 정찰병 몇 명을 보냈다. 그리고 너무 작은 성이라 모두 올라갈 필요가 없다는 증언에 따라 이번에는 3천 명만 전쟁에 내보내기로 했다. 전쟁에 나간 사람이나 기다리는 마을 사람들 모두 아이성은 시시한 전쟁이 될 거라며 마음을 놓고 있었다.     


“아이성은 작은 곳이라니까 이번에도 당연히 이기고 돌아오겠지. 그 큰 여리고 성도 차지했는데, 아이 성쯤이야, 뭐.” 

장막도 편안한 마음으로 전쟁에 나간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럴 것 같아. 여리고 전쟁 때 보니까 이스라엘 사람들 정말 대단하더라고.” 

외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쟁에 나갔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돌아왔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그들의 어깨는 축 처져서 있었고 아무 말도 없었다. 특히 그들의 얼굴에는 지친 것보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설마 진 거야? 여리고 성도 그렇게 쉽게 무너뜨렸는데, 이상하네.” 

외투가 구겨진 몸이 펴질 정도로 놀라며 물었다.

“지금 밖에 여호수아랑 장로들이 여호와 궤 앞에 엎드려서 울며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어. 전쟁에서 진 이유를 알고 싶나 봐. 귀를 쫑긋 세워봐야겠어. 나도 너무 궁금해.” 

장막이 바깥쪽에 일들을 살피며 숨죽여 말했다.

“절대 질 수 없는 전쟁이었는데, 이렇게 한번 지면 다른 마을 사람들이 만만하게 볼 텐데. 그러잖아도 여기를 벼르고 있던데.” 

금덩이는 이후의 일들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불 보듯 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한참 조용히 밖의 상황을 지켜보던 장막이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말했다.

“하나님의 언약을 어기고 죄를 지어서 이 전쟁에서 진 거래! 누군가 적들의 물건을 훔쳐 와서 몰래 숨겼나 봐. 한 사람 잘못 때문에 전쟁에서 지다니…. 그 사람을 죽이고, 물건들도 불살라야 앞으로 다른 적들을 물리칠 수 있을 거래.”

“근데 누가 그런 나쁜 짓을 한 걸까? 아무리 욕심이 나도 그렇지. 하나님 것을 왜!!” 

금덩이가 여전히 번쩍거리며 말했다.

“아.. 그그근데.. 그거 혹시 우리 말하는 거 아니야?” 

외투가 바들바들 떨자, 순간 금과 은도 흙빛이 되었고, 장막도 사색이 되었다.

“근데 여리고 성에서 다른 사람들도 다 이 정도는 들고 오지 않았겠어? 다른 장막 안에도 많을 것 같은데?” 

장막은 애써 현실을 부정하며 말했다.

그렇게 그들은 불안한 마음에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장막은 주인 때문은 아닐 거라며 계속 중얼거리며 마음을 진정하려고 애썼다.     


“기다려봐, 곧 그 사람을 찾아낼 거래. 우선 지파대로 다 불렀어. 먼저, 유다 지파가 뽑혔네.” 장막이 눈을 커다랗게 뜨며 밖의 상황을 빠짐없이 전했다.

“근데 너희 주인은 무슨 지파야?”

“유..다..지..파... 그다음엔 족속을 나오게 하네. 세라 족속이 뽑혔어. 어떡해…. 우리 주인 세라 족속인데, 지금 남자들이 다 나왔어.” 

장막은 사람들의 입에서 한 마디씩 떨어질 때마다 오들오들 떨며 말했다.

“아... 불길해.” 

은이 허옇게 질려서 말했다.

“이제 삽디 가문이 뽑혔어. 그리고....” 

장막은 차마 다음 말을 잇지 못했다.

“왜??? 빨리 말해봐!” 

우아하게 있던 외투도 마음이 급한지 다그쳐 물었다.

“삽디의 손자, 갈미의 아들인 우리 주인, 아간이 뽑혔어. 아... 그리고 방금 그가 하나님께 죄를 범했다고 자백했어. 근데 이렇게 금방 들통날 걸 왜 그랬을까….”

“우린 무슨 죄니, 그냥 끌려온 것밖에 없는데. 우리가 이렇게 죽는....” 

기운이 빠진 시날산의 외투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었다.     


곧바로 사람들이 장막 안으로 들이닥쳤고, 땅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결국 외투와 은과 금은 밖으로 끌려 나왔다. 장막은 안타까운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장막도 뭉그러진 채 그들과 같은 신세가 됐다. 거기에는 아간과 가족들, 소들과 나귀, 양들을 비롯한 그의 모든 소유가 다 나와 있었다.

“너까지 여기 오게 될 줄은 몰랐어.” 

외투가 슬픈 눈으로 장막을 바라보며 말했다.

“하나님이 정말 화가 많이 나셨나 봐. 우리는 곧 아골 골짜기로 떠나게 될 거래. 죽게 되겠지….” 

꺾여버린 장막이 체념한 듯 담담하게 말했다.

“이렇게 나의 아름다움이 원망스러운 건 처음이야. 그래도 그렇지 감히 하나님 걸 도둑질하다니. 하나님보다 우리가 더 좋았나 봐.” 

시날산의 외투도 자포자기한 듯 말했다. 

“한 사람의 죄가 이렇게 무서운 거구나….
하지만 우리가 깨끗이 사라져야 이스라엘 전체가 회복될 테니 어쩔 수가 없어.”

장막은 이미 죽음을 받아들인 듯 담담하게 하늘을 쳐다보았다.


[여호수아 7장 11절]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나의 언약을 어겼으며 또한 그들이 온전히 바친 물건을 가져가고 도둑질하며 속이고 그것을 그들의 물건들 가운데에 두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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