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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레 Nov 30. 2020

원치 않은 임신을 중단할 권리, <델라웨어 12번가>

원치 않은 임신을 중단할 권리, <델라웨어 12번가>     

‘낙태죄’ 법안의 모호성

  최근 낙태죄 법안을 두고 전국이 들썩였다. 정부가 ‘낙태죄는 유지하되 임신 14주까지는 임신 중단을 허용하고 24주까지는 ‘합당한 사유가 있을 때’ 허용하겠다’라는 입법 예고안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짧은 문장에서부터 법안의 모호성이 드러난다. ‘정확한 임신 주차’는 어떻게 측정할 것이며 또 ‘합당한 사유’는 누가 판단하는 걸까? 한편으로는 임신을 중단하는 것이 왜 그렇게 ‘죄’가 되어야 하는지 의문도 생긴다. 하이디 유잉레이첼 그레이디의 다큐멘터리 <델라웨어 12번가(12th & Delaware)>는 러닝타임 87분 동안 임신 중단에 대한 입장을 끊임없이 고민해보게 하는 영화다.     


‘원해서’ 임신 중단을 하고 싶어 하는 여성은 없다

  1991년 델라웨어 12번가 모퉁이에 낙태 시술소가 개원하고 8년 후, 한 프로라이프 집단이 ’임신 관리 센터‘라는 명목으로 건너편 집을 사들였다. 영화의 사실성을 강조하는 시네마 베리떼 형식의 이 영화는 길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는 두 건물처럼 임신 중단을 두고 상반된 견해를 보이는 두 단체의 입장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낙태시술소를 찾아오는 여성에게 건너편 임신 관리 센터의 직원 앤은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고 죄책감을 심어주는 비디오를 보여주며 마음을 돌리려 한다.

  하지만 오히려 생명권을 존중한다는 그들의 입장은 여성이 내린 결정의 이유를 간과하고 있다. 낙태시술소를 방문하는 어떤 여성도 낙태를 ’원해서‘ 하고 싶어 하는 여성은 없었다. 낙태 시술소에서 일하는 캔디스의 대사처럼 단지 필요해서 할 뿐이었다. 한 여성은 나이가 너무 많아서 아이를 키울 수 없을 것 같아 임신 중단을 원했고 어떤 여성은 이미 두 명의 아이가 있기 때문에 충분한 보살핌을 주지 못할 것 같아서, 또 어떤 여성은 경제적인 문제가 그 이유였다.     

 

여성이 죄인이 되는 것이 쉬운 사회

  가부장제가 씌운 ‘옳다’는 프레임은 여성을 옥죄이고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박탈한다. 과연 태어나지 않은 태아의 생명권이 여성의 자기 결정권보다 더 중요한 걸까? 또, 낳는 것만으로도 생명권이 존중된다면, 낳은 이후의 삶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보호자가 나이가 많아서 아이를 돌볼 수 없거나, 아이를 돌볼 심적·물적 여유가 없는 가정에서 태어난 불행한 아이의 삶은 누가 책임질 수 있을까?

  ‘낙태죄’라는 단어는 이처럼 가부장제의 판타지가 여성을 인격이 아닌 ‘아이를 낳는 존재’로 본다는 의미기도 하다. 실제로 낙태죄의 처벌 대상도 임신한 여성과, 임신한 여성이 임신 중절 하는 것을 도운 사람만 해당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임신은 여자 혼자서 하는 게 아닌데 아이를 낳고 기르고, 심지어 임신을 중단하는 선택에 대한 책임도 오롯이 여성 혼자서 지게 된다. 그야말로 여성이 죄인이 되는 것이 너무나 쉬운 사회다.     


원치 않은 임신을 중단할 권리, <델라웨어 12번가>

  흔히 임신 중단을 반대하는 입장을 들어보면 낙태죄가 허용됨으로써 낙태율이 증가할 것이라는 우려도 보인다. 하지만 수많은 통계자료가 이미 이 우려의 비합리성을 증명한다. 오히려 본인의 선택과 그로 인한 결과를 오롯이 책임져야 하는 여성은 더욱 신중할 수밖에 없다. 임신 중단을 결심한 여성은 이미 죄책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도 ‘선택’을 한 것이다. 원할 때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권리처럼 원치 않은 임신을 중단할 권리가 모든 여성에게 주어지기를 바란다. 여성이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사회, 더 이상 여성이 ‘죄인’이 되지 않는 사회가.


*위 영화는 2020년 12월 1일 개막하는 14회 여성인권영화제의 상영작으로, 개막 이후 온라인에서 무료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14회 여성인권영화제 웹기자단 피움뷰어 활동의 일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 제14회 여성인권영화제

- 슬로건 : 우린 흔들리지 않지

- 기간 : 2020년 12월 1일(화) ~ 12월 10일(목)

- 장소 : 온라인 상영관 (추후 공개 예정 / 전편 무료 상영)

- 주최 : (사)한국여성의전화

- 웹사이트 : http://fiwom.org/main/main.html

- 온라인 상영관 링크 : http://theater.fiwom.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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