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의 조용한 무너짐에 대하여
밤 10시.
아이를 재우려는데 아이가 갑자기 기침을 했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는 밤새 컹컹소리의 기침을 했다.
아이를 키워본 사람이라면 안다.
이 쎄한 기침 소리는, 그냥 넘길 수 없다는 걸.
그 순간, 아이걱정을 뒤로하고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회사에 뭐라고 말하지?”
사실 연차를 내야 하는 건 당연했다.
누가 봐도 지금은 내 삶에서 ‘아이’가 가장 우선이었다.
회사도 이해해줄 거라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 한 줄의 메시지를 보내는 게 너무 어려웠다.
몸이 안 좋아 칭얼대는 아이를 안은 채,
한 손으론 핸드폰을 들고 회사 팀장에게 보낼 문자를 쓰다 지우기를 반복했다.
“죄송합니다, 아이가 아파서 오늘 연차를 쓰겠습니다.”
이 짧은 문장을 쓰는 데 10분이 넘게 걸렸다.
그 상황에서조차 나는 ‘미안했다’
회사에 미안했고, 아이에게도 미안했다.
팀원들이 내 빈자리를 불편하게 여기진 않을까,
회사의 출근을 고민하는 나에게 아이가 서운하지는 않을까,
나는 내성적인 사람도 아니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어려워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좋아하는 일을 할 땐 누구보다 적극적이고 말도 잘한다.
그런데도
“개인적인 이유로 연차를 내야 해요”
라는 말을 꺼내는 게, 왜 이토록 불편한 걸까.
“이건 당연히 연차를 내야 하는 상황이야.”
그건 내 안에서 분명한 판단이었다.
하지만 곧바로
“근데 팀장님은 날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생각이 그 판단을 덮었다.
나는 늘 ‘이해받을 만한 이유’로만 나를 꺼내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
감정이나 필요를 말하는 게 왠지 이기적인 행동처럼 느껴졌다.
왜냐하면
나는 성실해야 하고,
민폐 끼치면 안 되고,
좋은 사람이어야 했으니까.
그리고 그 기준은 너무 높았다. 그건 결국, 죄책감으로 변질된다.
경계가 약한 사람일수록,‘미안함’이 일상이 된다.
심리학에서는 이걸 심리적 경계(Boundary)의 취약성이라 말한다.
자신과 타인의 감정, 책임, 욕구 사이의 선이 희미할수록
남의 평가와 감정을, 나의 책임처럼 느끼게 된다.
그래서 나는
“아이를 챙기는 건 당연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걸 말할 땐 늘 허락을 구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회사에, 어린이집에, 남편에게.
그리고 그 사이에서 정작 나 자신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공감 능력이 높은 사람은 타인의 분위기를 빠르게 감지하고 그에 맞춰 스스로를 조율한다.
나도 그렇다. 갈등을 피하고, 상대가 불편하지 않도록 말끝을 조심하고
“내가 참으면 되니까.” 라는 생각으로 관계를 유지해왔다.
하지만 그런 방식은 분명 뭔가 이상했다.
남에게는 다정하면서, 자신에게는 이상하리만치 냉정한 사람이 되어버린다.
“필요를 말하는 것”이 왜 이렇게 어려웠을까?
나는 어릴 적부터 ‘타인의 기대에 맞춰야 사랑받는다’고 배워왔던 것 같다.
욕구보다 눈치, 감정보다 역할.
그렇게 익숙해진 나는 지금도 “좀 도와주세요”, “내 상황을 이해해주세요” 같은 말이
어딘가 불편하고 조심스러운 말이 되어버렸다.
겉으로는 괜찮아 보이고, 사회적으로도 잘 지내지만 정작 “자기 욕구를 말하는 일”에 취약한
나 자신에게는 괜찮지 않은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었을 수도 있다.
이제는 누군가에게 설명을 구하기보다, 먼저 내가 나를 이해해보는 일부터 시작해보려 한다.
1. 감정이 불편해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행동하는 연습
2. “나는 왜 나 자신에게만 엄격할까?” 나 자신부터 바라보는 연습
3. 필요를 말하는 내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익히는 연습
나의 필요는 설명 없이도 정당하다.
내가 연차를 내는 이유가 충분하지 않아도,
그 하루가 나에게 필요하다면
이미 그것만으로도 괜찮은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