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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코슈카 Aug 03. 2021

홧김에 이탈리아 휴가

약속된 기한 내 체류허가를 내주지 않는다면 나도 내멋대로 국경을 넘을테다

독일인으로 EU시민인 남편을 따라 오스트리아 빈에 함께 거주하기 위한 목적의 일종의 가족비자와 같은 내 체류허가를 결혼과 동시에 신청한 지 6개월. 계절이 두번 바뀌었다.

EU법 상 오스트리아 정부는 이러한 목적의 체류허가 발급을 6개월 안에 발급해야 함을 명시하고 있지만 이민자들에 대한 아주 큰 무관심과 사려없음을 모토로 일하는 오스트리아 해당 관청은 코로나라는 아주 좋은 핑계를 이용해 발급진행 상황에 대한 우리의 어떠한 문의에 아주 일관적인 침묵으로 대응해주고 있었다. 

결격사유가 없으니 '언젠가'는 나올 비자이지만, 신청서류가 잘 접수되었다는 공식확인서를 근거로 기간한정으로 가입해준 의료보험이 곧 만료되는 것이 가장 큰 우려였다 .보험사에서도 상식적으로 이정도 기간 내에는 그놈의 비자든 체류허가든 발급되어야 하는 것이 정상적이라 생각하고 제공한 기간이었으나, 여기 이민관청은 상식이란 것을 애초부터 갖추고 있지 못했다.

그리하여, 체류허가를 당장 짠-하고 받을 것은 기대도 않고, 대략 언제쯤이나 받을 수 있는지, 아무이상 없는 것인지, 의료보험 연장을 요청하기 위해 현 진행상황에 대한 추가 업데이트 문서나 확인서 등을 받을 수 있을지 등에 대해 알아볼 참으로 발급 6개월이 되는 날로 관청에 방문 예약을 잡아놓고, 오늘은 어떤일이 벌어질까 다양한 시나리오를 농담삼아 하며 건물에 들어섰다.

헉. 예상을 뛰어넘는 이들의 잔임함과 재수없음은 이번에도 우리의 뒤통수를 쳤다. 이메일은 물론 전화연결로도 절대로 닿을 수 없는 이 해당관청에 용무가 있다면 직접 방문하는 것 말곤  방법이 없어 이렇게 왔건만. 비자 발급 신청 또는 수령 목적이 아닌 방문자는 들여보내주지도 않는 것이다. 띠용-;

빡치는 정신을 가다듬고 Flo 우리의 상황을 조목조목 설명하고 들여보내 줄 것을 요청했으나 (으례 그러하듯) 재수없고 멍청한 입구에 배치된 직원은 의미없는 말만 반복해댄다. 어떻게 어떻게 우리의 서류 신청확인서를 건네고 진행상황과 추가 소요시간에 대해서만이라도 문의해달라는 딜이 수락되어, (믿거나말거나) 서류를 들고 실무직원에게 가서 뭔가를 확인해 온(그랬다고 믿고싶은) 입구직원은, (신뢰감 1도 없는) "Alles okay" 라는 의미없는 말과 함께  4주를 더 기다리라는 열통 터지는 대답을 아무렇지 않게 뱉어낸다.

보험기간 만료가 임박한 의료보험이건 6개월 데드라인을 명시한 EU법이건 뭐건 이 직원에겐 아무 상관도 관심도, 일말의 도움의 제스쳐를 취할 의지도 없는 일이다. 이 사람의 job description엔 분명 '방문자들에겐 소송당하지 않을 정도의 최소한의 예의만 가지고 대하며, 도움과 친절함, 공감능력을 철저히 배제하고 일할 것'이라 적혀있었을 것이다.


집으로 돌아온 우리는, 이러한 무능력한 업무 진행은 차치하고 대책없고 일방적인 소통의 단절을 선언하며 이러한 상황에 놓여있는 (대부분 이민자들) 사람들의 인권과 처한 상황 등에 대한 어떠한 존중의 자세도 없는 이들에 대해 더이상 참고 죽은듯 기다리기만 할 필요가 없다고 결론짓고, 당장 이탈리아로 떠나버리기로 했다. 오스트리아 체류허가를 아직 획득하지 못항 상황에서 국경을 넘나드는 행위의 리스크도, 뭔지모를 약자의 입장에서 '혹여나' 체류허가 발급에 불이익이 돌아갈까봐 하는 우려도, 더이상 상관없다! 날 한국으로 돌려보낼 근거가 그들에겐 없고, 사실 따지고보면 내가 지금 그렇게 나쁜짓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님을 깨달았다.

우리의 매년 여름 휴가지인 이탈리아 북부 호숫가는 부모님 은퇴후 마련하신 작은 아파트가 있어 기차표만 끊으면 언제든 갈 수 있는 도피처다. 코로나로 인해 운행되는 기차편이 전에 비해 다소 불편하고 비싸졌지만, 조금의 망설임도없이 토요일 새벽 출발하는 기차를 예약하고 하루만에 짐을 쌌다.

오스트리아-이탈리아 사이에 놓인 알프스를 넘어가는 길지만 아름다운 여정


결론적으로, 국경통과는 아무일 없이 지나갔고 이른저녁 우리는 이탈리아에 와있었다!! 때마침 와계신 부모님은 리턴일정을 며칠 더 연기해 오랜만에 함께 시간을 보내고, 또 남은 시간은 우리만의 릴랙싱 & 이탈리안gourmet 여행을 이어갔다. (Flo에겐 너무 더운, 나에겐 따뜻한) 이탈리안 햇살 가득한 여름, 휴가 중에만 허락된 breakfast with Prosecco와 뭘 먹어도 다 맛있는 음식, 매일매일 할 수 있는 수영 그리고 맘씨 좋은 사람들. 캬-, 오길 잘했다! 

저 멀리 보이는 호수, 바라보는 곳곳 언제나 늘 거기있는 올리브 나무들, 붉은 지붕의 이탈리안 주택들. 보고있으면 그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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