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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코슈카 Jun 13. 2021

남편 혼자 휴가를 갔다

결국 남편은 친구와 둘이 크로아티아로 세일보트를 타러(Sailing) 떠나고 난 2주간 홀로 남겨졌다. 아흐- 거지같은 내 상황.

오스트리아 이주 약 7개월, 결혼 거의 5개월, 체류허가신청 제출도 거의 5개월.  한국인이 유럽 쉥겐국가에 무비자로 체류할 수 있는 90일이 지난 상황에서 이제나 저제나 나오려나..체류허가증을 기다리는 중이다. 



Flo가 돈쓰는 일은 몇군데 없다. 그 중 그의 몸과 영혼과 재정이 나 다음으로 가장 많이 쏠려있는 건 Sailing이다. 최소 1년에 두번이상은 크로아티아와 그리스에 보트를 예약하고 세일링을 다녀와야 하는 사람인데 코로나 때문에 작년엔 겨우 봄에 한차례 다녀오고난 후 1년이 넘었다. 몸고 맘이 근질근질하고, 유튜브의 남의 영상들을 박박 긁어다보며 대리만족을 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 오스트리아를 비롯한 유럽의 많은 국가들이 백신접종률을 높여가는 상황에서 락다운도 풀리고 일상생활을 서서히 복귀해가고 있고, 게다가 날씨가 점점 따뜻해지니 더이상 집에만 있을 수 없지. 주로 같이 가는 친구로부터도 아니나다를까 세일링 안가나며 부추기는 연락이 잦았다. 결국 그렇게, 여름 성수기가 오기 전 6월에는 떠나야 한다는 결정을 하고 나도 함께라면 너무 좋지만, 내가 못가게되도 친구랑 둘이 가기로 합의를 했다. 


'이런 애매-한 상황에서 국경을 넘는 여행을 하는게 괜찮을까? 내가 아무리 EU국가인 독일인과 결혼하고 체류허가신청도 당당히 제때 잘해서 확인증도 있고, 오스트리아 의료보험과 소셜넘버가 있다해도, 엄밀하게 아직 체류해도 된다는 허가를 받은 상황이 아니잖아. 돌아올 때 국경에서 재수없게 이상한 놈한테 걸려서 문제 생기고 체류허가증 발급에 혹여라도 안좋은 영향이 생기면 어떡해?'


함께 가고픈 마음이야 당연히 굴뚝같지만, 리스키한 내 처지, 나의 컨트롤을 벗어나는 이슈는 선뜻 결정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출발 전 1주일간 서로 온갖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비엔나의 관련 관청과 EU에 연락해 지금 내 상황에서 국경을 넘나드는게 가능한지, EU법상에 관련 조항이 정확이 어떻게 되는지를 알아본 끝에, 애매한 지금 내 상황에서 다른 국가로의 이동에 대해 자세히 언급된 조항이 부재하다는 답변을 받았고, 결국 조항이 없기 때문에 상황은 케바케일것이다. 즉, 국경에서 문제제기가 됐을 때 나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들이댈 수 있는 근거도, 문서도 없기 때문에 정말 달갑지 않은 상황이 펼쳐질 수 있다는 것이고 이 모든 것은 나의 컨트롤을 벗어나는 일이다.


'바보같이. 애초부터 갈 마음을 먹지를 말고 포기했었어야하는걸.' 이 모든 과정에서 받은 스트레스와, 무엇보다도 너무도 명확히, 난 내 마음대로 다른 나라로 여행도 할 수 없고 그 권리를 주장할 수 없는, 이 F.체류허가만을 마냥 기다려야만 하는 거지같은 현실을 자각하게 됨으로써, 굳이 필요없는 참담함과 낮아지는 자존감, 자기연민 따위를 폭포수같이 느꼈어야했다. 그렇게 출발을 4일앞둔 화요일, 엉엉 울면서 쌓여있던 스트레스와 엿같은 감정의 해소를 실컷해대고 Flo를 홀로 보내드리리- 결정했다.


주변 대부분의 사람들은(그의 가족을 포함), 이런 상황에서 날 혼자두고 친구랑 둘이 휴가를 간 그에 대한 손가락질과ㅋ, 안그랬음 좋겠는데..하는 아쉬움, 그리고 그렇게 그를 보내준 나도 참 신기하다는 반응이다. 

'그런가? 괜찮아- 1주일였으면 두말않고 오랜만에 혼자 있는 시간으로 딱 좋은데 2주는 살짝- 심심할 듯도 하긴해. 근데. Flo는 가야돼. 가서 새로운 바람 맞으며 하고싶은 세일링 맘껏하고 수영도 하고, 리프레쉬 돼 오면, 찌질한 내 처지도 더 잘 보듬어줄테고. 그렇게 한명이라도 행복하면 됐어.ㅋ' 라고 진심으로 내 생각을 말하니 친구 하나는 '참 건강해-. 건강한 부부야-' 라는 답을 한다.


'너를 사랑하고, 그래서 네 행복을 바란다. 무엇을 하든 가능한 베스트를 취하고, 그래서 네가 행복하면 좋겠다.'

우리가 서로에게 종종 하는 말이다. 우리가 서로에게 바라는 그 모든 '행복한'일과 상황에는 반드시 서로가 항항 함께여야 하는 건 아니다, 그럴 수도 없고.  

난 어차피 못가는 여행이니, 너도 가지말고 내 옆에 있어줘야돼!라고 그를 묶어둔들 그는 내 옆에서 행복할까, 그런 그를 보는 난 행복할까. 절대 아니다. 그래서 난 기꺼이 그를 2주간 크로아티아 아드리아틱 바다 위를 둥둥 떠다니라고 보내드렸다. 

사진 속 저기 내가 있었으면..... 잠시 바라지만, 뭐 다음번엔 저기 있겠지.-

일주일 뒤에 돌아오는 남편의 그을린 얼굴에 올려줄 마스크 팩이나 좀 만들어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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