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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enna Jun 14. 2021

서른의 여름

에 일어난 서른의 입덕


나의 10대와 20대는 부정할 수 없는 K-POP의 르네상스였다. 팬덤 문화 역시 여느 때보다 치열했다.


한국형 팬덤 문화는 당장 아이돌이나 팬덤 문화가 우리보다 먼저 자리한 일본과만 비교해도 굉장히 독특하다. K리그의 존재감마저 뚜렷치 않지만 A매치 하는 날에는 전 국민이 축구의 온갖 룰을 꿰뚫게 되는 나라 한국에서는 누군가 혹은 무언가를 응원할 때에 대체로 '소속감'을 필요로 했다. 단순히 좋아하고 그들의 음악을 소비하는 존재라는 폭넓은 정의를 주기에는 한국의 팬덤은 크건 작건 그 대상에 대한 소속감과 그에 따른 의무나 역할 따위를 가진다. 그렇기 때문에 연예인을 넘어서 팬덤 사이의 경쟁이 번지기도 하고, 기획사는 이런 특성을 빌미로 단순히 미적, 음악적 즐거움을 주는 것 이상으로 스토리텔링을 부여하곤 했다.


포인트는 과몰입이 천성 같은 INFP/J 사람에게 이러한 한국의 팬덤 문화는 가히 치명적이라는 것이다. 나의 K-POP 홀릭--즉 '덕질'은 꽤 오래 이어졌다. 사그라든 지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았다. 옷깃 한 번 스친 적이 없는 누군가를 그토록 온 마음 다해 좋아하고 응원하며 그로 인해 한때는 싸움닭이 되며 싸우던 그 열정이 돌아올 일이 또 있을까. 끼리끼리 논다니 나 같은 친구도 더러 있었지만 내 주변엔 나 같지 않은 친구들이 더 많았고, 그들은 하나같이 '이토록 열심히 좋아할 수 있는 것도 재능'이라는 말을 하곤 했다. 인프(INF-)들은 말이야, 소나무야 소나무. 한 번 꽂히면 그것만 바라본다. 그러니까 그 소나무 기질을 왜 너를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쓰냐고. 아니, 나를 알고 모르고가 중요한 게 아니야. 내가 알고 모르고가 중요한 거지, 너 덕질 안해봤구나?



얼마 전 Mnet의 '킹덤'이란 방송을 보다가 모 팀에 빠졌다는 친구로부터 '손자들이 생겼는데 손자들의 서포터들이 다 본인의 동년배인지라 화력이 약하니 문자투표에 동참해달라'는 요청을 받으며 우리 나이에 (요즘) 아이돌들을 좋아하면 누나가 아닌 할미로 표현을 해야 한다는 걸 깨닫고 말았다는 거다. 그래도 한 때는 화면에 돌아가며 비치는 모든 아이돌이 나에게선 오빠였을 때도 있었는데.  


이사를 하고 나서 큰 화면으로 유튜브를 시청하는 획기적인 변화가 생긴 후부터 한동안 무관심했던 K-POP을 다시 접하고 있었다. 으응, 저 팀이 갑자기 다시 주목을 받는구나, 으응, 쟤네가 벌써 저렇게 유명해졌구나, 으응, 어머 저 친구가 저렇게 잘했다고? 혼잣말로 중얼중얼 TV와 대화 나누듯 뱉으며 천상 한국인 할미는 새로운 얼굴들이 나올 때마다 내 삶에서 겪는 시간 흐름의 속도도 충분히 빠르건만 미디어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다는 걸 새삼 피부로 실감했다. 게다가 그 두 가지가 만나면 시간 흐름이란 정말로 빛과 같은 속도라, 유튜브에서 빠져나오면 하루가 그냥 지나가 있기도 하다. 이어지는 콘텐츠들의 홍수에서 결국에는 한 팀에 정착을 했다. 역시나 까마득이 어린 친구들이다.


어차피 보는 거 돈 드는 것도 아닌데 계속 봐 보자, 한 게 한 달 정도 되었을까. 재미있는 변화가 생겼다. 일단 휴대폰의 배경이 바뀌었고, 수년간 이어진 청음에 질려 가방 속을 헤매던 이어폰이 다시금 두 귀로 돌아왔으며 무의미하게 채널을 돌리는 시간이 줄고 대신 그들의 영상에 함박웃음 짓는 일이 많아졌다. 내 친구처럼 나도 할미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건 그냥 입덕이잖아요, 하면 뭐 네 맞아요. 당연한 변화인데 뭐가 재밌는 거죠? 한다면 그렇지, 입덕의 절차와 그 결과는 당연하지만 서른이 되어서는, 삼십 대가 되어서는 처음 느껴보는 입덕이라서.


또 과몰입을 하게 된 나는 수많은 영상과 컨텐츠를 접하며, 내 맘대로 갑자기 까마득이 어린 막둥이 동생이라도 태어난 냥 앞으로 더 더 치열함에 살아야 할 텐데 어쩌나 하는 안쓰러움을 느끼거나 어쩌면 나보다 훨씬 일찍, 연예계라는 독특하고도 거친 경쟁사회에서 살아 남아 얼굴을 비추게 되었다는 그 성숙함에 감탄을 느끼며 내적 친밀감을 무척이나 쌓아가고 있다. 입덕 전에는 뮤직뱅크나 인기가요 같은 음악 프로그램의 1위 소감을 귀담아듣는 일이 없는데 입덕을 기점으로 내 가수의 1위 소감에 딸려 온 OOO(팬클럽 이름) 고마워요! 하는 순간 내가 더 고마워하며 주접을 떨게 된다. 무슨 회사나 이사처럼 서류에 도장 쿵쿵 찍어 흔적을 남기는 것도 아니면서 입덕을 받아들이는 순간 나는 그 OOO에 속해 있다는 소속감을 갖는 것이다.


게다가 XXX마눌, 이라는 아이디가 버디버디에 수천 개가 있었을 그 시절에는 잘생긴 오빠나 동년배들이 나와 멋진 외모로 춤을 추고 노래하는 것에 설레 하며 하던 것이 입덕이란 거였는데 적게는 여섯 살(적어도 여섯 살이라니,) 많게는 열 살이 넘게 어린 이들의 무대와 영상들을 보며 이전 같은 몽글한 설렘이 아닌 (그들의 성장에 기여한 바가 없는 주제에) 기특함이나 의젓함을 느끼며 '할미'가 되어 행복해하는 입덕이 적어도 내게는 처음이라 내심 신기하고 재밌다는 것이다.



'덕질'과 거리가 먼 사람들은 덕질을 유사연애의 동일 선상에 올려놓고는 하지만 내가 가깝게 혹은 멀리서 접해 온 한국의 팬덤 문화는 그보다는 한 배를 탄 팀, 혹은 조금 더 포괄적인 개념의 가족이 된다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 그러니 어렸을 때에는 오히려 내가 먼저 연애적 관념으로 느꼈던 그 애정이 나이가 들고 이것저것 겪으면서 누가 시키거나 정의내리지 않아도, 혹은 어떤 특별한 사건이 생기지 않아도 자연히 우정 혹은 가족 적인 애정으로 변화한다. 그 속에, 그 베이스에 있었던 것이 단순히 사랑LOVE이 아닌 마음MIND였던 걸 서른의 여름에 일어난 소소한 입덕을 통해 한 번 되새겨 보며, 사실은 심각한 척해봤지만 그냥 입덕 자랑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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