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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다 Apr 08. 2018

영화 레이디 버드, 특별함을 찾고 있는 당신에게

[영화 | 레이디 버드 Lady Bird]

나는 나 스스로를 아주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당장 내 눈에 보이는 내가 그리 특별하지 않을지라도, 주변의 사람들이 나를 특별한 존재로 여기지 않을지라도 상관없었다. 나는 아직 피어나지 않은 꽃처럼, 언젠가는 나의 진가를, 나의 특별함을 모두가 알게 될 거라고 기대했다.  


아마 사춘기 때부터였겠지-하고 생각을 더듬어본다. ‘나'라는 존재에 대해서 정의내려야 했고, 그 의미를 납득해야 했던 그 시기부터 나는 그랬던 것 같다.  


그리고 한 해 두 해 나이가 들면서 평범하고도 평범한 상황들을 맞이하며 살아가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나는 좀 힘들었다. 생각해보면 꽤 당연한 것인데, 나는 나의 특별하지 않음을 받아들이기까지가 쉽지 않았다.  


생각만큼 나는 특별하지 않았다. 특출나게 공부를 잘 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해서 외모가 뛰어나지도 않았다. 누구보다 잘 한다고 할 만한 것도 없었다. 나는 매 순간 내 인생의 최선을 선택했지만, 그 결과 나는 어린 시절 내가 꿈꾸었던 ‘특별한’ 나는 아니었다.  




영화 ‘레이디 버드 Lady Bird’ 속 ‘레이디 버드’에게서 나는 지난 나의 모습을 보았다. 특별해지고 싶었지만, 그리 특별하지 못했던, 그러나 여전히 그 이야기는 진행 중인 ‘레이디 버드’.  


영화 ‘레이디 버드’는 대학진학을 앞둔, 고교 졸업반 크리스틴(시얼샤 로넌)이 보낸 1년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병원에서 일하는 엄마, 실직한 아빠, (아시아계인 것으로 보아 아마도 입양이 된 것 같은) 오빠, 그리고 오빠의 여자친구와 함께 산다. 열일곱의 설익은 연애는 번번이 씁쓸하게 끝나고, 엄마의 잔소리는 끝이 없다. 


레이디 버드에게 언제나 무한 애정을 주는 아빠와 사사건건 부딪히지만 그녀를 참많이 사랑하는 엄마


공부는 못하지만 동부 아이비리그의 대학을 지망하고, 수학에 소질은 없지만 수학 올림피아드에 나가고 싶어 한다. 따분한 새크라멘토에서도 기찻길 옆 구린 동네에 사는 ‘레이디 버드’는 이 집을 떠나 뉴욕에서 완전히 새로운 인생을 기대한다. 


재미있는 일이 좀 생기면 좋겠어.


(좌) 너무 지켜준다 싶었는데 알고 보니 게이였던 첫 남자친구와 (우) 눈깜짝할새 지나가버린 첫 경험을 선사해준 그 다음 남자친구


‘레이디 버드’는 자신만의 특별함을 찾기 위해 분투한다. 나를 위해 내가 지어준 나의 이름이라며 크리스틴 대신 ‘레이디 버드’라 불리기를 바란다. 특별한 첫 경험을 꿈꿨지만 별 볼 일 없었던 경험 후 남자친구에게서 들은 이야기는 “넌 앞으로 평생을 시시한 unspecial 섹스를 하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뿐. 특별한 존재임을 인정받기 위해 참여한 뮤지컬 오디션에 합격하지만, 오디션에 응시한 모든 학생이 합격했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실망한다.  

 



나는 니가 될 수 있는 최선의 모습이 됐으면 좋겠어.
I want you to be the very best version of yourself you can be.


이게 최선의 모습이면 어떡하지? (What if this is the best version?)


추수감사절을 앞두고 옷을 사러 엄마와 쇼핑을 갔다가 ‘레이디 버드’와 엄마가 나눈 대화. 무엇을 하든 딸이 최선을 다하기를 바라는 엄마와, 지금 이 정도가 자신의 최선일지도 모른다는 '레이디 버드’.  



‘레이디 버드’가 자신에게서 특별함을 찾으려 애썼던 것도, 어렸던 내가 나를 ‘특별함’이라는 틀 안에 넣고 싶어 했던 것도 모두 ‘사랑받고 싶음’의 또 다른 표현이 아니었을까. 나의 특별함이 곧 누군가로부터 사랑을 받고, 관심을 받는 바로미터라고 여겼던 것은 아닐까.  




사춘기 이후로 그보다 좀 더 많은 시간을 살아내어 본 지금의 내가 내린 결론은 ‘나는 특별하다’는 것이다. 다만 그 특별함이 누군가에게 사랑이나 인정을 받기 위한 특별함이 아니라는 것뿐.  


하루를 시작하고 순간순간 마주하게 되는 온갖 상황과 관계 속에서 더 나은 내가 되고자 애쓰며 선택하고 행동하고 또 책임지는 것. 그 자체가 내게 주어진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끼게 된다. 누군가의 인정이나 사랑으로부터 만족감을 얻기 보다는, 언제나 내게 있어 내가 가장 좋은 충전소이자 위안이 될 수 있기 위해 노력하고 애쓰고 있다. 



내가 대단히 뛰어난 무엇이 아니라도 괜찮다. 특출나지 않아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아등바등하며 살아도, 하루에도 수십 번 모두 다 내팽개쳐버리고 싶은 연약한 마음이라도 괜찮다. 나는 그냥 나로서 괜찮다는 것. 이 사실 하나를 알기까지 먼 길을 굽이굽이 돌아왔음을 느낀다. 앞으로도 계속 가야하겠지만. 




지금 특별한 내가 되는 것은 당신에게서 오는 것도, 저 먼 어딘가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도 아니라, 바로 내게 달려있다는 것을 알게 된 오늘. 영화 ‘레이디 버드’를 보며 느낀 한 가지.  



- 만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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