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인다 Aug 05. 2015

끝내주는 액션영화 '매드맥스',
인간 본질에 다가가다

[영화 ㅣ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 MAD MAX : FURY ROAD]

[영화 결말이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자동차 액션에 있어 매드맥스 시리즈는 30년 전 첫선을 보인 이래 지금까지도 교과서와 같은 영화다. 그만큼 자동차를 타고 펼치는 액션신에 있어서 독보적인 영화라 할 수 있다.


그 덕분에 지난 5월 영화가 개봉하자 온갖 언론과 영화 평론가들은 '역사상 가장 화려한 액션 영화의 탄생’ ‘120분 동안 쉬지 않고 자이로드롭을 타는 극한의 쾌감’ ‘숨 막히는 액션 그 자체’ 등등 쉴 새 없이 화려한 수식어를 걸어 매드맥스 액션에 혀를 내둘렀다. 


그런데 매드맥스는 그저 120분 내내 쉼 없는 전투로 아드레날린 과다분비에만 집중하는 액션 영화가 아니다. 매드맥스는 보다 근본적으로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존재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태초의 모든 생명이 시작되는 존재 ‘어머니’를 말한다. 



#1 숨 쉴 틈 없는 강렬함, 아날로그 액션의 백미 <매드맥스>


영화는 핵전쟁으로 멸망해버린 22세기를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 맥스(톰 하디)는 아내와 딸을 잃고 환영과 환각에 시달리며 죄책감 속에 살아간다. 맥스에게 남은 것은 단 하나, ‘생존본능’뿐이다. 그러던 중 물을 장악해 살아남은 인류를 지배하는 독재자 임모탄 조의 부하들에게 납치되어 노예가 된다.


또 다른 주인공인 사령관 퓨리오사(샤를리즈 테론)는 임모탄의 명령을 수행하러 길을 떠난다. 하지만 퓨리오사는 인류 생존의 열쇠를 쥔 임모탄의 다섯 부인과 함께 분노의 도로로 도망친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녹색의 땅(Green Place)’. 건강한 유전자를 가진 후계자를 갖는데 혈안이 된 임모탄은 수하들을 데리고 퓨리오사를 쫓는다. 노예로 이 싸움에 끼게 된 맥스는 퓨리오사와 함께 임모탄에게 맞선다. 


영화는 숨돌릴 틈 한 번 주지 않고 120분을 쉼 없이 내달린다. 영상은 총체적 화려함 그 자체다. 기반 콘텐츠가 만화인 만큼 영화 곳곳에는 화려한 장치와 상상력을 뛰어넘는 모습의 등장인물들이 배치되어 있다.


액션신은 더 말하면 입이 아플 지경이다. 본 적 없는 온갖 자동차 액션이 총망라되어있다. 사막과 같은 황무지를 배경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자동차 액션은 보는 내내 지나칠 정도의 쾌감을 선사한다. 쫓고 쫓기는 추격전에 날 것 그대로의 액션이 가미되어 집중도를 한껏 높인다.


영상을 두고 한 가지 더 이야기하자면, 영화의 단 20%만이 컴퓨터그래픽(CG)의 힘을 빌렸다. 다시 말해, 영화의 80%가 실제 상황이다. 액션이라는 것이 갖는 육체성을 최대한 살려내고자 한 감독(조지 밀러)의 뚝심이 엿보인다. 20%만 할애했다는 컴퓨터그래픽의 예를 들자면 거대한 모래 폭풍으로 들어가는 장면, 쉼 없이 폭발하는 자동차 주변 배우의 모습 정도다. 모래 폭풍은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이 희박했기 때문이고, 배우의 모습은 안전상의 이유 때문이다. 

드물게 컴퓨터그래픽으로 촬영된 모래폭풍 장면

아프리카 나미비아 사막에서 이뤄진 촬영에는 배우와 700명의 스태프, 150명의 스턴트맨이 6개월 동안 함께했다. 특히 하늘로 치솟은 장대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 거침없는 격투를 선보이는 장대 액션은 그 이름도 유명한 ‘태양의 서커스’ 단원들이 도맡았다. 


영상의 파워를 배가시키는 장치로 음악도 십분 활용되었다. 하드코어 록(hardcore rock)이 이 ‘미친’ 영화를 더욱 광적인 분위기로 몰아간다. 수차례 원샷을 받으며 등장하는 ‘기타맨’은 이 영화의 가장 도드라진 씬스틸러로(scene stealer) 활약한다. 기타맨은 위아래 한 벌로 빨간 내복을 입고 불을 내뿜는 일렉기타를 연주한다. 마치 엄청난 스케일의 록 오케스트라를 접하는 듯하다. 



#2 영화 속 여성의 존재와 역할에 주목해야 


여기까지 이야기한다면 그것은 매드맥스의 절반도 이해하지 않은 것이다. 그저 화려한 액션과 그 액션을 더욱 꽉 채우는 음악만이 매드맥스의 전부가 아니다. 진가는 영화 속에 등장하는 여성들에게서 찾을 수 있다. 기본적으로 매드맥스는 임모탄을 비롯해 그의 부하들은 모두 남성이다. 즉, 악(惡)으로 상징되고 모든 것을 억압하고 통제하고 군림하고자 하는 존재는 남성이다.


반면, 앞서 줄거리에서 등장한 여성, 퓨리오사와 임모탄의 부인들, 그리고 영화 후반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남성에 반대되는 선(善)을 상징한다. 희망과 구원을 바라며 생명과 공존을 바라는 존재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선악의 분명한 구도 속에서 퓨리오사는 액션하는 여성 캐릭터의 역사를 새로 썼다. '어벤저스'의 스칼렛 요한슨도, '툼레이더'의 안젤리나 졸리도 잊게 한다. 이전까지 액션영화에서 격투를 벌이는 여성 캐릭터가 주로 섹시함을 강조하는 존재였다면, 퓨리오사는 전에 볼 수 없는 전사(戰士), 그 자체로 등장한다. 


하지만 여기서 정말 주목해야 하는 것은 임모탄의 다섯 부인이다. 영화 속 격투 장면을 보고 있자면 내 입에도 모래가 씹히는 듯 거칠고 열악한 환경이건만, 다섯 부인의 모습은 마치 '엘프(elf)'같다. 자동차 기름을 검게 얼굴에 묻히고 잘린 팔에 의수를 채워 강인함을 드러내는 퓨리오사와 달리, 부인들은 하늘하늘한 천으로 몸을 감싸 여성으로서 아름다움을 극대화했다. 


그렇다고 해서 여성으로서의 아름다움이 성(性)적인 아름다움은 아니다. 흔히 생각하는 섹시함은 어필하지 않는다. 대신 이 다섯 명의 여인들은 생명을 잉태하고 가꿔나가는 존재, 즉 '어머니'로서의 아름다움에 집중한다. 한 여인은 만삭의 배를 이끌고 탈출을 감행했고, 다른 이들은 서로 의지하며 누구보다 굳건한 연대와 공존을 펼쳐낸다. 상대를 이해하고 위로하는 모습도 보인다. 


임모탄은 영원불멸을 뜻하는 단어 'immortal'에서 이름을 따왔다. 이름에서도 나타나듯, 독재자 임모탄은 핵전쟁으로 폐허가 되고 인간의 생명 자체가 온전할 수 없는 상황에서 완벽한 유전자를 가진 아들을 후계자로 얻는 것을 지상 최대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 다섯 여인을 부인으로 삼고 최고의 환경을 제공해왔다. '생산' 도구로 여성을 소유하고 유린해온 것이다.


이런 영화의 선악 구조, 퓨리오사를 통해 대변되는 여성의 강인함 등이 강조되어 일부에서는 '페미니즘 영화'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이에 대해서는 감독 역시 일부 인정하기도 했다. 실제 임모탄의 부인 배역을 맡은 배우들은 페미니즘 전문가로부터 조언을 받기도 했고, 실제 성폭행 피해 여성들의 체험담을 전해 듣는 과정을 거쳤다고 한다. 



#3 태곳적 만물을 창조한 '마고어머니'의 흔적을 찾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 보고자 한다. 유대인에게 에덴동산이 있다면 한민족에게는 '마고성(麻姑城)'이 있다. 마고성은 한민족의 가장 오래된 역사서인 <부도지(符都誌)>에 등장하는 지상 낙원이다. <부도지>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한민족만의 창세설화를 담고 있다. 그 설화는 다음과 같다.


... 태초에 소리(音)가 있었다. 무한한 공간 속 유일한 존재인 그 ‘소리’가 리듬이 되어 우주를 창조하는 법칙인 율려(律呂)가 된다. 율려가 서로 무한히 만나고 헤어지고 부딪힘과 팽창을 반복한 결과, 별들이 생겨나고 물과 육지가 나타났다. 여기에 기(氣), 화(火), 수(水), 토(土)가 형태를 갖추고 이들이 서로 섞여드니 밤과 낮, 사계절이 생겨나고 풍성한 지구가 갖춰졌다.


이 모두를 관장하는 이가 바로 지구의 어머니인 ‘마고(麻姑)’였다. 그리고 지상에서 가장 높고 성스러운 땅에는 마고 어머니를 중심으로 한 ‘마고성(麻姑城)’이라는 낙원이 세워졌다...


마고 어머니가 하늘의 에너지를 받아 천지 만물을 창조한 만큼, 마고성 사람들은 천지의 기운과 깊이 연결되어 있었다. 땅이 솟아내는 지유(地乳)를 마시며 하늘과 통할 수 있었고 스스로 하늘의 뜻을 듣고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에너지만으로도 물질을 쉽게 만들었고, 피곤함을 느끼지도 않았으며, 소리 없이도 능히 말을 하고, 영원한 생명을 갖고 있었다. 


다른 생명을 탐하지 않던 마고성 사람들이 어느 날 포도를 먹은 뒤로는 모든 것이 달라졌다. 다른 생명을 취하면서 정신이 아찔해질 만큼 강력한 자극에 빠진 이들이 점차 하늘과 자연과 소통하던 감각이 무뎌진 것이다. 이를 마고성에서는 '오미(五味)'의 변(變)'이라 한다. 마고성 사람들은 다시 내 안의 하늘을 깨워낼 ‘복본(復本)’을 기다리기로 한다. 


퓨리오사와 임모탄의 부인들은 독재자 임모탄을 피해, 무자비한 억압과 인간성이 상실된 세상을 피해 '녹색의 땅'을 찾아 탈출을 감행했다. 맥스의 도움을 받아 천신만고 끝에 임모탄의 추격을 떨쳐내고 나아가게 되지만, 그들은 자신이 얻고자 했던 그 희망과 구원을 위해 다시 돌아간다. '복본'인 것이다. 


과거 '녹색의 땅'에 살았던 한 늙은 여성이 온갖 곡식과 과일 씨앗 꾸러미를 임모탄의 부인 중 한 여성에게 보여주며 이렇게 말한다. 


한 때 실컷 먹고 살았단다.
그때 우리는 내가 살기 위해 누군가를 죽일 필요가 없었지.


지금 우리를 돌아본다. 아직 핵전쟁은 일어나지 않은 21세기의 지구. 과연 나는 나를 위해 누군가를 위협하고 있지는 않은가. 과연 나는 이 모든 과도한 경쟁과 부조리한 사회 구조에 대하여 용기 있게 '복본'을 선택할 수 있을까. 


마고 어머니와 같이, 임모탄의 부인들과 같이 '생명력'을 가진 존재가 된다는 것은 어찌 보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저 지금 이 순간, 내가 자연을 지배하는 존재가 아니라 나 역시 자연의 일부임을 알아차리는 것, 거기서부터 시작되는 것 아닐까. 



만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