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가 더 잔인한가?
1.
이전 회사에는 같은 팀에 꼰대 직장 상사가 있었다. 주어진 일은 잘했으나 인성이 안 좋았다. 허세도 심하고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함께 일하기 힘든 스타일이었다. 팀장보다 나이도 많았다.
2.
그분은 어느 순간 새로 만들어진 팀으로 부서 이동을 했다. 문제는 새로 만든 팀이 그분 혼자 있는 팀이란 거. 한마디로 회사에서 나가라는 압박으로 팀을 만들어 그분을 배치한 것이다. 혼자 다른 자리에 가서 일하게 되었고 옮긴 날부터 밥도 같이 안 먹었다. 팀이라는 우산이 없어지고 낭떠러지에 홀로 서있는 형국이 되어 버렸다.
3.
일도 없었다. 내보내려는 사람에게 일을 줄 리 없다. 그리고 한 달 정도 있다가 퇴사했다. 여기저기 미움이 많이 쌓였을 텐데 마지막날 팀원들에게 밥을 사줬다. 앞으로 뭘 할지에 대한 얘기도 하지 않았다. 나이가 많아 새로운 직장은 구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얼핏 개인 사업 쪽 얘기도 했던 것 같다.
4.
인간적으로는 무척 싫었지만 그와 비슷한 나이가 되어 보니 그때 얼마나 힘들었을지 공감이 된다. 아이도 있는 가장이 일도 없고 누구도 말 걸지 않는 회사에 출근해 하루하루 깎여나갔을 자존감을 생각하면 회사가 참 잔인하다는 생각이 든다.
5.
얼마 전 팀원과 미국식 해고 문화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팀원은 미국식 해고 문화가 도입되어야 우리나라가 발전한다고 주장했다. 읽고 들은 미국식 해고 문화는 살벌하다. 해고가 통보되면 당일에 바로 짐 싸서 나가야 한다. 인수인계도 없고 동료들과 작별 인사 할 시간도 없다.
6.
미국식 해고 문화는 반대하는 입장이다. 여기는 미국이 아니다.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되었다고 하지만 짧은 시간에 후진국 > 개도국> 중진국 > 선진국이 된 우리나라에는 다양한 세대가 존재한다. 오랜 시간 선진국이었던 미국의 문화를 무작정 주입하면 많은 문제와 세대 갈등이 생길게 뻔하다. 그렇지 않아도 바람 잘날 없는 대한민국 아닌가? 시간이 더 지나서 선진국 세대가 주류가 되면 모르겠지만, 동서양의 문화가 너무 달라 가능할지 모르겠다.
7.
그렇다면 해고가 어려워 직원을 퇴사하게 내모는 한국식 해고 문화가 잔인한가? 아니면 바로 내쫓는 미국식 해고 문화가 잔인한가? 한국식은 이직이나 사업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은 벌 수 있겠지만 회사를 참고 다니는 동안은 자존감이 깎여 나간다. 미국식은 당장 생계를 걱정해야 하지만 자존감 깎일 일은 적다.
8.
개인적으로는 회사에서 내쫓기는 상황에 몰리면 바로 퇴사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퇴사 이후에도 살아나가야 하는데 자존감이 꺾여 버리면 치명적이다. 돈은 못 벌어도 자존감은 지켜야 이후에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런 면에서 한방에 내쫓는 미국식보다 한국식 해고 문화가 더 잔인해 보인다.